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 너무 멀리 나간 교실 실험
토드 스트래서 지음, 김재희 옮김 / 이프(if)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너무 멀리 나간 교실 실험, 파도. '파도'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느 고등학교 역사 수업 시간에 시작된 놀이를 지칭한다. 수업에 열성적이었던 젊은 교사 벤 로스는 학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 수업을 하고자 노력하는 교사이다. 한번은 나치의 실상을 알려주기 위하여 준비한 필름을 돌려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는데, 이 때 학생 중 한 명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근데 왜 다른 사람들은 나치들이 그러는 동안 아무도 말리지 않았나요?" 
  "왜 모두가 거기에 동참하게 되었나요?"

  왜 그랬을까. 선뜻 대답하지 못한 벤 로스는 이에 대한 고민을 하기 위해 주말엔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고민을 했다. 결론 끝에 직접 체험해보자고 마음먹고, 다음 수업시간부터 직접 아이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엄격하게 대했다. 처음엔 놀이로 시작했고 아이들도 재미있어 했지만, 날이 지날수록 이것은 더 이상 놀이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나치가 되어갔다. '파도'라는 이름 아래, 당원이 생기고, 벤 로스 자신도 알 수 없는 추상적인 지도자가 생기고, 너도나도 파도에 가입하고자 교실로 몰려들었다.

  '파도'는 실제 있었던 사건이다. 저자 서문에 따르면 이로 인해 학교가 발칵 뒤집어 졌으며 이후 3년 동안 아무도 이 일을 입에 담지 않았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며 점차 나치의 당원과 같은 모습으로 변했던 아이들은, 겉잡을 수 없이 이에 대항하는 이들을 겁주고 위협했으며, 하급생들에게는 억지로 가입하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역사 수업 시간에 나치의 잔혹상을 보고 욕을 하고 의문을 제기했던 학생들은 시간이 지나며 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변화해갔던 것이다.

  미국의 대 이라크 테러 사건이 일어난 뒤, 현지의 실상이 사진을 통해 공개되었다. 포로들을 잡아다가 인간탑을 쌓고, 러시안 룰렛 놀이를 하고, 다 보는 앞에서 성폭행하며 수치심을 주는 등등의 미국과 영국 군인들의 모습이 신문에 고스란히 담겨 배포되었다. 그러나 이 잔혹한 짓을 저지른 여군은 미국의 어느 시골마을의 착하고 성실한 효녀였다지. 왜 그런 선한 사람이 이런 짓을 저지르게 되었을까.

  역사를 돌아보면, 또 우리 주변의 현실에서도, 이런 일은 빈번하게 목격된다. "어떤 집단의 힘이 커지다 보면 거기에 속한 개인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채 자기 권리를 포기하기 쉽고, 그러다 엉뚱하게도 자기가 속한 집단 밖의 사람들을 향해서 함께 집단의 권력을 남용하고 점점 그악스러워져 얼마 후에는 아무렇지 않게 몹쓸 짓을 일삼"게 된다.

 이 책은 단지 나치들의 과거의 모습을 교실에서 잠깐 경험해 본 것으로부터 벌어진 실상을 소설화하고 있다. 저자의 말마따나 민족이나 국가의 거창한 규모가 아닌, 고작 한 마을의 고등학교, 한 교실 내 수업시간에 시작된 놀이로부터 비롯된 일이다. 개중에는 이 놀이의 위험성을 지적한 학생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파도'의 적으로 취급되었다. 이들은 파도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레지스탕스가 되었으며, 교내언론을 통해 목소리를 높였고, 파도당원으로부터 위협받았다. 얼마간 진행된 작은 실험은 나치가 밟아온 길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학생들에게는 실로 엄청난 체험이었지만, 그만큼 고통도 강했다.

  역자 김재희씨는 후기를 통해 독일이 과거청산에 솔선하는 데 비해 일본이 도무지 반성을 모르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1980년대 후반부터 독일 필독서가 된 <파도>의 영향이라고 한다. 물론 이 책 하나가 독일과 일본의 차이를 명쾌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건 아니지만, 교육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멀리 떨어진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이로인해 독일 청소년들은 나치의 실상을 간접체험했으리라 생각한다.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동일한 규모로 동일한 형태로 반복되지는 않더라도, 우리의 주변에서 그 흔적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군대에서 백일 휴가 나온 사람, 군대를 갓 제대한 사람의 모습은, 이 책에서 보이는 그들과 다르지 않다. 건드리기만 하면 '이병 ooo' 관등성명을 대고, 집안에서도 똑바로 앉아 식사를 하며, 아침엔 6시가 되면 발딱 일어나 이불을 개고 씻는다. 군대를 제대한 뒤에 학교로 돌아간 복학생은 신입생을 휘어잡고 지시,명령을 하달하며, 얼차려를 준다. 자신이 훈육받은대로 그대로 실천한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느슨해진다고 그가 변한 것은 아니다. 머리 속엔 여전히 남아 나머지 생애를 살아간다.

  교육이 아닌 훈육은 무서운 결과를 불러온다. 훈육이전 아무리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집단의 광기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훈육이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옆의 동료와 함께 변신로봇이 된다. 그러지 않으면 집단으로부터 왕따를 당할테니까. 또 반복된 학습은 실제로 나의 의식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 자신의 주체성과 이성을 포기한 채 광기에 사로잡힌 이들은 그 누구보다 무섭다. 그들에겐 두려울 것이 없다. 그것이 집단의 광기다. 한낮 고등학교 교실의 실험이라 가볍게 치부할 문제가 아니며, 이를 통해 일상 속의 파시즘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경계해야 할 것이다. 나치는 멀리 있지 않다. 당신 옆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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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6 19: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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