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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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소설.

그러나 철학서, 그리고 심리학서.

 

사랑에 빠지는 순간, 누군가와 사랑하는 시간들, 그리고 그 사랑이 변하는 모습,

어쨋거나 어느 한쪽이 먼저 끝내버린 사랑의 모습.

이후 남겨진 사람의 배신감, 자기거부, 고통의 시간들.

그리고 치유와 또다른 사랑.

 

이 모든 순간들에 관한 섬세한 심리묘사가 매력적인 책이다. 주관적이면서도 심각하게 객관적인 묘사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것이 가능한가? 유치하고 찬란한 사랑의 감정 안에서 이처럼 철학적인 고찰이 가능한걸까? 정말 매력적인 책이다. 이보다 더 정밀하고, 정확한 사랑의 묘사가 있을까?

 

당신이 이별에 아파하고 있다면 강추.

당신이 사랑을 꿈꾸고 있다면 역시 강추.

사랑하고 있다면, 감정에 상관없이 연인을 시험하고, 괴롭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므로 역시 강추.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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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시옷 - 만화가들이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손문상.오영진.유승하.이애림.장차현실.정훈이.최규석.홍윤표 지음 / 창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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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이시옷'에는 이 책이 낯설고 어색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줄 '시옷'이 되고, 그 '시옷'(ㅅ)이 사람(人)에 대한 진정어린 생각, 즉 인권의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이게 이 책의 소개다. 하지만 읽고 나면, 과연 어떤 희망이 있는지 의심스러워진다. '차별없다'라는게 과연 가능한건지, 실제로 차별이란게 어떤건지 인지하면서 사는건지 말이다.

 

<십시일반>과 같은 이야기. 해를 거듭해 같은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 내는것처럼, 여전히 우리 주변은 그다지 '인간적'이지 못한건 아닌가.

 

책의 처음에 소개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는 그렇잖아도 싱숭생숭한 마음에 대못을 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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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습관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2년 1월
품절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섹스는, 처음으로 내 취향의 진실을 알게 된 섹스였어요. 나보다 체구가 작은 남자였는데...그전까지 난 섹스는 나보다 큰 남자하고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거든요...왠지는 모르지만...나보다 작은 남자와 섹스를 하면서 처음으로 남자의 몸이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느꼈어요. 내 속의 욕망이 정말로 소란거리기 시작했어요. 구석구석 살펴보고 키스하고 만지고 깨물고 핥고 장난치고 느낄 수 있었어요. 남자의 몸이 전혀 나를 억누르지 않았죠. 그 섹스 이후에야 난 알게 되었어요. 전엔 내가 늘 75퍼센트쯤 강간당하는 섹스를 했었다는 걸요." - 작가의 말 중-작가의말쪽

삶의 적은 삶이고, 무엇보다 현실성이라는 독이다. 하지만 삶이 허용한 것은 독으로 범벅된 현실의 수위 내에서이다. 넘어갈 수 없는 넘어가버려서는 안 되는 저마다의 긴장된 수위...

남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미홍은 안다. 그들은 현실성의 독을 닦고 싶은 거다. 파리 잡기 같은 끈끈한 권태와 불감증과 절망적인 무료함과 생의 공백을 소독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극복할 수 없는 삶에 대한 일탈을 시도하는 것이다. 자신의 현실성에 맞먹는 비현실적인 사건을 도모하는 것. 낯선 여자와 색다른 섹스를 하는 것.
-85쪽

가현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사 노동이 밴, 아무렇지도 않은 손등과 조금식 휜 손가락과 영양이 불균형해 보이는 짤막한 손톱, 딱딱한 손바닥.

'여자가 여자가 아니면, 그럼 뭐죠?'

'그냥 사람인 거죠.'

미장원 여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군요. 냉소적인 남자들이 말하는 식이군요.'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 여자와 남자와 아줌마.
-127-128쪽

그리움과 고통, 흥분과 공포가 차례차례 자리를 바꾸었다. 어차피 섹스란 인교에게 논리적이지 않은 행위이다. 실재와 환상의 결합, 실재가 환상에 복무하고 환상이 실재에 복무하는. 그러나 환상이 실재가 되는 순간 육체는 게임 오버를 맞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정신의 와해... 나는 왜 이리도 위험한 유희의 궤적에 빠졌을까? -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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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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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떤 여자들이 그런 게임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 권태로운 여자들? 사치스러운 여자들? 아니면 타락한 여자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간략하게 말했다.

