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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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도시의 방과 방 사이, 집과 집 사이는 다닥다닥 붙어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타인과의 물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불편하다며 늘 투덜거리곤 한다. 타인과 가까이 있어 더 외로운 느낌을 아느냐고 강변한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언제나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들어줄 나만의 사람, 여기 내가 있음을 알아봐주고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불러줄 사람을 갈구한다. 사랑은 종종 그렇게 시작된다. 그가 내 곁에 온 순간 새로운 고독이 시작되는 그 지독한 아이러니도 모르고서 말이다.-180쪽

 스무 살엔, 서른 살이 넘으면 모든 게 명확하고 분명해질 줄 알았었다. 그러나 그 반대다. 오히려 ‘인생이란 이런 거지’라고 확고하게 단정해왔던 부분들이 맥없이 흔들리는 느낌에 곤혹스레 맞닥뜨리곤 한다. 내부의 흔들림을 필사적으로 감추기 위하여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일부러 더 고집 센 척하고 더 큰 목소리로 우겨대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말들은 잘한다. 각자의 등에 저마다 무거운 소금가마니 하나씩을 낑낑거리며 짊어지고 걸어가는 주제에 말이다. 우리는 왜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판단하고 냉정하게 충고하면서, 자기 인생의 문제 앞에서는 갈피를 못 잡고 헤매기만 하는 걸까. 객관적 거리 조정이 불가능한 건 스스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차마 두렵기 때문인가.-227쪽

 ".....정말 나를 걱정한 거였어요? 걱정하고 있다는 그 느낌이 싫었던 게 아니고?"

맥이 탁 풀렸다. 사랑이 저무는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235쪽

  

그녀가 가진 고민이 그리 깊어 보이지 않아서  뚝딱 읽어버리게 된 책.

물론 사랑에 목숨 걸게 되는 것이 또한 인간이라서, 애정고민이 생의 고민 전부가 되어 버릴 수 있다는것도 인정한다. 그러니 애정고민이라고 깊은 고민이 아니란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 오은수는 사랑에 목숨을 걸지도 않았다. 평범하고 지루한 삼십대 미혼 직장여성.

그렇다고 일에서 똑 부러지는 성과를 거둔것도 아니고, 하루하루가 힘들게 지나는 회사 직무.

그녀 앞의 남자들- 이 사람은 이래서 흠이고, 저 사람은 저래서 싫고, 그 사람은 그래서 걸리고. 그러니까 입맛에 딱 들어맞는 남자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거다. 착하고, 잘 생기고, 돈도 많고,능력있고, 나만 사랑하는 남자가 어디있니.

힘들고 지치는 회사에서는 기회주의자인 상사에게,때론 당돌한 후배에게도 치이고 배신당하는 일상. 세상에는 또 입맛에 딱 맞는 상사도, 후배도 참으로 드문 것이다.

 이러저러한 오은수의 결함에도 이 책이 재미있었던 것은, 지금 이 시간의 직장 여성들이 모습이 참 정직하고 솔직하고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서였다. 메신저의 대화명을 심리상태에 따라 바꿔댄다. 사랑에 냉소적인척, 쿨한척 해도 어쩔 수 없이 그 놈의 사랑때문에 가슴에 상처를 만든다. 문자메시지를 시의적절하게 쓸 줄 안다. 얼마간 지갑이 쪼들릴 것을 알면서도, 몇 개월의 할부를 감수하면서라도 백화점에서 보드라운 블라우스를 산다. 친구의 좋은 소식이 그저 좋은 소식으로만 다가오지 않고 어느새 조바심을 만들게 된다. 오은수와 그녀의 친구들을 보니 꽤나 익숙하고 정겹다.

 그녀(들)의 고민이 거대하고 철학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사는게 어디 거대한 고민만으로 만들어지는것이더냐. 섹스 앤 더 시티의 서울 버전쯤 되려나. 그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대단한 직업에, 화려한 옷차림과 대단한 남성편력은 없지만, 그래서 더욱더 서울스러운 이야기.

  

아니, 어쩌자고 태오를 놓치고 그러냐. 어리고 착한 남자는 아무때나 오는게 아니지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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