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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필 - 사론(史論)으로 본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번역팀 엮음, 김문식 감수 / 한국고전번역원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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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 9

 

역사를 모르는 자에게는 미래가 없지만 역사를 알고도 개선하려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는

미래는커녕 오늘도 없다.

 

작품을 읽으며 우리 선조들이 자신이 모시는 주군을 어떻게 모셔왔는지에 대한 단면을

엿보는 시간이 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선조들처럼 주군을 모시며 자신의 목숨까지도

초개와 같이 던지며 주군을 향해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현재 우리의 주군인

대통령 곁에는 얼마나 존재할까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도 되었다.

이는 아마도 어느 땐가 대통령이 배석한 보좌진을 향해 꼭 대면 보고를 해야하나요?“

라는 질문을 던질 때 웃음으로 화답하던 우리의 자랑스런 보좌진들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국정농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고 있는 나라에서 혼미한 시대를 살고 있는

후손들을 사필로서 군주에게 쓴 소리를 하셨던 선조들이 바라본다면 무어라 이야기하고,

후세를 위해 무엇이라 기록하실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그냥 답답하다는 느낌 외에는

달리 다른 생각이 들지를 않는다.

 

십 수 년째 작품이라는 것을 읽고 나름대로의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짧은 지식을 갖고

나만의 잣대를 들이대 작품에서 얻었던 여러 소회에 대해 시시비비를 논하고는 하였으나

작금 벌어지고 있는 이 시대의 일그러진 리더(?)들의 저급한 플레이를 보면서 열화와

같이 솥아내고,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고갈되어 더 이상 쓰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으나

작금의 우리의 사태를 옆에서 관망하며 고소해하며 지랄하는 쪽바리 색히들과 툭하면

지랄하는 마적떼 후손 색히들의 병신 삽질하는 소리와 깁 밥 옆구리 터지는 저급한

행동으로 인해 혼자만의 울분(?)이 터져나와 여기에 조금 끄적거려 본다.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웃 집 색히들이 그렇게 지씨부리도록 떠들게 만든 우리의 현실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너나 할 것 없이 정치사회판 개그콘서트웃차사를 보는 듯해서

우리 사태를 갖고 짓까부는 색히들만 갖고 난리치기도 뭐하지만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이런 혼란한 와중에 누구보다 정신을 차려야 할 잠룡인지 지렁이들인지는 모르겠으나

팔삭둥이 같은 인간들이 자신들의 본분을 잊고 자기만이 시대의 정신이라고 깐족대고

이죽거리는 것을 보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인간들로 밖에는 보이지를 않아 패 죽이고

싶은 심정이다.

작품에 대한 소회를 적기보다는 작금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로 작품의 내용을 대신해

마적떼 후손들이 지랄 염병을 하는 싸드 문제와 쪽바리 색히들이 지랄하는 소녀상

설치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해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모든 이야기에 앞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에 대한 반성하는 의미에서 작금 우리

사회의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김영란 법의 폐해에 대해 바라보는 우리의 언론들의

시각과 언론인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먼저 김영란 법이 시행되어 우리나라 농축산 및 화훼 농가는 물론 중소 음식점까지

어느 정도 심각한 경영상의 문제에 직면했다고 우리의 언론들은 연일 난리도 아니다.

그런 내용은 상당부분이 맞고 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법으로 인해 마치 우리

경제 전반이 붕괴될 것 같이 마치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난리를 치는 언론 보도에

대해 개인적으로 나는 동의를 못하겠다.

마치 김영란 법에 의해 모든 것이 망가진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면 김영란 법이 발효되기

전에는 우리 경제가 뇌물선물 공화국이어서 경제가 활성화 되었었다는 이야기인지

반문하고 싶고 김영란 법을 폐지하면 여기저기서 선물뇌물이 활개를 쳐서 경제가

활발해 진다는 논리인지를 묻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그동안 받아 오던 선물을 예전처럼 제대로 받지 못해 그런

기사를 쓰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소상공인과 관련 종사자들과 업종을 위해서 앓는

소리를 하는 것인지가 자못 궁금하다.

그런 기사나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런 보도를 하는 사람들이 하루라도 이 땅에서

살아보고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여기 저기 눈치보며 살아야 하는 참담한 로 살아

보고 이야기를 하라는 이야기다.

선물 한 번 받아본 적 없고, 축화 화한 하나 받아 본 적 없으며 어쩌다 외식하려면 얇은

지갑을 원망해 왔던 대다수의 서민들은 언론들이 이야기하는 김영런 법의 문제에 그리

심각한 동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지적하려면 모두가 공감을 얻도록

해야지 시류에 편승해 우리의 농축산과 화훼 산업이 무너지고 있다는 부분적인 논리로

나라 전체를 뇌물공화국으로 몰고 가는 언론들을 보면 너무 편협한 생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대다수의 침묵하는 국민들은 과거 스크린 퀘터제 도입 반대 이유가 그랬고, 사패산

도룡농 문제로 스님 앞에 어느 청와대 수석이 읍소할 때 그랬으며, 소고기 수입 반대를

외칠 때 어느 연예인이 수입고기 대신 청산가리를 먹겠다고 외칠 때 우리 모두를 파탄

으로 몰고간다고 아우성을 쳤음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국민의 눈높이에서 기사를 언급하는 것은 좋으나 이익과 폐해

그 모두를 아우르는 정확한 기사로 무지몽매한 국민을 선도했으면 하는 바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서 싸드배치문제와 위안부 소녀상설치에 관한 문제로

먼저 싸드 배치문제는 마치 우리가 중국의 한한령으로 인해 모든 경제적 활동이

지금 당장 죽어가는 것처럼 보도를 해 버리면 마적떼 후손 색히들이 너무나 즐거워할

것이라는 것이 뻔한데도 연일 호들갑을 떨면서 보도를 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우리와 중국이 교역을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는가. 지금의 보도 논리라면 중국과 교역이

없던 시절의 우리나라는 먹고 살만한 게 없었고 굶어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는 이야기다.

참으로 우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연예인들의 공연이 취소되는 것은 그 색히들 수준이 낮아서 공연허가를 안 해 주는

것이고 예술이 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작태를 벌이는 데 왜 우리가 그리도 호들갑

을 떠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산업이 연예분야만 있는가?

관광객이 안 온다고 우리 경제가 당장 작살나는가? 그 색히들 얼마나 더러운 색히들이고

씨그러운 놈들인데 돈 좀 써 준다고 알랑방귀를 뀔 이유가 없다.

지금까지 우리가 짱꼴라 색히들 때문에 먹고 살아 온 것처럼 침소봉대해서 호들갑을

그만 떨었으면 한다.

제주도 주택 및 토지거래 시장이 짱꼴라 큰 손이 안 들어와 분양이 안 된다고도 난리다.

마적떼 후손 색히들이 제주에 관광 와서 얼마나 난리를 치고 지랄을 해 왔는지 또 강북

동대문 상권근처에서 무단횡단으로 우리의 운전자들의 가슴을 얼마나 쓸어 내리게 하고

있는지를 우리 모두는 보도를 통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푼 돈 좀 받아 보겠다고 너무

굽신거린다.

우리가 벌이는 사업마다 마적떼 후손 색히들이 반대한다고 포기하고 재 검토한다면

앞으로 그 어떤 것도 모두 그 놈들 눈치보며 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자결권에 관한 사항에 대해 이웃 국가에 다 물어보고 하면 나라꼴이 뭐가 되겠나

여하튼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우리의 언론들은 또 어떤가?

