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혼란스럽다

30여년을 조선일보가 최고인 줄 알았고

조선일보를 읽는 자만이 진정한 지식인이라 여겼고

안티조선을 경멸하던 나에게

그래서 많이 혼란스런 나날을 보내던 중 만난 이 책은

나에게 명쾌한 답을 주기보다

더욱더 많은 생각을 안겨준다

 

여러 과정을 거쳐 지금 구독하고 있는 신문이

조선일보, 중앙일보, 매일 경제, 한겨레 신문 이렇게 4개가 된다

한겨레 신문을 받아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으나

그 얼마되지 않는 시간동안 너무나도 많은 충격과 혼란이 시기를 겪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언론법 개정, 미네르바 구속, 용산 철거민 진압 중 벌어진 참사.. 지난 1월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각각의 신문들이 어찌나 사건의 본질을 교묘히 흐리고 조작하는지 조선일보 딱 하나의 신문만 읽었을 때는 몰랐던 신문의 여론몰이의 진실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을 때의 나의 우매함에 대한 낯부끄러움이라니...

 

이런 저런 생각에 지난 한 달은 '계속 이렇게 혼란스러울거라면 차라리 지금 보고 있는 신문들을 모조리 끊어야 할까?' 란 끊임없는 의문이 들었던 시기였고,

이 책에서도 "왜?" 란 질문을 가지지 않고, 신문 편집자의 의도를 파악하려 애쓰지 않고 신문을 읽을 거면 차라리 신문을 읽지 말라고 하고 있다.

 

솔직히 한겨레 신문이라고 딱히 탐탁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거 왜 이래 나 조선일보야'라는 식의 힘이 잔뜩 들어간 독선적이고 적극적으로여론을 조작하는 조선일보나

아닌 척하면서 뒤로 호박씨 깐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게 앙큼떠는 중앙일보의 행보도 아닌 건 아닌 것이다.

한겨레 일보와 조선 일보, 중앙 일보의 장점들만 모은 그런 신문이 있으면 좋으련만

중도라곤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든 이 나라에서 그런 꿈이란 완전 몽상일 뿐이고

그리고 신문에서 중도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크나큰 몽상일 뿐이니..

그런 의미에서 작가도 언급하고 있지만 기왕 신문을 읽을 것이면

성향이 다른 신문을 2개 이상 같이 구독하고,

수동적인 신문 읽기가 아닌 "왜?"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능독적인 신문읽기를 할 거이며,

'기사 읽기'를 넘어선 '편집 보기'를 해야 할 것이다.

 

이 나라 모든 신문 구독자들(특히 열혈 조선일보 구독자들과 열혈 안티조선 운동가?들), 책 읽는 자들, 또 학부모들에게 (학부모들은 꼭 꼭 읽어 보았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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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아련 2009-02-11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책이 있었군요. 이 책을 읽고 나면 지금 저의 혼란스러움이 가실까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
 

