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 튀기지 마세요 - 마주이야기 시 1
박문희 / 고슴도치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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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자래  -이종석

맨날맨날 우리만 자래

우리 자면 엄마 아빠,

비디오 보구

늦게 잘거지?

 

아하하하하. 꼬맹이와 둘이서 이걸 소리내 읽다가 뒤집어졌다. 정말 말그대로 허리가 꺾어져라 웃었다.

"엄마도, 아빠도 그러잖아.맨날 나 재워놓고 비디오 빌려 보잖아" 소리지르는 꼬맹이. 찔려서 웃고, 엄마를 힐난하느라 소리지르며 웃고, 무척이나 정교한 표현에 감탄하며 웃었다. 꾸미지 않은 아이들의 글에 얼마나 기분이 좋아지는지.

 

예전에 이 책을 엮은 박문희님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제발 엄마 말 좀 들어라..." 라는 말 하기 전에 당신들이 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어른들이 할말만 냅다 쏟아 놓고 아이들의 말을 듣지는 않는다면서. 글쓰기 교육 이전에 말하기 교육이고, 말하기 교육이 잘되려면 그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어야 하는게 아니냐면서.

글을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의 입에선 정말 별 신기한 얘기들이 많이도 쏟아진다. 그 시기, 그 말들을 그대로 기록해 두었다가 글자 모르는 아이에게 직접 베껴 '그려'보게 하라는 말씀도 하셨다. 이 책은 그러한 기록물이다.

알면 뭐하나. 난 제대로 실천 못하면서. 사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도 그런 거였는데. 아이가 커가는데 제대로 써 놓은게 없네. 아니, 아직도 늦은건 아니니까.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 꼬맹이가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했더라. (싱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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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매혹당할 확률 104% - 집 나간 '탄산 고양이'가 그린 뉴욕 스케치
전지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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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사실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두툼한 트래킹 슈즈를 신은채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여행하는것을 상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텐트에서 자 본 적이 없진 않지만, 그 안에서 마냥 행복하기엔 너무 편안하게 살았던 모양이다. 편안하게 살았던 것이 아니고, 여행에 대한 꿈이 없는건 아니냐고? 쳇, 어찌 아셨는가? 난 어릴적부터 엄청나게 끔찍한 멀미에 시달렸었다. 차를 타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친척집에 놀러가는것도 미션 임파서블이었던 내게 여행은 언감생심. 그나마 멀미를 좀 덜 하게 되니 아무데서나 신나게 잘 만한 시절도 지나버렸더라. 그러니까 딱 도시내기인데다 끔찍한 멀미와 저주받은 체력은 내게 배낭여행은 상상 너머의 그 무엇이었던게다. 게다가 잠자리도 점점 편한것만 찾게되는 이 나태함...(어릴적 내 세상은 혼자 몰래 기어들어가 책을 읽거나 그림을 끄적이던 다락방.)

 

 

이 책은 사실 여행에 관한 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얕고 단편적인 이야기들이다. 열흘 동안 뉴욕에 머물었던 이야기가 104개의 에피소드로 토막나 있는데다가 한 페이지를 넘지 않는다. 왼편에 글이, 맞은편엔 지은이의 일러스트가 화려하게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단편적이고 글도 없으며 결코 여행에 관한 책이라고 말하기엔 쑥스러운 책이 이 책 뿐이겠는가. 하지만 후한 점수를 주었던 오기사의 <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 같은 책의 그림은 여백이 많은 가는 펜선이라 좋아했다. 조병준의 <길에서 만나다>나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같은 책들도 여행에 관한 얘기라기보다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만 줄창 써 놓은 책이지만 사람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서 좋았다. 이 책은 그 중 어느쪽도 아니다. 여행이나 사람에 대한 애정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그림체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매력적이다.

 

그녀의 솔직함, 나이 많은 도시 (노)처녀로서의 솔직함 때문이다.

 

이왕이면 예쁘게 차려 입고 뉴욕을 거닐겠다며 10Cm 웨지힐을 신고 세 시간 동안 맨해튼을 걷고나선,  신과의 싸움이었다고 말한다.(세상에!)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가이드북이란 각 도시의 '꽃미남', '꽃미녀' 분포도와 그들의 출몰 예상 지역 그리고 서식지가 표시된 안내 지도'(74쪽)라고 말하는 그녀. '수제 민속품이나 지방색이 독특한 장식품'은 필요없으며 '뉴욕에서는 역시 디자이너 브랜드를 사야'(175쪽) 한다고 흥분한다. '자고로 여행의 묘미란 낯선 곳에서 느끼는 설렘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인생의 의미.......가 아니라, 각 도시의 얼굴 마담 앞에서 V자를 그리고 선 사진을 보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97쪽)라고 당당히 말하는 여행서를 본 적이 없어서일까. 약간 허영심도 보이고, 서른넘은 싱글로 사는것에 가끔 초조함을 표현하고, 자신이 도시를 좋아하는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녀가 사랑스럽다.