그런 것 갖고 내부 갈등을 유발하는 이야기에 집착하지 말고 마적떼 색히들이 우리의

영해에서 해경 목숨을 위협하고 해적질하는 것과 미세먼지로 우리를 괴롭히는 환경

문제를 국제사회에 공론화시켜 집요하게 몰아붙이는 게 언론의 올바른 사명이지 연일

우리의 안보와 관련된 일을 갖고 정부만 몰아 부치고 있는 지렁이 후보들 편에 서서

난리를 치고 있으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중국이 우리의 싸드를

이유로 보복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납품하는 제품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심층 분석도 하지 않고 무작정 안 되면 다 싸드 탓으로만 돌리려는 보도 태도 역시

반성해야 할 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진정으로 그들이 싸드 한 개 배치한 것 갖고 지랄하면 연평도에도 배치하고 설악산에도

배치하자 하나 갖고 지랄하면 두, 세 개 더 설치하자. 그런 이야기를 왜 못하는가?

환구시보인지 개지랄 신문인지가 짱꼴라 색히들 국익을 대변하는 이야기를 대서특필할

때 우리의 자랑스런 신문과 언론은 미친년 기사와 부족한 군주 깍아 내리기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었고, 어느 뱀눈깔 녀석의 아들을 운전병으로 채용한 것이 이렇다 저렇다

궁시렁거리기만 할 뿐 짱꼴라 색히들에게 한마디 뻥긋 못하는 삽질하는 소리만 하고

앉아있으니 한심하다 못해 불쌍한 생각 밖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를 않는다.

세월호 속의 학생들과 세림이는 죽어서 원통하다고 울고 있고, 가습기 피해자들은 연일

관련자들 처벌하라고 외치고 있고, 배고파 막걸리 2병 훔쳐먹다 걸린 젊은이는 일자리가

없어 한숨쉬고 앉아 있는데, 우리의 언론은 표 세기에 바쁜 잠룡인지 지렁이들 지랄하는

모습이나 취재하고 의기양양하게 자신들의 본분을 다 한 것처럼 폼잡고 앉아 있으니

한심하다 못 해 불쌍한 생각 밖에는 없다.

 

지난 주 베트남 출장을 다녀왔다.

베트남은 중국에 의해 오랜 세월 지배를 받은 민족으로 역사적으로 양국은 철천지 원수

지간이라 한다. 우리와 일본과의 관계 이상으로 적대시하는 상황이다.

어느 주재원이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베트남인들이 중국인을 얼마나 싫어하냐 하면 중국인 손님이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절대

중국인들에게는 미소는커녕 써빙을 위해 곁에 가지도 않습니다. 얼마전 중국인 회사에

대표로 일하는 한국인이 본사에서 중국인이 와서 접대를 한다고 자기랑 친한 베트남

업소에 손님과 같이 갔는데 자기에게는 무지하게 살갑게 대했지만 중국인 본사 손님에게

는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써빙도 하지 않으려 해 참으로 난감했었다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베트남 종업원들에게 평소보다 더 더 많은 팁을 주겠다고 제안을 하자

그 날 써빙하러 나온 아가씨들이 전부 그만두고 집에 가겠다고 해 굉장히 곤란했다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얼마나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이야기인가.

 

현대사를 보면 중국이 베트남을 대상으로 주접을 떨다 된통 당한 적이 있습니다.

인민 해방군 20만명이 베트남을 침공해 왔으나 결과는 1만 여명이 작살나고 도망가는

그런 전쟁이었죠. 그런 뒤부터 베트남한테는 찍소리도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마적 후손색히들은 자기들이 세상의 중심이라도 여겨 인접 국가를 예로부터 아주 우습게

보는 그런 놈들입니다.

예로서 서융(西戎, 중국인들이 서방 이민족을 일컫던 말)’, 남만(南蠻, 중국인이

자기나라 남쪽에 사는, 깨지 않은 겨레를 얕잡아 일컫는 말)벌레’, 북적(北狄, 중국

북쪽에 사는 족속들을 멸시하여 이르는 말)이리인데, 우리 민족만은 동이(東夷) ,

큰 활을 찬 사람들이라는 용어를 써 왔습니다. 아마도 양만춘 장군이 쏜 화살에 의해

자기네 황제 눈깔이 빠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말해 우리 민족을 두렵게 여긴다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날 싸드 문제로 우리가 된통

당하고 앉아 있으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이런 우리가 그런 색히들의 자잘한 제한조치에

알랑방귀나 껴서 되겠습니까. 마적떼 색히들에게는 강하게 나가야 합니다

 

또 한가지 위안부 소녀상문제에 관한 사항입니다.

소녀상 때문에 일본 대사가 자국으로 소환되었다고 합니다. 쪽바리 대사가 한 달째 돌아

오지 않는다고 또 언론은 호들갑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는 데 그 색히 오지 말라고 이야기 해 주고 싶습니다.

언제 그 쪽발이 대사가 국내에 있어서 양국간의 관계가 우호적이었던 적이 있었습니까?

그 색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그 색히들은 이웃이 어려울 때 우리를 졸로 보고 도움은커녕 어려움만 가중시켰던

잡놈들입니다.

IMF때는 빌려 준 돈 떼인다고 만기도 안 된 돈 싹 걷어가고, 위안부 소녀상 강행하니까

통화 스와프 협정 중단한 양아치 색히들입니다. 그게 나라입니까? 조폭 집단이지.

개 씨부랄 말코같은 색히들에게 절대 꿀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없어 교역이 어려우면 모라토리옴나 국가 부도를 내면 되고 그 색히들에게 아쉬운

소리 안하면 그만인 것입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면 되는 것입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라니깐 100억 정도 줘 놓고 책임을 다했다고 저 안하무인격

난리를 치는 색히들하고 무슨 놈의 협력이고 협치를 하자는 것입니까.

100억원 돌려주고 우리의 기존 방식대로 세계 곳곳에 위안부 잔혹상을 기억하게 하는

광고와 영상물을 지속적으로 전파해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소녀상은 독도의 정상에도, 마라도에도 일본쪽을 향해 세워야 합니다.

자유의 여신상보다도 더 큰 것으로 말입니다. 

위안부 소녀상은 일본 색히들 대사관뿐만이 아니라 일제 침략당시 국내에 들어와 우리

선조들의 고혈을 빨아 먹은 쪽바리 기업 앞에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작은 일, 예를 들어 일본식 주점을 찾더라도 독도를 다케시마로 주장하는

단체를 지원하는 쪽바리 기업이 만든 제품을 찾지 말아야 할 것이며 말로는 일본기업

색히들 반대하며 외치고 나서 목마르다고 다케시마를 후원하는 기업들이 만든 맥주를

마시고 있으니 그 색히들이 우리를 얼마나 졸로보고 깔보겠습니까?

인간이 인간을 미워할 수 없어 하늘이 그 색히들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메이지 천황이라

불리우는 놈에게 천벌을 내리지 않았습니까? 그 천황 놈은 당뇨와 만성신염을 앓다가

요독증으로 되졌다고 합니다. 쪽바리 색히들은 대대로 그런 천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도 여기 지면을 통해 이야기했지만 우리의 군대가 공해상에서 군사훈련을 할 때는

반드시 일본에 지진을 유발하는 단층대를 찾아내 그 쪽에다 폭탄은 물론 기뢰, 대전차

미사일, 포격 훈련 등을 집중해 일본 색히들 지역에 어떤 형태로든 지진이 일어나게

만들어 그 색히들 영토를 지구상에서 아주 흔적을 없애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욱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김정은이에게도 정확한 좌표를 찍어줘서 대포동 미사일,

무수단 미사일 등을 우리 영해에 쏟아 붓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두고두고

우리 후손을 상대로 지금같은 저질스런 일을 지속적으로 반복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신문을 아직 상영도 안 한 군함도라는 영화를 갖고 지랄합니다. 병신들...그렇게

캥기는 게 많은지 사사건건 지랄입니다. 영화진흥과 관련된 일을 하는 문체부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쓸데없는 블랙 리스트 만들지 말고 이런 영화 만드는 제작사 리스트를

만들어 제작비를 왕창 지원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 색히들이 쓸데없이 지랄하면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졸라게 갈궈야 합니다.

