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떼가 나왔다 - 제1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안보윤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즈의 닥터」와 「사소한 문제들」이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안보윤'이라는 이름을 봤을 때도 '어디서 봤더라? 낯이 익는데?' 하고 넘겨버렸다. 그러다 오늘 아침 문득, 그 이름 석자가 머리 속에 선명해졌다. 유난히 마주침이 많던 책이었다. 도서관에서도 손에 걸린 적이 많았고, 헌 책방에서도 눈에 계속 띄었었고, 서점에서도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했던 책이었다. 그 책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 내가 제일 좋아했다던 "악어떼가 나올라, 악어떼!"를 흥얼거리며 돌아섰었다. 너무 자주 부딪혀서 오히려 흥미를 잃었던 그 책에 '안보윤'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안 읽을 수가 없게 되었다. 마침 문학동네 작가상과 소설상을 받은 작품들을 훑기로 한 때였고, 기회는 더 없이 좋겠다 싶었다. 당장 책을 구매해 한 장을 넘겼을 때 이미 악어가 사는 늪지대에 깊이 빠져버린 느낌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사소한 일들이 낯설게 다가올 때 우리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 아이가 없어지고, 우발적인 살인이 일어나고, 더 예뻐지고 싶은 욕망이 잘못 된 선택을 하게 하고, 삶을 비관해 자살을 하는 이야기들은 이제 더 이상 강렬하다거나 엽기적인 사건이 될 수 없다. 우린 이런 사건들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왔고, 이런 일들은 무언가 특별한 것이 아닌 사소한 일들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것이 낯선 결과를 낳아버린다. 이 소설이 주는 끔찍함과 차별성은 현실과 상상 사이의 이 교묘한 경계에서 시작이 된다. 아이들을 잃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이들의 몸에 문신을 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버리고, 우발적인 살인은 토막살인으로 이어지고, 예뻐지고 싶은 욕망은 자해와 정신분열로 이어진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하지만 더 한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의 몸에는 조부모 이름까지 새겨지지만 어떤 아이들은 여전히 고아가 되고 우발적인 살인은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죽이는 계기가 되고 욕망에서 비롯된 자해와 정신분열은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던 영혼들을 다시 이 곳으로 끌어다 놓는다. 결국 모든 사건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물어 이 세상의 모든 불행과 어둠은 맞닿아 있다는 현실을 강하게 드러낸다.

     이것이 한 작가가 아름답기만 할 스무살 초반에 발표한 이 세상의 자화상이다. 책을 넘겨갈 수록 이야기는 점점 교묘해져 독자는 이에 빠져들 수 밖에 없고 막바지를 달리며 작가의 눈에 비춰진 세상에 대해 짐작해 보게 되는데, 나는 이것이 이 책이 주는 잔혹함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보고 느꼈을 세상에 대해 깊은 동질감을 나타낼 수 밖에 없을 때 오는 전율. 그것은 결코 희열이 아닌 기분 나쁜 떨림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나쁜 기분은 이 글에 대한 것은 아니다. 이 글이 소설로써 보여준 이 세상의 진실에 대한 것이다. 편혜영 작가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 천운영 작가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이 이런 것이었다. 이제 안보윤이라는 작가를 주목해 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2010 제1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1
김중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반성의 시간은 어떻게든, 결국, 오고야만다. 왜 그리 게으름은 핀 것이냐며 자신을 타박한다. 결국 남은 것은 텅 비어버린 머리와 마음, 그리고 지난 시간 뿐이 아니냐며 자신을 꾸짖는다. 요즘 나는 다시 소설 앞에서 작아지고 있다. 등단 10년 미만의 작가에게 수여한다는 문학동네의 젊은 작가상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문예지를 잘 챙겨보지 못하니 이것으로 좋은 작가를 만날 수 있겠다며 반가웠던 나는 과연 정말 존재했었던 것일까 싶게도 이제야 2010년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읽고 말았다. 그리고 반성의 시간을 겸허하게 맞이해야 했다.

