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경찰하는 마음 - 우리 사회에 여경이 꼭 필요하냐고 묻는 당신을 위한 여성 경찰 안내서
여성 경찰 23인 지음, 주명희 엮음, 경찰 젠더연구회 기획 / 생각정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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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펀딩에 참여하여 구매한 책이다. "우리 사회에 여경이 꼭 필요하냐고 묻는 당신을 위한 여성 경찰 안내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생물학적 여성의 성별을 지닌 경찰이 경찰 내에서, 범죄자들, 주취자들을 마주하며 겪은 일들을 담았다. 여러 경찰이 썼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기술했다. 글은 짧지만 이들이 경찰이 된 이유, 경찰로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담은, 삶의 이야기다. 


여성 경찰이 힘이 있냐, 조사를 하겠냐, 범죄자들을 잡을 수 있느냐, 리더가 될 수 있느냐는 시각은 매우 잘못되었다. 경찰 내부에서 남성 경찰들이 여성 경찰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경찰 밖에서 경찰 아닌 시민들이 여성 경찰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다르지 않다. 여성 경찰은 사회에서 작은 권력을 지닌 공무원이면서, 경찰 내부에서 소수이자 약자이다. 성희롱, 성폭행 등의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경찰 조직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고, 남성 권력이 주가 된 하나의 직장 조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견뎌야 하는 여성의 위치에 있을 뿐이다.


사회 정의에 민감해야 하고, 사회의 어느 사람들보다도 불편부당한 시선을 지녀야 하는 경찰은, 남성 경찰은, 그렇지 않다. 여성 경찰을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여성 경찰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거나. 물론 그와중에도 하나의 동료로서 바라봐주는 남성 경찰들의 모습도 이 책 곳곳에 등장한다. 후자가 더 많을 테지만(그렇게 믿고 싶다), 그저 경찰이 아닌 하나의 남성인 남성 경찰들 사이에서 견뎌야 하는 여성 경찰이 있는 그곳은, 그저 사건 현장에 다름 아니다. 


우리 사회 남성들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정말 잘못되었다. 페미니즘을 무슨 하나의 병인 것마냥 대하고, 페미니스트를 없애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이 책은 여성 경찰이 되고자 하는 지원자들, 또 경찰로 근무하고 있는 여성 경찰과 남성 경찰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금방 읽을 수 있다. 글은 쉽게 읽힌다. 그러나 글에 담긴 사연과 생각, 삶은 절대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회식 자리는 빠지지 않았다. 술도 잘 마시고 일도 잘하는 경찰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어떤 팀장은 ‘내 딸과 같은 나이라 딸처럼 느껴진다’는 말을 반복하며 엄청나게 생각해 주는 척했다. 그 딸 같은 여경들을 바로 옆에 앉게 하고 ‘역시 여자가 따라주는 술이 맛있지’라며 술을 따르게 했다. 노래방까지 이어진 자리에서 도우미 여성을 찾는 동료들의 모습에는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그 뒤로 회식은 최대한 짧게, 1차 자리에서 반드시 일어나곤 했는데 어느새 나는 ‘업무의 연장선인 회식을 빠지는 여직원’으로 찍혀 있었다.(은봄) - P100

한국에서 경찰 제복은 오히려 나를 보호하는 갑옷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경찰 조직에서 나는 소수집단에 속한 약자였지만, 사회에서 나는 어떤 면에서 강자였을지 모른다. 짧은 유학 생활 동안 나는 동양인, 여성, 외국인으로서 온갖 차별을 경험하며 지난 시간을 복기했다. 특히 유흥업소 단속현장이나 가정 폭력 현장에서, 소년사건을 담당하며 만났던 피해자들을 떠올렸다. 혹 나도 모르게 경찰이라는 권위에 젖어, 누군가에게 차별의 말과 몸짓을 보여주지는 않았는지,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은 없었는지 진심으로 돌아보았다. (김세령)
- P114

아직도 간간이 다른 경찰서 또는 다른 부서에서 여경 추행 이야기가 들려온다. 피해여경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일부 직원들, 가해자가 평소에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는 두둔 발언, 그녀의 평소 옷차림과 행실을 지적하는 말들, 징계가 너무 과하다는 이야기들, 모두 1차 가해보다 무섭고 가혹한 2차 가해들이다. 만약 동일한 사안이 직장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일어났다면 당연히 고소가 뒤따르겠지만 의외로 대부분의 피해자는 그가 한때 동료였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분을 원치 않는다. 피해자가 우너하는 것은 더이상 가해자를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소박한 바람과 진심 어린 사과가 전부다. 그런데 과연 지금껏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여 소청을 제기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사과한 가해자는 몇이나 될까?(김영인)
- P119

나는 그녀의 저주 덕분에 경찰관으로서, 그리고 사람은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명제를 알게 되었다. 범죄에 대한 기계적 처벌보다, 피해에 대한 인간적 공감이 먼저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경찰로 살아온 길에서 만난 빛나는 여성들 덕분에 나는 또 하루를 살아가고, 삶과 사람을 좀 더 사랑하게 된다.(이은애)
- P145

각 부서의 장들이 부서원들을 선발하고 배치하면서 꼭 고려하게 되는 것, 바로 ‘여경은 한 팀에 여러 명 있으면 안 된다’라는 것이다. 같은 계급이 두 명이면 서로 고과를 양보하면 괜찮고, 같은 출신이 여러 명이어도 서로 물어가며 배울 수 있어서 좋지만, 유독 여경이 두 명인 건 팀에 해로운(?) 일이 된다. 여경은 ‘여경 자리’에만 갈 수 있었다. 언론이나 논문에 언급되는 ‘유리천장’과 ‘유리벽’이라는 단어로는 이 감정들을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별하비)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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