강남 최모시깽이 아줌씨를 위해 문체부가 편성해 주었다는 예산을 활용해 유럽지역은

물론 세계 각처에 무료 상영관을 만들어 쪽바리 색히들이 우리와 역사 앞에 지은 죄를

까발리는 영화를 주구장창 무료로 방영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화관 앞에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계시는 여러 국가의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을 앉혀 놓고 기자회견을 해야

합니다.

주접떨고 지랄하다 원자폭탄 두들겨 맞은 색히들이 지들이 피해자라고 난리를 피우고

있습니다. 이 색히들의 적반하장격으로 지랄대는 싹을 완전히 잘라내야 합니다.

동네 양아치가 어느 선량한 사람 두들겨 패다 그 사람이 자위적인 방어조치를 하기 위해

휘두른 주먹에 맞아 상처가 났다고 양아치가 피해자라고 우기는 그런 형국입니다.

개색히들....아베 색히 면상 좀 보십시오 꼭 쥐색히처럼 생겨갖고 하는 짓도 우리나라

시궁창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시궁쥐처럼 생겨서 하는 짓도 졸라 얄밉습니다.

우리에게 돈을 빌려주면 떼일 것 같다고 개소리한 아소다로인지 존만한 색히는 난쟁이

똥짜루만한 색히가 터진 입이라고 항시 우리에게 독설을 내뱉곤 합니다.

이참에 계룡산에 계신 여러 무속인 여러 애국 무속인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이 항상 접신하시는 그런 신령님들을 부르셔서 그 색히 아가리에 독침을 물리게

하는 것이 무속인 여러분들이 그동안 계룡산에서 굿을 한다, 신점을 친다해서 자연을

작게나마 훼손헤 왔는데 이렇게 하는 것만이 그 모든 잘못을 덮고 애국하는 가장 좋은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해 봤는데 제 생각이 잘못되었는지요?

우리는 도대체 무어란 말입니까?

짱꼴라한테 치이고 쪽바리 색히들에게 업신여김 당하고 말 한마디 못하고 앉아 있으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사필인 언론인 - 여의도에 계시는 분들에 대한 기대는

예전에 포기를 했기 때문에 더 이상 기대도 안 합니다 - 당신들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잠룡인지 지렁이인지...그대들도 정신차리쇼.....나같은 민초가

나만의 사필로서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나의 후손 중 한 명이 어느날 할아버지는 잠룡이라고 하지 않고 지렁이라고 했어?’

그러면 내가 뭐라 답할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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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버린 천재들 - 역사의 선각자로 부활하다
이덕일 지음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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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추천권유도 : 6

 

작품에서는 총22분의 인물들이 소개되고 있다.

소개되신 분들은 살아계실 동안 세상으로부터 높이 추앙받았던 분도 계시겠지만 거의가

그 분들이 살아계실 동안에는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다가 역사에 관심 있는 일부 개념있는

후손(?)들이 그 분들의 숨겨졌던 업적들을 발굴하면서 추앙받을 만한 분들이라고 후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부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대부분이 저자의 주관적 평가에

의한 것이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 모두가 완전히 합의한 인재(?)’라고 평가되는 그런

인물들은 아니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소개한 인물 중 작품을 읽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요즈음

우리나라 돌아가는 형국과 끝모를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는 우리의 정치사를 보면서 유독

세 분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첫 번째 인물은 남명 조식 선생이다.

이 분은 여러 역사관련 서적을 접하게 되면 꼭 거론되는 인물이다.

조식 선생은 조정으로부터 외척인 윤원형 일파가 활개치던 조정에 나갈 마음이 없었지만

거주지 인근의 단성현감 자리를 명종이 제안하지만 이를 사양하고 오히려 작심하고 주군

명종을 향해 재야 인사로서의 의견을 강력하게 제시하는데 이것이 [단성소(丹城疏)]

불리는 을묘사직상소이다.

 

전하의 나랏일은 이미 잘못되었고, 나라의 근본은 이미 없어졌으며, 하늘의 뜻도 이미 떠나버렸고 민심도 이반되었습니다. 낮은 벼슬아치들은 아랫자리에서 히히덕

거리며 술과 여자에만 빠져 있습니다. 높은 벼슬아치들은 빈둥거리며 뇌물을 받아

재산 모으기에만 여념이 없습니다. 온 나라가 안으로 곪을대로 곪았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사직상소가 올려진 배경은 중종의 대를 이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명종은 어머니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는데 외척인 윤원형 일파가 권력을 농단하면서 민심이 흉흉해

지면서 급기야 임꺽정의 발호와 왜구의 침략 등으로 국내외의 혼란이 가중되던 시기로

그로 인한 가장 고통받는 민초들의 삶을 목격하게 되자 조식 선생은 사직상소를 올려

신성불가침적인 존재인 국왕과 대비를 향해 일갈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심지어

 

대비(문정왕후)는 구중궁궐의 한 과부에 불과하고 국왕은 아직 어리니 돌아가신 왕의 한 고아일뿐이다

라는 상상도 못할 극언을 남기며 왕에게 충언을 올리고 있다.

그는 또 왕이 좋아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고도 따져 물었다. 왕이 좋아하는 것에 따라

나라의 존망이 달렸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상소문을 받아본 명종은 본질은 외면한 채 고아과부라는 표현에 격노하며 조식을

불경죄로 처벌하라고 명령했다.

이 일을 두고 [조선왕조실록] 사관은 왕이 신하의 상소에 대해 답을 하지 않고 도리어

문책하는 것은 자유로운 언로를 막는 것이라 하면서 임금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게 되어 모두 비위 맞추는 데로 몰리게 될 것이다라며 애석해 했다.

재야 지식인으로서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조식은 이 상소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한편으로는 국왕도 무시할 수 없는 재야 사림의 영수로 우뚝 서게 되었다.

 

두 번째 인물은 백헌(白軒) 이경석 선생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1613(광해군 5) 진사가 되고 1617년 증광 별시에 급제

했으나, 이듬해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비 상소에 가담하지 않아 삭적(削籍)되고 만다.

인조반정 이후 알성 문과(謁聖文科)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부정자를 시작으로 선비의

청직으로 일컫는 검열·봉교로 승진했고 동시에 춘추관사관(春秋館史官)도 겸임하였다.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으로 인조가 공주로 몽진하자 승문원주서로 왕을 호종해 조정의

신임을 크게 받는 등 나중에는 이조좌랑·이조정랑에 올라 인사 행정의 실무를 맡는다.

 

정묘호란이 발발하자 체찰사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활약하는데 이 때에 선생이 쓴

격강원도사부부로서 檄江原道士夫父老書는 특히 명문으로 칭송되고 있다.

병자호란 당시에는 인조를 호종해 남한산성에 들어가기도 했으며 인조가 항복하고

산성을 나온 뒤에는 도승지에 발탁되어 예문관제학을 겸임하며 후대에 크게 문제가 된

삼전도비문 三田渡碑文을 지어 올린 당사자이기도 하다.

삼전도 치욕이후 청나라에 볼모로 가 있던 소현세자(昭顯世子)를 호종하여 심양에서

어려운 대청 외교(對淸外交)를 풀어나가기도 했던 인물이다.

당시 명나라 선박이 선천(宣川)에 들어온 일이 청나라에 알려지자, 그 사건의 전말을

사문(査問 : 조사해 답변함.)하라는 청나라 황제의 명을 받고 서북 지역으로 돌아왔다.

조선의 관련 사실을 두둔하느라 청나라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영부조용(永不調用 : 영구

히 등용되지 못함.)의 조건으로 귀국해, 3년 동안 벼슬에서 물러났다. 1644년에 복직,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좌의정을 역임한 뒤 이듬해 마침내 영의정에 올라 국정을

총괄하였다.

