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일지>

1999년 겨울 공군에 지원 입대했다. 하지만 군에 대한 반감이 있었던 나는 결국 돌아왔다.

2001년 가을, 12월 입대를 앞두고 몇달간의 심각한 고민을 했다. 나의 반전평화주의를 통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겠노라 결심하고, 주위 친구, 선배와 부모님께 '통보'하다. 나의 결심도 힘들었지만 주위 사람들이 이를 곱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내게는 더욱 힘들었다. 결국 현실의 힘에 부딪혀 입대했다.

2001년 겨울-2004년 겨울, 훈련소 입소부터 시작해 제대하기 전까지 군대의 부당행위와 부조리 등에 대해 화장실 낙서판, 투고함, 설문지 작성, 대대장에게 이메일 보내기 등의 방식으로 나의 비판적 의견을 공개함. 익명인지라 나임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다들 나라는 것은 알고 있음. 하지만 대놓고 내게 '지랄'하지는 못했음. 그럴경우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자기들도 알고 있기에... 단 한번, 중대장이 나를 불러 "이거 니가 썼지?"라고 물어본 적만 있음.

2004년 겨울, 제대함.

이상이 나의 군에 대한 대략적인 서사적 기술이다. 난 위의 군에 대한 내 행위들이 그다지 평범함의 범주를 확연히 벗어난 일이기에 사석에서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내가 위에 기술한 나의 행동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 자리는 토론장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때로는 귀찮고, 짜증나고, 열받는다. 매번 했던 얘기 또 해야되기에 귀찮고, 상대방이 내 말을 알아듣지를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기에 짜증나고, 상대방은 반공주의와 민족주의, 애국주의에 표방해 군사논리만을 내세우기에 인간의 근본적인 양심과 인권의 문제를 논하는 나를 열받게 한다. 그럼에도 나는 글로나마 이렇게라도 말해야겠다.

2004년 5월 21일, 남부지법 형사 6단독 이정렬 판사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군 입대를 거부해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정아무개씨 등 3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바로 이러한 판결을 보고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 본 영화 '데어데블'에서 밴 애플렉은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곤하는데, 위의 판결은 가히 개인이 세상을 바꿀 만한 사건이었다. 그는 선거때도 진보정당을 찍지 않았고, 스스로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하고 있으며, 게다가 군대는 지원하여 특전사를 나왔고, 여전히 베레모를 자신의 사무실에 두고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 판결은 더욱 의미있다. 그다지 진보적이지 않은 판사조차도-일단 판사라는 직책은 이미 그 국가의 법에 충실해야하기 때문에 진보적이 될 수가 없다. 법이란 원래가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옳다고 판결한 마당에 이땅의 손놓고 있는 진보주의자들에게 이는 일종의 회초리로 작용함과 동시에 한국의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점으로 새롭게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찬성한다. 내가 군대에 반감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느낀 생득적인 나의 반골기질에서 비롯된 자유주의적인 기질 때문이었고,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신체검사통지서를 받던 시기를 기점으로, 나의 동아리 후배가 22사단 동해안 바닷가에서 시체로 발견된 때, 나에게 입영통지서가 날아든 때를 거쳐간다. 넓게는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비인권적인 만행들이 군대에서 비롯됨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것이 곧바로 반전평화주의로, 양심적 병역거부로 연결되었다.

대한민국의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군대' 문제에 대해 이야기만 나오면 모두가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정신에 입각해 군사주의적 논리를 펼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군대 문제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 모두가 군사주의적 시각으로만 바라볼 뿐, 그 자리에 평화와 인권과 자유와 사상과 양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일단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 남성들의 경우에는 보상심리가 존재한다. 나는 군대에서 빡시게 고생했는데 씨바 다른 어떤 놈들은 양심이니 종교니하는 이유로 이를 거부한댄다. 아 열받네. 뭐 이런 식이 되는 거다. 그러니 그들도 군대를 가는 것이 당연하고, 안가겠다면 감독에 가라는 논리다.

또 한편으로는 북학의 침투도발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쟤들에게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면 다른 애들도 따라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정작 군대가는 놈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럼 당연히 북한이 쳐들어올 수 밖에 없지 않느냐? 는 논리다. 실존하지 않는 위협을 마치 당장이라도 일어날 듯이 포장하고 있다. 만일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국토를 수호하고 있는 군대가 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해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주장하는 이들을 감독에 가두는 것은 모순이다.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고 주장한다면 이 또한 민주주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리도 있지만 소수존중의 원리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이들을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실시하면 된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면 이들을 심사위원회를 거쳐 걸러내면 될 것이고, 위증을 한 자에게는 법정 최고형을 때리면 된다. 또한 대체복무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데 이건 차후의 문제다. 당면한 과제는 이들의 양심을 인정할 것이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단 이 문제가 해결되고 난 뒤에야 심사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하고, 대체복무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하면 된다. 제도가 계획되어 있지도 않다고 해서 양심을 저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한기총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반대입장은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비종교적이다. 이들은 기독교인들이 여호와의 증인으로 종교를 변경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자신들의 교인들이 빠져나갈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쓸데없는 기우다. 이 땅에서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위치는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의 말에 따라 남북전쟁 이후의 '빨갱이'보다도 못하기 때문이다. 빨갱이로 대표되는 비전향 장기수들에 관한한 1990년대에 한국의 인권운동의 핵심과제이기라도 했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일제시대 때부터 존해해왔지만 이제야 주목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한 한홍구 교수의 말에 따라 할아버지는 일제의 감옥에 갔고, 아버지는 군사독재의 감옥에 갔고, 이제 그 아들은 민주화된 감옥에 가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일제시기의 병역거부자는 독립운동자이었지만, 지금은 병역기피자로 전락해버린 것도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한기총에게는 이런 말을 되새겨보라고 전하고 싶다. 근대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그의 저서 <<관용론>>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으나, 당신의 말할 권리를 위해서는 함께 싸우겠다" 한기총은 여호와의 증인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이들의 인권이 짓밟히는 현실을 위해서는 싸워야하는 것이 마땅하다. 기독교가 표방하는 이념이 이것이었던가? "나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이웃의 불행을 아랑곳하지 말라" 한기총의 현재 주장으로써는 이런 결론밖에는 도출되지 않는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자신의 존재함을 인식하기 위해 더이상 의심할 수 없는 최초의 것으로부터 사유를 시작한 결과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에 있어서도 지금까지의 판결과 선례만으로 고집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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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5-08-09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들러님께서 추천은 이곳에 가서 하시라네요.^^ 첨이에요. 반갑습니다.

얼룩말 2005-08-13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가슴아파요. 하고 싶어도 주위의 시선 때문에 못한... 참 슬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