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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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은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로서 우리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오욕의 역사 한 페이지를 기록

하게 한 100년이 되는 그런 해였다.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경술국치"를 단순히 친일파들에 의해 일본에 나라를 팔아 먹은 날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지, 그런 사건이 왜 생겼고, 그 때 우리의 위정자들은 무엇을 했으며, 우리에게는 진정 문제가 

없었는지 등에 대한 자기반성은 철저히 외면한 채 모든 것이 '다 네 탓이다!'라는 자세로 우리의 굴욕사를 

해석해 왔고 자위해 왔다.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 당시를 반성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고 있는 가운데 본 작품이 나온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조선의 망국사에 대해 개인적으로 여러 의문이 있어 접하게 되었다.

망국사를 이야기하기 전에 저자는 이런 말씀을 작품 중간(127)에 하고 있다.

 

[실패를 반성하는 자세 자체에 반성할 만한 하나의 추세가 있다.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그 원인만 아니었다면 실패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는 낙관적 성향이다.

특정한 원인만 없었다면 성공이 당연한 것이었다고 보는 환원주의적 관점이기도 하다.

한 개인이 잘못된 일을 반성함에도 잘못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데는 특별히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의 반성에도 자아비판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작용한다. 반성에 인색한 자세는 실패를 

극복하지 못한 자세이기도 하다. 실패를 완전히 극복한 사람은 과거의 허물을 부끄러워는 할지언정 그것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투철한 반성은 실패 극복의 조건이면서 또한 극복의 증거이도 한 

것이다. 변화의 과정에서 전통은 자산이면서 부채이기도 한 것이다. 부채의 측면이 부담스러워서 전통을 

부정하는 사회는 스스로 종속 변수의 위치를 찾아 주변적 존재가 된다. 부채의 측면도 기꺼이 짊어지고 

앞길을 찾아 나가는 사회가 역사의 주체가 된다.]

 

아마도 상기의 글은 본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을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치욕적 역사적 현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문외한들에게 많은 관점과 지식 그리고 시대적 흐름에 대한 

이해를 제고시켜 주고 있는데 단원 하나하나가 무슨 역사 논문인 듯한 착각이 들게 하였으나,

일부 대목에 있어서는 자칫 저자가 친일, 친미주의자가 아닐까 하는 느낌과 함께 조선 왕조 최고의 비운의 

임금으로 평가되고 있는 [고종]에 대한 과한 폄하성 발언은 사건의 사실 여부를 떠나 내게는 그렇게 개운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작품을 다 읽은 지금, 수 백 년에 걸쳐 융성해 왔던 한반도의 마지막 왕조인 '조선'이 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첫째, 임진왜란으로 인해 기본적인 국가 기강이 와해 되었고

둘째, 한반도를 둘러 싼 주변 국가들의 급진적인 변화에 둔감하였으며

셋째, 변화를 거부하고 외면한 기득권 세력의 짧은 안목

등의 요소가 시대적, 환경적 요인과 어우러져 급격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작품 후반부에 저자께서는 강력하게 [고종]의 근시안적이고도 치졸한 행태에 대해 힐난을 하고 있는데

나는 솔직히 저자의 그런 주장에 동의할 수가 없다.

[고종]을 현대 지도자적 자질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절대적으로 결함도 많고 좀 부족한 임금일 수는 있지만 개인적으로 국가를 그렇게 내 팽게치는 수준으로 관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우리 역사는 어디를 보아도 임금이 권좌에 오른 순간부터 최고의 사부를 붙여서 왕의 신분에 걸 맞는 교육을 

통해 나라와 백성을 책임지도록 성군이 되는 교육을 했으면 했지 임금이 사리사욕을 채우도록 교육을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고종]을 거의 시정 잡배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반론의 증거가 바로 [고종] 자신이 주도했던 '헤이그 밀사' 사건이다.

저자가 주장하시는 그런 수준의 임금이었다면 차라리 일본이나 러시아 등 기타 열강들에게 나라를 통째로 

받치고 안락한 노후를 보장 받았을 것이다


작품을 읽으며 [고종]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기득권 세력인 외척들이 활개치는 조정에서 좀 자신의 편이 되어 달라고 고르고 고른 마누라 일파가 오히려 

더 난리를 치니 속이 뒤집어 졌을 것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외척들의 온갖 비리에 대해 정보를 얻었으나 

더 이상 [고종]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고 궁궐 내에는 여러 권력들이 얽히고 설킨 채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고종] 혼자만의 힘으로 처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고종]은 자신과 나라가 처한 상황에 몹시 힘들었을 것이고 애틋한 부부간의 정도 남아 

있지 않았음은 물론 마누라도 싫었을 것이다. 그러다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마누라(민비)가 죽자, 그간 마음에 두고 있던 상궁을 곁에 두고 조금이라도 안위를 받으며 생활하고 싶었을 것이다.


[고종]은 한 사람의 개인이기 이전에 나라의 얼굴이라는 생각에서 스스로 이를 타파할 자구책을 마련했을 

것이다. 서구의 개화문명을 들고 들어오는 세력에 맞서 신 문물을 조금이라도 배웠음직한 인력을 과거를 

통해서 뽑지 않고 인물 천거 방식으로 뽑아서 신문명 세력들과 대응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기득권들의 천거에 의해 신규 인력들이 궁궐에 들어와 보니 [고종] '지는 해'요 서양 열강과 기득권은 

'뜨는 해'라는 것쯤은 금방 파악하였을 것이고,

천거된 인력들은 기득권층과 이해관계로 뭉쳤을 것이다

[고종]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뽑아 놓은 놈들을 중용해 보니 외국 편이 되어 헛소리만 삑삑거리기만 하고 

도대체 도움이 되지를 않고 오히려 기득권층에 달라 붙어 호가 호위하는 모습에 정말로 역겨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는 [고종]은 정말 답답했을 것이다.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도와줄 집단과 후원 세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망연 자실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권위가, 지시가 받아 들여지지 않자 또 사사건건 제약을 거는 집단을 향해 경고의 

의미로 국가를 상징하는 '옥쇄'도 내 던졌던 것이다. 그것도 안 통하자 [고종] 최후의 수단으로 세상과 

주변의 인맥들과 싸우기 보다는 그들 속에서 우선 살아 남아야겠다는 선택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고종]의 주위에 있던 일단의 무리들은 [고종]의 비위를 맞추고 아첨과 술수에 능한 놈들이 나타나 [고종]을 

돕는 척하고 온갖 교설을 부려 [고종]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였을 것이다

어느 날 야비한 기득권 층 속에서 살아 보겠다고 비굴하게 변한 자신을 돌아 본 [고종] 이렇게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자성 속에 정면 돌파를 추진하게 된다.

그래서 [고종]은 러시아, 미국, 영국 등의 열강들에게 진정으로 도와 줄 것을 요청하며 '헤이그'에 밀사까지 

파견하여 도움을 요청하나 열강들은 아시아의 소국인 조선에 그다지 관심도 없었고 오로지 만주로의 진출을 

꿈꾸던 러시아와 대륙으로의 진출을 꿈꾸는 일본에 의해 망국의 길로 접어 들고 만다.

 (작품을 근간으로 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 식으로 정리한 것임)

 

저자께서 작품을 쓰실 때 모든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작품을 쓰셨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몇몇 가지의 사실과 증거를 갖고 '그럴 것이다'라는 주장을 포함해 유추한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몇몇 사항에서 왕으로서의 행동답지 못했다는 이유로 [고종]을 너무 폄하하는 것 같아 솔직히 기분이 별로 

안 좋다. – 나는 이씨도, 왕가의 자손도 아닌 그냥 단순한 평민 출신의 후손임 -

 

그렇다면 나는 이런 이야기를 전개해 보고자 한다


'계백 장군'께는 정말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인터넷 어디를 뒤져도 계백 장군의 출생년도 및 살아 생전의 

공과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는데 '황산벌 전투'만 갖고 현대적 '명랑화' -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를 읽은

분들은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다 - 를 너무 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계백 장군이 전장에 출전하기 전에

행한 행동과 관창에게 보여 준 행동을 임의적으로 해석해서 나도 이런 이야기를 꾸며 보았다.

 

황산벌 싸움에 나서기 직전 계백장군이 자신의 가족을 도륙 했는데 사실은 계백 장군 역시 당시 의자왕에 버금가는 바람둥이였다고 한다. 백제가 멸망하면 자신의 부인이 다른 놈의 처첩으로 가는 게 싫어서 부인을 

죽이고 전쟁터로 나갔는데, 첫 전투에서 부하들이 생포해 온라의 젊은 군사(관창)를 조사하다 보니 목에 

걸고 있던 '옥 구슬'이 자신이 한 창 젊은 시절래 신라로 넘어 가 놀 때 어느 젊은 처자와 짧은 사랑을 

나누고 올 때 주었던 사랑의 증표임을 알고는 당시 그 여인을 생각해 그 놈을 풀어 주었다

이 놈은 자신이 왜 풀려 나는지 영문도 모른 채 풀려 났다가 전후 사정을 들은 자신의 사령관에게 작살나게 

혼난 후 '너 여기서 맞아 죽을래 싸우다 죽을래'라는 협박에 못 이겨 계백의 진영에 재차 진격했다가 불귀의 

객이 되었다


어떤가?