 

그러나 1646년에 효종의 북벌 계획이 이언표(李彦標) 등의 밀고로 청나라에 알려져

사문사건(査問事件)이 일어나게 되었다. 청나라의 사문사는 남별궁(南別宮)에서 영의정

이경석과 정승·판서 및 양사(사헌부·사간원)의 중신 등을 모두 세워놓고 북벌 계획의

전말을 조사, 죄를 다스리고자 해 조정은 큰 위기를 맞는데 이에 끝까지 국왕을 비호

하고 기타 관련자들까지 두둔하면서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 국왕과 조정의

위급을 면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청나라 사신들로부터 대국을 기만한 죄로 몰려 극형에

처해졌으나 국왕이 구명을 간청해 겨우 목숨만을 부지, 청나라 황제의 명으로 백마산성

(白馬山城)에 위리안치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1653(효종 4) 겨우 풀려나 관직에 재 등용하게 되었으며 1668(현종 9)

신하로서는 영예인 궤장(几杖)을 하사받는다.

 

정치적 생애는 인조·효종·현종의 350년 동안 시국의 안팎으로 얽힌 난국을 적절하게

주관한 명상(名相)으로 보냈다. 하지만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생애 말년에는 차츰 당쟁

속에 깊이 말려 들어가, 사후에 특히 삼전도비문으로 심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비문의 찬술과정도 인조는 비변사의 추천을 받아 몇 명에게 비문 찬술을 명하는데,

장유, 이경전, 조희일, 이경석에게 명하여 삼전도비를 짓게 하였는데, 장유 등이 상소해

사양하였으나 임금이 따르지 않았다. 세 신하가 마지못하여 지어 바쳤는데 조희일은

고의로 글을 거칠게 만들어 채용되지 않기를 바랐고, 이경전은 병 때문에 짓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경석이 글을 썼다.(인조실록)

 

이런 과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누구도 그를 비문의 찬술자로 비판하지

못했는데 이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훗날 문제적 인물인 송시열과 그 제자들로부터 비문 찬술을 이유로 수많은

공격과 수모를 당하게 된다.

 

세 번째 인물은 잠곡(潛谷) 김육 선생이다

1605(선조 38)에 사마시에 합격해 성균관으로 들어가지만 광해군 1에 동료들과 함께

올린 문건이 문제가 되어 문과에 응시할 자격을 박탈당하자, 성균관을 떠나 경기도 가평

잠곡 청덕동에 은거한다. 1623년 인조가 즉위하자 의금부도사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

2월에 음성현감이 되어 목민(牧民)의 직분을 다한다.

주요 관직에서 자신의 임무를 깔끔하게 처리하면서 한편으로는 민초들의 어려움을 해소

시켜주기 위해 대동법의 시행을 건의하는 한편, 수차(水車 : 무자위·물레방아)를 만들어

보급했으며, 구황촬요 救荒撮要벽온방 辟瘟方등을 편찬, 간행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화폐의 주조·유통, 수레의 제조·보급 및 시헌력(時憲曆)의 제정·시행 등에

착안하고 노력하는 한편, 유원총보 類苑叢寶·황명기략 皇明紀略·종덕신편

種德新編·송도지 松都誌등을 저술, 간행하기도 하였다.

 

16495월 효종의 즉위와 더불어 우의정이 되자, 대동법 확장 시행에 적극 노력하지만

대동법의 실시를 반대하는 김집(金集)과의 불화로 이듬 해 물러앉는다. 잠시 향리에

머무르다가 영의정에 재 임명되면서 대동법 확장 실시에 또다시 힘을 기울여 충청도에서

시행하는데 성공했고, 아울러 민간에 주전(鑄錢)을 허용하는 일도 성공하였다.

1654년 대동법의 실시를 한층 확대하고자 호남대동사목 湖南大同事目을 구상하고,

이를 16577월에 효종에게 바쳐 전라도에도 대동법을 실시하도록 건의한다.

그러나 이 건의에 대한 찬반의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죽어, 이 사업은 그의 유언에

따라서 서필원(徐必遠)에 의해 뒷날 성취되었다.

 

근세라는 시대를 평가함에 있어 경제적으로 중요한 키워드는 '상품화경제'로 조선 후기

상품화 경제를 논함에 있어서 대동법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 잠곡은 다음과 같은 조선후기 상품경제발달의 세 가지 결정적인 과제 모두에 기여해

그 중 두 가지를 성공시켰다. 1)대동법 전국 실시, 2) 동전 유통, 3) 원격지 상업 활성화

이 중 대동법은 말 그대로 그의 정치 생명을 건 대역사였으며,

동전의 유통은 효종에게 10년간 추진할 것을 허가 받고 강력하게 추진하였으나, 결국

효종의 지시로 결국 좌절되었다. 그러나 개성과 평안도, 울산 등지에서는 동전이 계속해

사용되었고, 1678년 묵제 허적에 의해 동전 유통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김육은 1658년 세상을 떴으나, 1677년 경상도에서 대동법 시행을 갈망한다는 상주가

올라와 마침내 경상도까지 확장된다. 

 

세 분의 인물들이 행한 업적과 행동을 요즘 우리의 정치, 경제사에 대비해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별도의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큰 공감으로 다가설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 우리가 차선책으로 뽑았던 리더의 일탈된 행동으로 모처럼 찾아온 호기를 만난

비집권 세력과 세칭 잠룡(?, 웃기는 짬뽕들이다. 용은 무슨 용인가 지렁이들이지)들이라

불리우는 이들이 벌이고 있는 봉숭아학당 수준의 비열한 정치공세와 오직 입으로만 나불

거리며 촛불 민심에 어떻게든 올라 타 보려는 저급한 야심을 보면서 그들이 과연 진정

국민과 민생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 자들인지가 정말 궁금했다.

 

이런 이들을 보면서 모후에게 고아과부라는 기개있는 직언으로 고언을

올리던 조식 선생이 살아오신다면 또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총대를 메고, 글 배운 것을

천추의 한으로 삼으며 삼전도 비문을 적어 나갔던 이경석 선생과 민심의 진정한

어려움을 풀려고 노력했던 잠곡 선생이 살아 돌아오신다면 내 후손들이 이지랄하는

꼴을 보려고 그리 노력했던가?“라는 한탄아닌 한탄을 하시지 않으셨을까?

아무튼 이 시점에 나는 위의 세 분은 지금 이 시기에 우리나라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참다운 관료상이자 진정으로 필요한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그런 시간이었다.

일개 범부(凡夫)가 외칩니다.

촛불은 우리들이 들겠으니 정치인 그들은 촛불대신, 머리띠를 동여매고 길거리에서

목놓아 외치지만 말고 자신의 자리에서 시시각각 조여오는 외국의 경제적 파상 공세는

물론 북핵문제를 포함한 민생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리더의 헛발질로 공전만하고

있는 우리의 현 상황을 하루 빨리 타개해 주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정말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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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톨스토이의 마지막 3부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상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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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 7

  

보통 세계 3대 악처라면 톨스토이, 모차르트, 소크라테스의 아내를 꼽는다.

그러나 그녀들을 단순히 사람들이 '악처'라고 지칭하기 전에 먼저 남편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허구한 날 "네 자신을 알라."며 돈 한 푼 벌지 않고 떠돌아다녔고

[모짜르트]는 음악적 천재성 때문에 항상 귀부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며

[톨스토이]는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웃에게 다 나누어주고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이렇게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던 남편들에게 아내는 당연히 잔소리를 해야만 했을 것이며

그들을 추종했던 여러 사람들에 의해 그들의 아내들은 악처가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본 작품의 저자 [톨스토이]의 부인 소피아(Sophia)는 악필인 남편의 작품들을 깨끗하게

정서해 주는 역할을 했고, 무려 13명의 자녀를 출산하여 9명의 자녀를 직접 양육하느라

가정사는 모두 그녀의 몫이었다.

