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폭력이다 - 평화와 비폭력에 관한 성찰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조윤정 옮김 / 달팽이 / 2008년 7월
장바구니담기


국가는 집중되고 조직된 형태의 폭력을 대변한다. (마하트마 간디)-5쪽

정신적 영향력은 사람의 바람을 변화시키는데, 이에 따라 그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요구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인다. 결국 정신적 영향력에 순응하는 사람은 자신의 바람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권력은, 일반적으로 이 단어가 의미하는 바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바람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권력 기관에 복종하는 사람은 자신의 바람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강요된 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원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고 원치 않는 행동을 하게 만들기 위해 육체적 폭력을 이용하거나 육체적 폭력으로 위협한다. 자유를 박탈하거나 상해 혹은 구타를 가하거나 아니면 이런 식으로 처벌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과거나 현재나 이것이 바로 권력의 실체다. -28쪽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민족으로부터 국가를 방어할 필요성 때문에 군대가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노예화되고 억압받는 국민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35쪽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축적된 거대한 부가 모두가 아닌 배타적인 특정한 개인들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면, 세금을 거두어들이고 이 돈을 원하는 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력이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 부여된다면, 노동 계급의 파업이 금지되고 자본가들의 연합이 장려된다면,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들이 따라야 할 법률의 입안권이, 인간의 생명과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력이 주어진다면,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 아이들의 세속적, 종교적 교육 방법을 선택할 자격이 주어진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원해서가 아니며 어떤 자연 법칙의 결과도 아니고 정부와 통치 계급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이를 원하고 물리적 폭력과 물리적 억압으로 그 같은 제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35-36쪽

사람들은 정부가 개개인간의 갈등으로 일어나는 잔인한 행위로부터 사람들을 구제하고 그들에게 국가적 삶이라는 불가침의 질서를 보장해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정부는 사람들을 똑같은 투쟁의 필요성에 종속시켰다. 단지 개인적 투쟁을 다른 나라의 국민들과 벌이는 전쟁으로 바꾸어놓았을 뿐이다. 따라서 국가에게나 개인에게나 똑같이 파멸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38쪽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듣곤 했다. 국가권력에 복종하지 않으면, 사악한 사람이나 내부 또는 외부의 적에게 공격당할 위험에 처하여, 목숨을 걸고 그들과 싸워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런 곤경에서 구제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그것이 오히려 이익이다. 이런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한때 그 얘기를 사실로 믿었다. 국가에 허용해야 할 양보는 사소한 희생에 불과한 듯했고, 그 대신 안전한 공동체 안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리라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공동체를 위해 일정 부분의 이익을 포기했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 이런 희생이 10배로 증가하고 약속된 이득은 아무것도 실현되지 않자,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국가에 대한 복종은 완전히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중략) 가장 큰 해악은 군대에 복무해야 하는 모든 시민들이 이로써 국가 조직의 지지자가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부당하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들은 이제부터는 국가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 동조자로 간주된다. -39쪽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가의 지시를 거부하지 않고 따른다면, 그것은 그들이 두 가지 경우의 득과 실을 차분히 따져보아서가 아니라 언제나 그랬듯이 그들이 최면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복종은 사람들에게 이성적 사고나 어떤 의지의 행사 없이 특정한 지시에 따르기를 요구한다. 이를 거부하려면 독립적인 사고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복종과 불복종의 윤리적 중요성을 배제하고 각각의 경우에 어떤 점이 좋고 나쁜지 살펴보면, 국가의 지시에 복종하는 것보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언제나 이롭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다. -44쪽

애국심은 자기 국민만을 사랑하는 감정이며, 자기 마음의 평정, 재산을 희생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치며 적들의 침략과 학살로부터 자기 국민을 보호한다는 신조이다. 애국심에 호소하여 이익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오늘날 애국심이 의미도 효용도 모두 상실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인 수단으로 이 개념을 고수하려 든다. 이런 사람들은 가장 강력한 수단을 사용하여 국민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그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53쪽