 

탄산고양이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고, 때론 무모하고, 도시를 사랑하며, 몸으로 세상을 살고 있다.

책상에서 세상을 사는 나보다는  53289배쯤은 더 사랑스럽다.

다락방에서 이불 뒤집어 쓰고서 동화책을 보고, 그걸 스케치북에 베끼고 살던 아이는

여전히 자신만의 동굴에서 책 밖의 세상으로 선뜻 나가지 못하고 있다.

(난 여전히 멀미를 하거든.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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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카타야마 쿄이치 지음, 안중식 옮김 / 지식여행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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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어지면 그 사람은 정말 없어지는 것이지. 요컨대 사람이 없어진다고 하는 것도 역시 사람에게 보내는 마음의 일부분일 수 있다는 거야. 좋아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부재가 문제가 되는 것이고, 부재는 남겨진 자에게 슬픔을 가져온다. 그러니까 슬픔은 모두 마찬가지란다. 이별은 괴롭지만 언젠가 다시 맺어지자, 하는 식으로. -199쪽

 

 1959년생 작가가 쓴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무척이나 소녀 취향이다.

남자아이의 시점으로 쓰여진 것이지만, 투영하고 설레는 마음이 보인다. 어쩌면 고등학생이라기 보다는 더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라고 할 만큼 풋풋하다. 할아버지의 '평생사랑'과 주인공의 사랑이 얽히면서 사랑과 죽음에 관해 속닥거린다. 주인공 사쿠타로가 천국이나 저 세상 같은건 살아 남은 이들이 만들어낸 허구며 환상이라고 투덜거리는 부분은 심하게 공감이 간다. 그러게 이미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니 살아 남은 이에게 저쪽 세계가 또는 죽은 이들에게 이쪽 세계가 어떠한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끝은 그저 끝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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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와 나 - 세계 최악의 말썽꾸러기 개와 함께한 삶 그리고 사랑
존 그로건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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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녀석이 '잘 사는 것'의 비결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멈추지 말고, 뒤돌아보지도 말며, 마치 사춘기 소년 같은 활력, 용기, 호기심, 장난기로 가득 찬 하루하루를 보내라. 스스로를 젊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달력이 몇 장이 넘어가건 여전히 젊은 것이다. -259쪽

 개를 키우다 보면 벽이 상하기도 하고, 쿠션이 찢어지기도 하며, 카펫이 망가지기도 한다. 다른 모든 관계와 마찬가지로 개와의 관계에서도 대가가 따른다. 이러한 대가를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였고, 사실 이것은 말리가 우리에게 주는 기쁨, 만족, 보호, 동반자 역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말리에게 들어간 비용과 말리가 망가뜨린 것을 복구하는 비용을 다 합치면 작은 요트라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간에서 하루 종일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요트가 과연 몇 척이나 되겠는가? 주인의 무릎 위로 올라가거나 주인의 얼굴을 핥으며 터보건을 타고 언덕을 달려 내려가는 순간을 즐기는 요트가 몇 척이나 되겠는가? -306쪽

  좀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유나이티드항공 93편이 겪은 엄청난 비극의 현장에 서서 나는 여전히 이제 곧 겪게 될 상실의 아픔을 미리 느끼고 있었다. -351쪽

 

 언제나 커다란 멍멍이가 나의 위시리스트 위쪽에 있다.

하지만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는건 개에게나 사람에게나 할 짓이 못된다는것이 내 입장이고, 하여 여태 이 집에서 작은 개 하나 못 키우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멍청하고, 제일 둔하고, 제일 말썽꾸러기인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 말리와 13년간 가족으로 살았던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듯 실화가 갖는 힘이 있다.  멍청하고 항상 배고프고 항상 말썽꾸러기인 말리의 소동을 읽으며 동생이 키우고 있는 코카스패니얼이 떠올랐다. 지은이가 말리를 떠나 보낸 후 칼럼을 썼을 때, 수백명의 사람들이 '우리집 개도 그렇다, 말리보다 더 심할거다'라고 메일을 보낸 것을 이해한다. 당최 사냥개 종류는 모두 그런 모양이다. 한시도 가만 못 있고, 끝없이 놀 거리, 뛸거리, 먹을거리를 찾아 헤맨다.

