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독서 - 책을 읽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 여행자의 독서 1
이희인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단 한 줄이면, 모든 것이 용납되는 그런 책이 있다. '책을 읽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 라는 이 책 표지의 한 구절이 그랬다. 이 책을 읽기 바로 직전 <지중해 오디세이>를 읽으며 또 한 번 여행에 대한 열망이 잠시 피어났던 때라 이 책을 만나는 것은 왠지 조심스러웠다. 여행을 하고 돌아 온 모두가 왜 떠나지 않는가를 부르짓어도, 떠날 수 없는 사람은 있다. 현실이라는 것은 핑계라고 한다면 묻겠다. 비행기 값도 없다면, 배 값도 없다면, 버스비도 없다면? 아, 여기에는 삶은 여행이라는 기막힌 답이 있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다행히도, <지중해 오디세이>의 후반에 스스로 합리화를 시켜 놓은 까닭인지 이 책도 여행에 대한 열망을 가중시키진 않았다. 여전히도 낯선 곳을 꿈꾸고, 내 생에 가장 훌륭하고도 가난했던 그 여행을 다시 또 떠올리게도 했지만 그 곳에 가긴 아직 부족하다는 내 합리화가 떠나고 싶다는 열망을 훌륭히도 잠재울 수 있었다.

     책.

     <지중해 오디세이>와 이 책이 닮은 것은 바로 여행자의 책이 그 장소에 있다는 점이다. 여행을 하기 전, 완벽한 여행을 위해 엄청난 독서 내공을 가지고 있던 카플란이나 여행지에 꼭 한 권의 책을 넣어다니는 이 작가의 공통점이다. 글 속에서 스스로를 여행자라 칭하는 저자는 낯선 곳에서 자신의 기억 속의 책을 꺼내어 보거나, 혹은 읽고 싶었던 그래서 어울릴 것만 같았던 그 책을 꺼내 놓는다. 단 한 번이라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심하게 공감 할 것이다. 공간에 어울리는 책들은 낯선 장소에서 낯선 생각을 친숙한 것들로 만들어 놓는다.

     장 그르니에의 <섬>에 실린 카뮈의 서문만 읽고 이 책은 함부로 읽을 수 없을 것 같다며 강렬한 햇살 아래에 서게 될 때까지 아껴두었던 나도 그랬다. 어떤 책에는 그 책에 어울리는 장소에서 읽을 그런 예의가 필요한 것이다. 그 책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태양의 도시'라 일컬었던 스페인의 말라가 해변 아래에서 두 세번 거듭 읽어졌고, 난 그 뜨거운 햇살 아래서 그 책의 생각을 마음껏 흡수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저자의 경험은, 또 그가 여행지에 그에 걸맞는 책을 한 권씩 들고가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그 수많은 곳들을 돌아다니며 그런 꿈같은 경험을 지속시키는 그가 뜨겁게 부럽기도 했다.

     내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언젠가 다시, 나도 또 그런 여행을 할 것이다.

     내 가방엔 그 장소에서만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들어 있을 것이고 나는 달뜰 것이다. 타고르의 시선집을 들고 인도로 향할 수도 있고 오에 겐자부로의 책들을 안고 일본으로 향할 수도 있을 것이며, 말랑말랑하면서도 뭉클했던 건지 아일랜드를 들고 다시 한 번 영국행 비행기를 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곳에서 책을 읽을 것이다. 어떤 여행지는 너무나 훌륭해서 그저 풍경을 보는 것이 책 한 권을 읽는 것보다 낫다고 하지만, 그래도 난 책을 읽는 것은 포기하지 않겠다. 다만, 지금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내겐 저자만큼 그 여행지에 가져갈 딱 맞는 책을 고를 혜안이 없다는 것, 그것 때문이라고 다시 한 번 내 자신을 합리화 시킨다.

     하지만 이 땅에 있다고 여행자의 독서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 핑계, '삶은 여행' 이라는 말을 나도 한 번 읊조리며, 지금 이 순간에 가장 맞는 그런 책을 읽으며 더 먼 곳으로 나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