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으로 꼭 보고 싶었다. 그 분들의 모습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고백 이후 벌어진 삼성 사태로 인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 늦어도 한참 늦었지 어떻게 이런 분들을! - 아 이 분들 대단하다. 광우병 미국소 수입건 때문에 삼성을 바라보던 눈이 다 이쪽으로 왔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도 서서히 잊혀져갔다. 물론 마음 한쪽을 '세'내어 '삼성'을 잊지 않고 있었고,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저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결코 잊지 말아야지, 반드시 못다 풀어낸 이야기를 다시 터뜨릴 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 분들이 다시 나왔다. 촛불을 단기간에 끄겠다는 검찰총장과 명박이의 명(?)을 받들어 머슴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 명박이의 머슴 - 어청수는 '국방의 의무' 라는 이름 하에 볼모로 잡혀버린 정신을 거세당한 노예들을 시켜 무자비한 국가 폭력을 자행했다. 전에는 그래도 방패로 내리찍거나 군화로 짓밟거나 소화기를 쏘거나 물대포를 쏠 때면 눈치를 봤으나 이젠 그런 것도 없다. 기자고 국회의원이고 인권위원회고 변호사고 할 것 없이 죄다 내리찍고 연행하고 짓밟았다. 미친 대통령에 미친 정부, 미친 검찰에 미친 경찰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하는건가. 의혹은 현실로 증명됐다.

  한손에 촛불을, 한손에 피켓을 들은 이들을 마치 바퀴벌레 죽이듯 밟아버렸다. (그럼 바퀴벌레는 그렇게 마구 죽여도 된단 말이냐.) 그러나 그렇게 밟히고도 시민들은 그대로 드러눕지 않았다. 다시 일어섰다. 다시 일어서서 시청으로 향했다. 김수영 시인의 <풀>이란 시가 떠오른다. 시민들은 그렇게 두 달을 버텼다. 사람들은 우리가 광장에 나와 외쳐봐야 얼마나 오래 가겠어, 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5월과 6월을 넘어 7월을 맞이하고 있다. 검찰총장이 그랬는지 경찰총장이 그랬는지 기억은 잘 안난다만, 둘 중 한 녀석이 "80년대 방식을 몰라서 그렇지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80년대 그날은 재현됐다. 총만 안 들었을 뿐, 곤봉과 방패와 소화기와 물대포로 시민들은 모두 쓰러졌다. 그러나 다시 일어섰다. 집단구타 당하고 짓밟히면서도 그들은 일어섰다.

  이 시점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나왔다. 아주 적절한 때에. 국가 폭력이 최고점에 달한 시점에, 시민들이 무자비한 국가  폭력을 견디다 못해 비폭력을 포기하려는 찰나에 그들이 나왔다. 어제 첫 미사가, 오늘 두번째 미사가 진행됐다. 7시 이전부터 광장에는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고, 7시가 되자 부드럽고 평화로운 목소리를 지닌 신부님 한 분이 마이크를 잡았다. 기도를 드리고 노래를 하고 또 기도를 드렸다. 미사는 초등학교 4학년 땐가 친구 따라 학교 근처 성당에 딱 한 번 가본 이후로는 처음이다. 그러나 적응이 안되고 자시고 할 건 없다. 천주교건, 불교건, 기독교건 광장에서 종교는 중요치 않다. 그들이 시민을 지키기 위해, 무자비한 국가 폭력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곳에 나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집회는 예전만큼 활기차지도 재밌지도 않지만 - 이제 재미를 따질 때는 지났다 -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다. 한때 풍물패와 밴드와 춤꾼들과 함께 어우러져 놀았지만, 명박이와 아해들이 우리의 웃음을 빼앗았다. 우리는 웃음 대신 그들에게 강한 결의를 보여줬고, 그들은 우리를 인정사정없이 팼다.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안겨다준 건 신부님들이었고, 오늘, 미사를 마치고 우리는 시청 주변을 소리 없이 조용히 돌았다. 한 손엔 촛불을, 한 손엔 피켓을 들고. 한 바퀴를 돌고 제자리에 돌아왔을 때 촛불은 더 많아졌다. 뒤늦게 시청에 오신 분들은 촛불을 켜고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렸고, 거리행진을 마친 우리는 우리를 기다린 그들과 합류하여 마무리 기도를 드렸다.

  경찰은 시청부터 바리케이트를 치고 여경과 정복경찰을 앞세워 앞을 가로막았지만 길은 그곳에만 있는 건 아니다. 막혔으면 돌아가면 된다. 우리는 이제 평화집회를 할테니 너희는 집에 가 잠 좀 자라. 그 동안 우리와 함께 뛰느라 수고했다. 신부님께서 그러신다. 어젯밤 천막을 치고 시청에서 밤을 지샜는데 경찰 두 분이 오더니 고맙다고 했다고. 촛불집회 시작하고 처음으로 12시 이전에 집에 돌아갔다고. 고맙다고. 너그들이라고 다 못된 놈들이겠냐 그래. 경찰이라고, 검찰이라고 다 못된 년놈들이겠냐. 개인적으로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위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이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있을게다. 근데 그러면 좀 마음을 표현해다오. 왜 당신들은 경찰이 되고자 했으며, 검찰이 되고자 했는지 처음의 그 마음을 떠올려다오.  

