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나게 시니컬한 캄피 씨
페데리코 두케스네 지음 / 이덴슬리벨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천리안, 유니텔, 나우누리 등의 서버가 호황을 누리고 있었을 때, 팬픽에 앞서 인터넷 소설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었을 때, 영화에도 그런 서버의 채팅창에서 만난 연인의 이야기가 종종 나오고 있었을 때, 대한민국에선 '엽기적인 그녀'라는 타이틀의 인터넷 소설의 붐이 일었다. 인터넷을 통해 한 편의 소설을 발표해 낸 한 남자는 영화계도 평정했고 해외로 그 소재는 팔려가기도 했다. 혹자는 그 이야기가 그 남자의 실화라 했고, 혹자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찌보면, 그것은 인터넷 소설 인기의 시발점이 되었고 촉매재가 되었다. 그것들의 텍스트 적인 질이 어떠한가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한다는 점은 분명해 졌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모 작가는 이런 현상을 보고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멀리 이탈리아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전해졌다. 한 변호사가 자신의 일상을 블로그에 적기 시작해 화제가 되었고, 그것은 이내 소설로 발표되었다. 원제를 직역하면 '불법 법률 사무소.' 변호사가 발표한 불법 법률의 이름이란 궁금하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는 누군가의 뒷 이야기를 '알 권리'라는 명목하에 궁금해 하고 캐내고 싶어 하니까. 조금 고급스럽게 나가자면 '삼성을 생각한다'가 그렇게 히트를 쳤고, 좀 저급스럽게 나가자면 '4001'가 소문을 탔다. 이 두 책 사이의 간격은 어마어마해 보이지만 실상은 대중의 관음증적인 욕망을 부추긴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보기보다 그렇지 않다. 그런 배경정보를 모른 채 읽는다면 그냥 유쾌한 블랙코미디 소설 한 편에 지나지 않다.

     꿈을 잃어가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모두가 한 때는 꿈이 있었다. 법조계에서 일하는 사람도, 출판계에서 일하는 사람도, 커피숍을 창업한 사람도, 한 때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은 욕망이 있었고 그것은 그들의 꿈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커다란 장벽 앞에서 모두의 꿈은 사소해지고 시들어간다. 그 꿈을 현실로 바꾸는 것은 세상의 1% 사람들 몫이다. 그리고 요즘은 그 1%의 99.9%는 부모의 재정 능력 혹은 사회적 지위의 영향을 받는다. 즉, 이 세상의 0.01%의 사람만이 자수성가라는 타이틀 아래 꿈을 현실화 한다. 캄피씨도 한 때는 꿈많은 사람이었다. 마호가니 테이블 아래 법률 상담을 원하는 고객이 기다리고, 저울과 날카로운 검을 든 채 세상의 악을 심판하는 공명정대한 사람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허나, 지금의 캄피씨는 새벽 3시까지 야근을 하고 아침 8시에 다시 출근을 하고 어깨 밑까지 다크서클을 내린 채 연애, 우정 따윈 일에 밀려버린 세일즈맨일 뿐이다. 그의 꿈은 사라졌고, 그의 야망도 점점 시들어간다.

     유쾌해 보이고 발랄해 보이는 이 이야기 속엔 전 세계의 현실이 담겨있다. 합법적인 근로시간 외에도 상사의 요구에 따라 일을 해야만 하고, 그것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 자리를 노리고 있는 누군가의 재물이 될 뿐이다. 사랑, 우정, 가족애 따윈 성공 앞에 길을 내주는 것이 아닌 현재를 꾸려나가기 위한 압박에 길을 내 주어야 한다. 취미 생활은 이력서에나 존재하는 허울이 되어버리고, 특기란을 메우려면 한참을 멍해져야 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 그리고 캄피씨다.

     나와는 다른 직업,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것만 같은 그의 일상을 보며 난 나의 일상을 떠올렸다. 그리고 어쩌면 캄피씨가 우리 모두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책은 해피엔드로 끝나고 그는 자유를 찾았지만, 그 후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유리구두를 신고 공주가 된 신데렐라의 뒷 이야기가 불화 끝 이혼일지, 끝까지 잘먹고 잘살았습니다일지 모르는 것처럼 그의 뒷 이야기도 알 수는 없지만 분명 또 다시 어딘가에 직장을 구하고 또 다시 그런 삶은 이어질 것이다. 에밀리와 결혼을 했을 수도, 성격차로 헤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와 어떤 결론이 내려졌든 그는 다시 일을 해야 하고, 또 다시 그런 삶을 살아갈 것은 이 세상 속에서 뻔한 이치가 되어버렸다. 이젠 해피엔드도 꿈꾸기 힘든 일상이 되어 버린 지금 캄피씨의 이야기를 한 편의 즐거운 상상으로 읽어야 할지, 한 편의 씁쓸한 에피소드로 읽어야 할지 이것도 독자의 몫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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