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책이 우스개 섞어 지적한 허점들에 제법 수긍이 간다. 법이 시행되자 세세한 부분에서는 입법 당시 미처 예측하지 못한 불합리, 불균형들이 드러나 오락가락한 사례들이 꽤 있는 것 같은데, 법을 나름대로 정성껏 분석한 티가 난다. 프리덤월드라는 출판사가 어떤 덴지는 알 수 없지만(이 책 말고 유이하게 낸 책이 오스트리아학파를 다룬 『대중을 위한 경제학』이라는 점에서 짐작만 할 뿐이다), 제대로 된 교열을 거치지 않은 티도 난다. 예컨대, 책 119쪽에 아예 마치지 않은 문장이 있고, 책 135쪽, 147쪽 등에 잘못 쓴 글자도 많다.
그물을 아주 촘촘하게 엮어 피라미, 새우까지 모두 잡고자 하였지만, 한쪽 구석의 큰 구멍으로 숭어, 잉어는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다(책 125-126쪽). 구체적 사례에서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 되는지를 당사자도, 법률가도, 유권해석을 하는 권익위조차도 여전히 시원하게 답을 내릴 수 없다는 점은 불이익처분을 규정한 법이 갖추어야 할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고 볼 소지가 있다(법에는 3-5-10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치페이하면 된다'는 것만으로는 이들을 모두 담아낼 수 없다.
숭숭한 빈틈을 약삭빠르게 빠져나갈 잔머리, 분석력, 시간과 체력이 없으면 결국 방어적이고 보수적으로, '애매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전략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다(책 172쪽). 행정가들은 이제 현장을 더 모른 채 탁상에서, 엉뚱하고 생뚱맞은, 때로는 기괴한 일들을 벌이게 될 공산이 훨씬 커졌다. 바보가 되어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편이 한결 안전하므로... 우리나라를 여전히 자유당 시절과 같이 부정부패와 비리가 만연한 사회로 진단하는 시각도 물론 타당한 일면이 있기는 하나, 법이 본의 아니게 주된 과녁으로 삼아버린 일선 공무원들의 수준과 의식은 걱정하는 것보다는 훨씬 높아져 있다고 생각된다. 아니, 일자리 갖기가 얼마나 힘든 시대인데,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어렵사리 맡게 된 직책을 쉽게 차버리는 그런 위험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일부 소수를 제외하고는 겁도 없이, 용감하게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다만, 이번 예천군의회 사태도 그렇고, 본업이라기보다는 덤으로 주어지는 자리에 가까운 선출직은 잘 모르겠다. 평소에 어떻게 살았든 뽑히면 그만이고, 선거에서는 이기는 것이 최고선이니까...). 여하간 요즘 들어 더 하게 되는 생각은, 이러한 것들은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분 같다(이 나라 저 나라, 이 지역 저 지역을 겪어 보면, 추상적/복합적 사고, 권리의식, 다양성과 소수자에 대한 존중, 폭력 민감성과 같은 사회의 기본 수준이라 할 것들이, 시류나 문화적 배경에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측면은 있어도, 경제가 성장하고 '평균'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일정 수준까지는 전반적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적으로 거리 구석구석의 디자인만 보더라도, 길어지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도 취향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그것이 끝내 맥주시장의 배치까지 바꾸어내는 데 성공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아무래도 지방 소도시에서는 규범이 지체된다.).
적용대상자들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바로 그것이야말로, 이 법이 갖는 '선언적 의미'라고 기리는 견해도 꽤 있는 것 같은데, 실제 집행이 아니라 선언에 법이 자꾸만 쉽게 동원되는 것은 우려스럽다. 선언을 위한 법은 필연적으로 자의적, 차별적 집행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법은 일단 세웠으면 틀림없이 집행되도록 하여야 하고, 틀림없이 집행될 수 있는 것들만 법으로 규정하여야 한다. 형벌규정은 더욱 그렇다. 행운에 의존하는 법을 만들어 그것이 집행되기도 하고, 집행되지 않기도 하게 내버려두는 것은 법 전반에 대한 냉소를 부추길 뿐이다. "법은 최소한의 규범"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존재감을 뽐내려는 정치인들의 이해관계 내지 유인구조와 맞물려, 최근 들어 이와 같은 '최대주의'적 입법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그러나 법 집행의 현장은 언제나 사회 현실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이런 법을 만들었노라' 하고 언론에 한 줄 나오고 카메라 세례를 받고나면 그만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법이 실제로는 어떻게 작동할지, 또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면밀히 보아야 한다).
법은 만능이 아니다.
그 어떤 시험도 상위권과 하위권의 변별력을 동시에 가질 수 없는 것처럼,
[교육당국은 그간, 수능시험을 운전면허 필기시험 같은 자격시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과 학력고사로 만들어야 한다는 모순된 주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여 왔다. 그런데 대중의 관심은 자꾸 누군가가 불공정하게 'SKY캐슬'에 입성하는 게 아닌가에 쏠린다. 강력한 경제적 유인이 존재하고, 돈으로 시간과 노력을, 그것도 정형화된 상품과 맞춤형 상품 중에 필요한 것을 골라 쉽게 살 수 있는 고도화, 다각화된 사교육시장은 그 어떤 조치도 비웃으며 언제나 교육당국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논다. 특정한 문제를 공교육이나 EBS 시청만으로 풀 수 있는지로 옥신각신할 것이 아니라, 국가 단위 시험은 '촘촘하게 정규분포하도록만' 해놓고, 대학이 고르게 하는 편이 낫지 않나 싶다.]
또 최저임금 인상의 역설에서 뼈저리게 겪은 것처럼,
[말이 사장이지 더 이상 안정적 근로소득을 가질 수 없게 되었을 때 여는 것이 치킨집이다. 우리나라 자영업 비율은 OECD 평균의 두 배에 달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높고, 근로자 가구와 근로자 외 가구의 소득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직장 다니다 가게를 열면 생애소득이 왕창 줄어든다. 자영업자가 된다는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도 정책도 누구를 목표 삼을 것인가를 실증 분석과 세심한 모형 예측을 통하여 분명히, 똑똑하게 세워야 한다. 이는 좋은 뜻과 착한 마음만으로는 이루기 어렵다.
다음 논문도 참고할 만하다.
최한수, "경제학자 관점에서 본 김영란법의 문제점", 법경제학연구, 제13권 제3호 (2016. 12.) (알라딘 서재에는 논문 제목에 링크를 걸어두었으나, 북플에서 클릭이 안 되어 링크를 다시 건다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07241018)
전에 한 번 쓴 것처럼, 법이 워낙 아리송하다 보니 대중의 불안을 틈타 한몫 벌어보려는 양심 없는 책들도 꽤 나왔다[모든 기업과 단체가 그간 해오던 일들을 모조리 다시 따져보아야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결국 '대중'이다. 자신들에게 법이 적용될 수 있다는 의식조차 없는 채 법을 어기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법을 적용받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법을 지킬 수 있는지 알 수 없다면, 그 법은 규범력을 가질 수 있을까? 잠재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법에 이렇게나 많은 해설서와 그때그때의 '유권해석'이 필요한 상황은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비교를 위하여,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것과 술 마시고 운전대 잡으면 안 된다는 규범은 얼마나 단순하고 명쾌한가(다만, 음주운전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결코 처벌이 약해서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형량을 높이는 방식으로는 이미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음주운전을 현격히 줄이거나 없앨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기회에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다 차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