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밥헬퍼 > 약속이 늦겠다는 연락을 받은 뒤 꺼내 읽은 詩-곽재구 '바닥에서 아름답게'

이제 막 스리랑카에서 KOIKA(국제봉사협력단)임기를 마치고 돌아온 00가 30분 늦겠노라고 연락을 해왔다. 기다리다가 시 한편 읽어 볼 요량으로 책을 찾는다. 웬걸,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그러다 문득 눈에 띈 것. 곽재구시인의 '沙平驛에서'. 이리저리 뒤적이다 한 편 읽는다.

  바닥에서 아름답게

                                             곽재구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날은 올 수 있을까

미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채

그리워진 서로의 마음 위에

물먹은 풀꽃 한 송이

방싯 꽂아줄 수 있을까

칡꽃이 지는 섬진강 어디서나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한강변 어디거나

흩어져 사는 사람들의 모래알이 아름다워

뜨거워진 마음으로 이 땅 위에

사랑의 입술을 찍을 날들은

햇살을 햇살이라고 말하며

희망을 희망이라고 속삭이며

마음의 정겨움도 무시로 나누어

다시 사랑의 언어로 서로의 가슴에 뜬

무지재 꽃무지를 볼 수 있을까

미장이 토수 배관공 약장수

간호원 선생님 회사원 박사 안내양

술꾼 의사 토끼 나팔꽃 지명수배자의 아내

창녀 포졸 대통령이 함께 뽀뽀를 하며

서로 삿대질을 하며

야 임마 너 너무 아름다워

너 너무 사랑스러워 박치기를 하며

한 송이의 꽃으로 무지개로 종소리로

우리 눈 뜨고 보는 하늘에 피어날 수 있을까

                                                                                         <미발표> 『沙平驛에서』2004, 개정판 19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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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끝 부분에서 멋 적은 웃음이 난다. 마치 '개그콘서트'를 보는 듯한  분위기.

'야, 임마 너, 너무 아름다워'. '너 너무 사랑스러워 박치기를 하며'

그렇다. 웃음이 가득한 세상이야말로 아름답다. 

웃음 가득한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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