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매혹당할 확률 104% - 집 나간 '탄산 고양이'가 그린 뉴욕 스케치
전지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사실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두툼한 트래킹 슈즈를 신은채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여행하는것을 상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텐트에서 자 본 적이 없진 않지만, 그 안에서 마냥 행복하기엔 너무 편안하게 살았던 모양이다. 편안하게 살았던 것이 아니고, 여행에 대한 꿈이 없는건 아니냐고? 쳇, 어찌 아셨는가? 난 어릴적부터 엄청나게 끔찍한 멀미에 시달렸었다. 차를 타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친척집에 놀러가는것도 미션 임파서블이었던 내게 여행은 언감생심. 그나마 멀미를 좀 덜 하게 되니 아무데서나 신나게 잘 만한 시절도 지나버렸더라. 그러니까 딱 도시내기인데다 끔찍한 멀미와 저주받은 체력은 내게 배낭여행은 상상 너머의 그 무엇이었던게다. 게다가 잠자리도 점점 편한것만 찾게되는 이 나태함...(어릴적 내 세상은 혼자 몰래 기어들어가 책을 읽거나 그림을 끄적이던 다락방.)

 

 

이 책은 사실 여행에 관한 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얕고 단편적인 이야기들이다. 열흘 동안 뉴욕에 머물었던 이야기가 104개의 에피소드로 토막나 있는데다가 한 페이지를 넘지 않는다. 왼편에 글이, 맞은편엔 지은이의 일러스트가 화려하게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단편적이고 글도 없으며 결코 여행에 관한 책이라고 말하기엔 쑥스러운 책이 이 책 뿐이겠는가. 하지만 후한 점수를 주었던 오기사의 <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 같은 책의 그림은 여백이 많은 가는 펜선이라 좋아했다. 조병준의 <길에서 만나다>나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같은 책들도 여행에 관한 얘기라기보다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만 줄창 써 놓은 책이지만 사람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서 좋았다. 이 책은 그 중 어느쪽도 아니다. 여행이나 사람에 대한 애정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그림체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매력적이다.

 

그녀의 솔직함, 나이 많은 도시 (노)처녀로서의 솔직함 때문이다.

 

이왕이면 예쁘게 차려 입고 뉴욕을 거닐겠다며 10Cm 웨지힐을 신고 세 시간 동안 맨해튼을 걷고나선,  신과의 싸움이었다고 말한다.(세상에!)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가이드북이란 각 도시의 '꽃미남', '꽃미녀' 분포도와 그들의 출몰 예상 지역 그리고 서식지가 표시된 안내 지도'(74쪽)라고 말하는 그녀. '수제 민속품이나 지방색이 독특한 장식품'은 필요없으며 '뉴욕에서는 역시 디자이너 브랜드를 사야'(175쪽) 한다고 흥분한다. '자고로 여행의 묘미란 낯선 곳에서 느끼는 설렘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인생의 의미.......가 아니라, 각 도시의 얼굴 마담 앞에서 V자를 그리고 선 사진을 보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97쪽)라고 당당히 말하는 여행서를 본 적이 없어서일까. 약간 허영심도 보이고, 서른넘은 싱글로 사는것에 가끔 초조함을 표현하고, 자신이 도시를 좋아하는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녀가 사랑스럽다.

 

탄산고양이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고, 때론 무모하고, 도시를 사랑하며, 몸으로 세상을 살고 있다.

책상에서 세상을 사는 나보다는  53289배쯤은 더 사랑스럽다.

다락방에서 이불 뒤집어 쓰고서 동화책을 보고, 그걸 스케치북에 베끼고 살던 아이는

여전히 자신만의 동굴에서 책 밖의 세상으로 선뜻 나가지 못하고 있다.

(난 여전히 멀미를 하거든.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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