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라시보 > 게으른 몸
나에게는 친구처럼 지내는 후배가 있다. 후배라고는 하지만 고등학교 후배이고 (대학 후배이기도 하다.)한 학년 차이라서 별로 느끼지도 못하지만 어찌 되었건 그녀는 나에게 언니라고 부르며 오랫동안 따랐다.
후배 : 요즘은 웰빙족이 유행이란다 언니
나 : 엉. 그렇다고 하더라
후배 : 우리도 요가 배울까?
나 : 요가?
후배 : 그래 요가. 그거 하면 회춘한데 언니
나 : 나이도 어린년이 회춘은 무슨
후배 : 그래도 요가복 하나씩 사서 배워보자. 어디 나가서 배우는게 쪽팔리면 요즘 요가 비디오도 많던데 그거라도 틀어보고 배우자
나 : 너 다리 찢을줄 알어?
후배 : 아니. 언니는?
나 : 아가리를 찢었으면 찢었지. 난 다리는 못 찢는다.
후배 : 휴... 요가 기본이 다리 찢는건데.
나 : 그거 몸 유연해야 하는거 아냐? 우리처럼 마른 북어 같은 것들은 그거 하다 괜히 어디 부러지지 싶다. 그냥 살자.
예전에 수업중에 연기론이 있었었다. 그 수업을 하면서 육체적으로도 유연한 배우가 되기 위해 스트레이칭도 하고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 있었는데 다들 다리 찢기를 할때 나만 구석에서 손으로 발끝잡기를 하고 있었었다. 교수님이 졸업하기 전에 손으로 발 끝 잡으면 A를 준다고 했지만 나는 결국 오늘까지도 내 발끝을 내 손으로 잡아 본 적이 없다. 다들 왜 그게 안되냐고 하면 다리가 길다고 하거나 상체가 놀랍도록 짧아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나는 진실을 알고 있다. 내 몸은 정상이나 그 유연성에 있어서 만큼은 정말 골때리는 수준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몸을 사용하는 일에는 지나치게 인색하다. 쇼파에 잠깐 앉았다가 침대로 몸을 날려 뒹구르르 하는 것 까지는 참을 만 하지만 계단을 오르 내린다거나 운동이랍시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정말로 싫어한다. 엄마는 젊은년이 그렇게 몸을 안움직여서야 어쩌냐며 걱정을 하지만 나는 싫은걸 억지로 하는 것 보다 그냥 게으른 지금이 좋다.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안좋다지만 나는 밥먹고 바로 눕기를 누구보다 즐긴다. 그리고 그로 인해 탈이 난적이 한번도 없다. 늘 부지런하게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참 경의롭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저럴수가 있을까? 새벽마다 조깅을 하고 비나 눈이 오면 러닝머신 위에서라도 달려야 하는 사람들. 일주일에 서너번은 헬스장에서 무거운걸 들며 이며 몸을 만들고 재즈 댄스나 라틴 댄스를 배우러 다니는 사람들. 참으로 대단하다 싶다. 그렇지만 부럽거나 그렇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나는 그냥 게으르게 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