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학계에서 이루어낸다 성과를 교과서에 담으면 된다. 그러나 현시점은 대안을 제시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대안을 제시한다 해도 도덕과에서 그것을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도덕과가 국가주의적 이념에서 벗어나겠다고 여러 차례 주장하였지만 여전히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6쪽
제7차 도덕과 교육과정에 의거해 도덕 교과서를 집필했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정도서 편찬위원회는 도덕과가 국가주의적 관점과 무관하다고 강변하였지만 연구한 결과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국가주의적 관점은 개인, 가족, 이웃, 사회, 국가는 물론 동서양 윤리 사상에 이르기까지 교과서가 강조하는 모든 윤리의 저류에 흐르고 있었다. -22쪽
분석한 결과 (도덕) 교과서는 적어도 네 가지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첫 번째는 개인보다는 타인, 민족, 국가를 위한 삶을 강요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전통 도덕으로 현대 사회의 도덕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물질적인 가치보다 정신적인 가치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들은 모두 학식이 많거나 사회적으로 출세한 사람들은 보다 ‘도덕적’이라는 네 번째 관점으로 연결된다. 이 네 가지 관점들을 검토해보면 도덕 교과서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도덕 교과서 자체가 ‘병’인 것이다. -27쪽
도덕 교과서가 여전히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가장 큰 원인은 개인의 삶보다 타인, 특히 민족과 국가를 위한 희생적인 삶을 강요하는 데에 있다. -28쪽
태극기와 국기에 대한 맹세는 도덕과 외의 다른 교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왜 도덕 교과서에 태극기와 국기에 대한 맹세가 실렸는지는 알 수 없다. (중략) 교과서에 실린 국기에 대한 맹세는 첫째, 개인의 권리에 대한 언급 없이 국가와 개인의 관계와 의미를 국가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둘째,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해야 하는 대상으로 민족을 상정한 것이 타당한가 하는 점에서 문제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29쪽
실제로 교과서는 해방 이후 국가가 국민에게 공권력이라는 명분으로 자행한 폭력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국가를 절대적인 존재로 보면 개인이 국가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국가에 일방적으로 예속될 수밖에 없다. 교과서는 국민으로서의 도리와 의무만을 강조할 뿐이다.-35쪽
(도덕 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36쪽
교과서는 개인이 타인이나 사회에 대해 행할 수 있는 악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이 말하면서도 사회 또는 국가가 개인에게 가할 수 있는 악에 저항해야 할 의무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39쪽
(단군 신화와 관련하여) 어떤 사상이나 이념을 근본 내지 본질로 승화시키려면 사실과는 다르게 거기에 온갖 선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을 덧붙일 수밖에 없게 된다. -74쪽
유,불,도 사상을 중심으로 전통 윤리를 설명하는 교과서의 내용은 크게 달라져야 한다. 근대 이후 유,불,도 사상의 영향력은 급격하게 약화되었으며, 현재 우리 생활 양식과 가치관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77쪽
교과서에는 계승해야 할 전통적인 가치는 있지만 탈피해야 할 요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79쪽
교과서는 계승 발전시켜야 할 긍정적 요소에 대한 설명도 충실하게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단지 전통 윤리는 좋다고 강요할 뿐이다. 때문에 교과서에서 제시한 전통 윤리가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덕목과 규범적 내용들을 현대적 의미에서 재해석하고 적용하려는 자세를 갖도록 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84쪽
"윤리와 사상"은 개인주의가 모든 사람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품성을 갖고 있다는 것과 개인적 권리의 불가침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근대 서구의 평등사상이 가능하였다고 그 가치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곧이어 오늘날 개인주의는 물질문명 속에서 인간을 소아로 만들면서 위기를 맞게 되었으며, 자기를 상실한 현대인이 그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소아의 굴레에서 벗어나 대아를 지향하는 동양의 공동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기술하였다는 점에서 "전통 윤리"와 큰 차이는 없다. -89쪽
대다수 전국 초중등학교 도덕 교사들이 도덕과 교육에서 한국인으로서의 특수 윤리보다는 세계 시민으로서의 보편 윤리를 강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123-124쪽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한다는 의미에서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도덕 형태를 추구하는 것은 대재난"(푸코) -211쪽
유교의 전통에서는 ‘위민’ 혹은 ‘민본’을 끊임없이 강조하였다. 위민 혹은 민본과 민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민은 정치의 주체인 반면 위민정치에서는 민은 정치의 객체에 불과하다. 위민정치는 민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배층의 도덕성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위민정치에서 도덕성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권력층의 비리를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비교적 잘 갖추어진 현대 사회에서도 부정부패는 계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216쪽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한다는 의미에서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도덕 형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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