톨스토이가 노년에 사유재산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공산주의 사상으로 인해 가족들과는

한마디 상의 없이 재산을 처분하려고 하자 그녀는 남편의 서재를 뒤지게 되었고, 이를 본

톨스토이는 홧김에 가출하여 기차역에서 폐렴으로 사망한다.

결론만 보면 아내 소피아로 인해 톨스토이가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뒤늦게 발견된 그녀의 일기장을 통해 톨스토이가 자신의 작품과 이상에 매달려 가정을

돌보지 못한 사람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다시 말해, 톨스토이는 남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못난 사람으로 인생과

세상에 대해서는 뛰어난 통찰력을 가졌을지는 모르겠으나 아내의 심정은 조금도 이해하질

못했던 '찌질남'이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어 갈 때, 아내 크산티페(Xanthippe)는 그를 위해 울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비참한 죽음을 보이기 싫어 아내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라

했지만, 그녀는 떠나지 않고 죽어가는 소크라테스를 끝까지 품에 안고 있었다.

 

모짜르트는 당시 19세의 콘스탄체 베버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며 결혼에 이른다.

하지만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로 원만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지 못한다.

 

모차르트는 결혼 이후 현안 4중주곡,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바니 등에 이르기까지 대작을

작곡했지만, 콘스탄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 아이들 중 두 아이만 살아남고 연이어

죽는 비극을 맞는다.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나고자 떠난 유럽 연주 여행은 모차르트를

오히려 빚더미에 앉게 했고, 결국 파산에 이른다.

콘스탄체는 천재 음악가를 꾀어내 결혼하고 사치와 허영 때문에 살림을 궁핍하게 만든

악처라는 평판을 들었지만,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그녀의 사랑이 있었기에 모차르트의

수많은 걸작들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게 후세들의 평가다.

작품 이야기 전에 뜬금없이 악처이야기를 꺼낸 것은 세계 3대 악처 중의 한 명을 둔

[톨스토이]라는 분의 작품이라 그렇다. 아내를 악처로 평가받게 만들어 놓고 작품과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아이니컬해서 여기에 옮겨 본 것이다.

작품에 기록된 내용의 10%만 톨스토이의 결혼 생활에 적용했어도 그것이 사실이던

사실이 아니던 간에 톨스토이의 그녀는 오늘날 그런 욕(?)을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품에서 언급하고 있는 여러 시들 중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을 여기에 간추려 정리해

보았다.

 

- 우리는 쓸모없는 것은 너무도 많이 알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우리 자신을 알지

   못한다.   

-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현재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 혀 끝까지 나온 나쁜 말을 내뱉지 않고 삼켜버리는 것.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음료이다. 언제 어떻게 말하는지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떻게

   침묵해야 하는가다.

- 지혜롭고 친절한 사람이 느끼는 기쁨은 그 자신의 양심에 있는 것이지 남들의 입술에

   있는 것이 아니다.

- 30분 후에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 생각의 힘은 위대하다. 이 힘은 축복이나 저주의 말을 통해 발산된다. 좋은 생각인지

   나쁜 생각인지에 달렸다.

- 확신하지 못한다면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라 이는 아주 중요한 원칙이다.

- 작은 구멍 하나에 항아리의 물이 다 새어버리듯 단 한 사람이라도 미워하면 그 인생은

   비어버린다.

- 오만은 어리석음과 함께 다닌다.

- 육체의 욕망은 무언가 더 달라고 떼쓰는 아이와 같다. 더 많이 줄수록 더 많은 요구가

   이어지고 여기에는 한도가 없다.

- 진리는 손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 햇살 아래 걸을 때 생기는 그림자처럼 늘 인간을

   따라다닌다.

- 인간이 아무리 모양을 잡아준다고 해도 결국 나무는 타고난 방식으로 자란다.

   어린 아이를 벌줄 때에도 이것을 기억하라. 천성이 더 강하기 때문에 아이는 결국

   그 잠재력대로 자란다.

-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자기 모습을 본다.

   어리석은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다른 낯선존재로 여긴다.

- 절망감을 느낄 때면 스스로를 환자로 생각하라.

   너무 많이 움직이지도 무언가 행동하지도 말고 상태가 좋아지기만을 가만히 기다려라.

- 우리에게 일어나는 나쁜 일들을 환자가 먹는 약처럼 생각하라. 약은 맛이 쓰지만 몸을

   고친다. 고난과 역경은 영혼에는 약이 되므로 기뻐하라.

- 무언가 두렵다면 그 이유가 바깥이 아닌 바로 자기 안에 있음을 기억하라.

- 자신의 허물은 남의 눈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 지옥은 즐거움 뒤에 숨어 있고, 천국은 노동과 고통 뒤에 숨어 있다.

- 자기 습관의 주인이 되라. 습관이 우리의 주인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 시간은 지나가 버릴지 모르지만 내뱉은 말은 그대로 남는다.

   소리내어 하지 않는 말은 금이다.

- 때로는 침묵이 가장 현명한 대답이다. 손보다 혀가 더 많이 휴식하게끔 하라.

   침묵은 무지하고 무례한 이에 대한 최고의 대답이다.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해 후회스러운 일이 백 가지 중에 하나라면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해버려 후회스러운 일은 백 가지 중 아흔아홉이다.

- 일할 때는 영원히 살 것처럼 하고 남을 대할 때에는 오늘밤에 죽을 것처럼 하라.

- 교육을 못 받았다고 두려워하지 말라. 성장 속도가 더디다고 불안해하지 말라.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하는 일은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것이다.

- 자기 안에 없는 행복은 다른 어디에도 없다. 행복은 타인을 사랑하는 능력이다.

-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있는 것은 현재뿐이다.

   현재의 삶은 매 순간이 그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하다.

-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은 모두 한순간에 주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얻어야 한다.

- 삶이 곧 끝나버린다고 생각하며 살라 그러면 남은 시간이 선물로 느껴질 것이다.

-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진리가 항상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는 알려준다.

-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기 보다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라

   그러면 삶의 자신감과 활력을 얻게 될 것이다.

- 행복하지 않다면 자신을 탓할 수 밖에 없다. 신은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도록 창조했기

   때문이다. 불행은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하는 데서 찾아온다. 행복한 이는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한다.

- 즐거움을 추구하지 말라. 대신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즐거움을 찾으라.

- 자신에게 닥친 불행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들어낸 불행은 극복할 수 없다.

- 지혜로운 사람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가장 사소한 일들에서도 신의 힘을 볼 수 있다.

- 모두의 사랑을 받고 싶다면 재화보다는 축복으로 사랑을 전하라.

   재화는 어짜피 나눠가져야 하기에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지만 사랑은 모두가 충분히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 ‘는 처음에는 한 번 찾아온 손님이었다가 자주 찾아오는 손님이 되고 나중에는

   집 주인이 되고 만다. 죄를 씻는 유일한 방법은 죄를 알고 이를 파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지 용서받는 것이 아니다.

- 조금 가졌다고 가난한 것은 아니다. 가진 것보다 더 많이 원하는 이가 가난한 자이다.

- 시간이란 없다. 우리 온 인생이 집약된 현재의 한 순간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 모든 노력을 집중하라.

- 지갑이 없어지기라도 하면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

   , 지적 능력과 친절함을 잃어 버렸을 때에는 어째서 알아차리지 못하는가?

- 그 입장이 되어 보기 전까지는 이웃을 비난하지 말라.

-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하라. 그러나 마음이 정리되지 않으면 기도하지 말라.

   왜냐하면 기도는 단순히 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다른 사람을 헐뜯지도, 칭찬하지도 말라. 헐뜯다 보면 좋은 점을 보지 못한다.

   또 칭찬만 하다 보면 기대가 너무 높아진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존중해 줄 것이다.

- 사람의 인품은 그 사람의 장점을 통해서 판단해서는 안 되며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장점을

   어떻게 운용하고 있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 하늘과 땅은 영원하다. 그것들은 자신만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기에 영원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실로 거룩한 사람은 자신만을 위하여 살지 않는다.