     애정이 깊은 김중혁 작가와 편혜영 작가의 글을 빼놓고라도 이 책에 실린 단편들에 눈과 정신이 호사로워졌다. 일곱 작가들이 세상에 내 놓은 모든 이야기들은 그들의 재능이 부러워서, 세상을 향한 그들의 눈이 탐이 나서 어쩔 줄 모르게 만들었다. 한 편의 단편을 읽을 때마다, 해당 작가가 쓴 책들을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담는 일이 반복되었다. 조금만 부지런했다면, 아니 평정심을 잃지 않고 살았다면 이미 만나고 자극받고 두근거릴 수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후회는 소용없다. 난 이제 이들의 글들을 기다리게 될 것이고 놓치고 싶지 않다.

    김중혁 작가와 편혜영 작가에 대해선 다른 말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김중혁 작가의 상상력엔 늘 무한한 감탄을 하게 되고, 편혜영 작가의 단편들에선 늘 아득해진다. 이 작가의 끝을 도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편혜영 작가의 글을 읽을 때면 언젠가 보았던 그녀의 패션화보가 떠오른다. 패션화보를 보면서 모델이 가진 텍스트가 보이는 것 같은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이 작가는 늘 이렇게 신기하다. 무성한 소문(?)으로 만날 날을 기약만 하던 배명훈 작가의 글도 처음 읽게 되었다. 두근거렸다. 넓은 우주 속에서 폭발했을 그 인공존재가 눈 앞에 살아났다. 이장욱 작가의 <변희봉>과 정소현 작가의 <돌아오다>는 단 한 편으로 작가의 이름을 머리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특히 아직 단 한권의 책도 낸 적이 없는 정소현 작가는 이 단편으로 본인이 가지고 있을 서사적 힘을 자랑하기 충분했다. 이러면 정말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김미월 작가의 <중국어 수업>을 읽었을 때는 소재의 느낌 탓인지 천운영 작가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역시 기대하는 수 밖에 없다. 모 인터넷 서점 문학 MD가 2011년의 좋은 소설로 추천했던 김성중 작가의 <개그맨>은 그 기대의 근원을 알 수 밖에 없게 했다. 19년의 시간을 짧은 글에 담아낸 솜씨는 뒤의 심사위원이 말한 대로 조밀하지 않아 더 매력적이다. 독자의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글의 힘. 나는 이것들에 늘 흥분된다.

     나를 설레게 하고 묘한 희열을 이끄는 글들이 있다. 그 글들 앞에서 난 늘 무자비하게 무너지고 만다. 놓았던 책들에 다시 손이 가고, 또 다른 책들을 잡게 만든다. 그런 귿들을 한 권으로 모아 놓은 이 책이 내겐 인공존재와도 같았다. 문예지들에서 멀어졌고, 수상작품집들에서 멀어졌고, 이젠 책에서도 조금씩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그런 내 손목이 잡히고 다시 글들은 나를 잡아 끌었다. 멋진 끌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언의 도시 - 제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윤애순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2월
평점 :
품절


     문학동네 작가상, 소설상을 수상한 작품 중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읽어보기로 했다. 하고 싶은 일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자신감이 떨어진 탓이었다. 자신감이 떨어졌다면, 내가 하고 싶은 분야에 더 미쳐보면 될 일을, 무기력해진 나는 시간 탓과 체력 탓을 하며 점점 게을러지고만 있었다.

     낯선 작가, 낯선 제목의 소설이 14년 전, 그러니까 내가 16살 무렵에 나왔다. 그 때 16살이었던 나는, 몇몇 사건들에 의해 책과 조금은 거리를 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텔레비전엔 멋진 가수들이 등장하여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퍼포먼스와 비주얼로 소녀들의 혼을 빼고 있었고, 그들의 손짓 하나에 열광하던 소녀 무리엔 나도 있었다. 아니, 그 당시에 책을 읽었다 한들 아마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엔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지난 시간에 후회는 잘 하지 않지만,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내게 내가 읽으면 좋겠을 책 리스트를 꼭 전달하고 싶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 더 단단할까?

