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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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대했을때의 그 기대가 그대로 실려서였을까?  아님 아직도 어쩌구상(賞)이란 이름에 기대를 버리지 못해서였을까?

 

신기한 이야기들, 슬픈 이야기들, 기이한 이야기들이 맞다. 실망스럽기 그지없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뵤기담집>보다는 백 배는 기이하고, 더 재미있었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도 반복하면 재미가 떨어지는 법이다.  기이한 이야기들을 주욱 나열하는것이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으니 장편소설로서는 무리가 아니었을까. 지루했다는 말이다. 혀에서 도마뱀이 자라는 여자 이야기 끝에 무슨 교훈이나 감상을 덧붙이고, 그 다음엔 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남자 이야기, 시간이 사라지는 사람들 이야기, 겨울잠처럼 몇달 몇년을 잠에 빠지는 사람들 이야기....절대로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이야기들과 반쪽자리 감상이 300페이지나 이어지다니. 그냥 <세상에 이런일이!> TV 프로그램 모음집 아닌가.

 

게다가 이 모든 이야기의 파일을 정리하는 주인공 '공대리'의 맞는 결말은 허무하고 엉뚱하기 그지없다. 느닷없이 피칠갑 공포모드 스릴러로 돌변해 버린다. 이야기의 처음에 등장하는 루저 실바리스와 결말의 주인공  공대리의 처지가 비슷하게 보여 오버랩 되기도 하지만, '굳이 그렇게 보자면'이라는 단서를 달 경우다. 그것이 작가가 의도한 것이라 해도 말이다.

 

하나 더. 뭔가 무게가 더 실릴 것 같았던 손정은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흐지부지. (에? 이게 전부인가?) 그녀에 대한 에피소드가 아쉽다.

 

각 에피소드들이 재미있다는것은 분명하지만, 사건들이 제각각이라 무작위로 몇 개쯤을 쳐 내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정작은 이런 문장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정작 부끄러운 것은 수많은 심토머들과 만나며 내 몸과 이질적인 존재를 어느 정도 포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내 믿음에 대한 배반감이었다. 그것은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190쪽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삶의 방식 이외에도 아주 많은 삶의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리 얼토당토않고 무모해 보여도 그것은 그들이 이 세계를 견디기 위해 나름대로 고안한 필연적인 질서라는 것을 모른다. 모르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201쪽

우리는 무슨 일에서건 교훈을 찾으려 하고 잠언을 얻으려 하지만 교훈과 잠언은 결코 우리의 인생을 바꾸지 못한다. -204쪽

 

인생에 교훈 따위는 없으며, 나와 다른 세계와 인간들과 존재들이 수없이 많은 것을 인정하라. 하지만,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그러게. 사람이 가진 오만과 편견과 아집을 버리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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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의 바다
다지마 신지 지음, 강우현 옮김 / 여성신문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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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족관 속의 생물들이 행복한지 불행한지에 관심 없습니다.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은 그 동물들을 잘 다루어서 고경 온 손님들이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수족관은 동물보다는 인간을 위한 곳이거든요." -8쪽

 "사람들은 이 지구 위에서 그들이 가장 주용한 생물이라고 생각하지요. 아니 자기들만이 유일한 생물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우리 동물들의 생명 같은 것에는 관심도 두지 않아요. 그들은 우리 큰 거북이들처럼 백 살까지 살지도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수백만 년 동안 사랑온 자연을 순식간에 파괴해 버리고 말더군요. " -89쪽

 "(...)모든 종류의 동식물들이 인간의 독재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맞아요, 인간들은 자연이 자기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요. 또 그들이 하는 짓을 다른 자연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관심도 없어요." -110쪽

"희망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어요. 하지만 오늘날 이 세상에서 희망을 만드는 것이 휘운 일은 아니죠. 눈에 보이지 않는 드넓은 세계에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난 후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알게 되겠죠. 그러니 일이 벌어진 뒤에 그걸 되돌리기는 너무 늦지요." -122쪽

 작은 거북이들은 눈을 부릅뜨고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있는 힘을 다해 수리야 바다를 향해 똑바로 헤어쳐 나아가기 시작했다. -134쪽

 

이쁘지 않은 그림. 동화책 아닌 동화책. 은유보다는 직설적인 이야기들.

자유롭게 살던 바다가 그리워 30년 동안 갇혀있던 수족관에서 내내 울고 아팠던 거북이 가우디. 여차저차한 과정을 거처(이건 동화적이다) 바다로 나가게 되지만, 이미 오염되어 버린 바다에서 비닐을 해파리로 오인하고 삼키고 배가 고파 무엇인가를 삼켜버린다. (이건 매우 사실적) 그리고 여차저차하고 지난한 바다속 이야기.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앞으로 이 책을 읽을 그대를 위해) 숨도 못쉬는 바다와 하늘을 만들어 놓은 인간을 향한 분노. 그리고 그것을 바로 잡고 싶어하는 가우디. 아니, 희망을 버릴 수 없는 가우디.

