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제대로 된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제대로 된 남자' 찾기 프로젝트
김종연 지음 / 책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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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결국 이런 책까지 읽게 되었다. 내 나이 스물 아홉까지만 해도 "혼자 살아도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결혼은 무슨"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더랬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역시 사람은 더불어 사는 거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까 내 나이 서른, 주변에 괜찮은 남자들은 다 결혼을 했거나 애인이 있고 소개를 부탁해도 나와 맞는 나이의 사람들을 찾기가 어려운 그런 상황이 오고 말았다. 그래서 읽었다. 머리카락을 귀 뒤에 꽂으며 "전 책으로 연애를 배웠어요."라는 백치미라도 흘려볼려고 읽었다. 가장 실질적인 연애 지침서라는 말에 혹한 것도 있었고, 제목에 공감한 탓도 있었다.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면 불편했다. 평생 동반자를 선택하는 일을 '쇼핑'에 비유한 것도, 괜찮은 남자를 '명품 남편'으로 언급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불량품'으로 언급하는 것도 불편했다. 이 책을 읽을 사람들에게 한 가지 해 줄 말은 이 책에 수록 된 모든 것도 결국은 저자의 기준으로 나눠 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결국 이 책에서 말하는 명품 남편이라는 것은 저자의 기준에서지, 보편적인 기준은 결코 될 수 없고 보편적인 기준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은 공산품이 아니니까. 기획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작은 단어 선택들이 마치 남성을 상품으로 만들어 놓고 점수를 매겨나가는 그런 시스템같이 느끼게 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는 점이다. 충분히 남성 비하적인 발언이다. 바꿔서 생각하면, 만약 여성들을 이런 기준으로 나눠 놓은 책이 나왔다면 여성 비하라고 인터넷을 후끈 달굴 수 있었을만 하다. 내가 불편해 하는 현실은 이런 것이다. 자신들은 비하 되면 안 되고 상대의 성은 비하해도 상관없다는 뻔뻔함. 애초에 '명품 남편 쇼퍼'라는 단어가 등장했을 때부터 인상이 찌푸려졌으니 이 책에 대한 전반적인 내 시선이 고울 리는 없었다.

그래도, 나처럼 까칠한 독자가 아니라면 굉장히 현실적인 것은 맞다. 여기서 또 웃긴 것이, 연애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결혼해서 더 잘 살 것이라고 책은 말하는데 이 책은 또 지나치게 현실을 보여준다. 특히 <구매 확정을 위한 마지막 체크 포인트>는 결혼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점에서 동의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문제는 결국 이 책에서 차용하고 있는 단어 선택들의 문제이며, 사실 결혼 안 한 여자들이 이 책에 나온 문제들은 뻔하게 알고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한 번 시선을 비틀어보자. 이 책은 명품 남편을 쇼핑하기 위한 쇼퍼들의 전략과 필수 체크 요소들을 알려주는 데 집중한다. 그렇다면 쇼퍼인 당신은 그런 남편을 갖기 위한 최적의 사람이냐는 물음으로 돌아간다. 그런 남자 역시 명품 아내를 갖고 싶을 것이고, 이런 전략과 체크 요소를 따지며 결국 자신의 행복을 목표로 하는 아내가 명품 아내가 될 수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 자신의 행복이 목표가 아니라 아내의 행복이 목표인 남자가 명품 남편이라면, 여자는? 이 사고의 시작점부터가 굉장히 위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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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사는 공장 - 공장식 축산업 너머의 삶과 좋은 먹거리를 찾아서
니콜렛 한 니먼 지음, 황미영 옮김 / 수이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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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 고양이들이 아니었다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TV 동물농장에서 방영한 모피 동물들의 불편한 진실을 볼 때, 내 고양이들이 내 무릎 위에 누워 골골 거리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심각하게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간이 있었고, 그 끔찍한 장면들을 마주하며 내 아이들을 아끼는 만큼 모든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날 이후로 채식주의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모피를 반대하는 사람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나 하나의 각성으로는 부족했다. 난 모피반대자였지만, 내 주변엔 밍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었고 난 그들의 취향까지는 비난하지는 않았다. 내가 그들의 행위를 비난한다 한들,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기에 그저 눈을 감았다. 그러다 또 한 번 몸이 떨리는 시간이 찾아왔다. 이 책을 펴기 시작했을 때부터 덮을 때까지 그 끔찍함에 살이 떨렸다. 하지만 끝까지 봐야만 했다. 그래야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번이라도 동물과 교감을 해 본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그들이 살아있다는 자각, 우리처럼 뜨거운 피와 감정을 가진 생명체라는 인식, 그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처참함을 그냥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양 팔을 옆으로 쭉 뻗으면 양 벽이 손에 닿는 그 정도 넓이의 방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만 간신히 움직이고, 넣어주는 밥을 먹으며, 그 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렇게 1주일이라도 우린 버틸 수 있을까? 그렇게 평생을 사는 생명체가 있다. 그렇게 살다 자신들의 살코기를 인간에게 내어준다. 그것이 바로 공장식 축산업체에서 태어나 죽음을 맞이하는 돼지들의 삶이다. 돼지들의 본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진흙 목욕, 그것이 무엇인지도 이 돼지들은 알지 못한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태어나 좁은 공간에서 오로지 먹기만 하며 기형적으로 살을 불린 후, 5개월 정도가 지나면 도살 당한다. 그리고 인간의 배 속으로, 위 속으로 들어간다. 생명체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음식물로 살고 죽는 셈이다. 이건 비록 돼지의 문제만은 아니다. 닭, 소, 물고기 등 인간이 먹는 단백질을 제공하는 많은 동물들이 이렇게 살고 죽고 있다. 가까운 예로 세계 3대 진미에 푸아그라가 꼽히기 시작하며 거위들이 어떻게 죽고 살고 있는지는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상세히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두를 외면하려 한다. 그것들을 보면 먹지 못할 것 같은데, 그 맛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런 윤리는 정당한 것일까?