     김광석, 유재하의 노래들은 지금 들어도 좋지만, 현대의 요란한 사운드에 비하면 어딘가 조금 옛스러움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린 그 노래들을 곱씹는다. 그들의 목소리가 가진 힘 때문에,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보편적 감성 때문에, 그리고 흘러간 지난 시간이 노래에 묻어 더 진해진 그 느낌 때문에. 아마 이 책의 맛도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요즘 소설책에 비하면 표현이나 문체가 조금은 촌스럽지만, 그래도 존재와 소멸의 변하지 않는 문학적 코드가 있었고 등장인물간의 대비와 동질감이 짙게 묘사되어 있었다. 거기다가 이 책의 배경인 캄보디아의 시대상이 정점을 찍는데, 14년이란 시간은 한 책을 조금 빛바라게 만들고 그 속 문체들을 촌스러운 것으로 만들기 충분했지만 인간을 변하게 하는데, 한 사회를 변동시키는 데에는 턱없이 모자라다는 것을 뼈 저리게 깨닫게 한다. 어쩌면 이 책은 그 때보다 지금의 내가 읽어서 다행일 수도 있겠다.

     여러 인물들과 사회상의 대비로 묘사되는 이 글의 맛은 다채롭다. 작가의 최근 글도 읽어보고 싶지만, 테마 소설집을 제외하곤 이 책 이후로 작가가 발표한 글이 없는 것이 조금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몇 번 손에서 놓쳐버렸다.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무게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다가온 것은 처음이었다. 전태일 평전을 처음 읽었을 때의 기분이 들었다. 작가는 김진숙의 글이 제 2의 전태일 평전 같다 했지만 나에겐 바로 이 책이 제 2의 전태일 평전이었다. 아직 내가 어렸을 때, 버스 안에서 그 책을 읽으며 코 끝이 시큰거려 결국 눈물을 쏟고 만 것을 떠올렸다.

     아주 미안하게도, 난 김진숙 위원장을 보며 긍정적인 생각만 한 것은 아니었다. 굳이 저렇게 해야하나, 이젠 본인과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난 그런 모질고도 모자란 생각들을 해 버렸고 이 책을 보며 알았다. 내가 얼마나 무지했었는가, 내가 얼마나 날이 선 사람이었는가,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었었던가. 그들은 자신들이 죽은 열사들을 죽인 자라며 비통해했다. 같이 투쟁하고, 같이 희망을 꿈꿨음에도 그들과 함께 하지 못했음에 자신들이 그들을 죽였다 했다. 그렇다면 그에 무지했던 나는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난 그들의 시체에 몇 번이고 확인 사살한 잔인 무도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문학은 나를 겸허하게 만들고 나를 눈물짓게 만들고 나를 무릎꿇게 만든다. 자존심이 꽤 세다는 말을 듣는 나도 문학에는 늘 지고 만다. <느낌의 공동체>에서 신형철 평론가가 말했듯 늘 지는 쪽은 더 사랑하는 쪽이다. 그들을 무자비하게 확인 사살했다는 사실에 마음을 다친 나는 그래도 문학을 아주 많이 사랑해서 다행이라는 자기 위안을 또 하고야 만다.

