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손톱을 깍으며

                                 정호승

잠든 아기의 손톱을 깍으며

창 밖에 내리는 함박눈을 바라본다

별들도 젖어서 눈송이로 내리고

아기의 손 등위로 내 입술을 포개어

나는 깍여져나간 아기의

눈송이같이 아름다운 손톱이 된다

 

아가야 창 밖에 함박눈이 내리는 날

나는 언제나 누군가를 기다린다

흘러간 일에는 마음을 묶지 말고

불행을 사랑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했다

날마다 내 작은 불행으로

남을 괴롭히지는 않아야 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들이

서로 고요한 용기로써

사랑하지 못하는 오늘밤에는 아가야

 

숨은 저녁해의 긴 그림자를 이끌고

예수가 눈 내리는 미아리고개를 넘어간다

 

아가야 내 모든 사랑의 마지막 앞에서

너의 자유로운 삶의 손톱을 깍으며

가난한 아버지의 추억을 주지 못하고

아버지가 된 것을 가장 먼저 슬퍼해보지만

나는 지금 너의 맑은 손톱을

사랑으로 깍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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