조류독감이나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이런 공장형 축산에 대한 논의는 다시 한 번 붉어졌다. 그 때의 결론을 기억한다. 우리나라처럼 영토가 작은 나라에서 공장형 축산이 아니라 방생형 축산으로 전환이 된다면 우리가 먹는 달걀, 고기는 지금의 20%로 생산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가격은 천차만별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우리의 현실에서 공장형 축산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옳은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도 그런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도적인 사육과 채식을 권하게 되는 까닭은 이런 공장형 축산이 결국 인간에게 재앙을 가져다 줄 것이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일부 자산가의 배를 불리는 결과만 가져오는 이런 행위들은 토양과 공기를 오염시키고, 인간의 건강마저 해롭게 만든다. 틱닛한 스님의 <화>라는 책에서는 이런 고기들을 먹으면 그 고기의 스트레스나 화가 사람에게 전해져 사람을 공격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었다.

그렇기에 이런 모든 실상을 알려주는 이 책이 지금의 우리에겐 꼭 필요하다. 물론 이 책의 저자가 채식주의자임을 미리 밝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우리에게 채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이며, 채식이 공장형 축산을 막는 유일한 방안이 아님을 그녀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더 직접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나 역시도 여전히 육식을 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줄여보려는 노력은 가능할 것 같다. 필요한 만큼의 단백질만 섭취하고, 조금 비싸더라도 제대로 사육되고 유통 된 음식을 섭취하려는 노력, 그것은 나를 위한 것임과 동시에 나와 함께 살아가고 함께 공감하는 나의 고양이들과 그들의 친구들을 위한 길이기도 할 것이다.

http://www.fromcare.org

- 동물사랑실천 협회의 홈페이지. 학대받고 버려진 동물들의 이야기와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 등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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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갈색머리로 태어나고 어떤 이는 외롭게 태어난다
타오 린 지음, 윤미연 옮김 / 푸른숲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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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설은 맞지 않는다고 하던 때가 있었다. 각 나라의 문학은 독특한 특색을 공유하고 있는데, 미국의 특색은 나와는 동떨어져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다 한 순간, 그 때의 내 외로움을 치유해 주던 미국 소설을 만났었다. 아마 그게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 이후, 더 이상 미국 문학과의 밀고 당기기는 하지 않는다. 이젠 일방적으로 내가 당길 뿐이다. 그러며 멋진 작가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작년의 최고의 발견은 단연 '미란다 줄라이'였다.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의 감독이자 작가이자 주연배우였던 그녀의 단편은 그 영화만큼이나 독특했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이번엔 그녀의 이름을 믿고 그녀가 찬사를 보낸 또 다른 작가를 알게 되었고 또 다시 최고의 발견이 이어졌다.

책 날개에 수록 된 작가의 사진을 보며 갸우뚱했던 것을 고백해야겠다. 장난기 어린 동양 남자의 얼굴에서 내가 좋아하는 미국 소설의 분위기를 찾을 수 있을까 의심했다. 작가 프로필에 나온 그의 홈페이지 주소(www.heheheheheheheeheheheehehe.com)를 보며 그 의심이 짙어진 것도 고백해야겠다. 그냥 주목을 받고 싶어하는 한 치기어린 작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심과 오해들이 첫번째 단편 <조개인간의 진심>부터 미안해졌다. 그것도 아주 많이.