"나빠지고 싶어하는 여자들." -88쪽

 

누군가는 이 책을 두고 'TV부부 클리닉'과 같은 이야기 아니냐고 했다. 남편이 외도를 하고, 그로 인한 상처과 충격으로 부유하듯 살던 여자가, 유부남을 만나 통정하는 이야기. '바람에는 맞바람이 복수'인 것도 아니고, 시장통에 발에 채이든 흔하고 그저 그런 이야기.

 

98년에 이 이야기가 동아일보에 연재 되고, 꽤 열심히 찾아 읽었을 때엔, 단순하게 운명적인 사랑 혹은 마음과 육체에 관한 (어느 쪽이 먼저일까 따위의) 문제에 주목했었다. 그땐 이야기의 제목의 <구름 모자 벗기 게임>이었고, 이 후 단행본으로 묶여져 나왔을 땐 너무 식상한(혹은 도발적인) 제목에 실망했더래서 대충 읽어냈었다. 소설이 영화 <밀애>로 만들어졌을 때도, 그다지 흥미롭지 못했다. 연재당시의 그 흥미로움이 가셔버렸고, 소설을 읽은 채 영화를 보는 것은 늘 실망을 안기기 때문이다.

 

문득 이 책을 다시 보고 싶어졌던 것은 이유가 없다. (어쩜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건지도 모른다). 그 때에도 이런 감정으로 책을 읽었을까? 그 때에도 미흔의 상처받은 영혼에 안쓰러워했을까?

 

사랑은 하나밖에 없을거라고, 남편만을 사랑하고 사랑받고 살 거라고 장담하던 인생이 무너져내린 그녀의 상실감이 안쓰러웠다. '안간힘으로 거부하고 있는 당신의 상처를. 거부한 나머지 상처 그 자체가 되어버린 당신을.'이라는 문장에 눈물이 난다. 미흔은 '괜찮아요?'라고 물어본 규에게 빠져들었다고 고백한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한다.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아이에게 '아프지 않니?'라고 묻는 순간 울어버리게 되는 그 기분. 희망도 없고, 꿈도 없으며, 오로지 책임과 의무로만 구성되는 가정,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숨이 막히는지 이해한다. 남아있는 날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들. 막막한 심정.

 

 

섬세한 문장들에 자주 막혀 읽기를 중단하곤 했다. 여성의 입장에서 묘사하는 성애는 매우 환상적이다. 하지만 내가 접어 놓은 책장들은 대체로 막막한 삶에 관한 묘사이구나.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100퍼센트 신뢰할 수 없는 것은.

미흔이 아름답고 어두운 분위기와 더불어 규를 홀릴 육체를 갖지 않았다면? (마치 물고기처럼 작은 이빨이 박힌 흡반 같아(149쪽).....이런 여자라니!)

사랑은 마음이 먼저일까 육체가 먼저일까?

미흔이 아들 수를 버릴만큼 생을 포기하고 싶었던걸까?

그리고, 리얼월드에서는 결코 '괜찮아요?'라는 말로 상처를 알아보는 일은 없을거라는것.

이런 의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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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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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사랑을 나누었는지 헤아려 보았다. 사랑을 할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우리의 관계에 보태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동시에 쾌락의 행위와 몸짓이 더해지는 만큼 확실히 우리는 서로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욕망이라는 자산을 서서히 탕진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강렬함 속에서 얻어진 것은 시간의 질서 속에 사라져갔다. -17쪽

 

(그러므로 자기가 겪은 일을 글로 쓰는 사람을 노출증 환자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노출증이란 같은 시간대에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병적인 욕망일 뿐이니까.) -39쪽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73쪽

 

 

몇 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다.

 

그녀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코멘트했다. '나같이 미친년의 심리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책이야'

거칠게 말했지만, 그것은 핵심을 찌르는 소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여자의 심리를 참으로 꼼꼼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초조함. 모든 생활과 신경이 한 사람으로 향하는 단순함. 게다가 연하의 유부남과의 열정이라니 오죽하겠는가.

 

사고처럼 찾아와 불같이 타오르며 동시에 사그라드는 열정, 사랑. 시작한 것은 무엇이나 끝이 있는 법. 그 차가운 뒷모습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사랑하지 못하리. 그 차갑고 씁쓸한 마지막 모습까지도 사랑의 과정이고 모습이니.

 

아니 에르노를 사랑한 필립 빌랭의 <포옹>을 찾아 읽어야겠다.

(33세 연상녀와의 5년 열애. 그리고 세상을 향애 자신과 아니를 드러내 보이고자 했던 그 욕망을 알고 싶다. 무엇이 사람을 그리도 열정적으로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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