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은 자기가 이 세계 속에서 이야기를 고른다고 상상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허영심 때문일 겁니다. 실제로는 정반대로, 이야기가 작가를 골라냅니다. 이야기는 스스로를 우리에게 드러냅니다. 공적이 이야기든, 사적인 이야기든, 이야기는 우리를 지배합니다. 이야기 자신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라고 명령합니다. 논픽션과 픽션은 이야기를 전하는 데에 있어서 기법의 차이일 뿐입니다. 내가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픽션은 내게서 춤추듯 흘러나오고, 논픽션은 내가 매일 아침 맞이하는 이 고통스럽고 깨진 세계가 비틀어 짜듯이 내보냅니다. (중략) 하나뿐인 이야기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물을 보는 다양한 방식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다른 이데올로기에 맞서서 하나의 절대적인 이데올로기를 내세우고자 하는 이데올로그가 아니라, 사물을 보는 자기 나름의 방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가지기를 원하는 한 이야기꾼으로서 말하는 것입니다. -62-63쪽
최근에, 미국정부의 행동을 비판해온 사람들은 - 나 자신을 포함해서 - ‘반미적’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반미주의’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신성화되고 있습니다. ‘반미적’이란 용어는 일반적으로 미국의 기성체제가 비판자들을 깎아내리고, 그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 틀린 것은 아니지만 부정확하게 - 사용하는 말입니다. 일단 누군가가 반미적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그의 발언은 들어보지도 않고 무시되며, 논리는 상처받은 국가적 자존심의 소용돌이 속에 사라져버립니다. -65-66쪽
1988년에 사담 후세인은 이라크 북부의 수백개 촌락을 유린하였고, 쿠르드족 수천명을 죽이기 위해 화학무기와 기관총을 사용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바로 그 해에 미국이 후세인에게 미국산 농산물을 구입하도록 5억달러의 지원금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이듬해, 후세인의 인종학살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에, 미국정부는 지원금을 두배로 늘려 10억 달러를 주었습니다. 미국정부는 또한 후세인에게 고품질의 탄저병균과 헬리콥터 이외에, 화학 및 생물무기 제조에 이용될 수 있는 이중 용도의 물질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사담 후세인이 가장 잔인한 악행을 자행하는 동안 미국과 영국 정부는 그의 가까운 동맹자였음이 드러납니다. -78쪽
지난 10년간 고삐 풀린 ‘세계화’ 속에서, 세계의 총소득은 연간 평균적으로 2.5퍼센트 증가해왔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빈민은 1억명이 더 늘어났습니다. 상위 100개 거대 경제 중에서 51개 경제는 국가가 아니라 기업입니다. 세계의 상위 1퍼센트가 보유한 부는 하위 57퍼센트의 부를 합한 것과 맞먹고, 이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습니다. -82-83쪽
‘자유시장’이 훼손하고 있는 것은 국가의 주권이 아니라 민주주의입니다. 빈부격차가 심화됨에 따라, 저 보이지 않는 주먹이 더욱 큰 역할을 합니다. 엄청난 이윤을 가져다줄 ‘달콤한 거래’를 찾아 눈에 불을 켜고 다니는 다국적기업들은 관련 개발도상국의 국가기구 - 경찰, 법원, 때로는 군대 - 로부터의 적극적인 지원 없이는 이러한 거래를 추진하거나 프로젝트를 실행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세계화’는 가난한 국가에게 인기 없는 구조개혁을 밀어붙이고, 반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충성스럽고, 부패하고, 가급적 권위주의적인 정부들로 구성된 국제적 연합체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중략) 왜냐하면 세계화란 오직 돈과 상품과 특허와 서비스에 관한 것이지, 결코 사람들의 자유로운 이동이나 인권존중에 관한 것도, 인종차별이나 화학 및 핵무기, 또는 온실효과와 기후변화, 또는 정의에 관한 국제적 협약에 관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제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약간의 제스처라고 있으면 ‘세계화’라는 사업 전체가 망할 것처럼 되어있습니다. -84-85쪽
도널드 럼스펠트는 ‘테러에 맞선 전쟁’에서 자신이 맡은 임무는, 미국인이 미국식 생활방식을 계속하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세계를 상대로 설득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화난 임금이 미친 듯이 설칠 때에는 노예들은 꼼짝도 못하고 덜덜 떱니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여기에 서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즉, ‘미국식 생활방식’은, 간단히 말해서, 지속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미국 바깥에 있는 세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86쪽
‘클리어채널 월드와이드사’는 미국에서 가장 큰 라디오 방송국 소유주입니다. 이 회사는 1,200개 이상의 라디오 채널을 운영하는데 이것은 전체 시장의 9%에 해당되는 점유율입니다. 이 회사의 최고 경영자는 부시의 선거유세에 수십만달러를 기부하였습니다. 수십만의 미국 시민들이 이라크전쟁에 항의하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왔을 때 클리어채널은 미국 전역에서 ‘미국을 위한 집회’라는 애국적인 전쟁찬성 대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사의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이 행사를 광고하고 마치 그것이 대단한 뉴스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특파원까지 파견하였습니다. 여론의 합의를 만들어내던 시대에서 뉴스를 만들어내는 시대로 넘어간 것입니다. 조만간 언론의 뉴스보도실은 이런 가식마저 던져버리고 저널리스트들 대신 연극 연출가를 고용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146-147쪽
"(전략) 사물에 대해 생각하고, 세상에 참여하다보면,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끔찍한 고통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럴 때, 이 모든 것과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하는 일의 과정을 즐기고, 가장 슬픔이 깊은 곳에서라도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햄버거를 먹고, 다이아몬드를 사고, 롤스로이스를 타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면, 우리는 이것이 완전히 틀린 생각이라고, 최대한 행복한 모습으로 말하는 것입니다."-185-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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