첫번째 단편을 읽고 나서 다른 의심이 생겼다. 이 사람은 혹시 천재가 아닐까 하는 의심. 그리고 그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변해갔다. 그의 글에는 그런 독특한 매력이 있었고 그의 글들은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섬세함이 있었다. 만약 독자가 어딘가 외로운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글이 가진 그런 감성을 잘 잡을 것은 분명했고 세상에 외로운 사람이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너무나 보편적인 그래서 잔인할만큼 사실적인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의 글에 흐르는 시점의 변화나 반복되는 어구들은 첫번째 단편의 시작을 조금 힘든 게 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다 문득, 찌릿하고 무언가가 통해버렸다. 그 자극 이후, 몰입 혹은 공감대의 형성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글이 가진 하나하나의 의미를 곱씹을 필요는 없었다. 그저 그 글이 주는 느낌을 온전히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었다. 그럼 주인공의 감정을 알 수 있었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울 수 있었다. 정점은 「아홉, 열」에서 이뤄졌다. 어린 아이가 경험하는 무교감의 허망함에선 몸이 떨렸다. 어쩌면, 아주 늦은 시간에 사람이 거의 없는 기차 안에서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읽고 있던 까닭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 감성에 떨리지 않을 순 없었을 것이다.

지독한 외로움이나 부재된 행복에 대한 갈망을 눈물 혹은 폭발 된 감정으로 그려내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다. 하지만 타오 린이라는 이 천재같은 작가는 너무도 무덤덤하게 그래서 더 자극적이게 그 감성들을 그려낸다. 물론 현재, 그런 담담함으로 청춘을 그려내는 작가는 많이 있지만 그런 담담함이 이런 자극적으로 변환되는 것은 쉽지는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작가는 정말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최고의 발견'이라는 말을 그의 이름 앞에 붙이는 것이 결코 고민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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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가?,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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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런 점이다. 내가 알랭 드 보통을 좋아하는 이유 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들을 특별한 관찰 거리로 만들어 내는 점. 그리고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늘 진지한 사유가 남는다. 그것들을 어렵지 않게 풀어내는 것. 즉,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철학적 관점 혹은 사회적인 관점에서 어려운 용어들로 말하던 것들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이야기 하는 것은 분명 알랭 드 보통의 장점이자 매력이다. 그의 시선과 언어, 그리고 유머는 늘 깨어있고 사람을 유쾌하게 만든다. 오랜만에 알랭 드 보통의 그런 매력에 빠져들었다.

소위 잘 나가는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받고 있는 선배를 만났다. 선배는 급여에 대한 만족도와 그런 급여가 요구하는 회사에 대한 충성도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법정 휴일도 제대로 쉴 수가 없으며, 법정 근로시간도 지킬 수가 없으며, 정확하게 자신이 하고 싶던 일도 아니었지만 그것을 포기하는 대가로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왠지 그는 만족하는 것 같지 않았다. 입사한 지 7년 정도가 되었을 뿐인데, 현재 회사 내에 그의 입사동기는 1명 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그와 그의 동기 역시 언제 끝을 보게 될 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가 받는 급여의 1/3도 받지 못하고, 역시 법정 근로시간도 지키지 못하는 나는 그럼에도 내 일이 좋다. 앞으로 계속 더 잘 하고 싶다. 급여나 복지에 관한 만족도는 그가 높았을지언정, 일에 대한 만족감은 그보다 내가 월등히 높았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와 나의 공통점도 있었다. 우리는 모두 이 일이 나에게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심을 하고 있었다. 알랭 드 보통의 이 책은 이런 물음을 가진 현대인들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된다.