계백의 가족 살해 현장에, 관창과의 전투 현장에 없었던 입장에서는 당시 상황을 어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아마도 몇몇 가지의 정황을 가지고 모든 것을 만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고종]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은 채, 역사적 몇몇 사실만을 갖고 해당되는 사람과 사건에 대해 일방적

평가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것도 한 나라의 임금을 말이다.

 

분명 [고종]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실수는 여러 군데 있었다.

그 실수를 악용해 결정타를 날린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을사 오적'이었고 '시대적 상황' 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튼 이 한 권의 작품으로 우리 조선의 흥망사 전체를 아우르기에는 부족함이 많다는 게 나의 개인적인 

소견이다 시간을 두고두고 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 역사적 진실이기 때문에 심층적 연구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고종]만이 나빴다는 이야기는 비록 역사에 문외한이고 이씨 조선 문중과 전혀 관계

없는 나이지만 좀 받아 들이기가 어려워 이렇게 강변 아닌 강변을 저자께 드려 보는 바이다.

 

어쨌든 작품으로 돌아 와서 '조선 망국사'의 배경을 논하기 전에 또 그 원인을 이야기하기 전에 동 시대 

주변국의 상황을 간략하게 나마 먼저 이해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일부 내용은 축약해서 또 일부 내용은 

2~3개 단원을 묶어서 여기에 내용을 요약해 본다.

 

[중국의 상황]

- 15세기 말 유럽의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고, 16세기 초 인도양과 남 중국해까지 유럽인의 항해 활동이 

  확장된 이후 서세동점(西勢東漸)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런 현상의 밑바탕에는 16세기 초에 일어난 '종교개혁'이 그 단초를 제공하고 있는데 종교개혁은 가톨릭 

  교회에 큰 타격을 주었다. 특히 개혁적 측면을 대표하는 단체가 [예수회] 였는데, 1540년 교황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후 새로운 사업인 '교육' '해외 선교'사업을 활발히 펼쳐 나가게 되는데

  예수회 창시자의 한 사람인 포르투칼인인 '사비에르'는 인도를 거점으로 하는 아시아 선교 사업의 길을 

  연다. 사비에르는 아시아 선교 사업의 궁극적 무대를 중국으로 보았고 그 후계자들은 이를 이어받아 

  중국 선교를 지상 과제로 삼는데 사비에르 사후 포르투칼이 마카오에 항구적 거점을 가지게 되면서 중국 

  진출을 위한 선교사들의 전진기지가 된다.


- 1583 '마테오 리치'는 동료 선교사와 함께 중국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선교 활동을 펼치게 되는데

  교회 입장에서 보면 중국 선교의 개척자였고, 역사학의 관점에서 보면 유럽과 동아시아 문명간 접촉의 

  수준을 일거에 끌어 올린 거인이었다.

  마테오 리치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들여서라도 지배 계층을 포섭하는 것이 궁극적 성공을 바라볼 

  길이라는 전략을 세워 사회 주류를 선교 대상으로 삼았고, 종교적 진리를방적으로 주장하기보다 

  기독교와 맺어진 유럽 문명의 훌륭한 점이 중국 지식층의 인정을 받게 하는 작업에 매진하여 큰 성공을 

  거둔다. 중국에서 벌어진 아편 전쟁(1840 ~ 42)은 서세동점의 불가항력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상황]

- 명나라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을 불신해서 교역을 거부했기 때문에 일본은 유럽인의 중개무역을 계속 

  필요로 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사상에 영향을 끼치는 기독교 선교는 용납 수 없었다.

- 1600년대 들어 일본에 모습을 나타낸 네델란드인과 영국인들이 포루투칼인의 역할을 넘겨 받게 되고 

  막부의 통제 편의를 위해 외국 무역 주체를 단일화하는 과정에서 영국의 양보로 외국과의 접촉 대상은 

  네덜란드로 단일화되면서 이후 200여 년 동안 일본의 서양인 접촉을 독점하게 된다.

-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해 근대화의 성공에 자부심이 넘칠 때, 란카쿠(蘭學,서양학문) 전통을 성공의 

  중요한 이유로 내세웠다. 동아시아 지역의 상황이 1890년대 이후 격화되는 데는 만주로의 진출을 꿈꾸던 

  러시아가 일본을 거들어 준 데 그 원인이 있다.

 

[조선의 상황]


1. 어떻게 조선은 시들어 갔는가?

 - 15~16세기 한국 사회의 상황에는 유교 정치 질서가 적합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왕조 아래 한국 사회가 누린 안정과 번영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많지 않은 높은 수준의 것이었다.

   그런데 19세기에는 상황이 크게 달라져 있었다. 조선의 망국은 그 사이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어느 사회의 변화에서도 전통을 등지는 개화는 '자기 부정'이라는 정체성의 질곡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런 개화의 성공은 바로 식민지를 향해  가는 길이다.

 

  (외교권의 난맥상)


  - 한 세기 가까이 몽골의 지배기를 거치면서 고려라는 왕조는 크게 망가졌다.

    왕조 교체를 단순히 임금의 성만 바꾸는 것으로는 안 될 정도로 망가져 나라를 새로 만들 정도의 큰 

    변화가 요구되었다. 고려가 망가진 첫 번째 이유는 안보를 원나라에 의지해 오랫동안 도외시했고 

    원나라에 더 이상 의존하지 못하게 된 '공민왕' 때에야 본격적인 개혁이 추진된 되다가 기득권의 반발로 

    좌절되고 만다.

 

  -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에 출병한 궁극적인 이유는 '조공 관계의 의리"때문이었다.

    임진왜란을 축으로 조선과 명의 관계는 예절의 관계에서 힘의 관계로 넘어가게 된다.

 

  (세력화된 사림)

  - 학자로서의 '송시열'의 업적은 어떠한지 몰라도, 당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가까운 인간 관계까지 번복한 

    그의 행적을 보면 정치가로서는 극심한 파벌주의자였음이 분명하다

    조선 후기의 지식층은 현재의 권력에 매몰되어 미래에 대한 준비를 너무 적게 하고 있었다


  - '훈구'와 '척신'은 왕권에 기생하는 존재에 불과했지만 왕권과 거리를 가진 사림의 팽창은 국가의 구조적 

    문제가 되었다. 사림 성장의 발단 요인은 '임금이 임금 노릇을 하지 않음' 있었다. 땅바닥에 굴러 다니던

    왕의 권위를 완전히 박살내 버린 것이 '인조'이다

    송시열는 사림의 권위가 권력으로 변질되는 단계를 대표한 인물이다.

 

  (서민의 생활)

 - 왜란 후 호구 파악이 어려운 상황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호구보다 파악이 쉬운 농지를 부과 대상으로 

   하는 대동법이 제안되었다. 대동법은 중세 체제를 벗어나는 발전의 열쇠이면서 전통적 명분의 포기라는 

   이면성을 가진 갈림길이었다. 조선 정부는 대동법조차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 채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개항기를 맞았다.

 

 - 임진란 이후 충격에 따른 파괴를 수습해서 원래의 질서를 회복하자는 노선이 산당(山黨)었다면 새로운 

   상황에 맞춰 새로운 질서를 벗어나가자는 노선이 한당(漢黨)이었다. 산당의 원리주의 노선이 득세함으로써 

   조선이 적절한 발전의 길을 찾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 유교적 정치 원리는 경쟁이 격화되었던 춘추전국 시대에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전국 시대까지 현실 정치에서 큰 힘을 쓰지 못하던 유교가 한나라가 안정된 후에 통치의 중심 원리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제국의 질서가 경쟁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신권과 왕권의 힘겨루기)

  - 사림의 권위를 확고히 세운 이가 조광조이다.

    그가 '도학 정치'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왕권의 쇄신을 꾀하다가 '기묘사화'절된 이후 

    그의 뒤를 잇는 정치 이념 탐구는 재야 사림의 당당한 과제가 되었다. 지배 집단이 권력 투쟁에 

    매몰되면서 정치와 학문이 모두 선명성 경쟁에 매달리게 되었다. 학문에서도 실용적 경세론보다 시비에 

    집착하는 정통론이 일세를 풍미했다.