  미사는 어제보다 더 일찍 끝났다. 9시반 무렵 신부님의 마무리 발언과 함께 우리는 일어서서 '헌법 제 1조'를 불렀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무런 항의 없이 대부분이 지하철로 향했고, 일부는 잔디에 남아서 토론을 하거나 담소를 나누거나 새 날을 결의했다. 나는 우석훈씨의 블로그  '임시연습장' 의 팬들과 함께 있었는데, 이들은 집회를 마치고 광장에 남아 자기소개와 자유발언을 함께 했다. 모 방송국 직원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조중동이 이명박에게 서로 경쟁하듯이 아부하는 것은, 방송을 갖기 위해서다. YTN이나 MBN과 같은 뉴스 방송을 따내기 위해서 이명박에게 아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이 실질적으로 가진 힘이란 셋이 다 합쳐봐야 방송국 하나 정도도 안된다고. 그들은 힘을 키우기 위해 명박이에게 아부하면서 방송을 따내려하는 것이라고. 끄덕끄덕.

  피곤하여 오늘 쉬려했으나 지승호씨와 우석훈씨가 나온다하여, 그리고 또 천주교정의사제단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무리했다. 띄엄띄엄 나가는데도 이상하게 계속 피곤하다. 집회가 끝나고 둥그렇게 모여 앉은 이들의 말도 잘 안들리고 하여 인사를 하고 먼저 집에 돌아왔다. 조금 전 그곳에 있던 한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시사IN에 글을 쓰는 김현진씨를 만나 사인을 받고 사진까지 찍었다고. -_- 에잇. 좀만 더 있다가 올걸. 아마도 내가 가고 금방 그곳에 왔나보더라. 이럴수가. 엉엉. 김현진씨의 글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만나도 뭐 딱히 할 말이 있는 건 아니지만. -_-  

  7월 5일 시청에서 평화대행진이 있다. 이런 날은 빠질 수 없다. 서울에서 최소한 50만은 모여야 되지 않겠나. 아직 집회에 나가지 못한 많은 분들이 나갔다가 뒤지게 맞을까봐 무서워한다. 하지만 이날은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평화대행진이라오. 이런 날은 빠질 수 없다. 꼭 나가서 시민의 힘을 보여주자. 풀은 아무리 밟아도 다시 일어선다. 7월 5일 촛불 하나 켜고 풀뿌리 정신을 보여줍시다. 시민들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시다. 풀은 강하다. 촛불은 강하다. 촛불소녀, 촛불아줌마, 촛불처녀, 촛불총각, 촛불소년, 촛불아저씨, 촛불할머니, 촛불할아버지, 촛불직장인, 촛불주부, 촛불블로거, 촛불기자, 촛불카메라 다 나옵시다. 촛불을 켭시다.

p.s. 오늘 함께 하신 우석훈님, 시비돌이님, 니나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박상익님, 그리고 친구분, 어제 제대하신 Arm님 고생하셨습니다. 수목금은 아직 잘 모르겠고, 토욜날 '꼭' 뵙죠. :)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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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8-07-02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임시연습장'의 몇가지 글을 보면서....진짜 이분 멋져~~~ 라며 환호하고...아뿔싸. 저기 나가고 싶네....생각했으나 퇴근도 늦고...이핑계저핑계.;;; 경건하게 미사 참여할 생각보다는 우석훈님 싸인 받고픈 욕심부터 낫던게 사실인걸요. 언젠가는~ 불끈!

마늘빵 2008-07-02 08:55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그 홈피 거의 안가는데 ^^ 흐흐. 어제 시비돌이님 올린 페이퍼 보고 갔어요.

순오기 2008-07-02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일부터 기말고사 보는 중3 아들녀석을 데리고 7.5평화대행진에 가겠다는 큰딸...이애들을 보내야 할까요? 하긴 집에 있다고 공부에 전념할 녀석도 아니지만...역사의 현장에 서봐야 뭔가 보이겠죠!

글샘 2008-07-02 08:53   좋아요 0 | URL
같이 가세요. 집에서 밤새 걱정만 하지 마시고. ㅋㅋ 현장에 있으면 별로 안 무서운데... 무서운 일 발생하면 뒤에 서있으면 되니깐... 집에 있으면 아마 혼자 미치실걸요... ㅋㅋ

마늘빵 2008-07-02 08:56   좋아요 0 | URL
흐흐. 보내줘도 될거 같아요. :) 신부님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

2008-07-02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02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