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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정서는 메마르다. 혹은 삐딱하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베스트셀러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렇게 까칠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도 흔치 않을게다. (알라딘에 서평 53개 중 나 같은 사람 딱 셋 있더라.) <칼의 노래>, <현의 노래>도 읽지 않은 내가 단 한 편으로 그의 글을 평할 입장은 아니다. 이 책에 대해서만 말하자.
도대체가 빠져들지 못하게 한다. 넘치는 감정과 온갖 장식이 가득한 문장을 참을 수 없다. (다시한번 전시륜 선생님이 생각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묘사나 서술은 간 곳 없고 오로지 감정뿐이다. 흘러 넘치는 감정을 곳곳에 뿌려 놓는 이런 문장을 난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수 많은 이들이 감탄하고, 사 읽는다는것은 분명 매력이 있다는 뜻이렸다.(혹시, 광고의 힘 아닐까. 흑흑)
하지만 이 책, 난 울렁거림을 참으며 읽어야 했고, 결국은 차분하게 읽지 못하고, 듬성듬성 들춰가며 읽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나마 맘에 드는 글이란, '망월동의 봄'처럼 사실을 깔끔하게 쓴 글들이다. 참 아이러니다. 그는 이순신이 모든 감정을 배제하고 순수한 칼처럼 썼다는 일기를 감탄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의 글은 명료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의 슬픔은 "나는 오늘 슬펐다"라고까지만 기록하는, 통제된 슬픔이었다. 그의 슬픔과 기쁨에는 수사적 장치가 없다. 이 통제된 슬픔의 힘이 "저녁 무렵에 동풍이 잠들과 날이 흐렸다. 부하 아무개가 거듭 군율을 범하기로 베었다" 같은 식의 놀라운 문장들을 쓰게 한다. 바람이 잠든 것과 부하를 죽인 일이 동등한 자격의 사실일 뿐이다.' (p.225) '충무공,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라는 에세이는 이미 <칼의 노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구구절절 충무공에 대한 찬탄이다. 그랬군. 그래서 그 소설이 나오게 된 것이군.
까칠하고 메마른 톰보이....도대체 너는 어떤 종류길래 남들 다 좋다는 책을 이리도 버거워 하는게냐. 도대체가 삐딱하기가 그지 없다. 감정을 듬뿍 실은 글들에 알러지를 일으키는 체질이다. 알 수 없는 수사가 가득한 이 책에 나는 또 한번 절망한다. 나 자신에 대해.
아니다. 무슨 말이냐. 책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 어디 있을까. 난 그저 내 취향대로 좋고 싫음을 말할 뿐이다. 내 취향으로선 김훈에게 단단히 데인 셈일뿐이다. 좋은 사람은 좋은 대로 열광하며 읽어 주시길.
수정)
+내가 쓴 윗글을 읽어본다. '너나 잘해라' 역시 간단명료 상쾌한 글은 쉬 나오지 않는다.
+이 글을 쓰려고 알라딘을 뒤지고 있자니, 김훈이 대단한 베스트셀러 작가임을 새삼 느낀다.
+<칼의 노래>는 만화, 청소년용까지 나와있고, <자전거여행>도 표지 바꿔서 새로 찍었더라.
2000년 초판 1쇄를 찍은 책을, 2004년 출간이란다. 나 원.
+요즘 출판은 툭하면 판을 바꾸고, 책값을 올린다. 툭하면 만화로 편집한다.
이게 무슨 법석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