 애완동물을 키우는게 아니고,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말리를 떠나 보내는게 읽고 있는 나로서도 괴로웠다. 만남은 이별을 담보하는것이랄까? 또, 그것이 단순한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가족의 관계이기때문에 헤어짐은 더욱 힘이 든다. (입버릇처럼 내가 말하잖아. 멍멍이를 하나 키우느니 애를 하나 낳아 키우지. ㅜㅜ)

  

말리와 아이 셋과, 부부의 13년간 이야기를 절묘하게 잘 풀었다. 무엇보다 저자의 유머감각이 매우 맘에 든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뻔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개를 떠올릴 수 있음에 행복한 시간들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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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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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도시의 방과 방 사이, 집과 집 사이는 다닥다닥 붙어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타인과의 물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불편하다며 늘 투덜거리곤 한다. 타인과 가까이 있어 더 외로운 느낌을 아느냐고 강변한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언제나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들어줄 나만의 사람, 여기 내가 있음을 알아봐주고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불러줄 사람을 갈구한다. 사랑은 종종 그렇게 시작된다. 그가 내 곁에 온 순간 새로운 고독이 시작되는 그 지독한 아이러니도 모르고서 말이다.-180쪽

 스무 살엔, 서른 살이 넘으면 모든 게 명확하고 분명해질 줄 알았었다. 그러나 그 반대다. 오히려 ‘인생이란 이런 거지’라고 확고하게 단정해왔던 부분들이 맥없이 흔들리는 느낌에 곤혹스레 맞닥뜨리곤 한다. 내부의 흔들림을 필사적으로 감추기 위하여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일부러 더 고집 센 척하고 더 큰 목소리로 우겨대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말들은 잘한다. 각자의 등에 저마다 무거운 소금가마니 하나씩을 낑낑거리며 짊어지고 걸어가는 주제에 말이다. 우리는 왜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판단하고 냉정하게 충고하면서, 자기 인생의 문제 앞에서는 갈피를 못 잡고 헤매기만 하는 걸까. 객관적 거리 조정이 불가능한 건 스스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차마 두렵기 때문인가.-227쪽

 ".....정말 나를 걱정한 거였어요? 걱정하고 있다는 그 느낌이 싫었던 게 아니고?"

맥이 탁 풀렸다. 사랑이 저무는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235쪽

  

그녀가 가진 고민이 그리 깊어 보이지 않아서  뚝딱 읽어버리게 된 책.

물론 사랑에 목숨 걸게 되는 것이 또한 인간이라서, 애정고민이 생의 고민 전부가 되어 버릴 수 있다는것도 인정한다. 그러니 애정고민이라고 깊은 고민이 아니란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 오은수는 사랑에 목숨을 걸지도 않았다. 평범하고 지루한 삼십대 미혼 직장여성.

그렇다고 일에서 똑 부러지는 성과를 거둔것도 아니고, 하루하루가 힘들게 지나는 회사 직무.

그녀 앞의 남자들- 이 사람은 이래서 흠이고, 저 사람은 저래서 싫고, 그 사람은 그래서 걸리고. 그러니까 입맛에 딱 들어맞는 남자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거다. 착하고, 잘 생기고, 돈도 많고,능력있고, 나만 사랑하는 남자가 어디있니.

힘들고 지치는 회사에서는 기회주의자인 상사에게,때론 당돌한 후배에게도 치이고 배신당하는 일상. 세상에는 또 입맛에 딱 맞는 상사도, 후배도 참으로 드문 것이다.

 이러저러한 오은수의 결함에도 이 책이 재미있었던 것은, 지금 이 시간의 직장 여성들이 모습이 참 정직하고 솔직하고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서였다. 메신저의 대화명을 심리상태에 따라 바꿔댄다. 사랑에 냉소적인척, 쿨한척 해도 어쩔 수 없이 그 놈의 사랑때문에 가슴에 상처를 만든다. 문자메시지를 시의적절하게 쓸 줄 안다. 얼마간 지갑이 쪼들릴 것을 알면서도, 몇 개월의 할부를 감수하면서라도 백화점에서 보드라운 블라우스를 산다. 친구의 좋은 소식이 그저 좋은 소식으로만 다가오지 않고 어느새 조바심을 만들게 된다. 오은수와 그녀의 친구들을 보니 꽤나 익숙하고 정겹다.

 그녀(들)의 고민이 거대하고 철학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사는게 어디 거대한 고민만으로 만들어지는것이더냐. 섹스 앤 더 시티의 서울 버전쯤 되려나. 그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대단한 직업에, 화려한 옷차림과 대단한 남성편력은 없지만, 그래서 더욱더 서울스러운 이야기.

  

아니, 어쩌자고 태오를 놓치고 그러냐. 어리고 착한 남자는 아무때나 오는게 아니지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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