    작가의 글을 투박하지만 진정성이 담겨있고 그래서 아름답다. 유행처럼 번지는 '진정성'이라는 단어는 이런 글에나 어울릴 수 있는 말이다. 사회에 대한 개인의 끝없는 투쟁이 몸에 오롯이 새겨낸 상처가 글로 되살아나고 그 글이 독자의 마음에 다시 한 번 새겨지며 눈물 지을 때 비로소 진정성은 완성되는 것이다. 마음이 아파 한 번에 읽을 수가 없었다. 어려운 책은 아니었지만 한 장 한 장이 힘이 들었다. 종이가 담고 있는 텍스트가 이렇게 날카롭고도 따뜻할 수 있는 법이라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모두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이 책은 한 개인의 투쟁사이다. 하지만 개인의 투쟁은 사회의 구조와, 세상의 모순과 연결되지 않을 리가 없다. 한 개인의 투쟁사를 통해 난 한 사회의 구조를 보았고 그 구조가 얽혀있는 세상의 모순을 보았다. 그것을 본 순간, 나 역시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임을 알았고 끝없는 번민과 자기반성을 해야만 했다. 그럼에 이 쉽지 않은, 마음을 몇 번씩 할퀴고 지나가는 글들을 계속하여 누군가에게 권하게 될 것만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나
정용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기쁨을 잠깐 잊고 있었다. 그러면서 뭔가 재미있는 사건이 없다며 늘 투덜댔었다. 좋은 글을 쓰는 작가를 만난다는 것, 그 희열과 그 설렘. 작가 정용준을 통해 오랜만에 그 기쁨과 재회했다. 익숙하지만 낯선 느낌, 낯설지만 익숙한 느낌이 정용준의 글들에는 존재한다. 편혜영, 백가흠, 백민석 등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책 뒤의 해설에서도 나오다시피 어색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뭔가 그들과는 다르다. 문학평론가처럼 어려운 용어를 써서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다른 느낌, 그것은 정용준이라는 작가를 독보적으로 만들어 준다.

     떠올렸던 작가들을 생각해보면 이 책의 느낌은 명확해진다. 그것은 어두움. 삶의 가장 어두운 곳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시선은 냉정하다. 하지만 알지 못했다면, 그 시선이 냉정할 수만은 없다. 어두운 곳을 보는 냉정한 시선은 오랫동안 그 곳을 보아왔다는, 즉 끊임없는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단편 곳곳에 흘러넘치는 죽음의 이미지는 곧 생성의 이미지가 된다. 말더듬이와 간질환자의 이야기인 「떠떠떠, 떠」에는 피어나는 그들의 사랑이 있고, 바다 속 시신의 나레이션으로 이어지는 표제작 「가나」에는 이름조차 지어주지 못한 어린 자식의 생명이 있었다. 소금밭의 노동자들 사이에는 폭력 속에서도 꿈틀대는 인간애가 있었고 (「벽」), 늘어가는 누나의 몸을 바라보는 동생의 시선엔 인간에 대한 마지막 배려가 숨어있기도 했다(「굿나잇, 오블로」). 이런 죽음과 생성의 이미지가 함께 하는 소설집은 책 표지에서도 알 수 있고, 단편 구석구석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물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많은 것이 소실되어 사라지지만, 사라지는 것들이 또 하나의 생명체로 변환되는 것, 그것이 물의 이미지이자 순환의 원리이다. 그것을 알아채는 순간, 작가가 내비치는 죽음 속에 숨겨진 삶에 대한 애정이 엿보인다. 그리고 그 찰나를 잡는다면, 이 소설의 백미를 맛볼 수 있게 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세상의 중심에서 버림받은 삶을 사는, 즉 소외 된 사람들이다. 허나 이들이 갖는 자신과 자신간의 관계, 혹은 자신과 타인간의 관계는 힘겹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다. 그들이 맺는 그 관계가 빛을 발할 때 그들이 가졌던 공허함은 새로운 에너지로 전환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모든 관계 역시 끝이 있고 시작과 동시에 소멸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다고 사랑을 포기할 수는 없다. 물 속에서 모든 것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듯 우리 역시 커다란 순환 속에서 나름의 순환을 만들어가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전부를 껴안고 있는 이 책은 역시 사랑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