정부의 폭력을 없애는 데 필요한 일은 한 가지다. 폭력 기구를 지지하는 애국심이 미개하며 유해하고 수치스러우며 옳지 못하고 무엇보다 부도덕한 감정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는 것이다. 애국심은 도덕성의 가장 낮은 단계에 있는 사람들, 다른 이들에게 위해를 가할 마음을 품으면서 그 사람들이 똑같이 폭력을 가해올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에게나 자연스런 감정이기 때문에 미개한 감정이다. 애국심은 다른 민족과의 유익하며 즐겁고 평화로운 관계를 방해하고, 무엇보다 극악한 사람들이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정부 조직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유해한 감정이다. 애국심은 인간을 노예로, 싸움닭으로, 황소로, 나아가 자신의 목표도 아닌 정부의 목표를 위해 힘을 낭비하고 목숨까지 바치는 검투사로 만들기 때문에 수치스런 감정이다. 애국심은 부도덕한 감정이다. (기독교 정신에서 가르치듯)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고백하거나, 하다못해 자신이 스스로의 이성에 따라 움직이는 자유로운 존재임을 얘기하는 대신, 애국심에 물든 사람은 자신을 조국의 아들로, 정부의 노예로 여기고, 이성과 양심에 어긋나는 일들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69쪽

우리는 가게 점원의 근무 시간에 대해 신경을 쓰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해 더 많은 신경을 쓰며, 마부에게 너무 많은 짐을 실어 말이 혹사당하지 않게 하라고 지시하기도 하고, 더욱이 도살장에서 도살할 때 가축들이 가능한 한 고통을 덜 받게 하도록 조치한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서 천천히 그리고 대개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는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에 관한 한, 그들의 노동 생산물로 우리가 편의와 쾌락을 얻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두 눈을 굳게 감고 있다. -112쪽

한편으로는 세금을 납부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만드는 물품과 비슷한 물품을 훨씬 더 뛰어난 설비로 생산하는 자본가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그는 자본가들의 한시적인 또는 영구적인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만약 자본가 아래서 일하면서 자본가와 자유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자유를 팔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라도, 그가 새로운 필요와 욕구를 좇게 되기 때문에 그런 가능성은 사라진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언제나 이런저런 식으로 세금, 토지, 그리고 그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켜줄 상품을 지배하는 사람들 밑에서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142쪽

주인이 노예에게 강제로 노동을 시킬 수 있는 권리에 대한 법률은 그 주인들이 모든 땅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률로 대체되었다. 모든 토지가 주인들의 사적 재산이 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률은 세법, 즉 세금을 주인의 수중에 쥐어주는 법률로 바뀔 수 있다. 세법은 물건이나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권을 방어해주는 법률로 대체될 수 있다. 토지나 물건,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권을 지켜주는 법률은 현재 제안되고 있듯이 강제 노동 법령에 의해 대체될 수도 있다.
따라서 오늘날 노예제를 낳는 법률들을 폐지한다고 해도 노예제는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가 등장할 것이다. -150쪽

복수의 감정과 분노를 표출할 때를 제외하면, 폭력은 어떤 사람에게 그의 의사에 반하는 일을 강요할 때 사용된다. 하지만 자신의 의사에 반해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노예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다른 어떤 사람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는 폭력이 존재하는 한, 노예제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163쪽

정부는 국민에게서 얻은 돈으로 무기를 사고, 정부에 맹종하는 야만적인 군 지휘관들을 고용하고 훈련시킨다. 이들은 오랜 세월 동안 정교하게 다듬어진 군사 교련 방법을 통해 군인으로 소집되어 온 사람들을 규율을 갖춘 군대 병력으로 변모시킨다. 군인들은 군대에 있는 동안 인간의 삶에서 소중한 모든 것과, 인간의 중요한 특질, 즉 이성적인 자유를 완전히 빼앗긴다. 그들은 조직화되고 위계화된 군대 체제 안에서 순종적인 살인 기계가 된다. 현대의 정부로 하여금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게 하는 기만의 본질은 이런 훈련된 군대에 있다. 정부가 스스로의 의지가 없는 이 폭력, 살인 기구를 수중에 넣으면, 전 국민이 그들 손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을 손아귀 밖으로 다시는 풀어주려 하지 않으며, 그들을 약탈하고 착취하고, 더욱이 종교와 애국적 교육을 통해 정부에 대한 충성과 숭배 의식을 주입한다. -166쪽