- 육체에 꼭 맞는 옷을 입기보다는 양심에 꼭 맞는 옷을 입는 것이 좋다.

 

톨스토이의 고뇌에 찬 사고 속에서 집필된 주옥같은 글을 읽기는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그의 이중적인 삶의 한 단면을 확인하고는 자기만 잘났다고, 자기가 진리라고 외치는

또 다른 톨스토이적 삶을 살면서 쌈질 외에는 별로 하는 일도 없으면서 세금만 축내며,

무슨 일만 있으면 자신은 서민의 대표라고 뽀대고 앉아 사사건건 반대를 위한 반대에

골몰하는 국가 안위고, 서민의 아픔이고 간에 나만 아니면 된다는 무한도전적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위정자들을 보는 듯하여 가슴이 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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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순간의 리더십
고현숙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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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의 리더십]에 관한한 관련된 작품을 읽고 기록한 모든 독후감에 항시 동일한

주장을 해 왔는데 오늘 이 작품을 읽고 다시 한 번 그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리더십]이란 절대 인위적인 교육으로 만들어지는 후천적 멘탈이 아니다

라는 이야기다.

 

내가 이런 터무니 없는 주장을 무슨 근거로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을 나는 쉽게 증명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그 증거라는 것은 멀리도 아니고 가까운

여의도를 보거나 연일 터져 나오는 방산 비리를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거기에 앉아 있는 무리들이 행하는 태도를 보면, 한 쪽은 지역을 대표하거나 혹은 특정

분야를 대표해 선출되었을 것인데 하는 짓들은 시정잡배 수준도 아닌 아주 무뇌아' 수준

의 작태를 보이고 있고, 다른 쪽은 엘리트 중에 엘리트만을 양성하는 사관학교를

거쳤음에도 연일 비리와 관련된 사건의 중심 속에 거기서 교육 받은 인간들 있다는 것은

안타까움 이전에 리더십이란 절대 교육으로 만들어지는 멘탈이 아니라는 확인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두 집단을 보면서 이 땅에 진정한 리더리더십이란 없다는 생각과

가르쳐도 안 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것이다.

그럼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느냐 하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의 경험에 비춰보았을 때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작품에서도 강조하고 있지만

우선 좋은 구성원이 되어야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망각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량한 자기 소속당의 훌륭한 구성원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또 과거 훌륭한 군인

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국민과 부대 구성원을 생각하는 집단 속의 선량한 구성원이기

이전에 당리당략과 진급에 눈이 어두웠지 두 집단 모두 국민을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하는

훌륭한 구성원이었던 적이 없어서이다.

 

여의도 구성원들의 행태를 보면, 자신들이 과거에 상대에게 한 짓은 생각하지 않고 지금

입장이 바뀌었다고, 상대가 자신의 말을 안 들어 주고, 협조도 안 한다고 대중 앞에서

눈물짓는 를 보면 한심하다 못 해 딱하다는 생각 밖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한숨쉬고, 눈물짓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좀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어느날 아침 라디오 방송 전화 인터뷰에 응한 중진 국회의원도 동일하게 말했다 -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런 해법을 제시해 주고 싶다

, 역발상을 통해 생뚱맞은 이야기일 수 있으나 작금 우리 사회는 누군가 혹은 특정

집단에 의해 결정적 리더십을 보여 줄 절호의 기회라 생각한다.

새 정부도 들어섰고, 국정농단에 의해 흐트러진 나라꼴을 제대로 세워보겠다고 새로운

인물들을 엄선해 전진 배치하려 하고 있다. 이들을 검증하기 위해 청문회는 하는데

무슨 성직자 뽑기 경진대회도 아니고 사돈의 팔촌, 가족의 문제 등등을 놓고 생난리를

치고 있는데 바로 이 대목에 착안한 사항이다.

새 정부가 탄생한 이즈음에 모든 것을 원점에서 새롭게 바라보는,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우리나라를 발전시킬 결정적 리더십을 발휘해 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너희들은 우리가 집권했을 때 이런 저런 문제를 갖고 트집 잡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작은 실수에 연연하지 않고 큰 일을 추진하도록 격려해 보겠다

그래 너희들이 추천한 인사들은 우리들이 볼 때는 이런저런 하자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새 지도자가 엄선해 추천했다고 하니 썩 마음에 내키지는 않으나 일단 동의는 하겠다

젊은 시절 치기 어린 행동에 대해, 과거 힘든 먹고 살기 위해 사소한 잘못을 한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으나 공직자의 길에 들어선 이후 파렴치한 일을 한 점에 대해서는

묵과할 수 없다

내가 야인 시절 이런 저런 선별 기준을 제시했는데 집권하고 보니 여러 문제가 있더라

그래서 협치의 파트너인 너희들의 동의를 구해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과거의 나의 짧은

안목에 사과한다

얼마든지 멋있는 말과 행동이 있지 않은가. 한 번 양보하면 얻는 게 더 많을 수 있는데

아직도 뱀꼬리다 용대가리다 등을 놓고 다툼을 하는 것은 서로에게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다 알 것이다.

따라서 야당에게는 명분을 여당에게는 실리를 줄 수 있는 이런 자세를 견지해 보라고

권고하고 싶다.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새 출발하는 새 정부를 힘껏 밀어주는 그런 자세가 아쉬운

결정적 리더십이 부재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 참고로 나는 현직 대통령에게 지난 선거에서 투표하지 않았다 -

작품의 수준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여의도의 선량들이 이 작품 읽고 하루 빨리 정당

위에 국민이 국민 위에 민족이 있다는 기본 정신을 깨우쳤으면 좋겠다.

 

- 리더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으로 리더가 된다는 것은

   조직 전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걸 말한다.           

- 리더십의 핵심 요소는 리더, 팔로워, 공동의 목표다.

- 리더는 구성원과 신뢰를 형성하고 변화의 방향에 공감대를 만들어 내기 위한 전략적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고 전문화되는 상황에서 리더들에게 무엇보다 조정과 통합의 

   역량이 중요하다.

- 리더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해야 할 일

   1) 솔직하게 말하라 

   2) 상대방을 존중하라

   3) 투명하게 행동하라 

   4) 잘못은 즉시 시정하라

   5) 먼저 경청하고 약속을 지켜라 

   6) 투명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라

   7) 성과를 내라

- 리더를 진짜로 리더로 만들어 주는 것은 팔로워.

   따라서 핵심 팔로워들과는 수직적이고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공감하고

   어느 정도는 수평적이고 동지적인 관점에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 ‘굿 팔로워의 공통적인 핵심 덕목

   1) 리더와 시각차를 인정한다

   2) 현실적인 시각에서 리더를 바라볼 줄 안다

   3) 리더에게 기꺼이 자원이 되어준다.

- ‘감성 리더십이란 리더가 스스로에 대한 자아 인식 수준이 높고, 일에 대한 성취동기가

   높으면, 목적을 위해 자신의 충동을 조절할 수 있고, 타인이 느낄 감정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대응할 줄 알며, 사람들과 관계를 잘 형성하고 설득력이 높은 것을 말한다.

   따라서 성공적인 리더와 그렇지 못한 리더간의 차이는 기술적 능력이나 지능지수보다는

   감성지능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고 한다.

- 한 사람이 천 명을 이끌려면 소통이 핵심으로 소통력은 리더십의 핵심이다.

   구성원과 그리고 고객과 마음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진정성이 기본이다.

   진정성이란 먼저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타인에게 정직하게 대하는 것이다.

- 직원은 리더가 믿어주는 만큼 성장한다.

- 리더가 나는 다 알고 있다는 식의 패러다임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인식과 행동에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할 때 부하직원을 이끌고 성장시킬 수 있다.

