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윤리학
홍성우 지음 / 북코리아 / 2005년 10월
장바구니담기


고전 공리주의자에 속하는 시즈위크는 도덕적 가치가 옳음의 개념과 좋음의 개념이라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형식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로부터 그는 서양 윤리학을 역사적으로 구분함에 있어, 그리스 윤리학은 좋음의 우선성을 중심으로, 근대 윤리학은 옳음의 우선성을 채택하여 전개한 것으로 간주한다. -5쪽

계몽주의적 계보에 그 연원을 두고 있는, 특히 의무론적인 자유주의 윤리학은 옳음 및 정의의 우선성을 근거로 하는 개인의 권리, 자유, 자기 선택, 자기결정 그리고 개별적 정체성(나) 등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운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적 또는 낭만주의적 전통을 그 원류로 하는 공동체주의 윤리학은 좋음 및 공동선의 우월성을 기초로 하는 공생, 공익 등의 공동체적 가치와 궁극목적에 기여하는 여러 가지 공동체적 덕목, 그리고 유대감 및 집단적 정체성(우리)을 전제로 하는 공동체의 유지와 강화 등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 -6쪽

롤즈는, reasinable이라는 말을 ‘분별력 있는’, 또는 ‘이성에 귀 기우릴 준비가 되어 있는’ 이라는 넓은 의미로 이해하고, rational이라는 말은 ‘효과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이익을 증진하는’이라는 좁은 의미로 사용한다. 이로부터 the rational은 ‘합리성’으로, the reasonable은 ‘합당성’으로 번역해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28쪽

만일 다른 사람이 그에게 신뢰할 수 없는 또는 공정하지 않은 정의의 절차를 적용하려고 시도한다면, 자기방어를 위하여 저항할 수 있다. 이 원리를 적용함에 한 개인은 모든 양심적인 숙고 후에 그가 공정하지 못하거나 신뢰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 그런 제도에 저항할 것이다. 한 개인은 자신의 보호대행업소에 자신의 권리를 자신을 위하여 행사하도록 권한을 위임하여 신빙성과 공정성이 알려지지 않은 어떤 절차와 부과에 저항하게 하고, 실제로 공정하지 않거나 신뢰할 수 없는 어떤 절차에 저항하게 할 수 있다. (노직의 입장)-75쪽

최소국가 내에는 중앙분배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자산을 관리하는 자격을 지닌 개인이나, 이 자산이 어떻게 분배될 것인가를 합동으로 결정하는 집단도 존재하지 않는다. 각 개인이 획득하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과 교환하여 또는 선물로서 그 다른 사람으로부터 획득하며,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다양한 사람이 서로 다른 자원을 관리하며, 새로운 소유물은 자발적인 교환과 개인의 행위로부터 발생할 뿐이다. 따라서 몫의 분배행위 또는 분배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이유에서 노직은 ‘분배’란 용어 대신에 보다 중립적인 용어인 ‘개인의 소유물’이라는 용어를 선택한다. (노직의 입장)-86쪽

우리는 필요에 의해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요구를 할 경우가 있다. 노직은 이러한 요구도 또한 칸트적 명법을 어기는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필요에 의해 남을 돕는 것은 도덕적인 까닭에 아무도 도움을 주어야 할 권리를 주장할 수 없으며, 사람은 그의 재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정의의 이름 아래서 도와야 할 요구를 실행할 수 없다. 실제로 그렇게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복지수단으로서 그들을 취급하게 되어 재산소유주의 권리를 침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직의 입장)-108쪽

칸트의 세 가지 정언명법
1. 보편법칙의 정식 : 너의 준칙이 보편법칙이 되도록 네가 동시에 의욕할 수 있는 그러한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
2. 목적 자체의 정식 : 너는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결코 단순히 수단으로서 대우하지 말고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서 대우하는 그런 방식으로 행위하라.
3. 목적의 왕국의 정식 : 자신의 준칙에 의해 마치 자신이 항상 보편적인 목적의 왕국의 입법적인 성원인 것처럼 행위하라. -130쪽

"누구이든 간에 천부적으로 보다 유리한 처지에 있는 자는 아주 불리한 처지에 있는 자의 여건을 향상시켜 준다는 조건하에서만 그의 행운에 의해 이익을 볼 수 있다. 천부적으로 혜택받은 자는 그가 재능을 더 많이 타고났다는 바로 그 이유만으로는 이득을 볼 수 없으며 훈련과 교육비를 감당해야 하고 불운한 자도 도울 수 있도록 그의 자질을 사용해야 한다. 아무도 자신의 보다 큰 천부적 능력이나 장점을 사회에서 보다 유리한 출발지점으로 이용할 자격은 없다. … 공정으로서의 정의관에서 사람은 서로의 운명을 함께 하는 데 합의한다. (롤스)-286쪽