노예든 노예주인이든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의 조건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조건을 향상시키고자 한다면, 그는 그와 그의 이웃을 노예화시키는 옳지 못한 일들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그와 그의 형제, 동포들에게 불행을 가져오는 옳지 못한 일들을 중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의든 타의든 정부 행위에 참여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따라서 일개 병사나 야전 사령관, 국무 장관, 세무 관리, 법정 증인, 시 의회 의원, 배심원, 주지사, 국회 의원이나 국가 폭력과 관련된 그 어떤 지위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한 가지 방법이다. -174-175쪽

관습이 뒷받침하는 자발적인 합의가 각 사회와 전 세계의 폭력을 언제 어느 정도로 몰아낼 수 있을지는 사람들 속에서 성장한 의식이 얼마만큼 강력하고 얼마만큼 명확한가 그리고 이런 의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에 달려 있다. 우리는 각자 별개의 사람들이다. 각 개인은 당면한 목표를 명확하게 인식함으로써 인류의 보편적인 운동의 참여자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진보의 적이 될 수도 있다. 각 개인은 선택을 해야 한다. 모래 위에 짧고 헛된 삶의 불안정한 집을 지어 신의 뜻에 거스를 것인가 아니면 신의 뜻에 따라 죽음 없이 영원히 계속될 진정한 삶의 운동에 참여할 것인가. -178쪽

가장 유익한 사회 질서(경제적 측면이나 혹은 다른 면에서도)는 각자가 만인의 이익을 생각하고 이를 위해 무조건적으로 헌신하는 형태이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행동한다면, 각자 가능한 최대의 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무익한 사회(경제적 측면이나 혹은 다른 면에서도)는 각자가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고,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의존하고 자기 자신만을 염두에 두는 사회다. 이것이 보편적인 사회적 형태라면, 서로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전혀 없는 사회라면, 나는 그런 사회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186쪽

개인적 행복을 추구한다면, 개인적 행복도 보편적 행복도 이룰 수 없다. 무사무욕을 추구해야 개인적 행복과 보편적 행복을 이룰 수 있다. -194쪽

진정한 자유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살고 행동하는 상태를 말한다. -211쪽

권력은 인간의 합리적인 각성에 의해서만 철폐될 수 있다. -214쪽

사람들을 돕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스스로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여기서 이익을 얻을 수 없는 사람들이 생각하듯 결코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사실 유일하게 현실적인 방법이다. 다른 모든 수단은 환상이다. 대중의 지도자들은 헛된 환상을 심어주어 대중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진정으로 올바른 길을 외면하게 만들고 있다. -223쪽

사람들을 훌륭한 삶으로 인도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말하자면 스스로 훌륭한 삶을 사는 것이다. -226쪽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국가와 강제력이 없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하지만 이와 반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성적인 존재라면 사람들은 어떻게 폭력을 인정하고 이성적 합의를 삶의 내적 연결고리로 인정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는가?"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 아니면 비이성적인 존재이다.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인간들 사이의 모든 문제는 폭력에 의해 결정될 수 있으며 마땅히 그렇게 될 것이고, 누구에게는 폭력에 관한 권리가 주어지고 누구에게는 그런 권리가 주어지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면 인간들의 관계는 폭력이 아니라 이성에 기초하여 세워져야 할 것이다. -252-253쪽

자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락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면서 중대한 치명적 오류들이 생겨났다. 오늘날 사람들이 국가의 폭력에 복종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어떤 특정한 행위에 대한 국가 권력의 승인이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 같은 오류이다. 노예가 일요일 교회에 가거나 뜨거운 물에 목욕하거나 한가로운 시간에 옷을 수선할 수 있도록 허락받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270-27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