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시대가 온다 - 베테랑 기획자의 바이브코딩 도전기 ㅣ 좋은 습관 시리즈 70
류용효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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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획자와 개발자를 잇는 언어, 바이브코딩


나는 주로 콘텐츠를 만들고 가공하는 일을 한다. 동시에 전자저작물과 디지털교과서, 서비스용 사이트를 개발하는 일도 맡는다. 글과 그림만으로 이루어진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비해, IT 개발자와 함께해야 하는 개발 일은 소통부터 쉽지 않다.


콘텐츠 기획자는 개발의 언어를 모르고, 개발자는 기획자가 원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같은 한국어를 쓰지만 일할 때 쓰는 언어가 다르다. 이 간극을 줄이려면 기획자는 공부해서 개발자의 말을 알아들어야 했고, 개발자는 자기들끼리 편하게 쓰는 용어를 기획자 앞에서 쉽게 풀어 설명해야 했다.


양쪽이 이런 노력을 해 주면 일은 그런대로 굴러갔다. 그렇지 않으면 기획자가 원하는 것이 개발물로 구현되지 않았다. 원하는 형태에 다가가려면 피드백을 끝없이 주고받아야 했고, 서로 지치는 것은 둘째 치고 시간이 한없이 흘렀다. 마감은 정해져 있으니, 시간에 쫓길수록 어느 정도는 타협해야 했다.


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개발 언어를 모르는 사람도 자연어로 웹이나 앱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물론 AI를 이해하고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도 자바스크립트나 타입스크립트, 파이썬을 몰라도 말로 개발물을 만드는 일이 가능해졌다. 다만 개발자가 정교하게 만든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다. 흉내 내는 수준에 머물고 AI가 만든 냄새가 짙게 나서, 상업용으로 쓰기는 어렵다.


저자는 개발자가 아니다. 그런데 바이브코딩을 배우기 시작했고, 자신이 기획한 것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문서만으로는 더 이상 설득이 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쓴다. "합의의 기준이 '공감'에서 '검증'으로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시장 규모와 고객 니즈를 설명하는 발표 대신, 작은 시제품을 돌려 본 결과를 가져와야 설득이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말을 덜 해야 한다'가 아니라 '말을 검증으로 연결해야 한다'로 정리한다.


그래서 저자는 바이브코딩이 개발자가 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고 못 박는다. 기획자가 자기 기획을 더 빨리 검증하고, 더 정확하게 수정하며, 더 끝까지 책임지게 만드는 일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코드를 이해한다는 말도 문법을 외운다는 뜻이 아니라 요구사항을 구조로 번역할 줄 안다는 뜻으로 쓴다.


나도 비슷한 방식으로 일한다. 개발자가 아닌데도 유료 AI 도구를 여러 개 붙들고 있는 까닭은 확인의 속도에 있다. 자료를 모아 두는 볼트를 만들고, 반복되는 정리 작업에 짧은 스크립트를 붙이고, 결과가 매번 같은 방식으로 나오는지 확인한다. 저자의 말대로 자동화는 편의가 아니라 품질 관리다. 한 번 잘 만드는 것과 매번 같은 품질이 나오게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다.


책이 내놓는 학습 공식은 70:30이다. 자기효능감은 "해낼 수 있다"는 다짐이 아니라 "해본 적이 있다"는 30퍼센트의 경험에서 나온다고 저자는 말한다. 직접 개발하지 않더라도 출발점과 마침점이 제대로 흘러가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되면 질문의 수준이 올라간다. 이 책에서 가장 실용적인 대목이다.


저자가 다시 배우기로 한 출발점은 은퇴였다. 그는 은퇴를 앞둔 시점에 스터디 모임에서 8개월을 보냈고, 그 과정을 성공담이 아니라 경로로 적었다. "'얼마나 오래 일할 것인가'가 아니라, 남은 긴 시간 동안 '어떤 역할로 남아 있을 수 있는가'가 중요해졌습니다." 이 문장이 이 책을 쓰게 한 동기에 가깝다.


마지막 장의 결론은 도구가 아니라 태도다. 많은 자동화가 실패하는 이유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문제를 잘못 잡아서라고 저자는 쓴다. 보고서 작성이 고통인 줄 알았는데 실제 병목은 매번 다르게 들어오는 데이터를 검증하고 정리하는 일이었던 경우를 예로 든다. 문제 정의가 선명하면 도구는 따라온다.


처음의 문제, 기획자와 개발자 사이의 간극으로 돌아가 보자. 저자는 바이브코딩을 개발자의 자리를 대신하려는 도전이 아니라, 두 세계 사이의 번역 비용을 줄이는 '연대의 기술'이라고 부른다. 마지막 장에서는 이렇게 쓴다. "AI 시대의 기획자와 PM은 도구를 도입하는 사람이 아니라, 협업의 공통 언어를 만드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말로 설명하다 서로 지치던 일에 작은 프로토타입 하나가 놓이면, 기획자와 개발자는 같은 것을 보며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책의 쓸모는 분명하다. AI를 쓰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쓴 결과를 확인하는 사람은 아직 적다. 저자가 말하는 기획자는 AI에게 일을 시킬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시킨 결과가 맞는지 판정할 기준을 가진 사람이다. 그 기준은 도구가 바뀌어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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