롤즈의 자유주의적 자아가 지니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샌들은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즉 ‘나’가 아닌 ‘보다 폭넓은 소유의 주체’로서의 ‘우리’, 다시 말해, 현실적인 공동의 삶을 형성할 수 있는 확장적인 자아-이해로부터 우리의 논의가 시작되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하여 공동선에 의해 통치되는 일종의 정치공동체로서의 구성적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296쪽

(중략) 그러나 롤즈의 자아관을 비판한 샌들은 롤즈의 본의를 의도적으로 곡해한 측면이 없지 않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겠다. 롤즈가 원초적 입장에 추상적 자아를 전제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때의 추상적 자아는 원초적 입장에서 공정한 정의의 원칙을 구성하기 위하여 전제한 ‘이상적 자아’를 의미할 뿐이지, 샌들이 규정한 바와 같은 근본적으로 현실로부터 유리된 존재론적인 무연고적 자아는 아니다. 다시 말해 샌들은 의도적으로 롤즈의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존재론적 개인주의로 애써 환원하고 있는 것이다. -296쪽

롤즈에 따르면, 목적론은 좋음을 옳음과는 독립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옳음은 그 좋음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규정하며, 의무론은 목적론과는 대조적으로 옳음과 독립적으로 좋음을 규정하지도 않고, 옳음을 좋음의 극대화로서 해석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양자의 차이점을 보다 극명하게 표현하면 목적론은 ‘옳음에 대한 좋음의 우선성’을, 의무론은 ‘좋음에 대한 옳음의 우선성’을 강조한다고 할 수 있다. 롤즈는 목적론의 한 전형으로서 공리주의를, 의무론의 한 전형으로서는 칸트의 윤리학을 제시한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롤즈는 공리주의에 칸트주의적 역습을 감행한다. (계속)-397-398쪽

(이어서) 그런데 공리주의를 이해하는 관점에서 롤즈와 테일러는 심각한 견해 차이를 보인다. 롤즈는 앞의 좋음과 옳음 간의 잘못된 관계설정에 초점을 맞추고 공리주의를 비판한다. 그러나 테일러는 칸트주의자나 공리주의자 양측이 절차적인 실천적 추론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서 양자가 ‘좋음에 대한 옳음의 우선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테일러의 이러한 입장은 이른바 공리주의의 표어인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촉진하는 것을 일종의 도덕적 책무로 간주하는 그의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397-398쪽

롤즈에 대한 테일러의 비판
" ‘좋음’이 결과주의적 이론의 기본적인 목표를 의미하는 경우에, 옳음이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단순히 좋음의 도구적인 의미로 결정되는 경우에, 우리는 실로 옳음이 좋음에 기본적인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논의의 의미에서 ‘좋음’을 사용하는 경우에, 질적 구분에 의해 고차적인 것으로서 판가름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경우이든, 우리는 그 반대로 어떤 의미에서 좋음이 항상 옳음에 기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보다 앞선 논의의 의미에서 보다 기본적인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좋음이 그 명확한 표현으로 옳음을 정의하는 규칙의 요점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테일러)-399-400쪽

황경식은 자유주의에 대한 공동체주의적 정당화 논변의 일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즉, 자유주의가 가장 중시하는 결사, 표현, 종교의 자유에 대한 제 권리를 역사적으로 볼 때 국민국가에서 공동체를 파괴하거나 지배하려는 다양한 시도에 대해 공동체를 지키려는 강력한 보루로서 역할을 해 온 것이 아닌가? 그러한 권리는 현존하는 공동체를 외부로부터의 간섭에서 보호함으로써, 또한 개인이 마음에 맞는 타인과 새로운 공동체를 창출할 자유를 줌으로써 공동체라는 본질적인 인간적 가치를 향유하는 데 기여해 왔다. -410쪽

이진우는 공동체주의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논지를 전개하면서, 공동체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적 정당화 논변으로 이해함직한 견해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즉, 공동체주의가 자유주의를 희생시키면서까지 공동체의 연대를 복원하고자 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다. 평등한 자유와 권리는 여전히 가치다원주의의 조건에서 공동체의 정의를 판단할 수 있는 일반적 원리이며 규범적 척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주의의 관심은 공동체와 자유주의의 기초적 가치를 결합시킬 수 있는 제도에 집중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공동체주의가 지향하는 덕성과 가치는 자유주의적 기본 가치를 대체하기보다는 보완한다.-41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