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선 - 나의 섹슈얼리티 기록
홍승희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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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브 세즈윅은 성적인, 성적이지 않은 남성 간의 유대를 호모소셜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동성’을 의미하는 homo와 ‘사회적인’ 이라는 뜻의 social을 합친 개념이다. 단어로만 보면 동성 간의 사회관계이지만, 개념상으로는 ‘남성 간의 유대’를 의미한다. 즉 호모 소셜은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 문화에서 성원으로 인정되는 그들끼리의 인정과 유대를 뜻한다. 이 유대관계에 포함되려면 "넌 남자로 인정한다."라는 남자의 인정이 필요하다. 남성 연대에 인정받기 위해서는 동성인 남자를 욕망하지 않고 여성을 욕망할 것이 조건이 된다. 여성을 자기 밑에 두고 욕망의 대상으로 밀어내야 남성 연대는 유지된다.

109-110
페미니즘을 만나면서 글 쓰는 방식도 변했다. 예전처럼 선험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들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를 메시아적 위치에 과도한 진정성은 폭력의 경중을 따지며 구체적인 타인의 자리를 상상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저항에서 남는 건, 사업의 수완과 쿨한 예능감뿐이다. ‘섹시한 진보!’ 그런 식의 저항이 많은 깃발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구체적인 일상과 삶을 움직이진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누군가를 대변할 유능한 영웅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삶을 직접 말할 수 있는 환경과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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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있는 그들은 강압적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은근하다. 거부하면 "왜 내가 이렇게 부드럽게 말했는데 정색을 해?"라는 표정을 지으며 상대를 분위기 파악 못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성적 접근에 불쾌함을 표현하면 "어린애도 아니고 다 큰 성인들끼리 이럴 수도 있는 거지"라며 상대가 자신의 섹스어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쿨하지 않고 딱딱하고 미숙한 인간인 듯 취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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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만남이 가능할까. 여러 마주침을 겪으면서 이성을 만날 경우 적어도 마음을 열 만한 사람인가에 대한 리트머스지가 생겼다.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한 편견이 있는가. 가부장제의 부조리를 인지하고 있는가. 엄마에 대한 무거운 죄책감이나 숭배 감정이 있는가. 상대방이 하는 말에 진심으로 (입을 다물고) 경청하고 공감할 줄 아는가. 대화의 맥락을 잘 파악하는가. 자신이 폭력을 저지를 수 있다는 걸 자각하는가. 폭력을 저질렀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성찰하고 반성할 수 있는가. (앎과 삶의 일치를 위한) 공부를 부지런히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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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관계와 삶을 해명하길 요구하는 무수한 사람들을 마주치면서 느낀다. 사랑은 수많은 관습의 폭격으로부터 지금 우리 서사를 지켜내는 저항이라는 걸. 지켜내는 걸 넘어 계속 확장해가는 정치적 행위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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