 조금은 힘겹고 눈물 겨웠던 책읽기..
그것은 이 책이 슬퍼서도 어려워서도 그 어떤 나쁜 이유가 아닌 내게 많은 생각과 다짐을 안겨줘서다
 
#1. 29살 그녀를 말하다
작년 이 맘때를 전후하여 이 책이 내 눈에 내 맘에 참 많이도 띄였었다. 장바구니에 담았다 꺼냈다를 반복하다 그녀의 홈피에서 이 책의 리뷰를 읽었다. 그녀는 글을 참 잘 쓴다. 자주 글을 쓰지는 않지만 한 번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하면 자신의 생각을 요목조목 길디 긴 글을 딴 데로 새지도 않고 참 잘 쓴다. 그런 그녀가 쓴 On the Road의 리뷰는 '읽고 싶다, 끌린다'는 댓글을 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가 빌려 준 책 On the Road..
참 이상도 하지..
그녀는 솔직히 뉴욕이나 모스크바의 건드리면 깨어질 듯 짱짱한 겨울 밤하늘이 어울리지 배낭여행객의 메카 카오산 로드랑은 안 어울릴 듯 한데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고 카오산 로드에 가고 싶었다.
29살 힘겹고 혹독한 한 해를 지내고 있는 그녀..
당당하고 멋진 그러면서 여리디 여린 아름다운 그녀..
멋진 30대를 맞이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고, 사랑을 꿈꾸었으며, 멋진 30대에 대한 열망만큼 지금 많이 아파하고 있음을 나는 안다. 그때는 몰랐으나 나의 29살 시절이 그러했고, 아팠던 만큼 나는 지금 내 삶을 반짝이며 살 수 있기에 감히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다.
'으녕..조금만 더 아파하렴, 조금만 더 울어보렴, 울지 않으려 견디지 않아도 돼. 지금의 그 방황은 너의 청춘의 상장이 될 날이 올 터이니..'
 
#33살 아련.. 길 위에서 길을 찾다
누군가는 사진기를 들면 자꾸 하늘에 렌즈를 들이댄다 하였다.
나는..
나는..
그렇게나 길이란 곳에 끌리고 길에 렌즈를 들이대게 된다.
지금은 관용구가 되어버린 '길 위에서 길을 잃다...'란 말
참 아이러니 하다. 길 위에 서 있음에도 '길'이란 것을 잃어버리다니
올 한해 나는 수도 없이 많은 마음의 길을 잃었더랬다. 아예 골목을 막아버린 경우도 있었고, 지금도 헤메이고 있는 길도 있다. 늘 헤매고 다니기에 '길'을 좋아하는 것일까? 왜 길을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가지 분명한 건 33살의 아련..길 위에서 길을 찾은 듯하다. 내 마음이 나아갈 길을 On the Road를 읽으며 찾은 듯 하다.
 
카오산 로드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카오산 로드에 가고 싶다는 욕구보다는 카오산 로드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겨버린 책읽기였다.
화보에나 나옴직한 멋드러진 관광지들 좋다. 일탈을 꿈꾸며 '언젠가는 파리를 갈 테야. 피렌체의 두오모, 밀라노의 두오모도 꼭 가야지' 다짐하기도 한다. 겉핱기식으로 씨익 둘러보고 '나 거기 다녀왔어' 자랑 몇번 하고 잊혀지는 관광지들을 실은 나도 참 많이 동경한다. 그러나 내가 정작 되고 싶은 건 카오산 로드 같은 사람..
 
카오산 로드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엔 카오산에 1년씩 2년씩 여행하며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도 있고
카오산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며, 카오산이 여행의 시작인 사람, 여행이 마지막인 사람..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카오산에서 많은 것을 얻어간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 문득문득 그곳에서의 인연들과 생각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지..
 
카오산 하나만 보았을 땐 특출나게 유명하거나 구경거리는 없지만 여행자 스스로들이 만들어낸 문화가 있는 그 곳..
그 곳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늘 여기 있을테니 당신들 나에게서 위안을 얻어가오..
내게 한달 두달 혹은 1년 2년 머물다 훌쩍 떠나가도 좋고 굳이 나에게서 좋은 점만 봐 달라 요구하지 않을 터이니 그저 한 조각 위안이 필요할 때, 말 없이 곁에 있어주고 토닥여 줄 수 있으니 언제든지 오시오..내 마음 속 놀이터에서 마음껏 놀아보고, 지겨우면 떠나가도 괜찮다오. 당신의 일상에서 가끔 내 마음 속 놀이터에서 놀았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흐트러지는 마음 다 잡을 수 있다면, 내 마음 속 들락 거리는 사람들로 인해 상처 받더라도 나는 괜찮다오. 사람에게서 상처 받은 것 언젠가 사람으로 치유 받으리라는 것을 아니까..
 