  - 임진왜란 전까지는 사림의 권위가 자라나면서도 왕의 권위를 보좌하는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왜란을 겪는 동안 왕의 권위가 급격하게 하락한 결과 광해군 때는 왕이 사림의 권위에 의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 숙종이 키운 왕권은 권위가 아닌 권력일 뿐이었고, 그 권력도 왕권의 기반을 키우는 건설적 노력이 아닌 

    신하 집단들의 이간질이라는 파괴적 노력으로 얻은 부실한 것이었다. 숙종의 뒤를 이은 경종은 가장 

    미약한 왕권을 물려받은 임금의 하나였다. 숙종 말년에 영조 초년에 걸친 최악의 당쟁 양상은 다른 

    무엇보다 숙종이 정치를 서바이벌 게임으로 만든 탓이었다.

 

  (정조의 권도정치)

  - 세도정치의 주체가 세도가였던 것과 달리 정조의 권도정치는 왕이 주체였다.

    19세기의 권력자는 부패를 억누르려 애쓰기는커녕 권력 유지와 확대에 오히려 부패를 이용하게 되었으니 

    총체적 난국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실학의 좌절)

  - 실학 형성의 배경으로 외래적 요인과 내재적 요인으로 구분해서 이야기하는데, '외래적 요인'이라면 

    청나라의 고증학이나 중국을 통해 소개된 서학에 자극 받은 측면을 이야기하고, '내재적 요인'이라면 

    조선 국내에 제반 변화, 특히 사회 경제적 여건의 변화에 의해 촉발된 측면을 말하는 것이다.

 

  - 실학(수사학)의 학풍은 정통론과 명분론에 매달린 주류 성리학의 퇴행성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 

    이데올로기의 모색 노력이었다.

 

2. 어떻게 조선은 쓰러져갔는가?

  - 19세기 후반에 일본을 경유해 한국을 덮친 서양 근대문명은 막강한 힘을 가진 것이었다

    한국보다 덩치가 큰 중국조차 그 위세 앞에서 1840년대 경부터는 자세가 흔들리고 1860년 경부터는 

    휩쓸려 들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그 위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다. 조선이 아무리 

    굳건한 체제를 지키고 있었더라도 정체성의 큰 훼손과 그에 따른 변화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선 망국의 두 단계)

  - 천하 체계의 붕괴가 완전히 확인된 계기는 청일전쟁(1894~95)이었다

    이 체제의 붕괴는 개별 국가의 쇠퇴와 멸망을 넘어, 동아시아 문명권 전체의 존재 양식을 청산하는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조공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조선 왕조의 존재 양식도 이로써 단절을 맞게 되는데

    여기에 조선 망국의 큰 의미가 있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이것이 한 단계이고 나머지는 새로운 생태 

    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의 실패 즉, 좌절이 또 다른 단계였다.

 

  (실종된 왕권)

  - 이조원의 옥사는 국왕에게 조차 세도 정치에 대항할 수단이 남아 있지 않음을 보여 준 사례이다

    또한 왕실의 예법은커녕 양반다운 교육도 받지 못한 '강화도령(철종)'을 왕위에 앉힌 것은 똑똑하고 

    힘 있는 왕을 귀찮아 한 당시 세도가의 취향을 보여 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렇듯 세도 정치의 폐해가 그 정도를 더해 가고 있었다.

 

  - 권력 투쟁이 정적의 목숨을 노리는 사태는 조선 전기부터 간간이 있었으나 이것이 권력 투쟁의 일반적 

    양상으로 자리 잡은 것은 숙종 때의 일이었다.

 

  (대원군의 몸부림)

  - 대원군은 국가의 기본 질서를 세우기 위해 서원철폐를 감행한다 한편으로는 당시 기득권 층으로 많은 

    인재를 거느린 '안동 김씨', '풍양 조씨'에 대항하기 위해 '전주 이씨'를 종친 우대라는 명분으로 관직에 

    대거 끌어들였다. 특히 노론 명문가의 하나인 '여흥 민씨'를 외척으로 힘을 키워 주었다. 그 결과 대원군의 

    처남이면서 민비 집안으로 입양되어 민비의 오라버니가 되고 대원군 실각 후 권력을 민승호가 쥐게 된다.


  - 대원군 실패의 원인 한가 중요한 문제점이 왕이 '경연'을 하지 않은 것이다

    '경연'은 스킨 쉽을 통해 군신간의 신뢰와 충성을 강화하는 것은 부수적 효과다. 왕세자의 경우는 경연의 

    축소판인 '서연'을 군왕 교육의 중심으로 잡는다.

 

  (임오군란, 박영효, 김홍집)

  - 대원군은 민씨의 허수아비가 된 것이다. 임오군란(1892)까지 계속된 민씨 세도기에 조선 국가 체제의 

    부패는 극에 달했었다.


  - 군대를 주둔시켜 무력으로 조선 정부를 통제하고 국왕의 아버지를 황제가 심문하겠다고 데려간 것은 

    전통적 관계의 포기였다. 조선과의 '특수 관계'를 전략적 이점을 이용할 생각 , 그 특수 관계의 본질적 

    가치를 도외시한 조치였다.

    내적으로는 국왕의 권위가 완전히 소멸하는 상황이었다.


  - 박영효는 친일파 중에서도 '저질 친일파'의 행적을 남겼는데 1884년 이후 박영효의 행적 중에서 

    갑신정변보다 더 화끈한 친일 행위를 찾을 수 없다. 갑신정변은 임금이 임금 노릇을 못하고 신하가 신하

    노릇 못하게 된 조선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 준 사례이다.

 

  - 박영효의 행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일본과 조선의 관계'보다 '일본과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앞웠다는 

    점이다. 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달아난 박영효를 대신해 김홍집이 아관 파천 때 '친일'로 몰려 죽임을 

    당한다. 청일 전쟁 후 갑오개혁의 진행 속에 김홍집이 친일 행적을 한 것은 맞지만 그러나 그의 친일은 

    주제성 있는 친일이었다.

    즉, 청일 전쟁에서 패한 청나라가 쫓겨 나는 것을 보고 일본의 주도권을 대세로 받아 들였다. 일본이 

    요구한 '개혁' 수행에 김홍집이 앞장 선 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뜻으로 

    이해된다

    

  (을미사변)

  - 1864~73년 세도 정치의 틀을 따르면서도 극단적 쇄국 정책과 함께 전례없이 강한 개혁 정책을 추진한 

    대원군 집권은 위기에 대한 첫 국가적 대응이라 할 수 있다.


  - 1891년 이후 민씨 세력 수령으로서 당대 으뜸의 탐관오리로 명성을 날린 민영준(후에 '민영휘로 개명)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민영준은 원세개의 조정을 받아 동학혁명 진압을 위한 청나라 출병을 요청을 

    주도하여고, 청일 전쟁의 도화선을 제공한 장본인으로서, 나중에는 일본 쪽에 붙어 합방 후 작위까지 

    받는다. 청일 전쟁을 통해 일본은 조선에서 최대의 경쟁자를 물리쳤다.

  

  (왕 노릇을 거부한 고종)

  - 미국 공사 '알렌'은 "내 일찌기 구만리를 돌아다녔지만 상하 4천년에 한국 같은 이는 처음 보는 

    인종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 갑오개혁과 아관파천을 거치는 동안 조선의 정치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 정통과 관료의 비중이 계속 

    떨어져 갔다. '개화 관료'라 하여 과거를 거치지 않고 외국어나 기술을 갖고 채용된 사람들 그리고 

    왕에게 무조건적 충성을 바치는 친위 세력의 비중이 커졌다. 왕 자신이 전통적 덕목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변화가 빠르게 일어났고, 전통적 덕목을 대치할 근대적 덕목이 갖춰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도덕적 긴장이 줄어드는 '도덕적 공동화 현상'이 진행되었다.


  - 아관파천은 조선의 조정이 고종의 수준에 맞춰 하향 평준화를 이루는 결정적 계기였다.

  

3. 어떻게 조선은 사라져갔는가?

  19세기 후반 산업화의 확장 과정에서 인류 역사상 미증유의 경쟁 열기가 전 세계를 휩쓰는 가운데 승패의 

  결정적 열쇠는 근대국가의 효율성에 있었다.

  독일처럼 급조된 국가라도 근대적 효율성을 갖추면 강자가 되었고, 러시아처럼 오래된 국가라도 그러지 

  못하면 약자가 되었다. 유럽 어느 나라보다 더 오래된 동아시아 국가들에게도 같은 상황이 닥쳤다

  식민지가 되었다는 '결과'보다 식민지가 되던 '과정'을 더 세심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예나 지금이고 사회의 장래를 결정하는 일차적 요인은 힘 있는 사람들의 행동양식이다.


  조선 후기의 성리학이 극단적 정통론에 집착해 사회의 생산성과 건강을 해친 것이 바로  '독단' '독선

  때문이었으며 더욱 문제가 된 것은 고종의 인품에 관한 것으로 고종은 술수와 책략에 사족을 못쓰는 

  임금으로 평가하고 있다.