- 좋은 리더는 직원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열린 질문을 던진 뒤 경청하고 아이디어를

   더해주면서 실행 다짐을 이끌어낸다.

- 깊게 생각함으로써 어떤 것에 대해 통찰과 의식을 갖게하고, 스스로 해법을 찾아내어

   그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하는 것이 진정한 리더의 화법이다.

- ‘진정한 소통은 상대방을 무언가 결함이 있는존재가 아닌 잠재력이 풍부한 인간으로

   보는 데서 출발한다.

- 직원의 평생 충성을 얻는 말

   1) 입을 열지 전에,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2) 일방적으로 추측하지 말고, 참을성 있게 들어라

   3) 열린 질문을 던져라 : 질문을 어떻게’, ‘무엇등의 의문사로 시작하라

   4) 일방적인 비판이 아닌 중립적인 피드백을 하라

- 진심에서 우러나는 인정만큼 사람의 긍정적인 변화를 강화시키는 것도 없다.

- 저성과자일수록 개인적인 관계에서 신뢰를 확인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자존심 상하게

   하지 말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조력자가 되어주어라.

- 존경받는 리더는 피드백을 잘해 주는 리더다. 피드백을 잘 해 주기 위해서는 직원들

   일의 결과에만 관심을 두지 말고, 직원들이 결과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관찰해야 한다.

- 피드백을 잘하기 위한 TIP

   1) 환경을 조성하라 : 중요한 피드백인 경우 상대의 허락을 구하라

       ( ~~에 대해 내가 느낀 점을 이야기해줘도 되겠니?)

   2) 타이밍이 중요하다 : 즉각적으로 실시하라

   3) 피드백 주제를 구체적으로 정하라

   4) 상대방의 생각을 경청하고 나서 피드백을 하라

   5) 짧게 하라

   6) 피드백 후에는 실행계획을 세우게 하고 후속 미팅을 정하라

- 훌륭한 리더들은 이슈 자체만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사람요소를 본다.

- 생각이 통()하는 조직을 만드는 방법

   1) 주의를 기울여서 들어라

   2) 맥락을 파악하라

   3) 상대방의 인식 수준에 맞추어 말하라

   4) 지시사항은 그 자리에서 확인하라

   5) 좋은 질문을 활용하라

- 모든 것을 다하려 애쓰지 말고, 순차적으로 접근하지도 말고, 산술적인 균형에 집착

   하지도 말고, 삶에서 집중할 한 가지 테마를 정하고 몰입하면 분명히 결과도 달라질

   것이다.

- 자신에 대해서는 의도로 평가하고, 타인은 행동으로 판단한다.

- 공부라는 것은 원하는 곳으로 가는 다리를 놓는 것이다. 지향점이 있는 사람에게 공부란

   앞으로 나아가면서 깨우치는 과정이고 그래서 행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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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조 (양장) - 이문열 중단편전집 2
이문열 지음 / 아침나라(둥지)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추천권유도 : 7.

 

본 작품 읽기에 다시 도전해 보았다.

과거 아무런 의미없이 저자의 지명도만을 믿고 작품을 선정해 읽었고, 단순히 책장을

넘기는 수준에서 작품을 접했었는데, 어느날부터 나의 서가 한모퉁이에서 자신이 지닌

의미를 되새겨 줄 것을 요구하는 끊임없는 무언의 항의가 몇 년씩 계속되다 보니 손이

안 갈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여읜 서예가 '고죽'석담 선생에게 맡겨진다.

석담은 '()'보다 '()'를 우선시 하는데, '()보다 '()'가 더 센 고죽의 작품

세계를 못마땅해 한다. 고죽은 스승과는 달리 보편적 원리로서의 를 인정하지 않고,

한 인간의 삶과 마찬가지로 서예 역시 독특하게 추구되어야 할 상대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서예가 다른 무엇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스승과

다른 독자적 서예관을 추구해 간다.

중년의 나이에 스승과 대립하기도 했던 고죽은 스승이 죽은 후에 스승이 자기를 총애

했음을 알게 되고, 죽음에 임박하여 고죽은 자신의 작품을 회수해 불태운다.

그 불꽃은 자기 부정의 예술혼인 '금시조'를 확인하며 죽음을 맞는 작품으로 예술에서의

'보편주의''상대주의' 논쟁을 이야기한 작품이다.

(위의 글은 공감하는 어느 평론을 그냥 옮겨 보았다)

 

붓 글씨를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 이외에 배워 보지도 않은 내가 이 작품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작품을 읽으며 일전에 유사한 작품을 읽으며 서예가 , ‘냐 하는 점을 놓고 많은

번민 끝에 내 스스로 내린 결론은 '는 서로 통한다'는 결론을 얻었었는데,

본 작품에서 다시 한 번 이 점을 확인하였다.

또 하나는 던 그것이 어떤 부류에 속하든 서예 그 자체를 놓고 가슴 깊은 곳으로

이해해야지, '이래서 , 저래서 '라는 논법은 문제가 있는 시각이라 생각한다.

서예를 놓고 를 논한다는 것은 마치 설탕을 놓고 당분이 몇%, 수분이 몇 %라는

식으로 분석해 설탕을 먹은 후 '나는 설탕을 먹었다'라는 이야기대신

'!, 나는 지금 수분 몇%와 당분 몇% 먹었다'라는 소리와 동일하다는 느낌이다.

 

따라서 특정 사안을 놓고 분석적으로 따져야 할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고 볼

때 본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세밀히 접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것이

바로 절제된 '를 가르치는 것이요, 수분과 당분의 절묘한 만남을, 미각만으로 이해

시키려는 것이 바로 ''가 아닌가 생각한다.

반면에 어느 끝단만을 부여잡고 마치 전체를 본 듯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벗어난 저급한 행동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위의 글은 내가 지난 2007년 본 작품을 읽고 옮긴 독서일기의 한 부분이다.

지금 당시의 글을 읽으며 생각해봐도 아주 잘 쓴 내용은 아니지만 작품을 어느 정도 잘

이해한 부분이 있었다고 자평하고 싶다.

 

십년이 흐른 지금 다시 작품을 접한 이유는 나의 책장에서 항시 나를 노려보며 뭔가를

내게 전하려는 작품으로 다가왔기 때문인데, 가장 큰 이유는 솔직히 아직도 '금시조

던져주는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당시 읽었던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를

않아 -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고는 하나 - 억울하기도 하고 당황스러워서

다시 도전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해 외국 출장길 내내 좋은 시간을 내게 마련해 준 작품이었다고 자평

하고 싶다.

 

작품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별도의 색깔을 입혀 해석하느냐로 상당한 고민을

했다. 결론은 읽는 사람 마음이 아니겠는가?

 

작품을 전체적으로 놓고 보았을 때,

극단의 이념적 상흔과 관련된 아픔을 그리고 있는 사과와 다섯 병정이라는 작품은

나도 어린 시절 주위에서 한번 쯤 들었음직한 전설(?)같은 으스스한 이야기로 한편으론

슬프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 아픈 작품이었고,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의 고립감과 소통의 단절에서 비롯된 현대인들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달팽이의 외출’, ‘제쳐논 노래’, ‘충적세 그 후그리고 이 황량한

역에서는 작품을 읽는 나를 잠시 잠깐씩 작품 속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 작품이었다.

 

분호난장기’(선거관련)어둠의 그늘’(교도소 수용자들의 이면)은 단순히 웃어넘기기에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나름 보여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어둠의 그늘속 또 다른 주인공인 권기진이라는 인간은 교도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그런 암적인 존재 - 작품에서 밝히고 있는 그의

죄명만 갖고 예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기는 하나 - 로서 그런 인간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제대로 처단하지 못한다면 작은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큰

좌절만을 안겨 줄 것이고 이 사회와 나라는 요즘 젊은 세대들이 이야기하는 우리나라를

헬 조선으로 부르게 하는 한 요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머지 작품(폐원, 제쳐논 노래)에 대해서는 다른 소회를 기록하기 보다는 작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듯하여 별다른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을까 한다.

