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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 ㅣ 하룻밤의 지식여행 16
매기 하이드 외 지음, 방석찬 옮김 / 김영사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같은 시리즈의 '프로이트'를 구입하는 겸사겸사 함께 구입하게 된 융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융의 모습-흔히 정신분석학자 혹은 심리학자로 여겨지는-에 심한 균열이 갔다. 그가 과연 심리학자인가, 그가 과연 어느정도 실증성을 띤 작업에 일생을 바친 정신의학자가 맞는가. 흔히 프로이트와 연결되어 가끔씩 언급되는 그의 모습이나, 인간을 몇가지 유형으로 나눠 MBTI 검사같은 것에 영향을 끼쳤다거나, '페르소나'라는 개념으로 대표되는 그의 이미지는 영락없는 심리학자이지만, 그가 평생 매진한 학문적 작업의 분야나 결과물을 보며 그를 심리학자로 보는 것은 차라리 '오해'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는 한평생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신비한 경험'을 많이 했다. 그는 그러한-나처럼 세속적인 인간이 보기엔-참으로 얼토당토 않을 법한 경험들을 탐구해 나가기 위해 정신의학을 택했고, 또 실제 그러한 연구를 평생에 걸쳐 이어나갔다. 자신의 '아니마'가 했다는 말처럼 그의 작업들은 심리학이라기 보단 숫제 '예술'로 보일 지경인데, 4원소 운운하는 것이나 주역에까지 손을 대는거나 '동시성'운운하며 오늘의 과학으로 보기에는 과장 조금섞어 어처구니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일들에 대해 '인간의 언어'로 해명하려고 하는 그의 일생과 학문적 작업들은, 차라리 환타지 소설로 보일 지경이었다.
물론 그가 모든 심리적 문제의 근원을 '성욕'으로 설명한 프로이트보다 조금 더 다양하고 풍요로운 결과물을 내 놓은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신비하고 모호한 개념들과 개인적 경험들이 들어차면서 그의 분석심리학은 더욱 모호한 어떤것이 되어버린 인상이 된 부분도 적지 않다. 더군다나 그의 학문적 작업들은 자신의 틀 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아, 그 개념상의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것'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아쉬움도 조금은 보인다.(아닌게 아니라 프로이트가 정치학이나 사회학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융의 그것을 비교해보라!)
하지만 환자를 '내담자'로 이야기하며 그들을 치유해주기 보다는 같이 이야기하고 서로 치유해가는 과정에 서있는 사람으로 보려는 그의 시각이라던지, 함께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반된 덕목들이 한 개체나 한 사안에 공존함을 파악하려는 그의 일련의 작업들이라던지, 또 그런것들을 통해 엿보이는 그의 문학적, 예술적, 신화적 상상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오늘의 우리에게 충분히 의미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논리적인 무언가를 바라는 독자라면 융이야말로 최악의 심리학자이겠지만, 인간사의 많은 부분은, 그리고 그들이 모여 이룬 사회의 본질은, 무조건 논리를 찾는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융의 학문적 업적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하겠다. 무엇보다 그의 생애나 학문적 성과는 '재미있다'는 미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