 

  (외세 줄 서기)

  - 아관파천으로 친일 정부가 전복되고 중요 인물 몇이 살해 당한 후 고종의 자의적 통치를 견제할 수 있는 

    국내 정치의 매커니즘이 사라졌다. 고종의 절대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은 외세뿐이었다. 고종은 자신의 

    개인적인 야욕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독립협회를 이용했다가 나중에는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 대한제국의 건립은 권력 사유화의 절정이었다.

    의정부가 유명무실해지고 궁내부가 비대해진 것이 그 단적인 징표였다.

 

  (중국과 일본의 행보)

  - 중국은 1840년에 서양 열강으로부터 본토 침략을 당하기 시작했고, 한국은 개항 6년 후인 1882년부터 

    외국군이 주둔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본에는 그처럼 강한 외세의 작용이 없었다

    특히 개항에서 유신에 이르는 14년간 일본은 거의 아무런 외부 위협을 겪지았다. 또 한가지 일본이 

    개화에 유리했던 점은 중국과 조선 같은 중앙집권 체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내는 

    혼란스러운 과정에 외세의 과도한 작용이 없었던 것이 일본 성공의 결정적 조건이었다.

 

  (의병의 출현)

  - 순수한 농민들의 봉기는 '의병'보다는 '민란'이나 '농민 항쟁'으로 규정되기 쉽다

    지도층이 주도하는 항쟁이라야 '의병'으로서의 명분을 명확히 표현하고 또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병이란 위기에 처한 체제 지도층의 대응 방식이다.


  - 우리 사회에서 의병의 역사적 의미가 충분이 인식되지 못하는 이유 

    첫째, 의병의 존재가 국면 전개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지 못했고 

    둘째 의병 운동의 위정척사 사상이 시대 변화의 방향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

 

  (고종의 마지막 짝사랑 러시아)

  - 만주에서 러시아가 약간의 우선권을 가지는 대신 조선은 완전히 일본에게 맡긴다는 '신사 협정' 1896 

    2월 아관파천 당시 일본 정부에서도 러시아 정부에서도 양국 간의 절충점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 고종의 대한제국은 중립화를 통해 일본의 야욕을 봉쇄한다는 환상을 오랫동안 추구했다

    그 환상을 실현시켜줄 주체로 어느 나라보다 러시아를 쳐다 봤다. 본에게 요긴한 한국을 일본에게 

    양보하는 대신 만주에서 일본의 양보를 얻는 것이 대한 제국에 얽매이는 것보다 러시아의 국익에 더 

    유리한 길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직시하지 못한 것은 고종의 개인적 환상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 타)

  - 일본이 짧은 시간 내에 열강의 대열에 올라 설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중국 대륙을 침략하는 데 유리한 

    위치 덕분이었다. 중국 침략은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로 자라나기 위한 필연의 길이었다

  

  - 고종과 민비는 러시아와 미국에 의지해 일본의 영향력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려 했고, 이에 대한 반발로 

    을미사변이, 다시 이에 대한 반발로 아관파천이 일어났다

  

  - 일본의 통제를 피하려는 고종의 노력에 주권 수호의 뜻이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주권 수호를 하더라도 합당한 방법이 있고 그렇지 못한 방법이 있다. 전형적인 고종의 수법 

    한 가지는 의정부 대신들을 자주 갈아 치우는 것이었다. 본은 대한제국의 정책 결정이 황제가 아닌 

    의정부에서 공개적으로 이뤄질 것을 요구했다. 고종은 대신을 자주 바꿈으로써 의정부의 활동이 

    연속성을 가지지 못하게 하고신들이 자기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


  - 왕조로서의 조선은 망해가고 있었고 국가가 망하는 가장 뚜렷한 지표의 하나가 권력의 사유화다.

 

책 속에서 읽는 상식들

- 향초(herb)는 원재료를 거의 그대로 쓰는 것인데, 향료는 재료를 말려서 오래 보관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가루로 빻아 쓰는 것이 보통이다.


- 동인도회사는 네덜란드 의사 한 명을 '데지마'에 배치해는데, 이 의사가 일본 란카쿠(蘭學)의 촉매가 되었다.

  란카쿠의 주춧돌을 놓은 사람은 2년간 체류했던 '카스파르 샴배르거'이며 큰 열매를 맺은 사람은 '필리프 

  폰 지볼트'이다


- 천하 체계를 가르켜 '사대주의'라는 말이 많이 쓰여 왔는데, 이것은 천하 체제의 전복을 꾀하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천하 체제의 한 측면만을 악의적으로 폄훼한 것이다

  '사대(事大)'는 약소국이 강대국을 대하는 원리로서 강대국이 약소국을 대하는 '자소(字小)'의 원리와 짝을 

  이루는 것이었다.

  [맹자] '양혜왕 편'에 그 원리가 설명되어 있다.

  【 인()이 아니고는 큰 것이 작은 것을 섬길 수 없나니, 그런 까닭으로 탕임금이 갈() 섬기고.....

    (중략).....큰 것이 작은 것을 섬김은 하늘을 기쁘게 함이요, 작은 것이 큰 것을 섬김은 하늘을     

    두려워함이니, 하늘을 기쁘게 하면 지킬 것이요, 하늘을 두려워하면 나라를 지킬 것입니다】


- 조선과 명나라 사이의 가장 큰 이견은 조공 빈도에 있었다. 3년에 한 번씩 오라고 명나라에서는 거듭거듭 

  일렀지만 조선에서는 1년에 세 번씩 가겠다고 뻗댔다. 결국 1410년부터 1년에 세 차례 조공이 상례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에 출병한 궁극적인 이유는 '조공 관계의 의리" 때문이었다

  임진왜란을 축으로 조선과 명의 관계는 예절의 관계에서 힘의 관계로 넘어가게 된다.

 

- 임진란 이후 충격에 따른 파괴를 수습해서 원래의 질서를 회복하자는 노선이 산당(山黨)이었다면 

  새로운 상황에 맞춰 새로운 질서를 벗어나가자는 노선이 한당(漢黨)이었다


- 유원형, 이익에서 후기 실학의 태두 정약용이 이르는 학통은 실학 발전의 가장 두드러진 흐름이었다

  이을호는 이들의 학품을 수사학(洙泗學)이라 이름 붙였는데 이는 각각 공자와 맹자가 살던 곳의 

  '강 이름'이니 송대 이후의 성리학을 뛰어넘는 원시 유학의 모색이라는 뜻이다.


- 1905년 을사보호 조약을 맺을 때 의정부 8대신 중 확고히 반대한 것은 '한규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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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역전시키는 하나님의 은혜
강준민 지음 / 두란노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추천 권유도 10


눈에 뵈지도 않는 '코로나'라는 괴물로 인해 모두가 힘든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날을 어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속에 이 작품을 선택해 보았습니다. 

분명, 작금의 고난은 우리를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않았던 시련 속으로 가두고 있지만 언젠가 웃으며 이 고난도 추억 속의 한 장면으로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날을 상상하며 힘을 냈으면 합니다.

나의 경우 지난 1월에 해외에 나와 오도가도 못하는 속에서 언어도 잘 안 통하는 세상에서 나름의 인내 

속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그 한계를 슬슬 느끼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도 어찌하겠습니까? 이겨내야지요.


웬만해서는 여기에 특정 사안에 대해 개인적 의견을 올리지 않는 게 이 싸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나의 평소 

소신인데 작금의 국내 사건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어 잠시 잠깐 의견을 올리고자 합니다.


국내에서는 이름과 사고치는 방식만 달리한 새로운 '제2의 최순실 여사'가 탄생되고 있고 또 이를 보면서 

어떤 이유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냄새가 난다' - 그 분의 콧수염이 더 냄새가 날 듯합니다 - 는 

이야기로 제2의 최순실 여사를 옹호하려는 사람을 보면서 한심하다 못해 불쌍한 생각만 들 뿐입니다.

어찌되었건 "공과 사는 구분되어야 하고 공은 공대로 평가되어야 하지만 과에 대해서는 분명 책임이 있다면 

응분의 댓가를 치루게 해야 하는 게 정의로운 사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돈으로 자식을 피아노 연주자로 만들면 무엇하며, 선량이 된다고 한들 제대로 일이나 할 수 있다고 생각되십니까. 이런 사건을 들여다 보고 듣다보면 답답하고 힘들다는 생각 뿐입니다. 

세상이 무섭지도 하늘이 두렵지도 않으가 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도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인내하고 사랑해야죠......진실은 승리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즐거운 일, 슬픈 일, 괴로운 일, 기가 막힌 일 하여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모든 면을 두루 접하면서 한 평생을 살아가는 게 일상적인 평균적인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러 감정 중 상처로 남을 수 있는 '자괴감과 '실망감'에 빠졌을 때 우리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 

성경 '롯기의 말씀을 예화로 목사님이 자세한 설명과 함께 그 대처 방안을 제시하고 계시다.