반면, 두 번째 작품인 방황하는 넋은 작품이 던지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작품 속에서

언급되고 있는 농악과 관련된 여러 용어들은 생경하여 여기에 정리해 보았다

- 삭자리 : ‘돗자리(왕골이나 골풀의 줄기를 재료로 하여 만든 자리)’의 방언(경북).

- 봉당 : 주택 내부에 있으면서 마루나 온돌을 놓지 않고 바닥면을 흙이나 강회·백토 등을

            깔아 만든 공간.

- 걸궁굿(乞窮-) 일명 마당밟기굿·매귀굿·걸궁농악.

마당밟기굿의 하나로 걸궁농악이라고도 하는 걸궁굿은 정초부터 한 달 동안 동네집집을

   돌며 쌀과 돈을 얻어 동네 공동사업에 쓰기 위해 놀던 농악(네이버 지식백과)

- 판굿 : 걸립패(동네의 경비를 목적으로 돈이나 곡식을 얻기 위하여 풍악을 연주했던

   무리)와 남사당패(떠돌며 노래와 춤, 풍물 연주, 재주 등을 연행하였던 집단)가 연행하던

   음악과 놀이의 종합예술

- 반삼채 : 경남농악(慶南農樂)에 쓰인 쇠가락의 하나. 일명 반삼차

- 강마진 : 농악십이차(農樂十二次)에 나오는 쇠가락의 하나로 신장(神將)을 부르는

                ()에서 연주되는 가락

- 금쇄진 : 농악십이차(農樂十二次)의 하나로 나오는 금쇄진은 원진(圓陣)을 치는 법

- 문굿 : 농악 연주의 한 절차로 한 집을 중심으로 연주되는 정내(庭內)굿의 한 절차.

- 상쇠(上釗) 농악대(農樂隊)의 한 구성원. 일명 상공운이라고도 하며 꽹과리 연주자 중

                   우두머리인 상쇠는 꽹과리 연주자 중 기예가 가장 뛰어난 사람이다.

- 고방굿(庫房-) 농악 공연 때 마당밟기굿의 한 순서로 어느 한 집을 중심으로 연주되는

                        정(庭內)굿의 한 절차다. 농악 공연 때 마당밟기굿의 한 순서.

- 뒤안굿 : 농악을 연주하는 걸립패(乞粒牌)의 고사굿. 일명 천룡굿어느 한 집의 행운을

                빌기 위해 걸립패가 농악을 연주하는 고사굿이 뒤안굿이다.

- 우조(羽調) : 판소리의 조에는 우조(羽調), 계면조(界面調), 평조(平調)의 세 가지가 있다.

                     이 중 우조와 계면조가 판소리의 양대 악조에 속하고 우조와 계면조의 중간

                     에 평조가 존재한다.

                     우조(羽調)는 서양 계이름으로 치자면 솔----미의 음계로 구성되며

                                         웅장하고 호탕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호기 넘치는 장면에서

                                         사용

- 도드리 : 국악에 쓰이는 장단

- 보허자 : 궁중 연례악으로 쓰이던 관악합주곡

 

작품을 읽으며 다가 온 문구들

 

[‘달팽이의 외출’]

- 결국 인간들은 모두가 이라는 각자의 껍데기를 지닌 한 마리의 달팽이다.

- 자기의 조그만 세계를 지키기 위해 담을 쌓지만 사실은 외부의 더 큰 세계를 잃어 버리는

   어리석은 짓이다.

 

[‘이 황량한 역에서’]

- 그런 그에게 있어서 철로와 역은 전 생애를 일관한 근거 없는 애착의 대상인 동시에

   항상 열려 있는 영혼의 창이기도 했다.

 

- 우리가 감정의 과장에서 벗어나 그 본질 자체를 응시할 수 없다면 고독이란 죽음 그것과

   마찬가지로 결코 슬픔이나 고통의 이유는 될 수 없는 것이다

 

- 사실 추억이란 우리들 기억의 광맥에서 떼어낸 한 덩이의 자연석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련과 가공을 거치는 동안에 엄청난 감상과 상상력이 끼어들어 실제와는 전혀 다른

   모조품이 만들어지고 또 원래의 것과는 엉뚱한 빛을 우리에게 던진다.

 

[‘어둠의 그늘’]

- 재판을 맡는 정의의 여신의 눈을 가린 것은 희랍인의 예지였을 뿐 땅 위의 법은 언제나

눈을 부릅뜨고 재판당할 자의 색깔부터 살폈다.

 

- 언론 스스로가 제4부를 자처하고 특권을 행사하려 들지만 도대체 누구로부터 수권을

   했는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선거를 통해 나왔고 법관은 시험을 쳐서 자격을

   얻었지만 언론은 자임(自任)에 불과하다.(339)

 

- 어떠한 고통도 그것을 당하고 있는 순간은 고통이 아니다. 고통은 언제나 그것이 지나간

  후에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그렇다. 고통은 맞지 않은 구두와 같은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작더라도 일단 우리의 발이 들어가기만 하면 점차로 그 괴로움은 잊혀

  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그 괴로움을 다시 과장스럽게 느끼게 되는 것은 언제나 이미

  그것을 벗어 던진 후의 일이다.

   엄청나게 제한된 자유도, 거친 음식도, 불편한 주거 환경도 그리고 무엇보다 격리의

   고독도 순간순간 사소한 불편 정도일 뿐 아무런 고통의 그림자를 동반하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그곳을 끔찍한 곳으로 기억하게 하는 것은 바로 순간순간의 사소한 불편들이

   극단으로 과장되어 결합되기 때문일 뿐이다.

 

 

작품의 소회를 마무리하기 전, 작품 제목인 금시조(金翅鳥)’가 무엇인지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여기에 정리해 보았다.

금시조가루라라고도 불린다. 금시조의 깃털은 장엄한 보광(寶光)을 발하며 머리 위에 하나의 커다란 혹이 있는데 이 혹이 바로 여의주(如意珠)이다.

이 새의 울음소리는 슬프고 처량하다. 금시조는 매 끼니마다 한 마리의 용왕(龍王)500마리의 새끼 용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금시조는 죽을 때 허공을 아래 위로 7~8회 몸을 뒤집으며 날다가 금강륜산(金剛輪山)정상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금시조는 용(毒蛇)을 먹었기 때문에 몸 속에 독기가 많이 축적되면 그 독기로 자신의 몸을 태워버린다고 한다. 육신이 불타고 남은 자리에는 '가루라'의 심장만이 남는다.

그 심장은 파란 색이며 유리처럼 투명하다고 한다.

가루라 전설에서 금시조가 몸에 독기가 쌓여 그 독기로 자신의 몸을 태우고 자신의

'심장'만을 남겨 죽는 것은 소설 속에서 '고죽'이 그간 자신의 분신과 같은 자신의

'서화더미'를 태우는 장면과 깊은 연관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금시조''영원한 예술의 본질'을 표상하는 전설의 신으로 '자신의 몸'을 독기로

스스로 태우면서 '심장'만을 남기는 것은 가장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예술성을 추구와

획득으로 해석 될 수 있다. 그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그동안 자신이 이루었던 예술성의

존재를 소멸시키는 것으로 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 (인터넷 블로그 참조)

 

금시조는 묘시조(妙翅鳥)라고도 한다. 사는 곳은 수미산 사해(四海)로 전해진다.

우리나라 탱화에도 잘 표현되어 있는데 얼굴 형태는 독수리와 같고 용을 게걸스럽게

씹어먹고 있거나 손에 쥔 모습이 자주 나온다. 대개 사찰 벽화에 많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석굴암 전실에 있는 가루라상인데 이 상은 왼손에 삼지창 들고 있고

날개가 달려 있는 투구를 쓰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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