 

동화책의 전형적인 주인공과는 다르게, 가우디는 성격 까칠하고 이기적이다.  그런 그가 수족관을 나와 바다로 나가게 되었다는 장면을 읽으면서, '역시 바다에 나가 심성도 고와지고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전형적인 동화인가?' 생각했다. 아니다. 전혀 다른 이야기. 아프고 매력적이며, 현실성이 없는 결말이란 점에서 동화이지만,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음은 또한 동화가 아니다.

 그리하여 가우디의 애기들은 깨끗한 바다에서 자유롭게 살게 되었을까?

인간인 것이 부끄러워지는 책이다. 고운 그림이 아니지만 (내 취향이 아니라는게 맞는 말이겠다) 그래도 기꺼이 추천하고 싶다.  같이 읽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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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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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까짓 나라, 해준 것이 무엇이 있다고 돌아가겠는가. 어려서는 굶기고 철드니 때리고 살 만하니 내치치 않았나. 위로는 되놈에, 로스케 등쌀에, 아래로는 왜놈들 군홧발에 이리 맞고 저리 굽신, 제 나라 백성들한텐 동지섣달 찬서리마냥 모질고 남의 나라 군대엔 오뉴월 개처럼 비실비실, 밸도 없고 줏대도 없는 그놈의 나라엔, 나는 결코 안 돌아가려네. -p.84

언제부터 개인이 나라를 선택했지? 미안하지만 국가가 우리를 선택하는 거야.  -p. 260

 정말 영원한 혁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이봐, 정치는 모두 꿈이야. 민주주의든 공산주의든 무정부주의든 다 마찬가지야. 서로 총질을 해대기 위해서 만들어낸 거란 말씀이지. 미겔은 총을 들어 보였다. 이게 먼저고 말은 나중에 오는 거야. -p. 276

  

1905년 4월 4일 1033명의 조선인들이 제물포항에서 화물선 일포드호를 타고 멕시코로 건너간다. 스러져가는 대한제국의 운명처럼 조선 땅에선 아무런 희망이 없으므로. 하지만, 어쩌자고 난리통을 피해 지옥을 향했던 것인지 에네켄 농장으로 팔려가기 전까지도 아무도 몰랐다. 대륙식민회사의 사기(이건 명백히 사기 아닌가!)로 4 년간 채무노예로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부당하고 굴욕적인 대우를 받는 조선인 노동자들은 지금 이 땅에서 그 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을지도 모르는 동남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을 떠올리게 했다. 왜 굴욕마저도 반복되는 것이며, 어째서 인간은 이리도 잔인한지 모르겠다. 조선에선 다양한 계급이었던 이들은 모두 동등한 노동자로 전락했으며, 그 중 약삭빠른 인간들은 새로운 계급으로 신분상승하기도 한다.

4년의 계약기간이 끝난 후에도, 이들은 조선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4년 전의 꿈과는 달리 돈도 모으지 못했다. 에네켄 농장 노동자로 남거나, 도시 일용직으로 떠돌거나,멕시코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용병 아닌 용병 노릇을 하게 된다.

 

용설란이라고도 부르는 에네켄, 속칭 에니깽은 당시 아시아와 남미를 제 손에 넣으려는 열강들의 탐욕의 상징이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필수요소로 배가 필요하고, 그 배에서 쓰일 밧줄이 필요하고, 그 밧줄을 만드는 원료인 에네켄이 엄청나게 필요했으므로. 이 대목에서 다시 자본주의에 대해 쓸데없이 고민한다. (젠장!)

 

1부 이민자들의 고난은 어쩐지 심드렁하게 읽었지만, 2부와 3부에 설명되는 멕시코의 정치, 역사는 이후 내가 읽어야할 (읽고 싶은) 마르코스와 관련이 있어 조심히 읽어 두었다. 왜 난 심드렁했던가. 그건 역사를 들이대며 교훈을 주려고 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때문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고난을 겪었다, 민족을 잊지마라, 뭐 이딴 소리 했다간 바로 덮어버리겠어....

 

이야기는 나름의 속도감을 가지며, 마치 TV 다큐멘터리를 보는듯 하다. <고래>와는 또다른 냉철함이다.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며 이야기를 끌고가는 주인공이 따로 없으며, 모든 등장 인물이 주인공이며 동시에 그 모두가 또한 역사의 배경인물일 뿐이었다. 화자는 담담하고 짤막하게 이야기를 서술하고, 역사서인 듯 꼼꼼하게 당시 세계 정세와 멕시코의 정치사회를 서술한다. 인물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시선이나 뜨거운 동포애 따윈 없다. 건조하다. 읽는 내내 건조하다고 중얼거렸다.

