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다이아나 루먼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 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아이를 다시 키운다면
더 많이 아는데 관심을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더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의 떡갈나무를 더 자주보리라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들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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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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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젊지 않은 이에게

                                                       황인숙

너는 종종 네 청년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나는 알지

네가 켜켜이 응축된 시간이라는 것을

네 초상들이 꽉꽉 터지도록

단단히 쟁여져 있는 존재라는 것을

지나온 풍경들을 터지도록

단단히 쟁여 지니고 날아다니는 바람이

너라는 것을

 

그때 너는 청년의 몸매를 갖고 있었다

희고 곧고 깨끗한

아, 청량한 너의 청년!

 

그 모습은 내 동공 안쪽

뇌리에 각인돼 있고

내 아직 붉은 심장에 부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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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진짜

                           황인숙

언젠가 진짜 죽음이 내게로 올 때

그는 내게서 조금도 신선함을 맛보지 못하리라.

빌어먹을

가짜 죽음들!

퍽이나도 집적거려놓았군.

그는 나를

맛없게 삼키리라

 

그러나 언젠가

진짜

삶이 내게로 올 때,

진짜 삶이

내게로 온다면,

진짜, 삶이, 내게로 온다면!

모든 가짜

죽음, 가짜 삶의 짓무른 흔적들

말갛게 씻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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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

                                    황인숙

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 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너를 보면 

아,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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