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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오디세이 - 세계적인 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플란의 역사 문화 기행
로버트 카플란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대학교 3학년, 로버트 카플란을 읽고 국제 관계학을 읽었다. 전공도 아닌 전공 서적을 읽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로버트 카플란의 글은 날카로웠다. 로버트 카플란의 글이 부시와 클린턴의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는 그 당시 꽤나 유명했다. 어렵지 않은 글 안에 어렵운 이야기를 담을 수 있고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때 알았다. 내 꿈은 그 책을 읽으며 커졌고 그 때 난 그렇게도 반짝 거렸다. 꿈 꿀 수 있는 자유가 충만했던 그 때, 한 권의 책을 흡수할 수 있던 그 때, 그 때를 돌아보면 참 아찔하다. 그렇게도 난 눈부셨다. 꿈은 현실과 부딪혀 점점 타협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늘 턱 없이 부족해 보였다. 그 안에서 내일을 걱정하고 미래를 걱정하다 보니, 평생 갖지 않을 것 같던 청약 통장이라던지 보험이라던지 하는 것들이 생겨나고 그만큼 삶의 여유는 줄어들었다. 굉장히 오랜만에 다시 로버트 카플란의 책을 읽었다. 그의 글은 여전히 어렵지 않았지만 난 이 책 한 권이 그토록 어려웠다. 여전히 내게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안겨줬지만 그 때만큼 반짝 거릴 수 없는 나는 연신 투덜거리고 다른 미래를 꿈 꾸기 보단 머리 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하며 당분간 내겐 오지 않을 자유라며 현실을 책망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은 책 첫 페이지에서 만난 뜨거운 한 문장 탓이었다. 책의 첫장에서부터 한 구절이 독자를 사로잡는 일은 흔치 않다.
여행은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인간은 꿋꿋이 존속하기 위해서 기억해야 할 것들을 기억한다고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삶 속에서 그 많은 것들이 잊히지만, 우리의 여행은 결코 잊히는 일이 없다. (p.14)
현실에 제압당한 지금도 여행에 대한 꿈은 버릴 수가 없다. 당분간 내게 오지 않을 자유래도 여행을 꿈꾸며 삶은 지속된다. 그렇다면 그 꿈을 놓지 않기 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로버트 카플란은 지중해를 끼고 있는 나라들을 여행하며 내게 그 답을 알려 준다. 그의 여행에서 카잔차스키가 말한 암호랑이, 즉 셰이랜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띈다. 엄선된 선장으로 비유되는 준비 된 여행가는 여행을 하며 세상을 향한 눈을 뜨게 된다. 그의 안에 축적 되어 온 지식들이 그 지식의 배경이 된 공간들과 마주하는 순간 새로운 세상은 그의 안에서, 그리고 그의 앞에 펼쳐진다. 완벽한 여행을 하기 위해 선행 되어야 할 것들은 결국 지식의 습득을 통해 진정한 모험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그 지식이란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 많은 독서를 하고, 텍스트 안에서 길도 잃어보며 그것들이 무르익다가 터지는 순간을 준비해야 한다. 결국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많은 독서, 그것 뿐인 것이다. 로버트 카플란은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을 여행하며, 그가 쌓아온 지식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또 그 안에서 새로운 지식들을 쌓아올려 가기도 한다. 그의 지식들은 그렇게 쌓여가며 결국 반짝하는 섬광과 함께 세계의 흐름에 대한 눈을 그에게 선사함과 더불어 간신히 원고 하나 팔아 먹고 사는 미래 없는 자유기고가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저널리스트로 거듭나게 해 준다. 그것은 운이 아니었고 내부적인 그의 엄청난 준비 탓이었다는 것을 이 책 속, 즉 그의 여행 속에서 우린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현실을 탓하고 비난하던 나는 틀림없이 잘못 된 행동만 거듭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때때로 왜 이것 밖에 할 수 없는지 한탄하는 내 태도는 분명히 어긋난 것이었다. 책을 읽는 것, 그것은 내게 준비의 과정이며 삶의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는 것을 왜 그동안 나는 잊고 있었던가. 탓을 하려면 아직 그 시간과 노력이 부족하여 내게 그 섬광이 오지 않은 탓을 하는 것이 옳았다. 더 많이 읽고, 한 권의 좋은 책을 읽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것은 언젠가 현실 속에서 반짝 하고 떠오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 책 한권이 알려 주었다. 그러고보면, 로버트 카플란은 내게 또 다른 세계를 향한 눈을 안겨 준 셈이다. 난 이번에도 몇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지없이 그에게 매혹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