직업이 제공하는 사회적 의미와 개인적 만족도를 조사하기 위해 알랭 드 보통은 그의 특기를 발휘한다. 그가 그동안 주시했던 사랑이나 종교적인 문제보다는 훨씬 더 관찰하기 까다로웠음은 틀린없다. 하지만 그는 용이주도하게 사람들을 만나 인맥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자신이 택한 직업군의 가장 핵심까지 들여다 본다. 다른 소재를 관찰할 때처럼 그는 현장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하는 일들의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들여다보며 그 본질에 다가간다. 마트에 물건이 들어오기까지의 물류 과정, 하나의 비스킷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 이 책의 소재가 되기도 하는 직업이라는 것을 대하는 현대인의 고충을 상담을 통해 해결해주는 직업 상담가 등 책 속에 소개 되는 직업은 독특하기도 하고 평범하기도 하다. 즉, 이 책 속에 소개되는 몇몇 직업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직종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일터를 제공해주는 직종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어떤 직업들은 독특하면서 평범한 것들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원하나 모두가 가질 수 없는 로켓 공학자나 회계사라는 직업은 또 이런 점에서 평범하나 독특한 직업이 된다. 그런 직업군들의 핵심을 들여다보는 알랭 드 보통의 시선을 통해 우리 역시 특정 직업이 갖는 사회적 의미의 우위는 없고, 만족도 역시 특정 직업에서 높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행복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것일 것이다.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귀천의 기준에 어쩔 수 없이 신경쓰게 되고, 그 신경이 남의 이목마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기준이 되고, 그 기준에 따라가지 못하면 다시 불행해지고, 따라간다 하더라도 자신이 원했던 것이 이런 것이 아니라는 늦은 자각이 다른 스트레스를 발생시키는 것. 그래서 아직도 많은 젊은이들이, 그리고 중년과 노년들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늦게나마 진짜로 원하는 일을 찾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알랭 드 보통은 늘 이렇게 어렵지 않은 서술로 아주 어려운 문제들을 독자 개개인이 해결해 보도록 한다. 그렇다면 알랭 드 보통에겐 이런 직업을 갖게 해 주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 하다. 독서 상담가, 혹은 난문을 이문으로 바꾸는 전문가, 더 쉽게 말하면 입담꾼, 물론 그가 마음에 들어할 지 들어하지 않을 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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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식당 - 먹고 마시고 여행할 너를 위해
박정석 지음 / 시공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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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지겨워질 때면, 회사 일에 지칠 때쯤이면, 습관처럼 여행 계획을 세운다. 지도를 펴고 가고 싶은 나라를 이곳저곳 찍어두고 며칠 동안 여행을 다닐 것인지, 루트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무엇을 타고 어디에서 자고 무엇을 먹을 것인지 상상한다. 그러면 여행 끝. 당분간 현실과 타협했기 때문에 이런 계획들이 실천되는 것은 아마도 몇년 후쯤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 1년 정도는 그런 계획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으니 나도 꽤 단단히 발을 내린 것 같다. 아니면 무뎌졌던지. 이런 단단히 내린 발과 무뎌진 가슴을 살짝 풀어헤칠만한 여행책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쏟아지는 여행책들 덕에 웬만해서는 여행책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인데, 이번엔 너무 방심했지 싶다.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버마. 가장 최근에 계획했던 여행지의 루트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서 한 번 당했다. 그 많고 많은 여행지 중에 하필이면 가장 최근-그래봤자 1년 전쯤- 꿈꿨던 여행지라니. 그리고 이 책에는 여행 정보가 전혀 나와있지 않다. 수많은 여행책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최근에는 여행 정보를 수록하지 않은 여행책, 작가의 감성에 더 충실한 여행책들이 나오고 있다. 차별화를 두기 위한 하나의 전략은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내 그 방향으로 수많은 책들을 또 쏟아지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여행 정보도, 작가의 감성도 최소화한다. 이 책을 채우는 것은 길 위에서 만난 먹거리들과 그 먹거리들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다.

주말 오전을 생각하면 된다. 햇살을 받으며 느즈막히 일어나 여유로운 하루를 시작하려고 텔레비전을 켠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맛집 프로그램인 것이다. 물론 이제는 방송에 나오는 맛집도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은 그 하루에 먹어야 할, 먹고싶은 음식이 되어버린다. 이 책이 바로 그렇다. 오랜만에 여행자의 간질간질한 감성을 느껴보려고 책을 딱 펴는 순간, 여행을 떠나야 하는 목적이 일탈 혹은 휴식이 아니라 식도락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것도 거창한 음식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매연에 버무려지고 MSG의 향연이 펼쳐질 듯 하여 평소에는 잘 쳐다도 보지 않는 노점상의 음식을 위해 길을 떠나고 싶어진다. 그리고 냄새가 밀려온다. 내가 맡본 것들은 한국화 된 음식이었겠지만, 그 음식 냄새 위로 그 장소의 소리, 풍경 등이 함께 겹쳐지며 한국화 된 음식의 냄새는 점점 향토적인 냄새로 변해간다. 그 순간, 눈을 딱 감지 않으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둥바둥 거리게 되는 수도 있다. 조심하자.

다행히도 이 책의 마지막 장이 넘어간 것은 기차 안이었다. 비록 휴식이나 일탈이 아닌 일 때문에 기차를 타고 있기는 했지만, 장소의 이동이라는 것이 때로는 그 자체만으로 사람을 생기있게 만드는 법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은 생기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굉장히 오랜만에 다시 여행 계획을 세우고, 평소 계획을 세울 때보다 더 심난해 질 뻔했다. 이미 그 나라의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 냄새가 내 코를 잡고 끌어당기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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