[우리 생애에 흉년이 찾아 왔다고 생각되는 시기를 어떻게 하면 이를 잘 극복할 수 있는 지]

 

에 대해 강의한 작품이다.

 

먼저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푸시는 데, 은혜를 베푸시기 전 우리를 크게 흔드신다

'흔든다는 것'은 바로 환난을 의미하고, 고난을 의미하며, 시련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 고통과 환난 그리고 시련은 우리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도구]인데, 도구로서의 '고통'은 삶에 찌들어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듣도록 하는 '확성기'

쓰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간혹 자신이 처한 어려움이 극에 달해 더 이상 뭔가를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극에 달한 사람들은 이를 단순히 '실패'라 정의하여 [정지 표시]로 인식하지 말고, 그 순간을 

[방향 전환 표시]로 받아들이려는 자각이 정말 필요한 생각이라고 역설하신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은 제일 먼저 [초첨 맞추기]를 잘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계신다.

우리가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각이 바뀐다고 강조하시면서 하나님은 언제나 '잃어버린

것보다'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데 그 증거는 성경에 언급되어 있다고 

하신다. , 하나님은 사람들을 만나실 때마다 가장 많이 물으시는 질문이

첫째, 무엇을 원하느냐?

둘째, 네가 가진 것이 무엇이냐?

라고 물으시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고 강조하고 계신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먼저 '문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신다.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문제를 두려워하거나 도피하지 말고 문제를 이해하도록 힘쓰며 문제 속에서 해결책을 

발견하고 문제 속에서 비전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주문하고 계시다.


고통과 현실적 곤란한 문제에 직면한 사람은 그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일탈을 꿈꾸듯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듯한 행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행동하려 하는 게 일반적인 인간의 성향인데, 기독인들은 

절대 그래서는 안 되며 아무리 어려워도 '말씀의 집'[교회]를 떠나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계신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도피적인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또 줄기차게 [기도] [예배]드려야 할 것을 강조

하고 계시는데, 이는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을 받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방법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단순한 문제로 인식하지 말고 자신에게 닥친 '환경의 변화'로 인식

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 강조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가롯 [유다] 외에는 모두 '갈릴리 출신'들이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유다 지방 사람들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살아서 변화를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에 갈릴리 사람들은 개방적인 성향의 사람들로 그들은 변화를 좋아하고 변화에 적응할 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거의가 갈릴리 출신들이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들은 삶이 어렵고, 힘들어도 항시 긍정적인 표현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전능하신 하나님 때문에 잘 될 것이라고 고백하면서 또한 로마서(8 28)에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려 선을 이루신다“


는 굳은 신념을 갖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결단코 자신이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의 역경이 어떠하던지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시게 되는 데 그러면 우리의 인생도 반드시 역전이 될 것이고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인격을 창조해 내며 우리가 믿음을 붙잡고 있으면 믿음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결국 역전의 

승리자로 만든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하고 계신다


 

좋은 문구들

 

- 베들레헴은 원래 '떡집'이라는 뜻이고, 에브라다는 '풍요로운 수확'이라는 뜻. 유다는 '찬송'이라는 뜻. 

 

- 삶에 있어서 두려워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이해되어져야만 할 뿐이다. (퀴리 부인)

 

-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러스킨)

 

- 선택은 순간이지만 결과는 영원하다.(코마스 칼라일)

 

- '헌신'이란 본인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을 버리는 것이다.

 

- 힘이 있다고 위대한 것이 아니라 힘을 바로 사용하는 것이 위대한 것이다.

 

- 친절은 열정이나 능변이나 학식보다도 더 많은 죄인을 회심시켰다. (프레드릭 페이버)

 

- 한마디의 친절한 말이 석 달 겨울을 따뜻하게 한다. (일본 속담)

 

- 당신을 거쳐 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더욱 좋아지고 행복해져서 떠나게 하라

  당신 얼굴에 친절이, 눈에도 친절이, 따뜻한 인사 속에서도 친절이 서려 있게 하라. (마더 테레사)

 

- 때로 인생은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그 상처를 치료하면 우리는 더욱 더 강해진다. (어네스트 헤밍웨이)

 

-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실'이라는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다

  '성실'이라는 그릇에 담기지 않은 성공은 위험하다.

 

- 기도란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토마스 그린)

 

- 외모의 아름다움은 눈만을 즐겁게 하지만 상냥한 태도는 영혼을 매료시킨다.(볼테르)

 

- 못생긴 여자는 없다. 단지 자신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방법을 모르는 여자가 있을 뿐이다

(크리스찬 디오르)

 

- 실패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실망할 것이다. (비버리 실스)

 

- 천재는 계속해서 열정적인 자에게 붙는 별명이다.(괴테)

 

-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 13:20)

 

- 가정이란 히브리어로 '메누카'인데 이 뜻은 '안식의 터전'이라는 말이다.

 

- 인격이란 단어 'persona'라는 뜻은 라틴어로 '가면'이라는 단어 'persona'에서 유래된 말이다.

 

- 인격이란 책임 능력이다. (임마누엘 칸트)

 

♥ 오탈자 찾기

 

110쪽 맨 아래 줄의 마지막 단어와 111쪽 맨 첫 줄 첫 단어가 중복되었음.

 

: 물 댄 ---> 글이 중복되어서 빠져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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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먹다 -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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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8


이런 작품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사 보아야 할 작품이라고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솔직히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에는 뭐가 뭔지 주인공이 누구인지, 등장 인물과 그것을 담담히 

진술하고 있는 주인공과의 관계는 어떠한지 몇 장을 넘기면 앞 페이지에서 언급된 촌수 관계가 

헷갈려 도저히 진도를 나갈 수 없어 책 읽기를 포기하기를 서너 차례

요번에는 아예 옆에 흰 종이를 놓고 가계도를 그려 가며 헷갈리지 않고 읽으려 노력에 노력을 

기우렸다.

(뒷 편에 실린 심사위원들의 소회를 읽어 보니 대다수의 심사위원분들 역시 나와 같은 혼란 속에

작품을 읽었다고 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작품을 접한 초기에 나의 머리 나쁜 것만 한탄했었다. 참 억울하다)


작품은 소단위별로 화자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어 특정한 주인공은 없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래도 굳이 주인공을 들라면 김태겸의 아내 '묘연'과 그의 아들 '희우' 그리고 '난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사대부가의 여인' '하녀'의 동병상린적 보살핌 그리고 '사대부가의 손자와 후실 소생의 딸

사이의 기구한 사랑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라 해석하고 싶다.


따라서 작품을 보면 4개의 큰 축으로 이루어진 사랑 이야기로 해석하고 싶다.

첫째 사대부가의 딸(묘연)과 후실 딸(하연)과의 애틋한 동병상린적 보살핌

둘째 최 약국의 전처(후인)의 딸(향이)에 대한 여문의 사랑

셋째 후인(최 약국 전처)과 후평(일하는 사람)의 사랑

넷째 희우(묘연의 아들)와 난이(하연의 딸)의 사랑

 

뭔 놈의 문학 작품을 이리도 자근자근 씹어서 해석하나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잘게 부수기가 수월치 않다

내가 독후감을 쓰려 이렇게 네 부류의 사랑으로 작품의 내용을 해석하고 있으나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는 내용은 "후실 딸인 하연이와 그 자식에 대한 애틋한 정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것을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대목(31)

 

[어머니와 선이(하연의 모친)가 동무이자 자매였듯이 나와 하연도 자매이자 동무였다

거의 나 혼자 말하고 대부분을 나 혼자 결정하곤 했지만 '하연'은 십 오 년 동안 기꺼이 내 

그림자가 되어주었다. 어머니도 선이를 보듯 '하연'을 보듬었다

내 이름의 ''자를 똑같이 돌려 '하연'이라 이름짓겠다 끝까지 우긴 것도 어머니였다.]


만 보더라도 사대부가의 딸(묘연)이 하연에 대해 갖는 정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정이 더욱 공고해져서 표출된 것이 바로 하연의 해산 장소에 관한 것이다.

하연이 몸을 풀기 위해 찾아 간 곳이 다름 아닌 바로 묘연이 시집 간 시댁이었다.

