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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오월 ㅣ 이삭문고 1
윤정모 지음, 유승배 그림 / 산하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이 책을 대충 읽어 내렸을 때 글 속의 누나에게 그리 애정이 가지 않았다. 소까지 몰고 나갈 정도로 당찼던 누나가 너무 쉽게 자신의 길을 포기하고 다방에까지 갔다는 것이 별로 공감이 되질 않았고, 과다 헌혈로 죽는다니 너무 작위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야말로 소설같은 이야기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쉽게 넘기기에는 가슴이 아픈 그 오월의 이야기이고, 작가가 그리 쉽게 쓴 이야기는 아닐 거라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찬찬히 글을 읽었다.
소설같은 일. 이 책을 다시 읽으며 든 생각은 소설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것이다.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총을 쏘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런 일들이 그저 과격한 한 지역 사람들의 일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결국은 많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져가고. 어떤 소설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지어낸 적이 있었는지. 그야말로 현실같은 소설이고 소설같은 현실이었다. 작가는 그 오월에 대해 늘 기억을 새롭게 하고자 이 글을 썼다고 했다. 무엇을 독자의 가슴속에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작가는 이 글을 통해 한 소년의 누나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생을 사랑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했던 누나, 자신의 옆에서 피흘리며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자 했던 누나에 대해서. 그 누나는 소설 속에나 나오는 누나가 아니라 그 오월에 스러져간 많은 사람들 중에 꼭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주인공 기열이의 담임선생님을 통해 그런 평범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폭력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리고,다방에서 일하다 몹쓸 병에 걸렸나보다 하는 오해를 받으며 공동묘지 한 귀퉁이에 묻힌 누나를 통해 평범하게 살다 폭도라는 누명을 쓰고 무참히 숨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귀한 죽음을 맘 놓고 슬퍼하지도 못한 가족들처럼 기열이와 부모님도 누나의 죽음을 부끄러워만 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했던 동생을 통해 누나의 죽음이 부끄러운 것이 아닌 헌신적인 희생이었음이 밝혀지는 것을 통해 작가는 그 많은 죽음들이 용기있는 사람들의 것이었고, 아직도 자신의 소중한 이름으로 다시 불려지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 책의 마지막은 기열이가 꿈속에서 선생님이 된 누나를 만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작가는 그 글을 쓰며 그 오월에 일어난 일에 대해, 그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오해하고,무관심하고, 더 알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의 가슴속에도 그들의 귀한 희생의 의미가 되살아나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역사를 알아가는 청소년들이 편견없이 오월 항쟁에 대하여 알고,앞으로는 그러한 폭력이 발붙일 수 없는 사회로 이 땅을 이끌어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을 것이다.
이제 곧 오월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맞는 오월은 좀 다를 것 같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 오월에 기열이의 나이와 비슷한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내가 그때 광주에 살았다면 하고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기순.그 이름을 시작으로 그 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