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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대체 어떤 여자들이 그런 게임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 권태로운 여자들? 사치스러운 여자들? 아니면 타락한 여자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간략하게 말했다.
"나빠지고 싶어하는 여자들." -88쪽
누군가는 이 책을 두고 'TV부부 클리닉'과 같은 이야기 아니냐고 했다. 남편이 외도를 하고, 그로 인한 상처과 충격으로 부유하듯 살던 여자가, 유부남을 만나 통정하는 이야기. '바람에는 맞바람이 복수'인 것도 아니고, 시장통에 발에 채이든 흔하고 그저 그런 이야기.
98년에 이 이야기가 동아일보에 연재 되고, 꽤 열심히 찾아 읽었을 때엔, 단순하게 운명적인 사랑 혹은 마음과 육체에 관한 (어느 쪽이 먼저일까 따위의) 문제에 주목했었다. 그땐 이야기의 제목의 <구름 모자 벗기 게임>이었고, 이 후 단행본으로 묶여져 나왔을 땐 너무 식상한(혹은 도발적인) 제목에 실망했더래서 대충 읽어냈었다. 소설이 영화 <밀애>로 만들어졌을 때도, 그다지 흥미롭지 못했다. 연재당시의 그 흥미로움이 가셔버렸고, 소설을 읽은 채 영화를 보는 것은 늘 실망을 안기기 때문이다.
문득 이 책을 다시 보고 싶어졌던 것은 이유가 없다. (어쩜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건지도 모른다). 그 때에도 이런 감정으로 책을 읽었을까? 그 때에도 미흔의 상처받은 영혼에 안쓰러워했을까?
사랑은 하나밖에 없을거라고, 남편만을 사랑하고 사랑받고 살 거라고 장담하던 인생이 무너져내린 그녀의 상실감이 안쓰러웠다. '안간힘으로 거부하고 있는 당신의 상처를. 거부한 나머지 상처 그 자체가 되어버린 당신을.'이라는 문장에 눈물이 난다. 미흔은 '괜찮아요?'라고 물어본 규에게 빠져들었다고 고백한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한다.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아이에게 '아프지 않니?'라고 묻는 순간 울어버리게 되는 그 기분. 희망도 없고, 꿈도 없으며, 오로지 책임과 의무로만 구성되는 가정,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숨이 막히는지 이해한다. 남아있는 날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들. 막막한 심정.
섬세한 문장들에 자주 막혀 읽기를 중단하곤 했다. 여성의 입장에서 묘사하는 성애는 매우 환상적이다. 하지만 내가 접어 놓은 책장들은 대체로 막막한 삶에 관한 묘사이구나.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100퍼센트 신뢰할 수 없는 것은.
미흔이 아름답고 어두운 분위기와 더불어 규를 홀릴 육체를 갖지 않았다면? (마치 물고기처럼 작은 이빨이 박힌 흡반 같아(149쪽).....이런 여자라니!)
사랑은 마음이 먼저일까 육체가 먼저일까?
미흔이 아들 수를 버릴만큼 생을 포기하고 싶었던걸까?
그리고, 리얼월드에서는 결코 '괜찮아요?'라는 말로 상처를 알아보는 일은 없을거라는것.
이런 의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