 

1부를 읽으며 의심하던 나는 2부와 3부에 더 몰입이 되고, 결국 힘없이, 희망없이 남미 어딘가에서 사라져 버린 이들의 결말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더불어 스페인의 침략으로 소멸되어 가는 마야인들의 운명에도 한숨을 쉴 수 밖에)국가? 혁명? 정치? 그 모든 것들은 힘없는 이들의 피를 먹고 자라는 괴물일뿐이란 생각이 든다. 남미 밀림 한복판에 자신들만의 나라를 세우자던 조장윤은 동지들을 사지에 끌고가서는 막상 자신은 이들을 남겨두고 도망친다. 무엇을 위한 공동체인지, 누구를 위한 공동체인지.

 

김영하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지난한 멕시코 이주 노동자들의 역경이 아니라 정치의 속절없음은 아니었을까? '먼 곳으로 떠나 종적 없이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는 언제나 매료되었다'라는 작가 후기를 보며 사라진 사람들이란 이제 사라져버릴 '우리들'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 모든 것이 다 아무것도 아님을 얘기하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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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 1957-2005 - Kim Young Gap, Photography, and Jejudo
김영갑 사진.글 / 다빈치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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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 것은 아침저녁으로 두세 시간 정도다.

사진은 일 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승부를 거는 처절한 싸움이다. 한 번 실수하면 그 순간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다. 특히 삽시간의 황홀은 그렇다. 집념에 빠지면 작업에 몰입하기 힘들다. 눈앞에 펼쳐지는 황홀함은 순식간에 끝이 난다. 그 순간을 한번 놓치고 나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일 년을 기다려서 되는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기다려도 되돌아오지 않는 황홀한 순간들도 있다.

 

쉰을 채우지 못하고 떠난 사진가 김영갑의 글과 사진 모음.

제주도 풍광에 홀려 기어코 그 곳에 둥지를 틀고 20년을 제주를 사진에 담았던 사람.

루게릭으로 시달리다가 손하나 까닥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지난 시간과 공간을 흘러가는대로 지켜봤다는 글에 할 말을 잃는다.

파노라마로 찍은 사진들에서 그가 진정으로 담고 싶었다던 제주의 바람을 느낀다. 그렇구나, 정말, 이게 바람이구나.

 

관광지로만 돌았던 제주를 결국 다시 가 보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렀지만

언젠가 꼭 다시 가 볼 곳. 다시 가게 된다면 물론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반드시 들를 터.

사이판의 바다도, 발리의 바다도 제주의 바다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다시 제주에 간다면 김영갑을 떠올리며 바람과 구름과 오름을 새로이 보게 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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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필립 빌랭 지음, 이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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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독자에서 애인이 된 남자의 질투심.

33살 더 많은 여자를 향한 끝없는 갈망과 소유욕과 질투와 성숙하지 못한 자아가 얼룩진 글이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허구는 거의 없는 이야기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에 푹 빠져 있다가 그녀에게 애정을 고백해 버린 필립 빌랭은 자신이 매혹된 이야기 <단순한 열정> 때문에 혼란스럽고 아프기만 한 사랑을 한다. 매순간 질투이고 매순간 이별이면서 또한 집착이던 시간들을 글로 봉인해 버림으로써 필립 빌랭은 아니 에르노를 영원토록 자신의 여인으로 만들어버렸다. 86쪽의 고백처럼 그는 자신이 그녀의 애인이었음을, 이후에도 영원히 그럴것임을 선언해 버린 꼴이다.

 

'완전무결한 외설'이라는 일부 평에도 불구하고, 외설적인 묘사는 거의 없으며, 고통스러운 5년의 감정고백이 대부분이다. <단순한 열정>을 그대로 베꼈다는 평은 그래서였을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함에 있어 (혹은 그 반대의 경우라할지라도) 그녀에게 전 애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것을 이미 알고 시작하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것인지 보여준다. 실제로 그녀가 애인을 잊었거나 아니거나, 순간순간 그녀의 행동에서 전 애인의 그림자를 보는것은 고통 그 자체일터.  소유욕만 가지고 있을 때의 화려함과 설렘은 소유하는 순간 빛바래고 만다는 진실과는 별개로, 그 그림자로 인해 소유도 소유가 아닌것이 되므로.  아무리 그녀가 이전의 남자는 모두 잊었다고, 모든 신호는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부인한다해도. 그리하여 질투는 더욱 타오르고, 온전히 나만이 것으로 만드려는 소유욕은 더욱 강해진다.

 

필립 빌랭은 이후로 2권의 소설을 더 썼다고 하나, 이 작품만큼의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나보다. 역시 에니 아르노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고, <포옹>의 센세이션은 아마도 유명 여작가와의 스캔들을 그대로 폭로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한 열정>과 나란히 읽어도 필립 빌랭의 그 열정이 어디서 연유하는지는 추측키 어렵다. 그저 스무살의 청년이, 여전히 미숙한 자아와 평탄치 못한 가족관계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엉뚱한 곳에서 열정으로 뿜어냈다는 혐의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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