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과 김용옥 - 하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1년 9월
장바구니담기


"보편주의는 하나의 인식론임과 동시에 하나의 신앙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은 진리라는, 포착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실존한다고 일컬어지는 현상에 대한 존경만이 아니라 숭배까지를 요구한다. 대학들은 그런 이데올로기의 제조공장이자 그런 신앙의 신전이 되어왔다. 하버드대학은 그 문장에 진리(veritas)라는 말을 새겨놓고 있다. ...... 문화적 이상으로서의 진리는 하나의 아편으로서, 그것도 어쩌면 근대세계에서 유일하게 심각한 아편으로서 기능해왔다."
이매뉴얼 워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창작과 비평사, 1993), 85-86 -15쪽

"한국 사회, 특히 지식계엔 '긴장'이 필요하다. 지금 그게 너무 없어서 탈이다. 이름을 얻으면 얻는 만큼 언제든지 씹힐 수 밖에 없다는 걸 각오해야한다. 그건 매우 공평한 게임이다. 유명 지식인들이 씹히지 않게끔 몸조심하고 계속 공부도 열심히 하는 가운데 나라가 잘 된다."-70쪽

"어떻게 해서든 자기 메시지 전파를 위해 대중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대중매체 중독증'을 갖는건 당연한게 아닐까? 텔레비젼과 김용옥은 상호 공생관계였지 김용옥이 무리를 저질러가며 무슨 치열한 롤비를 한건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진짜 문제삼아야 할 '대중매체 중독증'은 좌파, 진보적 지식인들이 '조선일보'를 상종하는게 아닐까?"-83쪽

"번역이란 정보의 대중화, 민중화, 즉 민주화를 뜻한다. 내가 알고 있는 민주화란 '누구든지 같이 참여한다'는 것이다. 칸트의 번역은 우리말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칸트철학에 같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같이 참여할 수 있게 한다는 그러한 전제가 없는 번역은 참다운 번역이 되지 못한다. 칸트의 저작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칸트에 대하여 강의한다는 것은 칸트를 독점한 자가 그러한 능력이 없는 자들에게 칸트를 강요하는 일방적 부과에 불과하다. 이것이 바로 해방 후 오늘날까지 우리 학계를 지배해 온 '주입식 교육'이라는 것의 정체다! 정보가 민주화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 정보를 독점한 자만이 특권을 누리게 된다. ... 중략 ... 논쟁에 있어서도 그들의 발언은 절대적 권위를 지닐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토론이 부재하여 상호간에 자극, 발전이 없게 되고, 따라서 그러한 학계는 정체되고 마는 것이다."-85쪽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고전이 아닙니다. 모든 고전은 몽땅 다시 해석되어질 수 있으며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성경이건 똥경이건 모든 고전에 고전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모든 정치권력에 맹목적으로 복속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러한 고전 이해는 '왕정시대'에 살았던 인간들의 멘탈리티에나 적합한 것인데 오늘 '민주시대'를 구가하는 인간들도 고전 이해에 있어서는 그러한 멘탈리티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위선이며 괴리감이며 불철저성입니다."(김용옥, <절차탁마대기만성 : 도올문집> 3-4쪽)-88쪽

"지식인이 민중을 저항으로 유도할 경우에는 반드시 결과에 대한 책임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김동춘)-92쪽

"김용옥은 원래부터 편협하고 보수적인 학계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학계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학계가 그에게 제공할 수 있는 건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101쪽

"그러나 적어도 현재 상태에서 말한다면 지금 내가 우리 지식사회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은 정직하게 느낀대로 표현해내야 하겠다는 결심입니다. 분노를 너무 성숙시키고 절제하여 애쓰다 보면 잘못된 것에 대한 본질적인 파악력을 놓쳐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분노를 표출하고 그 대가로 자신을 고독 속으로 밀어넣음으로써 역사 앞에 철저한 단독자로서 설 수 있다는 사실은 창조적 사상가로서의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용옥, 김현 <김용옥의 '저술세계' : 철학에서 연극, 영화, 동화론까지> '조선일보' 1989년 6월 27일, 9면.-107쪽

"나는 욕을 하나의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건전하게 수용해야 할 하나의 문화 양식인 것이지요.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가 말한 것처럼 언어는 권력의 한 체계입니다. 즉 욕설을 저속한 것으로 규정하는 계층의 사람들은 그 권력 체계에서 득을 보고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지요. 그 사람들이야말로 사실은 욕설보다 더욱 저급한 차원에 있는 권력의 노예일 수가 있습니다. 나는 이 욕설의 사회화를 통해 우리의 기존 언어관에 혼란을 일으키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역사를 보편 한 시대가 혁명을 겪기 위해서는 먼저 새로운 언어 체계가 나오게 돼 있습니다. 이런점에서 나의 책에 나오는 욕설은 매우 중요한 선례를 남기게 될 것으로 봅니다."
(김용옥, 김현 <김용옥의 '저술세계' : 철학에서 연극, 영화, 동화론까지> '조선일보' 1989년 6월 27일, 9면.-107쪽

"소위 논문이라는 형식 자체가 근대 서구 대학교육에서 성립한 모종의 특수 형식을 지칭하는 것이지 철학논문 일반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가 없음은 명백하다. 좀 더 자세히 그 일치된 관념을 분석해 보면 그것이 너무도 막연하고 근거 없는 허구임이 드러난다. 그들의 관념은 이런 것이다. 일인칭을 쓰지 않는 서술문으로 감정의 표현이 없이 메마르게 쓸 것, 엄숙하고 고상한 말들만 골라 나열할 것, 철학사의 기존 개념의 조합속에서만 맴돌 것, 그리고 설명없는(저자, 책명 등만 나열하는) 주석을 붙일 것 등등이다. ...중략... '논문'이란 '자기의 주장을 펴서 시비적부를 가리는 글'이며 여기에 어떠한 일정한 양식이 주문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 주장을 펴기 위해서, 또 자기 나름대로 체계를 의식하면서, 동원될 수 있는 모든 양식이 자유롭게 동원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용옥, 최영애 <도올 논문집>(통나무, 1991), 92-94)-127쪽

