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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 잡혀간다 ㅣ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평점 :
책을 몇 번 손에서 놓쳐버렸다.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무게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다가온 것은 처음이었다. 전태일 평전을 처음 읽었을 때의 기분이 들었다. 작가는 김진숙의 글이 제 2의 전태일 평전 같다 했지만 나에겐 바로 이 책이 제 2의 전태일 평전이었다. 아직 내가 어렸을 때, 버스 안에서 그 책을 읽으며 코 끝이 시큰거려 결국 눈물을 쏟고 만 것을 떠올렸다.
아주 미안하게도, 난 김진숙 위원장을 보며 긍정적인 생각만 한 것은 아니었다. 굳이 저렇게 해야하나, 이젠 본인과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난 그런 모질고도 모자란 생각들을 해 버렸고 이 책을 보며 알았다. 내가 얼마나 무지했었는가, 내가 얼마나 날이 선 사람이었는가,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었었던가. 그들은 자신들이 죽은 열사들을 죽인 자라며 비통해했다. 같이 투쟁하고, 같이 희망을 꿈꿨음에도 그들과 함께 하지 못했음에 자신들이 그들을 죽였다 했다. 그렇다면 그에 무지했던 나는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난 그들의 시체에 몇 번이고 확인 사살한 잔인 무도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문학은 나를 겸허하게 만들고 나를 눈물짓게 만들고 나를 무릎꿇게 만든다. 자존심이 꽤 세다는 말을 듣는 나도 문학에는 늘 지고 만다. <느낌의 공동체>에서 신형철 평론가가 말했듯 늘 지는 쪽은 더 사랑하는 쪽이다. 그들을 무자비하게 확인 사살했다는 사실에 마음을 다친 나는 그래도 문학을 아주 많이 사랑해서 다행이라는 자기 위안을 또 하고야 만다.
작가의 글을 투박하지만 진정성이 담겨있고 그래서 아름답다. 유행처럼 번지는 '진정성'이라는 단어는 이런 글에나 어울릴 수 있는 말이다. 사회에 대한 개인의 끝없는 투쟁이 몸에 오롯이 새겨낸 상처가 글로 되살아나고 그 글이 독자의 마음에 다시 한 번 새겨지며 눈물 지을 때 비로소 진정성은 완성되는 것이다. 마음이 아파 한 번에 읽을 수가 없었다. 어려운 책은 아니었지만 한 장 한 장이 힘이 들었다. 종이가 담고 있는 텍스트가 이렇게 날카롭고도 따뜻할 수 있는 법이라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모두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이 책은 한 개인의 투쟁사이다. 하지만 개인의 투쟁은 사회의 구조와, 세상의 모순과 연결되지 않을 리가 없다. 한 개인의 투쟁사를 통해 난 한 사회의 구조를 보았고 그 구조가 얽혀있는 세상의 모순을 보았다. 그것을 본 순간, 나 역시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임을 알았고 끝없는 번민과 자기반성을 해야만 했다. 그럼에 이 쉽지 않은, 마음을 몇 번씩 할퀴고 지나가는 글들을 계속하여 누군가에게 권하게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