#카오산 로드 그곳..
책을 덮고 집에 와서 이 책의 모태가 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책 속 그들의 많은 이야기를 읽은 직후였던 터라 그들이 꼭 예전부터 알던 절친한 이웃 같았다. 그리고 하나같이 행복해 보이는 그들의 표정에 눈물 겨웠다. 카오산.. 그곳에 가면 간고등어 같은 내 삶이 대서양을 누비던 등이 반짝이는 살아있는 고등어처럼 바뀔 수 있을까? 라는 바보같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반짝임이 그들에겐 있었다.
 
DVD 플레이어가 멈추고, 멈추었던 것을 3번을 반복해 본 지금 이 순간
드는 생각들이 있다.
아직은 배낭보다는 슈트케이스 들고 새침 떨며 여행보다는 관광을 더 사랑하는 나이지만 언젠가 카오산에서 양동이에 담아주는 칵테일을 들이키고 있는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것. 나는 그러고도 충분히 남을 사람이라는 것.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지만 카오산을 사랑하며, 카오산의 방황하는 혹은 방황했던 영혼들이 꼭 나 같기에 그들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
 
이제 겨우 30대인데 늙었나? 눈물이 찔끔 번진다...
 
이 세상 모든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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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가난 - 살림의 그물 11
E.F. 슈마허 지음, 골디언 밴던브뤼크 엮음, 이덕임 옮김 / 그물코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조금만 벌고, 조금만 소비하고..
책을 읽는 내내 그럴 수 있으리라, 그러리라 다짐했지만
책을 덮고 나서 지금 나의 모습은 부끄럽고 한심하기 그지없다.
갖고 싶은 것, 읽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것은 넘치고
그것을 위해 아둥바둥 돈을 벌어야하고...
 
한동안 이 책을 쳐다보지도 않을 듯
그건 이 책이 안 좋아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많은 죄책감을 들게 하기 때문에..
 
서브프라임, 키코 사태, 펀드의 몰락, 미네르바 논쟁..
다들 개인의 탐욕에서 비롯된 그리고 그 탐욕들이 불거져서 생긴 것들이다. 정당하게 땀 흘려하는 노동이 아닌 돈으로 돈을 낳기를 원하고 돈으로 돈을 만드는 직업(쓸모 없을지도 모르는 직업)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려왔던 것일까?
일련의 사태들을 비난하는 나조차도 내 소소한 탐욕들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고 이런 내 모습에 죄책감이 든다.
 
