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라시보 > 그날 뷔페에서 무슨일이 있었나.
어제저녁. 먹성 끝내주는 K모양과 나는 함께 저녁을 먹기로 약속을 했다. 우리는 연말 분위기를 내느라 생전 찾지 않던 뷔페를 가기로 했다. 우리가 생각한 가격은 최소 1인당 12,000원 에서 최대 17,000원 이었다. 관건은 저 가격만큼 우리가 음식을 먹어 치울 수 있냐는 것이었다. 보통 음식점에서는 먹은만큼 계산을 하기 때문에 굳이 일부러 많이 먹을 필요가 없지만 뷔페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녀와 나는 굳건하게 결의를 다지고 모 뷔페 향했다.
K모양 : 음. 20층이라. 일단 전망은 끝내주겠군
나 : 전망 따위는 많이 먹는데 전혀 도움이 안된다.
K모양 : 이왕이면 다홍치마라 했다. 근데 우리가 얼마나 먹어야 본전을 뽑는거냐?
나 : 넌 고기도 먹을 수 있으니까 LA갈비와 참치회 장어를 공략해라. 나는 오로지 회초밥으로 승부를 걸어 볼란다.
K모양 : 요즘 회초밥 하나에 얼마지?
나 : 홈플러스에선 개당 500원 정도 한다.
K모양 : 그럼 보자. 만 칠천원이라 치고 나누기 오백 하면 오삼 십오..오사 이십..응 서른 네개를 먹어야 딱 본전이구나. 좀 많은데?
나 : 아직도 날 모르냐? 그정도는 우습다.
K모양 : 우리 연말 기념으로 밥먹는데 분위기가 너무 비장한거 아니냐?
나 : 짜식아. 먹고 사는게 원래 그렇게 비정한(비장을 잘못 알아들음) 법이다.
20층에 도착해서 친구의 말대로 전망을 보게 창가로 자리를 잡고(창을 볼 시간이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각자 접시를 들고 순회를 시작했다.
친구 : 야, 뷔페 접시는 왜 이렇게 코딱지 만한거냐? 새끼들 많이 담을까봐 작은 접시 쓰기는.. 이왕이면 쟁반만한거 하나씩 떡 떡 가져다 놓음 좀 조아? 지들도 설겆이 하기 골때릴텐데
나 : 니가 하난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접시가 작으면 어떻게 되겠니
친구 : 또 담으러 가고 또 담으러 가고 그래야지
나 : 바로 그거지. 그래야 먹은게 약간의 산책과 함께 소화가 되지. 쌓아놓고 앉아서 처먹기만 처먹어 봐라 많이 못먹지
다들 뷔페를 가면 갖가지 자기만의 많이 먹기 노하우가 있다. 누구는 처음에는 부드러운 스프와 죽 그리고 샐러드 등으로 위를 슬슬 깨워야 한다는 이들도 있고 처음부터 짠것을 먹으면 안되니까 소스가 필요없는 음식부터 공략을 해야한다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공짜라고 해서 음료나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행위는 자살 행위라는 이들도 있고 튀김음식은 가장 마지막에 먹으라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다 무시하고 내가 먹을 수 있는(뷔페에는 생각보다 내가 못 먹는 것들이 많다.)것을 각각 한개씩만 접시에 담아왔다. 나의 간택을 기다리는듯 수줍은 자태로 흰 접시에 누워있는 그들을 천천히 음미해준다. 그런 다음 두번째 부터 내가 집중적으로 공략해야할, 즉 내 입에 맛는 음식이 무엇인가를 선택한다. 생굴, 홍합구이, 게살크림구이 등은 생각보다 맛이 별로였으므로 두번째 부터는 거들떠 보지도 않기로 했다. 초밥은 개당 계산이 가능하므로 본전 뽑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이므로 꾸준하게 먹어야 한다. 친구와 나는 서로 얼굴도 안 처다보고 말도 없이 계속 음식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보통때 같으면 속도를 맞춰 먹으면서 같이 음식을 덜기 위해 나갔겠지만 우리는 상대방과 상관없이 본인의 접시가 비면 즉시 음식을 향해 달려갔다. 그래서 함께 식사를 하긴 하지만 같이 앉아 먹은건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산처럼 쌓인 그것들을 해치울때 친구는 손만두앞을 기웃거렸으며 그 친구가 갈비를 뜯을때 나는 회초밥을 더느라 정신이 없었다.
K모양 : 어 에너미 등장
나 : 잡꺼들 가족동반 모임이구나
K모양 : 야, 초밥 순식간에 초토화 되겠다.
나 : 모르는 소리. 지금 저 말라가는 회초밥을 저것들이 다 먹어 치우면 나는 새로운 신선한 초밥을 드실 수 있어
K모양 : 역시 (엄지손가락 치켜 올리며 감탄함)
나 : 입다물고 어서 먹어 여기 9시면 문닫아. 이제 한시간 남았다.
친구와 나는 본식사는 거의 끝났다고 생각하고 술판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장어구이와 치즈스틱, 새우튀김등을 안주삼아 맥주 두잔씩을 비우고 디저트 단계로 넘어가서 생크림 케잌과 버터롤, 각종 과일 그리고 복숭아 펀치를 마셨다.
K모양 : 야. 이제 더 처먹다가는 올릴지도 모르겠다.
나 : 저거 우동이냐?
K모양 : 나 지금 심장 바로 아래까지 음식이 꽉 찬것같아
나 : 벨트 풀어봐
K모양 : 두칸 내렸는데?
나 : 바지 안에 넣은 옷을 다 밖으로 빼봐 한결 편해
K모양 : (시킨대로 하며) 휴~
나 : 자 이제 왠만큼 먹었으니 나가.. 너 스파게티 그거 남기는거냐? 일루 가져와봐
K모양 : 어, 저기 아이스크림 있다.
나 : 나갈때 퍼가지고 나가자
다행스럽게도 계산은 우리가 생각했던 최대보다는 약하고 최소보단 조금 더 쓰는 3만원이 나왔다. 1인당 1만5천원. 나는 우리가 충분히 그만큼 먹었다고 자부한다. 회초밥만 해도 스무개는 넘게 먹어치웠으니까. 마지막으로 나가면서 애새끼들을 밀치고 아이스크림 주걱을 뺏어내서 친구와 나는 각각 딸기 메론 바닐라 순으로 쌓았다.(옆에 있는 애새끼들은 3단 아이스크림을 경의로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배가 너무 불러서 도저히 배를 꺼트리지 않을수가 없어서 우리는 마트에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한가지 웃긴것은 마트 갈때 마다 시식코너에서 환장하던 우리들은 한입만 먹어보라는 언니들의 손짓을 거만하게 뿌리쳤으며 음식장을 보는데는 시큰둥해서(사실 음식은 보기만 해도 영~) 생필품을 사는데 치중했었다. 배를 꺼트린다는 명목하에 온 마트를 이잡듯 뒤졌더니 나중에는 다리도 아팠다. 음식코너를 지나가면서 내가 피자 한조각 더 처먹으면 2만원 줄께 하는 소리에 내 친구는 미친년 하고 대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