- 어머니인 '선이'는 죽었음 -

친 자매라도 사돈댁을 찾아가 몸을 푼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웠을 터인데 '하연'은 스스럼 

없이 찾아갔고 '묘연'은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하연'이 낳은 아이(난이)를 집 안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거두어 키워

주기까지 한다. 그들 사이는 친 자매 이상의 정을 나누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하연의 딸인 '난이'가 성장하면서 묘연의 아들 '희우'와의 금지된 사랑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고 있지만 이를 탓하거나 징계치 않고 오히려 자신의 아들을 다른 

곳으로 장가를 보내면서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대목에서는 묘연과 하연은 묘연의 아버지로부터 

받았을 상처를 치유해 주려 노력하는 장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떤 세월인데 감히 후실의 딸이 사대부가의 아들을 넘보려 한 것을 용서하고 또 미천한 여인의 

몸에서 낳은 아이까지 키워 주겠는가,

 

또 하나의 사랑은 '여문' '향이'에 대한 사랑이다.

여문의 근원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기술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아마도 향이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 마음 속으로 향이를 흠모하던 청년이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향이는 최 약국 전처의 자식인데 출산하는 과정에서 잘못되어 한 쪽다리가 불구로 태어난다.

이를 동네 청년인 여문이 흠모하기 시작하는데 여문이 향이를 어느 정도 흠모했는지 

'자신도 향이와 같이 불구가 되기를 간절히 비는' 대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문의 향이에 대한 사랑은 일반적 사랑의 도를 넘는 순진 무구한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최 약국의 '후인'과 그 약국에서 일하는 '후평'의 사랑이 일어난 이유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후인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형제의 정에 굶주려 있던 후평은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싸여 있던 최 약국에게 더 이상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거기다 자신이 낳은 자식마저도 아들이 아닌 불구의 딸이었기에 아내로서, 여인으로서 가장으로

부터 인간다운 대접이나 오롯한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할 것이다

그 순간에 그 모든 과정을 알고 있던 나이 어린 후평은 주인집 처자인 후인을 지극 정성으로 

보필했을 것이고 어느 순간 한 사내로 다가 갔을 것이다. 그런 후평을 후인이 굳이 마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그들의 후반부 사랑이 어찌 되었는지에 대한 결말은 보이지 않고 있으나 자신이 

낳은 향이에 대한 이야기(자살)와 남편의 죽음(여문이 살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아마도 

자책감에 빠져 뻔한 결말로 흐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마지막으로 '희우'에 대한 '난이'의 사랑은 전형적인 젊은이들의 사랑을 보여 주고 있다고 보여 

진다. 서로가 흠모하고 사랑으로 발전해 가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 두자.

난이는 희우를 떠나려 한다. 그런 희우도 난이에게 굳이 다가서려 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의 

위치를 잘 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그녀는 자기가 사랑했던 남자의 주변에 몸을 

숨기다 우연한 기회에 이 소식을 희우가 듣게된다.

하지만 또다시 헤어지고 만다. 단기 바람 결에 그녀가 어디쯤 있을 것이라는 소식만을 들은 채 

서로가 헤어지게 된다.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작품에서는 상처 받은 사랑, 일방적인 사랑, 표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랑, 해서는 안 되는 

사랑 등이 전개되고 있다.

살면서 사랑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사랑으로 인해 열병과도 같은 속앓이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 역시 없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공통적으로 찾았을 것이 괴로움에 사무쳐 밤길을 거닐다 마주한 ""이었을 것으로 

나는 생각해 본다.

, 사랑으로 인해 상처 받고, 힘들어서 또 자신의 뜨거운 사랑을 상대는 왜 몰라주는 지를 

괴로워하면서, 애끓는 사랑이기에 또 넘을 수 없는 사랑이기에 이 모든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존재는 야심한 밤, 중천에 떠 있을 '' 밖에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또 왜 하필이면 하고 많은 단어 중에 ''의 옆에 '먹다'라는 단어를 붙였을까?

먹는다는 것은 사물이나 그 어떤 형상의 존재가 없어진다는 것이 아닌가.

내가 위에서 언급한 작품 속에 나타난 4가지의 사랑은 하나도 이루어진 것이 없는 

,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만 그런 사랑이었다.

따라서 작품을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달이 스러지다', '달이 슬픔에 젖다' , '내 마음 달과 같이'

등의 제목으로 변경해서 2~3일 붙여 보고 작품의 의미를 재 해석하며 제목 연구를 해 보았는데 '달을 먹다'라는 제목 이외에는 적당한 제목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그럴 정도로 작품의 제목은 함축성 있는 의미를 지녔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 제목을 초기에 어찌 지으려 했던지 간에 "달을 먹다"라고 지은 것은 아주 

현명한 작명이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나 역시 한 때 혈기 방장하고, 사랑의 열병으로 인해 달을 보며 볼 수 없었던 상대 여인을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그런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기에 처음 작품을 고를 때 작품의 제목이 하도 

요상해서 그저 그러려니 했었는데 이 작품을 다 읽고 난 뒤에 작품 제목을 다시 한 번되새겨 

아주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누구도 그냥 스쳐지나 가는 바람처럼 다가왔다 사라져 간 사랑이 있다면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도 첫사랑이라면..................

 

 

읽고, 느끼고, 생각하며 나를 돌아보자

 

- 吉人醉 善心露 躁人醉 悍氣布(길인취 선심로 조인취 한기포)

  : 좋은 사람은 술에 취하면 착한 마음이 나타나고 조급한 사람은 술에 취하면 사나운 기운이 다.


- 우리 가락 중에 계면조(界面調)라는 것이 있는데, 슬프고 슬픈 가락인데 이는 임진왜란 이후 

  유행하였는데, 계면조란 ‘눈물이 흘러 얼굴을 둘로 가른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 의영고(義盈庫)란 ‘종 팔품직’으로 왕실과 종묘, 왕릉 제사에 소비되는 기름이며 꿀, 황랍, 채소

  후추 등의 물품을 관리하는 곳 


- 미선나무의 열매는 선녀들이 들고 다닌다는 전설이 있다. 미선나무는 아름다울 미와 착할 

  선의 나무로 오해를 받는데 실은 미선(尾扇)이고 둥근 부채를 의미한다.


- 정유절목(丁酉節目)이란 임금이 즉위한 후 재주 있는 사람은 서얼을 따지지 않고 들여 

  쓰겠다는 공식적으로 천명한 규정.


- 패랭이 꽃을 '천국화'라고도 불렀으며, '산자고'는 앉은뱅이 꽃이다.


- 견우와 직녀가 만나 나누는 비를 [쇄루우]라는 운격 있는 이름으로 불렀다 


- 해마다 조정에서는 여름이면 반빙()이라는 얼음을 나누어 주었는데 배포선은 여러 관사와 

  종친 및 문무관의 당상관, 내시부의 당상관, 칠 십 세 이상의 퇴직 당상관이 그 대상이고 

  할인서의 병자들과 의금부 그리고 감옥의 죄수들도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 솔숲에 이는 바람을 솔잎을 스치고 지날 때 그 세기에 따라 구분해 놓았는데,

  솔솔 불기만 하는 바람은 거문고 소리 같다고 하여 [슬성(瑟聲)] 잔잔한 바람은 울림 ()자를 

  써서 [송운(松韻)], 약한 바람이 스치면서 내는 '쉬이익' 소리는 퉁소 소리 같다고 퉁소 뢰()

  를 써서 송뢰()]로 표기했고, [송도(松濤)]는 큰 물결과 같이 '솨아'하는 소리가 파도 소리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승정원의 정칠품 주서(注書)는 왕과 신하들이 만나는 자리에 동석해 거기서 나오는 말과 

  행동을 일일이 기록하는 직책으로 당하관이기는 하나 임금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한다는 

  의미에서 요직이다.


- 초계문신(抄啓文臣)이란 임금이 지대한 관심으로 직접 관리하겠다고 나선 재능 있는 젊은 

  인재들을 일컫는 말이다.


- 사람은 누구나 타인이 알아채지 못하는 자기만의 암호로 자신의 상처를 꾸준히 드러내게 

  마련이다.


- 어리석은 침묵은 보이지 않는 금 긋기에 불과하고 그 금 위에서 숱한 마음이 다치거나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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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집행인의 딸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 1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추천 권유도 : 5


누구나 다 똑같이 부여된 시간 속에서 자신의 ''을 살아간다
대개의 인간들은 바쁘면서도 열정적으로 또 누가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간에 주어진 자신의 
삶을 정말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또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치열하고도 열심히만 살았지 자신의 삶이 정말 참 된 삶인지 아니면 
어떤 방향으로 가고는 있지 않은지 대해 어떤 계기가 발생하지 않는 한 절대 뒤돌아 보거나 
스스로를 평가해 보지 않고 살아가는 게 일반적인 인간들의 행태라 생각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 유일하게 '사고'를 한다는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도 진중한 검토나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렇게 해야 만이 자신이 죽어서 관 뚜껑이 닫히고 죽어서 어떤 특정한 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라고 외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작품은 바로 치열하게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는 되돌아보지 않게 "재 점검"하라는 의미에서 만든 작품이라 생각하는데 작품을 접해 본 사람들이라면 나의 이런 주장에 동의할 것이다.