조금 덜 읽어야할까? 조금 덜 눈에 넣어야 하는 걸까?
그러나 다시금 내리는 결론은 조금 더 부지런히 읽고, 조금 더 부지런히 생각해야 할 것이며, 조금 더 실천해야겠다는 것!
조금 더 내려놓음을 이야기하는 책에서 '능동적 책읽기' '능동적 숨쉬기'를 깨달은 조금은 이상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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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남자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두 천사 다미엘과 가서엘은 얘기한다. '영원'도 좋지만 '지금'을 얘기하고 싶어.. 모든 것이 '환상'일지라도 '지금'을 이야기하고 싶어.. 그리고 또 그들은 세상의 변화된 모습에 대한 회한을 드러내는 가운데 인간들이 이야기를 잃어버렸음을 애석해한다.
10년도 전에 봤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가 자꾸 생각이 나 이곳 저곳 뒤져 DVD를 찾아 다시 본 이튿 날 이 책을 접어들게 된 것은 '책은 주인을 알아서 찾아간다'고  딱 그런 느낌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흔히들 '문학은 죽었다'고 한다. 뭐 문학만 죽었겠는가? 세상 살기 팍팍하다고 인문학, 순수 과학 이런 것들 또한 죽었고 그런 것들이 있어야 할 곳에 '실용' '실용' '실용'만이 남아 있다. 이야기가 사라져 버렸다. 88만원 세대라 일컫는 청년들의 팍팍한 삶에 이야기를 채워 치유해 주어야 할 터인데 실용서, 자기 계발서들이 이야기의 자리를 빼앗고 자신만이 최고인양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이야기.. 그것은 환상일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만큼 치유의 힘을 가진 것이 또 있을까? 어둠속에서 계속 환상을 이야기하고, 과거를 이야기하고, 진실을 이야기함으로써 주인공 브릭은 자신뿐 아니라 이혼한 딸, 깊은 상처를 가진 손녀의 아픔까지 이해하고 감싸안을 수 있었다. 실용서나 심리학서가 시키는대로의 수동적인 치유가 아니라 조금 돌아왔을지 모르나 어둠속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로 자신의 아픔과 꿈과 환상을 양껏 까발리고 소금을 뿌려 고통을 극대화 시키고 그러나 결국 깊은 치유의 감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이야기..우리는 그것을 찾아야한다.
TV속 연애인들의 까발려지고 공중으로 흩어지고 마는 사생활 이야기.
실용서, 자기 계발서 속 타인의 성공담 이런것들이 아닌 조금은 돌아가더라도 가끔은 길을 잃더라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아야할 것이다.
베를린의 두 천사가 다시 애기한다. '영원'도 좋지만 '환상'도 좋지만 '지금'을 이야기하고 싶어..그리고 그 천사의 얘기를 곱씹으며 나는 꿈꾼다. '영원'도 좋고 '환상'도 좋고 '지금'도 좋고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넘치는 세상. 어둠속에서 실용서나 자기 계발서를 읽는 젊은이보다 이야기를 하는 젊은이가 더 많은 세상. 지금보다 덜 각박한 그런 세상이 빨리 왔음..하는 그런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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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온천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요시다 슈이치의 책은 처음이다. 솔직히 일본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 특히나 국적 불문하고 단편은 몰입이 힘들어 안 좋아하면서 일본 단편 소설을 이렇게 잘 읽어내린 내가 기특한걸까? 아님 요시다 슈이치가 말랑말랑하면서 짭쪼름하게 글을 잘 쓴 걸까? 원래 요시다 슈이치가 말랑말랑 짭쪼름한 글을 쓰는 작가일까? 궁금하게 만드는 책읽기였다.
 
나라는 사람, '사랑'이란 말 참 좋아한다.
'oo아 사랑해' '책 읽는 거 사랑해' '우와 이 맛 사랑해'
어떤이는 사랑이란 말을 자주 쓰는 내게 감정과잉이라고도 하지만 '싫어해' '증오해' 이런 말을 남발하는 것보단 낫지 않는가 싶기도 하고, 또 진짜 나란 사람은 '사랑'이란 감정을 위해 사는 사람인지라 누가 뭐라해도 '사랑'이란 말, 모든 '사랑의 행위'를 사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더 사랑스럽게 다가왔던 것 같다.
 
10대, 20대, 30대의 각 커플들의 사랑 이야기..
대부분의 일본 소설처럼 뒤틀리고 기이한 관계들이 아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랑 이야기를 온천이란 공간에 집어 넣고 참으로 말캉하게 그러면서도 짭쪼름하게 잘도 적어냈다.(뭐든지 적당히 간이 맞아야 좋다는 Irene의 생각! 나도 말캉 짭쪼름한 해수 온천에 몸을 담그고 독후감을 쓰면 글이 잘 써질까?라는 엉뚱한 질문! 하하)
 
사람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고, 사랑이 시작되었다면 언젠간 균열도 겪을 것이고, 죽음이 갈라놓던 아니면 사랑이 식었든 이별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랑의 변화를 역으로 구성해 내고, 또 그 사랑의 변화를 온천이란 한정된 공간에 집어넣고 얘기해 내다니.. 옮긴이의 꿈처럼 이 소설을 들고 소설 속 그 온천에 가 느긋하게 더운 물에 몸을 감그고 다시 한 번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꿈도 꾸어보지만,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각 곳의 겨울 바다를 배경으로 이런 사랑 이야기를 직접 써 보고도 싶다는 조금은 버거운 꿈을 꾸게 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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