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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어링
브만남(김주황)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3월
평점 :
왜 나는 여전히 애플과 룰루레몬을 좋아하는가?
브만남의 스토리텔링이 책으로 오다
유튜브 채널 '브만남(브랜드를 만드는 남자)'을 통해 그의 스토리텔링에 매료되었다. 브랜드의 역사와 등락을 한 편의 영상에 몰입감 있게 담아내는 그의 정보 수집력과 공력은 대단했다. 꽤 오래전부터 개인 자체가 브랜드였던 그가 이제야 첫 책을 낸 것이 의외일 정도였다.
브랜딩의 핵심, 의도와 레이어링
얇은 책인데 무척 재밌게 읽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브랜드들은 각 브랜드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 느낌, 분위기를 내기 위해 오랜 세월 노력한 결과이다. 어떤 브랜드는 20년 전에 우리에게 매우 크게 자리했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기도 하다. 파나소닉이나 소니는 20년 전 우리가 알던 브랜드가 아닌 새로운 회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업 영역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명품백 브랜드들은 여럿이 있지만 각 브랜드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디올, 프라다, 미우미우(Miu Miu) 등등.
저자는 AI 시대에 AI가 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의도를 만드는 일’이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브랜드가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두는가, 어디로 향하는가는 오직 그것을 만들어가는 사람만 할 수 있다. 만든 이후에는 맥락을 유지해야 한다. 그 브랜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고객이 느끼게 하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 이게 레이어링이다.
고객의 기억에 각인되는 법
대중에게 보이는, 고객에게 보이는 것은 ‘이미지’인데, 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매우 힘들다. 브랜딩은 그 “뿌리를 세상에 드러내는 과정”이고, 고객의 기억에 각인될 때 존재감을 지닌다. '왜 다른 브랜드가 아닌 이 브랜드여야 하는가?'에 대해 고객 스스로 답이 내려져야 한다.
나는 애플, 룰루레몬, 자전거 의류 라파(Rapha)를 좋아하는데, 각 브랜드에 쓴 돈만 각각 천만 원이 넘는다. 어떤 브랜드에 꽂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이다. 브랜드가 내세우는 메시지, 혁신, 편안함, 가치 등등. 그 브랜드를 내가 선택했던 이유가 상실된다고 느끼면 브랜드는 나에게서 존재감을 잃게 된다.
맥락이 끊기면 브랜드 가치도 하락한다
예를 들어, 라파(Rapha)는 영국 창립자가 설립한 브랜드를 2017년 미국 월마트 창업자의 손자들이 인수했다. 월마트가 인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품질이 떨어진다는 등의 소리가 나왔고,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라파에는 월마트 이미지가 씌워진 것이다. 창업자가 계속 CEO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브랜드의 가치는 예전만 못하다. 2014년 무렵 창립한 덴마크 사이클 의류 회사 파스노말 스튜디오가 치고 올라온 것도 한몫했다. ‘아소스’라는 오래된 브랜드도 있지만 라파와 결이 달랐고, 파스노말은 고객에게 라파와 유사한 가치를 느끼게 하며 그 자리를 대체 또는 양분하고 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차별화보다 중요한 '나'라는 원형
다시, 저자는 브랜드에는 핵심 감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감정이 맥락으로 연결되고, 맥락과 연결된 다양한 경험을 줄 때 고객은 브랜드를 사랑하게 된다. 무엇보다 좋은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남과 무엇을 다르게 할 것인가를 생각할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타 브랜드와의 차별화에만 집착할수록 우리는 오히려 ‘코끼리’를 생각하게 될 테니까.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 참고)
나를 브랜드화하든 제품을 브랜딩하든, 이 책은 강력한 통찰을 준다. 당장 눈앞의 효과는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잘 구축된 브랜드는 팬을 만들고 그 팬은 다시 새로운 팬을 불러오는 선순환의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