각 단원들마다 소 주제를 갖고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에 관해 사고하고 언급하면서 진정한   

'참 삶'이 무엇인지를 언급하고 있는데 작가가 오랜 시간 동안 깊은 성찰 끝에 얻은 자기의 

주관을 구체화해 만들어 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깊게 든다.

내가 이 작품을 읽고 나름대로 주제 문장을 찾아 본다면

[삶은 늘 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뿐이지. 아무 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작가는 우리가 삶의 어떤 길을 걸어가든지 본인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생각하여야 하며

'나는 누구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달아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가장 슬픈 것은 삶의 주체자인 본인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또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참 슬픔'이라 말하고 있다. 삶의 자세와 종교에 대해 가장 마음에 드는 

내용은


[차츰 우리는 우리가 여행자라는 사실을 잊고 생존 그 자체에 몰두하게 되었다.

 만일 우리가 여행의 목적을 잊어 버리고 여행지에 집착한다면 그 집착이 사라질 때까지 

 언제까지나 다시 그 장소에 태어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 지구에는 

 (종교)]라는 제도가 태어 났다. 종교란 결국 우리가 [여행자]라는 사실, 그리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자각하게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겠는가?]


[종교(religion)라는 말의 어원은 '조각나고 흩어진 것들을 한 데로 모으는 일' "명상"잃어

버린 종교는 맹신에 빠진다. 애시당초 종교는 명상을 통해 생겨난 것인데 명상을 하지 않고 

종교를 접한다는 것은 근본을 잊어 버리고 가지를 붙드는 것이리라.]


나는 이 두 대목이 해당 작품에서 가장 통찰력 있고 독자들로 하여금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에 

대해 스스로 사유하게 만든 내용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남의 기준에 맞도록 끝없이 가지치기를 당했기 때문에 마음에 

병에 시달리고 무언가를 찾기 위해 헤매고 있다.] 


이 대목은 오늘날 황금만능주의, 학벌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살고 있는 동 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시사점을 던져 준 대목이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런 주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나비 애벌레'의 예를 들면서


[시간은 필요하다. 우리들 자신 속의 애벌레를 고요히 지켜보라. 그것이 거쳐 가야할 수많은 

시간들에 대해 한숨짓긴 해도 그것은 필요한 일이다. 자연이 일깨워 주는 가장 큰 것은 바로 

기다림의 필요성이다. ]


이라고 주장하면서 참을성 없고 조급증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참다운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작가는 "사랑"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하고 있는데.

[사랑에는 묘한 속성이 있다. 그것은 마치 불사조가 자신을 불로 태워서 죽어 버리고 그 재에서 

다시 소생하듯이 사랑은 죽음을 거칠수록 더욱 큰 사랑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사랑의 시작을 

두려워 하지 않듯이 사랑의 죽음 또한 두려워하지 말라고 삶은 나에게 가르쳤다.] 


라는 이야기로 사랑의 참 의미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또 너무 난해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잠시잠깐 잊고 있던 화두를

던져서 내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를 일깨워 주려 한 작품이었다.

  

읽고, 느끼고, 생각하며 나를 돌아보자

 

- 명상이란 결국 내가 사라져서 자연과 존재와 하나가 되는 일이라고 한다면, 기도 역시 어떤 

  의미에선 마찬가지다. 그것은 내가 사라져서 신이 내 안에 들어오는 일이다.

 

- 고요하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보인다. (성철 스님)

 

- 신은 내가 신을 바라보는 바로 그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 먼 나라를 여행하고 온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된다 (, 가스통 바슐라르)

 

- 마지막 날을 것처럼 오늘을 맞이하자. (크리슈나무르타)

 

- 위대한 사람과 하찮은 사람은 없다. 다만 위대한 일과 하찮은 일이 있을 뿐. 위대한 사람은 

  하찮은 일까지도 위대한 일로 만든다. 그가 하는 모든 하찮은 행동, 모든 하찮은 몸짓에서 

  그의 위대함이 흘러 나온다. (오쇼 라즈니쉬, [장자. 도를 말하다])

 

- 부처도 가장 큰 고통을 애별린(愛別隣)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그만큼 

  큰 고통이다.

 

- 누가 우리의 삶을 증언해 줄 것인가? 예술인가, 혁명인가? 아니다. 오직 사랑만이...... 

  그러나 사랑은 침묵이다. 우리는 모두 남 모르게 죽어간다. (알베를 까뮈)

 

- 운명의 펜은 절대로 철자법이 틀리지 않는다. (13세기 회교 신비가)

 

- 불교에서는 우주를 [욕계, 색계, 무색계]의 세 가지 차원으로 분류하고 있다.

  [욕계]란 우리의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를 말한다

  [색계]란 각자의 꿈에 나타나는 빛과 생각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말한다

  [무색계]란 모든 사람의 이념 속에 있는 절대 정신의 세계 곧 이데아의 세계

 

- 사람들은 스스로 나누어 놓고서는 그 분별심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단죄한다.

  스스로 괴로워하고 스스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 우리를 삶에서 지쳐 쓰러지게 하는 것은 고독이나 가난이 아니라 남 모르게 간직한 비밀


-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삶 역시도 두려울 수 밖에 없다. 삶은 곧 죽음으로 가는 여행이기 때문.

 

-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

  종교는 두려움을 심어 주는 것이 아니라 삶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하는 것이며 나아가 소멸될 

  수 밖에 없는 육체의 두려움을 떨쳐버리게 하는 것이다.

 

- 영혼이 먼저 있고, 종교는 그 영혼의 비밀을 알기 위한 창문이다. 무엇보다 진정한 종교란 

  이웃을 돌보는 것이다.

 

- 삶을 비관하는 사람이 지난 행복했던 시절을 잘 기억하지 못하듯 이제 비가 며칠째 내린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뜨거웠던 태양을 기억하지 못한다

   저 비의 구름 위로 올라가면 태양이 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속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고 그 곳에는 다시 우리가 들어갈 또 다른 세계가 있음에도 우리는 곧잘 그 사실을 잊는다

   그리고는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리라 생각한다.

 

- 천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천국은 천국으로 향하는 바로 그것이다. (갈매기의 꿈, 리차드 바크)


- 아무리 작은 미련이 남더라도, 그 미련은 우리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씨앗이 된다.(부처)


- 짐승들은 밖의 것에서 두려움을, 인간은 자기 안에 있는 것 때문에 두려워한다

 

- 삶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방황이고, 하나는 여행이다. 내면의 방황이 끝날 때 

  삶의 진정한 여행이 시작된다.

 

  [뱀 발]

  ‘참...작품 제목 잘 지었다’는 느낌 밖에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유는 전혀 작품 제목과 내용이 어울리지 않는 그런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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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 청목정선세계문학 80
아더 밀러 지음, 유희명 옮김 / 청목(청목사) / 1995년 5월
평점 :
절판


추천 권유도 8


본 작품은 ‘세일즈맨의 죽음’, ‘세일럼가의 마녀들’ 그리고 ‘꿀맛’이라는 단편 세 개를 모아놓은 작품집으로 

지난 98년 처음 읽은 후 그 줄거리라든지 내용이 머리 속에서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어 다시 한 번

읽게 되었는데, 세 작품 모두 다시 읽었음에도 후회가 없는 그런 내용들이었다.

특히, 마지막 작품이었던 ‘꿀 맛’은 1900년대 초반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당시의 문제점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으로 – 세일럼가의 마녀들도 마찬가지 -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으로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세일즈맨의 죽음]

30년 가까이 근무하던 직장을 퇴직하고 순수한 마음만 갖고 ‘새 출발’ 해 보려 여러 회사를 기웃거려 보지만

나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러 퇴직자들 중 한 사람’ 혹은 큰 회사에 다녔던 사람으로서 뭔지 모르게 내가 

다니려고 하는 회사의 구성원과는 질적으로 다를 것 같은 사람으로만 여길 뿐 차고 넘치는 퇴직자 속에 있는

한 사람이라고 바라보는 시각 외에는 전에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 쌓은 지식이나 기술(?)은 그냥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는다.

퇴직 전 나만이 특화되어 있다는 능력은 사회가 인정해 주더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기업에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한 그냥 그런 것이다.

그런 저런 사정을 모른채 자신만만던 나는 한 번 두 번 면접에서 좌절을 맛보고 나니 이제는 길가에서 나를 

보고 어쩌다 놀래서 짖는 개들을 보게 되면 ‘저 녀석조차도 나를 무시하나 같은 자조섞인 한 숨이 나오기도

하여 씁쓸한 기분이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열심히 뛰려 노력하고 있다.

