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갈색머리로 태어나고 어떤 이는 외롭게 태어난다
타오 린 지음, 윤미연 옮김 / 푸른숲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미국 소설은 맞지 않는다고 하던 때가 있었다. 각 나라의 문학은 독특한 특색을 공유하고 있는데, 미국의 특색은 나와는 동떨어져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다 한 순간, 그 때의 내 외로움을 치유해 주던 미국 소설을 만났었다. 아마 그게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 이후, 더 이상 미국 문학과의 밀고 당기기는 하지 않는다. 이젠 일방적으로 내가 당길 뿐이다. 그러며 멋진 작가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작년의 최고의 발견은 단연 '미란다 줄라이'였다.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의 감독이자 작가이자 주연배우였던 그녀의 단편은 그 영화만큼이나 독특했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이번엔 그녀의 이름을 믿고 그녀가 찬사를 보낸 또 다른 작가를 알게 되었고 또 다시 최고의 발견이 이어졌다.

책 날개에 수록 된 작가의 사진을 보며 갸우뚱했던 것을 고백해야겠다. 장난기 어린 동양 남자의 얼굴에서 내가 좋아하는 미국 소설의 분위기를 찾을 수 있을까 의심했다. 작가 프로필에 나온 그의 홈페이지 주소(www.heheheheheheheeheheheehehe.com)를 보며 그 의심이 짙어진 것도 고백해야겠다. 그냥 주목을 받고 싶어하는 한 치기어린 작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심과 오해들이 첫번째 단편 <조개인간의 진심>부터 미안해졌다. 그것도 아주 많이.

첫번째 단편을 읽고 나서 다른 의심이 생겼다. 이 사람은 혹시 천재가 아닐까 하는 의심. 그리고 그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변해갔다. 그의 글에는 그런 독특한 매력이 있었고 그의 글들은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섬세함이 있었다. 만약 독자가 어딘가 외로운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글이 가진 그런 감성을 잘 잡을 것은 분명했고 세상에 외로운 사람이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너무나 보편적인 그래서 잔인할만큼 사실적인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의 글에 흐르는 시점의 변화나 반복되는 어구들은 첫번째 단편의 시작을 조금 힘든 게 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다 문득, 찌릿하고 무언가가 통해버렸다. 그 자극 이후, 몰입 혹은 공감대의 형성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글이 가진 하나하나의 의미를 곱씹을 필요는 없었다. 그저 그 글이 주는 느낌을 온전히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었다. 그럼 주인공의 감정을 알 수 있었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울 수 있었다. 정점은 「아홉, 열」에서 이뤄졌다. 어린 아이가 경험하는 무교감의 허망함에선 몸이 떨렸다. 어쩌면, 아주 늦은 시간에 사람이 거의 없는 기차 안에서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읽고 있던 까닭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 감성에 떨리지 않을 순 없었을 것이다.

지독한 외로움이나 부재된 행복에 대한 갈망을 눈물 혹은 폭발 된 감정으로 그려내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다. 하지만 타오 린이라는 이 천재같은 작가는 너무도 무덤덤하게 그래서 더 자극적이게 그 감성들을 그려낸다. 물론 현재, 그런 담담함으로 청춘을 그려내는 작가는 많이 있지만 그런 담담함이 이런 자극적으로 변환되는 것은 쉽지는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작가는 정말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최고의 발견'이라는 말을 그의 이름 앞에 붙이는 것이 결코 고민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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