"나는 '공정한' '잣대'를 가지고 한국 진보적 지식인의 '치정주의'를 비판하는 강준만이 '살랑살랑 꼬리를 치는' 정도를 넘어 아예 노태우, 김우중 똥구멍을 핥으려 했던 김용옥 '똥' 강아지를 종자있는 강아지 족보에 올려놓고 '대국적으로 밀어 주자'고 말한 걸 읽은 기억이 난다" (진중권)-135쪽

"저는 지식인의 저널리즘 행위 또는 대중매체 이용 행태와 그 내용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래서 철학자도 건드리고 국문학자도 건드리고 경제학자도 건드리고 정치학자도 건드리고 소설가도 건드려 왔습니다. 제가 아무리 그 분야에 대해 문외한일망정 그들이 대중매체를 통해 일반 대중을 상대로 생산해내는 현실 참여적 글과 말에 대해서는 평가할 자격과 능력이 저에게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저의 그런 믿음이 타당하며 그런 믿음에 근거한 저의 시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159쪽

"내 경험으로 말하자면 분노는 결코 맹목이 아니다. 그것도 판단하고 선택하고 용납하고 거부한다. 그러니 분노하지 않는 법을 배울 게 아니라 제대로 분노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왕주, <쾌락의 옹호>(문학과 지성사, 2001), 43쪽)-177쪽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게 돼 있지만 또 반드시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권력은 무조건 악이라고 공격하면 최악의 권력만 살아남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나는 '열린 권력'이라는 개념을 주장하고 싶다. 스스로 비판하고 비판을 환영함으로써 권력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권력을 지향하자는 것이다. 달리 말씀드리자면, 권력의 부작용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유형의 권력은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자는 것이다. 권력은 무조건 악이라는 주장은 최악의 권력에 봉사하는 어리석은 자해행위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184쪽

"'지식폭력'을 살펴보자. 대학을 나오지 못했거나 서울대를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서울대에 아무리 많은 문제가 있어도 서울대 비판을 꺼려한다. 누군가가 글이나 말에 유명한 서양 사상가 이름을 들먹이면서 이야기를 하면 그 사상가가 누구냐고 묻기가 어렵다. 그리고 그 사람 주장에 뭔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소설 한 편을 읽어도 뭔가 남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지식으로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그런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게 다 '헤게모니'가 성립된 '지식폭력' 현상인 것이다."-204쪽

"삶과 앎이 따로 노는 사회에서는 삶과 유리된 앎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기득권 강화를 위해 삶과 관련된 지식을 폄하하기 마련이며, 바로 그런 풍토 속에서 '지식폭력'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214쪽

"학력자격이 보증하는 '교양'은 지배자 측의 정의에서 '완벽한 인간'의 기본적 구성요소의 하나이고, 그 결과 교양 없음은 그 사람의 정체성과 인간으로서의 위엄을 훼손하는 본질적인 결함으로 인식되는데, 모든 공식적 상황, 즉 자신의 신체와 매너, 언어와 함께 다른 이들 앞에 설 때, 그 사람은 침묵을 강요당하게 된다."
(피에르 부르디외, <구별짓기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下>(새물결, 1996), 642-643)-232쪽

"관찰된 대상에 따라 관찰 지점을 변하게 할 수 있고 각각의 관점을 연속적으로, 그리고 분리해서 취할 수 있는 그들의 성향과 적응력 때문에 그들은 좌익과 우익에게 다른 쪽이 취하는, 또는 취해야 할 이미지를 돌려보내면서 좌우익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중립주의를 취한다. 그들은 이러한 객관성의 외양을 논쟁적으로 사용하는데 탁월하다"
(피에르 부르디외, <예술의 규칙 : 문학 장의 기원과 구조>(동문선, 1999), 367)-236쪽

"사회주의자라고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오로지 민족주의만을 연구해야 하고, 잡문은 입장이 들어가므로 학술 논문만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문 사회의 정서는 정신병적 상황이다. 분단과 군사독재는 우리를 이러한 정신병적인 상황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한번도 전복적인 자유주의나 개인주의가 나타난 적이 없다. 그러한 전복적인 개인주의자라면 이러한 우상과 위선의 덩어리를 그냥 두었을 리 없다. 따라서 나는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을 의심한다. 나의 일은 정치가 아니며 나는 정치를 모른다는 사람들을 더욱 의심한다. 그래서 인간의 논리, 혹은 문화의 이름으로 '정치'를 떠난다는 것은 그것보다 더 위험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많다."
(김동춘, <탈정치의 시대에 '정치'를 생각한다>, '현대사상' 제 4호(1997년 겨울), 263-264쪽)-239쪽

"현재 한국 사회의 주요 갈등 구도는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최소한의 '상식-반 상식' 문제라는 게 나의 소신인 것이다."-253쪽

"일부 좌파, 진보적 지식인이 저지르는 '지식폭력'은 크게 보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도덕적 우월감'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지식폭력'과 또 다른 하나는 실천은 전혀 없이 '허공에만 대고 떠드는 거대 담론'을 주무기로 한 '지식폭력'이다."-25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