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부와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받아들여 정부에서 성매매를 근절하겠다고 나섰다. 그래서 내세운 것이 성매매 특별법인데, 시행된지 며칠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갖가지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또 평생가도 못 볼, 성매매 여성들이 대낮에 단체로 나와서 광화문에서 시위를 하는 모습까지 보게되었는데 과연 이 법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고, 제대로 시행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오로지 경제, 경제만을 외치는 어떤 이는 이 법이 한국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준다고 한다. 성매매로 인한 지하경제가 엄청난 규모인데 이것이 모두 밖으로 드러나 투명해지고 성매매가 근절된다면 지하경제로 인해 이득을 봤던 우리경제가 더욱 위축된다는 것이다.

 또 한나라당의 어떤 남성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성매매가 근절 될 수 있다고 보느냐, 10대후반에서 30대초반 남자들이 성욕을 풀데가 없지 않느냐, 어디가서 성욕을 해소하라는 말인가, 라고 말이다.

 자칭 성매매 여성이라는 분은 한겨레21과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제도가 만들어진 취지는 좋고, 여성단체가 성매매 여성을 위해서 애쓰는 것도 알지만 당장 이들은 무엇을 먹고 살라는 말인가. 옛날이면 모르지만 지금은 포주들이 강압적으로 하지도 않고 여성에게 자율적으로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광화문에서 시위하는 여성들 중 대부분은 포주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생계를 위해 나선 것이다, 라고 말이다.

 이 제도를 가운데 놓고 참 다양한 의견이 속출하고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이들의 말이 모두 옳아 보인다.

 나는 성매매 특별법의 취지에는 찬성하는 편이지만, 너무 성급하게 실시된 나머지 성매매에 종사했던 직업여성들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어버렸다고 본다. 이들에게 재취업교육이라고 해봐야 꽃꽂이 정도 가르쳐주면서 그렇다고 그것으로 취업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공짜로 가르쳐주기만 하는 정도다. 이런 식으로는 그 많은 여성들을 보호할 수가 없다. 오히려 불법적인 성매매, 좀더 은밀한 성매매를 활성화 시킬 뿐이다. 흔히 사창가라고 말하는 영등포, 미아리, 용산, 청량리, 장안동, 용주골 등의 특정지역이 아닌 좀더 광범위하고 우리네 일상생활에 깃든 성매매가 이뤄지기 쉽상이라는 것이다. 대책없는 제도를 성급히 시행한 나머지 오히려 성매매의 지역이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성매매는 여성을 성적 도구화 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아야한다. 인간도 동물이라는 점에서 본능이 있고, 본능에 따르자면 남성은 수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씨를 퍼뜨리고자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인간은 본능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이성을 가지고 있다.

  과거 철학사에서는 소크라테스, 플라톤에서부터 시작해 데카르트, 칸트, 헤겔을 거쳐 현존하는 철학자 하버마스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모두 이성을 중심으로 사고를 해왔고, 이성의 관점에서 사회문제를 바라보았다. 그에 맞서 미셸푸코, 베르그송, 레비스트로스 등은 이성만 아닌 몸의 철학 혹은 감성의 철학 등을 내놓기 시작했다. 현대의 철학이 이성이 아닌 것이 중심을 이룬다고 해서 또 전체적인 문화적 풍토가 이성을 소홀히 한다고 해서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뒤바뀌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성만을 중시했던 사고를 좀더 넓혀 다른 것도 있다는 식으로 사고를 해야지, 이성을 버리는 것은 잘못이다.

 인간은 이성을 지닌 존재이기에 다른 동물과 다르고, 동물세계에는 없는 도덕과 윤리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정치인들을 비판할 때 흔히 도덕적,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기도 하는데, 비단 그것은 정치인을 비롯한 공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정치인이 단란주점에 가고, 성매매를 하는 것은 비판받아야 하면서 일반 시민은 여기서 벗어나려 한다면 이는 남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나에게는 너무나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모든 기준과 잣대는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신학대 교수가 성매매를 했다고 해서 법원에서 죄를 물은 일이 있었다. 이는 그가 신학을 하는 교수라는 점에서 더욱 높은 도덕성을 갖춰야함을 요구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기준이 일반시민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기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성욕도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이다. 하지만 밥을 먹고 싶다고 밥을 먹듯이, 섹스하고 싶다고 아무나 붙잡고 섹스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성매매는 물론 아무나 붙잡고 하는 강간과는 다르다. 욕구를 가진 자와 이를 상대하는 자와의 일종의 계약관계가 성립해야 가능한 것이지만, 그 상대가 금전적 보상을 받고 도구화됨으로써 주체성을 잃어버리는데 문제가 있다. 내가 돈 받고 하겠다는데 왜 상관이냐?, 당신과는 상관이 없지 않느냐?, 는 식의 반론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있어 잘못된 행위를 눈감고 그냥 각자 살아가라는 이야기밖에는 되지 않는다. 어찌보면 이는 폭력일 수도 있다. 내가 하겠다는데,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상관해서 못하게 하느냐, 내가 가지고 있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 아니냐,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는 곧 돈을 받고 성관계를 하는 자가 자신이 도구화된다는 것을 스스로 허락해버린다는 점에서, 그리고 또 이것이 지극히 그 사람 개인에게만 해당된다는 점에서, 개인의 자유와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성이 충돌을 일으킨다.

 사회는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기엔 나는 너무나 자유주의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  성매매가 아닌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개인을 중시하는 사고를 하면서, 오로지 성매매에서만 개인보다 사회를 중시하는 발언을 하자니 내 스스로의 딜레마에 빠져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 하자면,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도구화됨을 스스로 용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나의 주체성을 포기버린다면 그 자는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더불어 마지막으로, 정부는 미완의 대책을 통해 서둘러 성매매를 근절하려 하지 말고 단계적으로 해당 여성들이 스스로 수렁에서 나와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어야 할 것이다. 물론 자기주체성을 깨닫는 것은 그들 개인의 문제이지만, 의식적 차원이 아닌 현실적, 경제적 차원에서 그들을 구제할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야할 것이다. 그냥 불도저식으로 무자비하게 근절하려한다면 성매매는 근절되는 것이 아니라 범위를 넓혀 음성적으로 확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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