그런 일에 쉽게 무너져 버릴 나였다면 회사 다니면서 벌써 무슨 사단이 나도 벌써 났을 것이지만 아직은 

그런 점에 있어서 나의 멘탈은 강해서 절대 쉽게 무너지지 않고 있다.

이유는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내처럼 격려와 응원을 해 주는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의 아내는 무너져가는 남편을 음으로 양으로 지지해 주고 격려하며 힘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었지만 

주인공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역경을 헤쳐 나가려 하고 있었는데, 주인공이 자신의 부인이 보내는 응원과 

격려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행동에 옮겼어도 그렇게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작품 주인공은 힘들었을 것이다. - 거기다 아들 녀석들이 영 정신을 못차리는 상태라 더 힘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주인공의 그런 심정에 공감은 가지만 작품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죽었는지 묘사되어 있지 않았지만 

중간 과정을 보면 그의 죽음이 일상적인 죽임이 아닌 그 어떤 죽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누구든지 ‘그런 죽음을 생각했다면 그런 정신 자세로 죽기 살기로 뭔가를 해 보면 살 수 있는 게 아니야’라고 

쉽게 이야기들을 할 것이다. 그것은 본인 이야기가 아니라고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나는 아내라는 응원군 말고 또 나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신앙’이다.

나는 오늘도 내 책상 앞에 적혀 있는 성경 구절을 읽고 또 읽으며 나의 마음을 다지고 있다. 분명 응답해 주실

것이다. 그것도 차고 넘치게 말입니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4:1)

2.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4:13)

3.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23:10)

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14:13~14)

5.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이런 문구를 항시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있다. 나의 새벽이 열릴 때까지 말이다.


퇴직!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자기 회사가 아닌 이상 아니 자신의 회사라 할지라도 한 번은 마주할 수 밖에 

없는 단어이다. 작품 속 주인공 ‘윌리 로먼’에게 쓸쓸한 애도를 보내지만 그렇다고 죽긴 왜 죽나!!!

 

상기의 글은 퇴직 직후 써 놓았던 글인데,

시간이 흘러 어렵게 얻은 직장에서 자리를 잡았다가 개인적, 회사적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또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대기업에서30, 중소기업 두 곳에서 5년 이렇게 지냈지만 대기업 30년 동안 경험한 내용

보다 중소기업 5년 동안 마주한 경험이 더 많았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중소기업에서의 시간을 나의 귀중한 소득으로 이야기 해 본다면, 

우리나라 현실에서 중소기업이 정체 혹은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확인하였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중소기업의 자수성가형 CEO들은 펄펄 끓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자신이 

삶아 죽을 때까지 절대 타인의 이야기나 충고를 듣지 않는 공통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모든 중소기업이 다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데 천만의 말씀이다

100% 그렇다

비근한 예로 중소기업에서 출발해 자수성가해 대기업 수준의 기업으로 성장한 회사가 있는지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금방 알 것이다

내가 이 정도 자수성가했는데’, ‘너 같은 인간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회사를 이렇게 일구었는데’, ‘니가 

알면 얼마나 알아? 어디서 개 풀 뜯어먹는 이야기야라는 식의 아집과 독선으로 어느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런 CEO주변 측근들은 이런 CEO를 더욱 부채질하며 중국 희대의 간신 역아와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CEO자신이 삼고초려해 영입한 사람이라도 절대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의 

기분에 역행하는 발언을 하면 완전 개 무시하거나 그 길로 내 보내고는 한다

더욱 웃긴 것은 부하나 핵심 측근들의 이야기는 뒷전이고 정확한 자료 혹은 근거에 의한 이야기 보다는 

어디서 좀 세상 돌아가는 방귀를 좀 뀌는 인간들 이야기나 무속인 이야기는 철썩같이 믿는다는 것이며 

조금 기업이 잘 된다 싶으면 영업과 인맥관리를 이유로 필들로 나가 회사는 완전 뒷전이고 엉뚱한 사업

확장을 이유로 헛튼 짓거리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웃겨도 한 참 웃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CEO들 옆에 아첨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CEO들은 모른다

자신의 목에 그들의 빨대가 꽂혀 있는 것을, 아주 심각한 것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최 측근과 일가족에 의해 저질러지는 각종 비행 및 부조리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으며 그들 주위에 있는 주변인들만 탓한다

는 우연한 기회에 그런 모순된 CEO의 모습에 대해 직언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의 사업이 실력에 의한 것인지 운에 의한 것인지를 정확히 파악하셔야 하고, 목에 빨대를 꽂고 있는 

 사람들과 멀리하셔라

그러면 니가 알면 얼마나 아냐?’는 식이다. 듣지를 않는다.

그래서 나는 보따리를 쌀 수 밖에 없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금은 잘 나가고 있지만 세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이상 그 기업들은 분명히 빠른 시간 안에 수명을 

다 할 것이다. 그게 올바른 세상 아니겠는가?


지금도 회사를 다니지만 회사를 다닐만큼 다녔고 사람도 누구 못지 않게 만나고 대해 보았기 때문에 회사 및 

사회에서 기업과 관련되어 일어나는 각종 산전, 수전, 공중전, 화학전, 세균전, 동굴전을 비롯해 지하전 등을 

숱하게 겪어봐 어느 기업이고 회사 손잡이만 봐도 회사 사정을 금방 파악하는데 다시 말해 척 보면 비데오요 

안 들어도 오디오라는 것이다

방구가 잦으면 똥이 나온다.

우리의 중소기업 CEO들 대다수가 거의 망상 수준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보면 정확하다.

절재적으로 자신들의 실수는 인정하지 않는다

무슨 일만 터지면 정부가, 정권이, 아무개 지도자가 문제이고 박 모 정권과 이 모 정권 때문이라고 외친다

한심스런 작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중소기업체 사장들은 오늘도 멋진 옷 걸치고 골프장에서 우리나라 경제 상황과 코로나의 여파를 논하며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반성은 쏙 빼놓은 채 남 눈찔러 피눈물 받아먹을 궁리와 어떻게 하면  국가의 눈먼 돈

받아 먹을 궁리에 잔머리 쓰기에 바쁜 게 현실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다 나와보니 세상이, 자신이 어찌 보이겠으며 이꼴저꼴 보기 싫어 할 수 

없이 자영업에 뛰어드는게 아니겠는가?

당연히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가 이런데 원인이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세일럼가의 마녀들]

미국 역사에 있어 가장 오점으로 남아 있는 여러 사건 중 1692년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실제 있었던

‘마녀재판’을 소재로 다룬 작품으로 작품 말미에 있는 해설에서 ‘집단적인 공포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가치관을 조작해 낼 수 있는 거대한 조직의 횡포와 거기에 희생되는 개인의 양심, 인격과 존엄성의 문제가 

다뤄지고 있다’고 아주 어려운 이야기로 작품을 평가하고 있다.

굳이 이런 어려운 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옛날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벌어졌던 마녀 판이 작금을 사는 

우리 사회에도 벌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 아닌가 생각된다.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너무도 그 사례는 많기 때문에 나의 눈과 손을 바쁘게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툭하면 터져 나오는 우리 사회의 ‘마녀재판식’ 여론 몰이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조 모씨일가족 사건과 

정대협사건은 그런 사건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 는 지금은 상대를 향한 예리한 칼날일지는 모르겠으나 

언젠가! 반드시! ! 틀림없이! 자신을 향해 날아 올 비수 혹은 형언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철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꿀 맛]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녀의 이야기는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1900년 초반의 당시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모습인지 여부는 모르겠으나 성 관념과 결혼관이 바뀐 요즘 세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경박한 

삶의 한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른 이들은 어떤 관점에서 본 작품을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작품으로부터 무너져 버린 우리의 

‘공교육’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준 작품이었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공부 잘하는 아이라는 소리를 듣고 좋은 학교를 나와 공직에 나왔으니 실제 학교에서 대다수의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심정을 잘 알 수 있겠는가.

그러니 교육 정책과 아이들의 관심도는 항시 엇 박자를 만들고 있는 것이고 이도 저도 아닌 참 교육자를 

자처하시는 우리의 일부 멋진 선생님들은 ‘교육자 이전에 우리도 노동자’라는 의식 속에서 머리 싸매고 

광장으로, 길거리로 뛰쳐나가 아이들이야 학교에 관심이 있든, 과목에 관심이 없든간에 우선 나의 문제부터

해결하고 보자는 식으로 행동하고 이들을 관리 감독해야 할 학교의 최고 어른이 되시는 분들은 자신의 

자리를 어떻게 해서라도 유지해 보려고 그런 교육자님들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좋은 게, 좋은 것이다‘ 

라고 침묵 모드로 일관하셨던 게 바로 어제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진정한 스승이시라면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학생들이 집에 머물며 공부할 때 학교에 나오셔서 깊은 반성과 

함께 백년지대계를 확실히 세우시는 계획을 잘 다듬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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