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하는 글쓰기]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치유하는 글쓰기 - 발설하라, 꿈틀대는 내면을, 가감 없이
박미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2008년 끄트머리에서 읽은 [타임패러독스]의 타이밍이 절묘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2009년의 벽두에서 만난 이 책 역시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타이밍이 예술이다. 이런 것을 융의 동시성의 원리라고 한다는데, "'이제 자기 성찰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때쯤 우연히 마음성찰이나 심리학 관련 도서를 선물받는 경우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는 내가 인생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도록 누군가가 안내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 된다. 당신이 가고 있는 그 길이 맞다, 아니면 다른 길로 가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p.127)" 내가 내 상황에 대한 고려없이 대뜸 서평단에 지원한 것, 처음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여러 가지 치유글쓰기 방편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12주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치유글쓰기 모임에서 첫 주제로 주어지는 것이 `죽도록 미운 당신에게`라고 한다. 내면의 상처가 된 그 분노의 근원을 찾는 치유의 출발점이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들의 죽도록 미운 당신은 부모나 형제자매등 가족일 경우가 가장 많고 나 자신, 어떤 특정 상황 등등까지 다양하다.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대상이 가장 멀고 증오하는 대상이 되는, 알 수 없는 삶의 모순을 실감한다. 

죽도록 미운 당신에게 쓰는 편지를 시작으로 다양한 글쓰기가 행해진다. `그 때, 그 장소, 그 사람`, `내 생에 최초의 기억`과 같은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글을 쓰기도 하고, 분노의 대상을 떠올리며 격정에 휩싸여 내 속의 말을 가감없이 터뜨리는 [미친년 글쓰기]나 내가 나에게 묻고 대답하는 [셀프인터뷰]를 통해 스스로 상처를 어루만지기도 한다. 내가 버스운전자가 되어 어떤 사람들을 태우고 어디로 갈 것인지 상상해보는 `버스명상`, 내가 마음을 쉴 수 있는 가상의 공간으로 `내 인생의 집 한 채`를 지어보는 명상시간도 갖는다. 그리고 프로그램 마지막 날에는 `지금 여기, 나의 과제와 각오`라는 글을 쓰고 참가자들이 모두에게 편지를 한 통씩 쓰는 것으로 끝난다. 그 편지는 두고두고 마음의 위안과 힘이 된다고 한다.

글쓰기가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렇게 몇 주간에 걸친 체계적인 프로그램에 따라 글을 써보는 일은 `정신적 지병`을 갖고 있든 아니든 한번쯤 경험해볼 만하다. 책에 소개된 체험자들의 생생한 글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지만, 고통스럽더라도 상처를 드러내어 치유하고 나면 한없이 짓눌려있던 감정들이 풀어지면서 서서히 정화되어 내면이 고요해지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제3자의 시각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가 너무 나만의 늪에 빠져있었다는 걸 깨닫기도 하고, 상처를 준 당사자를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기도 한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며 그들을 위로하는 동시에 나를 위로하고, 그들의 삶에 내 모습을 투사함으로써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내어놓으며 스스로 감정의 중심을 잡아가고 아픈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혼자 글쓰기는 가뜩이나 기억이란 것이 불완전한 터에 부정적인 기억을 더욱 부정적으로만 각인시킬 우려가 있고, 홀로 어두운 감정의 굴 속에 처박힌 꼴이 되기 쉽다. 나 역시 경험해 본 바다. 집단 글쓰기를 통해 타인의 시선을 접함으로써 내가 `내 기억에 거리두기`를 해보고, 여러 사람들의 진심어린 위로를 받고 또 내가 진심으로 위로를 하며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스스로 과감히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이미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마음이 아픈 사람은 어떻게든 글쓰기를 하게 되어 있다. 단 한 줄의 낙서라도 한다. 상처를 극복하려는 사람은 무슨 무슨 코칭프로그램이 있는 지 몰라도 스스로 방법을 찾고 터득하기 마련인데, 이가 아프면 치과에 가고 관절이 아프면 정형외과에 가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면 마음을 치료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 제대로 치유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종교가 있어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고 관련 서적이 충분하니 혼자 이겨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자기 마음 하나 어쩌지 못해서 남한테 의지하는 나약함을 용납할 수 없더라도, 어차피 짐을 지고 갈 바에야 짐을 진 사람들과 함께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가 힘든 걸 남이 알고 남이 힘든 걸 내가 아는 것 자체로도 기운이 날 것이며, 내 짐이 누군가에게는 가벼울 수 있고 누군가의 짐이 또 내게 가벼울 수 있으므로 그것 또한 위안이 될 수 있다. 공감의 힘이란 그렇게 크다. 내 상처는 결국 나의 몫이긴 하지만, 내가 아닌 남이 더 치료를 잘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

[설문]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담만으로도 간접치유 효과가 있다. 책에 소개된 프로그램을 따라 다양한 글쓰기를 직접 해보면 내면의 깊은 곳까지 변화의 울림을 느낄 수 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 사람풍경/김형경

책 말미에 단계별로 저자가 추천하는 도서도 따로 소개되어 있다.  

- 아티스트 웨이/줄리아 카메론
-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나탈리 골드버그
- 치유의 글쓰기/셰퍼드 코미나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가슴 속에 응어리를 안고 있거나 인간관계에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한 번.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우리 안에는 내면아이가 한 명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고통이 있던 자리마다 딱 거기서 성장을 멈춘 아이들이 있다. 아버지가 구타하기 시작한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아이, 어머니가 집을 나간 그 날에 머물러 있는 아이, 길에서 부모를 잃어버려 헤매던 그 때 성장을 멈춘 아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죽을 듯이 싸우는 장면을 목격한 아이, 시부모 때문에 고통받던 어머니가 어느 날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우는 모습을 바라보던 아이... 다양한 정신연령을 가진 크고 작은 아이들이 우리 내면에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내면은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을 잃어버린 아이들로 꽉 찬 고아원이다.(p.141~14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니 2009-01-04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융의 동시성의 원리와 비슷한 말 중에 도서관의 천사 라는 말도 생각나요.
도서관에 가면 수많은 서가 속에서 우연히 천사가 도와주는 것처럼 딱 필요한 책 앞에 서게 되는 경우가 있는 거. 한 때 참 좋아라 했어요, 이 말을.

건조기후 2009-01-04 16:53   좋아요 0 | URL
도서관의 천사라니. 참 예쁜 말도 다 있군요.. 그런 거 보면 책이랑 사람도 운명같은 게 있는 거 같아요.ㅎ 미약하든 지대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