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라시보 > 한밤중의 소음

저녁도 일찍 먹고 샤워도 마쳤으며 TV에 별로 볼것이 없는 날이면 나는 침대 머리맡의 스탠드를 켜고 책을 편다.  사무실에서도 책을 보고 쇼파에 앉아서도 보지만 누가 뭐라 해도 침대에 드러누워 책을 보는 것 만큼 안락하면서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는 없다.  방은 따뜻하며 가습기에서는 적당한 습기가 나오고 몸에서는 아직 다 빠져나가지 못한 향기로운 비누 냄새가 폴폴나는 이 완벽한 순간. 불현듯 내 신경을 건드리는 소리가 있다.

삐그덕 삐그덕 삐그덕 삐그덕 삐그덕 삐그덕 삐그덕 삐그덕 삐그덕 삐그덕 삐그덕 삐그덕 삐그덕 삐그덕

윗층에서 들리는 소리다. 대략 시간은 11시와 새벽 1시 사이. 매일 들리는 소리는 아니지만 사나흘에 한번씩은 꼭 들린다. 어쩌면 더 자주 들렸는데도 내가 TV를 보고 있었다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쩝쩝거리며 먹느라고 못 들었을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3-4일을 주기로 한번씩 듣는다.  처음에는 뭐야뭐야 하면서 집중을 해 보려고 하지만 당최 집중이 안된다.  어느날 문득 자려고 누웠을때 시계 초침소리가 거슬린다 하고 느끼기 시작하면 그 소리가 열배쯤은 더 신경 쓰이듯 저 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한번 듣고 나면 무시할 길은 없다.

소리를 자세히 들어본다. 그러면 한참의 삐그덕 다음에는 1분 미만의 공백 그리고 다시 삐그덕. 그담에 역시 공백 더욱 새찬 삐드덕-공백-약한 삐그득-공백-매우 강한 삐그덕으로 이어진다. 불행하게도 나는 순진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파가 아니므로 저게 무슨 소린지 대강 짐작은 간다.  한밤중에 쿵쾅거리며 발소리를 내는 것 까지는 참아줄 수 있으나 저 소리는 정말이지 너무나 거슬린다. 당장 겨 올라가서 소리라도 꽥 질러주고 싶지만, 무지하게 뻔뻔한 나도 그 정도의 용기는 없다.

저 소리를 듣고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며 나도 함께 행복하면 말도 안하겠지만 나는 평온하게 책을 보고 싶은 사람이다. 그도저도 아니면 불을 끄고 잠을 자거나. 이미 밝혔듯 저 소리를 발견하는 날에는 TV에 별로 볼 것이 없다. 아무것도 보고싶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TV를 보는것을 혐오하는 나로서는 저 소리를 감추기 위해 TV를 소리 드높여 보고픈 생각은 눈꼽 만큼도 없다.

윗층에 사는 인간들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지만 이놈의 원룸과 투룸이 섞인 건물은 당최 위아랫층은 고사하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도통 알 수가 없다. 반상회 같은것도 없으며 (왜 없을까 고민했지만 물어 볼 곳이 없음) 아파트 처럼 재활용 쓰레기 당번도 없으며 이사를 했다고 해서 떡같은걸 돌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누가 사는지 누가 이사를 갔는지 혹은 이사를 왔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음악을 크게 틀거나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소음도 참을 수 없음이겠지만 저 소음은 정말이지 묘하게 사람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그들이 작업을 끝내고 숨을 몰아 쉴때쯤 나도 조그맣게 한숨을 쉰다.  '잡꺼뜰 이제야 끝냈군'

뭐 남의 사생활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는건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침대 만큼은 제발이지 튼튼하고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걸 사라고 권하고 싶다.  내 귀에도 저 소음이 들릴 정도면 그들도 분명 침대에 문제가 있다는걸 알겠지만 무아지경에 빠져 들리지 않는지 아니면 들려도 신경 쓰이지 않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제 한번만 더 삐그덕 거리면 저들이 아무리 중대사를 치르고 있다 하더라도 당당히 쫒아 올라가서 문을 쾅쾅쾅(초인종을 누르면 무시당할게 뻔하다.) 두들기며 한마디 하리라

 "침대를 새로 사던가 아님 안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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