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
정용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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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쁨을 잠깐 잊고 있었다. 그러면서 뭔가 재미있는 사건이 없다며 늘 투덜댔었다. 좋은 글을 쓰는 작가를 만난다는 것, 그 희열과 그 설렘. 작가 정용준을 통해 오랜만에 그 기쁨과 재회했다. 익숙하지만 낯선 느낌, 낯설지만 익숙한 느낌이 정용준의 글들에는 존재한다. 편혜영, 백가흠, 백민석 등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책 뒤의 해설에서도 나오다시피 어색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뭔가 그들과는 다르다. 문학평론가처럼 어려운 용어를 써서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다른 느낌, 그것은 정용준이라는 작가를 독보적으로 만들어 준다.

     떠올렸던 작가들을 생각해보면 이 책의 느낌은 명확해진다. 그것은 어두움. 삶의 가장 어두운 곳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시선은 냉정하다. 하지만 알지 못했다면, 그 시선이 냉정할 수만은 없다. 어두운 곳을 보는 냉정한 시선은 오랫동안 그 곳을 보아왔다는, 즉 끊임없는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단편 곳곳에 흘러넘치는 죽음의 이미지는 곧 생성의 이미지가 된다. 말더듬이와 간질환자의 이야기인 「떠떠떠, 떠」에는 피어나는 그들의 사랑이 있고, 바다 속 시신의 나레이션으로 이어지는 표제작 「가나」에는 이름조차 지어주지 못한 어린 자식의 생명이 있었다. 소금밭의 노동자들 사이에는 폭력 속에서도 꿈틀대는 인간애가 있었고 (「벽」), 늘어가는 누나의 몸을 바라보는 동생의 시선엔 인간에 대한 마지막 배려가 숨어있기도 했다(「굿나잇, 오블로」). 이런 죽음과 생성의 이미지가 함께 하는 소설집은 책 표지에서도 알 수 있고, 단편 구석구석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물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많은 것이 소실되어 사라지지만, 사라지는 것들이 또 하나의 생명체로 변환되는 것, 그것이 물의 이미지이자 순환의 원리이다. 그것을 알아채는 순간, 작가가 내비치는 죽음 속에 숨겨진 삶에 대한 애정이 엿보인다. 그리고 그 찰나를 잡는다면, 이 소설의 백미를 맛볼 수 있게 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세상의 중심에서 버림받은 삶을 사는, 즉 소외 된 사람들이다. 허나 이들이 갖는 자신과 자신간의 관계, 혹은 자신과 타인간의 관계는 힘겹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다. 그들이 맺는 그 관계가 빛을 발할 때 그들이 가졌던 공허함은 새로운 에너지로 전환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모든 관계 역시 끝이 있고 시작과 동시에 소멸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다고 사랑을 포기할 수는 없다. 물 속에서 모든 것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듯 우리 역시 커다란 순환 속에서 나름의 순환을 만들어가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전부를 껴안고 있는 이 책은 역시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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