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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 없다 ㅣ 시가 있는 아침 1
이문재 엮음 / 이레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첫 시부터 나의 마음을 잡는다.
그 꽃 / 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못한
그 꽃
해설이 곁들인 시선집을 별로 좋아하지않지만 이 시집의 '독후감'은 시를 읽고 느끼는데 방해가 되지 않아 우선 좋다. 시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느낌을 위주로 적었기 때문에 시를 읽은 후 서로 대화를 나눈다는 생각으로 읽으면 좋을 듯하다.
이문재 시인은 시를 고를 때 평소 시를 잘 읽지않는 독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 수 있고 , 일상적인 삶의 문제를 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힘을 가진 시를 기준으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여기에 실린 시들은 너무 익숙하거나 또는 어렵지않으면서 마음에 오래 남기고 싶은 시들이 많다.
이진명의 <'앉아서 마늘까'면 눈물이 나요 >를 읽으니 '부엌을 맴돌며 몹시 슬프게 지내는' 모습에 괜히 눈물이 나려하기도 하였다.
처음 왔는데, 이 모임에서는 인디언식 이름을 갖는대요
돌아가며 자기를 인디언식 이름으로 소개해야 했어요
나는 인디언이다! 새 이름 짓기! 재미있고 진진했어요
황금노을 초록별하늘 새벽빛 하늘누리 백합미소 한빛자리
(어째 이름들이 한쪽으로 쏠렸지요?
하늘을 되게도 끌어들인 게 뭔지 신비한 냄새를 피우고 싶어하지요?)
순서가 돌아오자 할 수 없다 처음에 떠오른 그 이름으로 그냥
‘앉아서 마늘까’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완전 부엌 냄새 집구석 냄새에 김빠지지 않을까 미안스러웠어요
하긴 속계산이 없었던 건 아니었죠
암만 하늘할애비라도
마늘짓쪄 넣은 밥반찬에 밥 뜨는 일 그쳤다면
이 세상 사람 아니지 뭐 이 지구별에 권리 없지 뭐
근데 그들이 엄지를 세우고 와 박수를 치는 거예요
완전 한국식이 세계적인 건 아니고 인디언적인 건 되나 봐요
이즈음의 나는 부엌을 맴돌며 몹시 슬프게 지내는 참이었지요
뭐 이즈음뿐이던가요 오래된 일이죠
새 여자 인디언 ‘앉아서 마늘까’였을까요
마룻바닥에 무거운 엉덩이 눌러 붙인 어떤 실루엣이 허공에 둥 떠오릅니다
실루엣의 꼬부린 두 손쯤에서 배어나오는 마늘 냄새가 허공을 채웁니다
냄새 매워 오니 눈물이 돌고 줄 흐르고
인디언 멸망사를 기록한 책에 보면
예절바르고 훌륭했다는 전사들
검은고라니 갈까마귀 붉은구름 붉은늑대 선곰 차는곰 앉은소 짤막소……
그리고 들 중 누구의 아내였더라 그 아내의 이름 까치……
하늘을 뛰어다니다 숲속을 날아다니다
대지의 슬픈 운명 속으로 사라진 불타던 별들
총알이 날아오고 대포가 터져도
‘앉아서 마늘까’는 불타는 대지에 앉아 고요히 마늘을 깝니다
눈을 맑히는 물 눈물이 두 줄
신성한 머리 조상의 먼 검은 산으로부터 흘러옵니다
요즘 내 맘에 와닿는 시를 찾아 읽는 맛을 조금 느끼고 있는데 이 시집을 통해 좋은 시들을 많이 만나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