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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남자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두 천사 다미엘과 가서엘은 얘기한다. '영원'도 좋지만 '지금'을 얘기하고 싶어.. 모든 것이 '환상'일지라도 '지금'을 이야기하고 싶어.. 그리고 또 그들은 세상의 변화된 모습에 대한 회한을 드러내는 가운데 인간들이 이야기를 잃어버렸음을 애석해한다.
10년도 전에 봤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가 자꾸 생각이 나 이곳 저곳 뒤져 DVD를 찾아 다시 본 이튿 날 이 책을 접어들게 된 것은 '책은 주인을 알아서 찾아간다'고 딱 그런 느낌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흔히들 '문학은 죽었다'고 한다. 뭐 문학만 죽었겠는가? 세상 살기 팍팍하다고 인문학, 순수 과학 이런 것들 또한 죽었고 그런 것들이 있어야 할 곳에 '실용' '실용' '실용'만이 남아 있다. 이야기가 사라져 버렸다. 88만원 세대라 일컫는 청년들의 팍팍한 삶에 이야기를 채워 치유해 주어야 할 터인데 실용서, 자기 계발서들이 이야기의 자리를 빼앗고 자신만이 최고인양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이야기.. 그것은 환상일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만큼 치유의 힘을 가진 것이 또 있을까? 어둠속에서 계속 환상을 이야기하고, 과거를 이야기하고, 진실을 이야기함으로써 주인공 브릭은 자신뿐 아니라 이혼한 딸, 깊은 상처를 가진 손녀의 아픔까지 이해하고 감싸안을 수 있었다. 실용서나 심리학서가 시키는대로의 수동적인 치유가 아니라 조금 돌아왔을지 모르나 어둠속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로 자신의 아픔과 꿈과 환상을 양껏 까발리고 소금을 뿌려 고통을 극대화 시키고 그러나 결국 깊은 치유의 감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이야기..우리는 그것을 찾아야한다.
TV속 연애인들의 까발려지고 공중으로 흩어지고 마는 사생활 이야기.
실용서, 자기 계발서 속 타인의 성공담 이런것들이 아닌 조금은 돌아가더라도 가끔은 길을 잃더라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아야할 것이다.
베를린의 두 천사가 다시 애기한다. '영원'도 좋지만 '환상'도 좋지만 '지금'을 이야기하고 싶어..그리고 그 천사의 얘기를 곱씹으며 나는 꿈꾼다. '영원'도 좋고 '환상'도 좋고 '지금'도 좋고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넘치는 세상. 어둠속에서 실용서나 자기 계발서를 읽는 젊은이보다 이야기를 하는 젊은이가 더 많은 세상. 지금보다 덜 각박한 그런 세상이 빨리 왔음..하는 그런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