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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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그러면 어쩐지 교태스러움과 함께 남자들의 동물적인 욕구를 언제든지 자극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때에 따라서는 질펀한 그 무언가를 이용해 대개의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어떤 비밀스러움과 함께 알 수 없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그런 존재

혹은 탐구의 대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기생집]이라는 단어는 출입 경험이 있는 자들에 의해 혹은 출입자로 인해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단어 자체가 갖는 본질적 의미보다는 부르는 이들의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상징성을 내포한 단어로 불리워졌을 것이고 여기에 더해 출입

경험이 없는 이들에 의한 상상과 출입자들의 호기로 포장된 묘사에 의해 '니나노 집',

'방석 집' 혹은 '색시 집' 등등으로 재 탄생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어 진다.

 

관련 종사자가 들으면 극렬하게 반대에 반대를 하겠지만 언제부터인지 내 주변 술 친구들

'기생집 = 색시집'이라는 등식으로 부르고 있었지만 이를 당연한 개념으로 인식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미천한 실력으로 나름 생각해 보면, '기생''색시'는 엄연히 다른 개념으로 생각되지만

여기에 출입하는 인간들의 인간성에 의해 해당 업소의 업태(?)가 변하면서 색시도 되었다,

기생도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작금에 [기생집]하면 드는 생각이 아주 천박하고 저급한 여급들이 하룻밤의 풋 사랑을

팔기 위해 몸부림 치는 '삶의 현장'이라는 느낌 정도로 다가 오고 있다.

 

작품을 처음 본 순간 ''자를 붙여 과거의 기생집이라는 곳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에게

과거의 '기생 모습'은 물론 변화된 모습을 갖춘 '신 기생'까지 혹시 보여 주고, 알려 줄지

모른다는 느낌이 들어 '이게 웬 횡재냐'는 식으로 해당 작품을 상당한 설렘을 안고 선택해

읽게 되었는데, 읽어 본 결과 나의 그런 기대와는 달리 [기생집]의 주인공 격인 기생들과

또한 기생 활동에 예속되어 살아가는 여인네들의 삶의 이야기를 잔잔한 시내 물처럼 그린

한 편의 흑백 영화와도 같은 작품이었다

 

작품의 주 무대는 군산의 [부용각]이라는 기생집에서 기생 생활에서 주인공적 삶을 살아

왔을 그 집의 구성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부엌 어멈인 타박네’, 작품의 주인공격인 오 마담’, 짧은 생을 살고 간 예린,

한 때는 유망한 국악인을 꿈꾸었을 나끝순’, 민 마담, 그런 여인네들에 기대어 사는 기둥

서방, 기생 집에서 갖은 굳은 일을 관장했을 집사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간 기생을 주제로

이야기는 전개되고 있다.

 

작품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작가의 전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직 기생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실상을 파악했다고는 하나 너무나도 리얼리티한

기생들의 이야기와 주인공들의 심리 묘사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고 있는 각종 사건, 사고

들은 해당 업계에 몸을 담지 않고서는 쉽사리 알 수 없는 내용의 연속이었다. 

그렇다면 독자에 불과한 내가 어찌 그리 잘 알 수 있느냐고 질문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단연코 잘 나가던 한 때(?) 기생집은 아니지만 기생집 비슷한 곳을 우연한

기회에 다닌 적(?)이 있기도 하거니와 영화에서 간혹 기생집에 대해 접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기생집이 변화된 '요정집'이라고나 할까? 그런 곳을 다녀 본 사실

이 있기 때문에 작가의 전직에 대해 쉽게 의문을 품게 된 것이며, 작가의 전직이 그렇지

아니 하다면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쏟았을 개인적인 노력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다른 이들은 본 작품을 어떤 느낌으로 받아 들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 편의 장편 '흑백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의 축이 상당히 탄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주인공 격인 '오 마담'에 관한 사항과 그의 단짝이라 볼 수 있는 '타박네'의 기구한

인생 역정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처로움이 밀려들어 왔다.

작품을 덮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가장 가슴에 닿는 내용으로는 오 마담이 자조적으로

되뇌이는 말 중에서 그녀가 기둥서방에게 갖은 이유로 사기와 농락을 당하면서 내 뱉고

있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요즘 가볍게 하는 사랑을 추구하는 이들을 심하게 질타하는

내용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특히, 부용각 박 집사에 대한 애정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얼마 전 영국의 대 학자

스티븐 호킹박사가 이야기 했다는 '우주보다 더 미스테리한 것이 바로 여자다'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운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박 집사''오 마담'간의 애틋한 감정은 어떤 특별한 계기 없이 진행된 것으로 보여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집사, 그는 오 마담을 위해 평생을 바친다는 설정 그리고 그녀에게

사랑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늘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해바라기하는 그의 모습은 작품 구도상 있을 수 있는 사랑의 한 형태이기는 하나, 극적인 요소가 약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 국악인을 꿈꾸었던 '나끝순''민 마담'으로 변신하는 과정과 문화 건달 박 사장과

화초머리를 올리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기생은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도 할 수 있으나 그러한 행위 역시 기생으로 살아남기 위한 또 다른 삶의 한

방편이었음을 확인하고는 측은한 생각이 앞섰다.

어찌 보면 여인이 나오고, 술과 춤이 나오고, 소리가 나오는 작품이라는 이유로 거기에

화초 머리를 올리는 장면이 전개되어 자칫 통속적으로 또 인간의 본능적 애욕이 넘쳐흐를

수 있는 요소가 많았음에도 여류 작가의 섬세한 필치와 심리 묘사가 담담히 펼쳐져

오히려 탄탄한 작품 구조를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작품을 읽으며 작가를 '정말 모진 여인'일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작가는 아마도 이 작품을 쓰면서 눈물깨나 쏟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이 여럿 보인다.

오 마담 야반 도주, 타박네가 낳은 아이를 빼앗기는 장면 등등은 작가도 작가 이전에

한 여인으로서 쉽게 문장을 전개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 작가의 에필로그에도 나와 있지만 자신의 모친을 모신 그 날도 작품을 집필하였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독하긴 독한 스타일인 것 같다 -

작품 곳곳에 같은 여성으로서 힘들었을 상황과 장면에서 작가가 눈물을 흘렸을 것으로

추측되나 담담히 긴 호흡으로 작품을 전개하고 있는 점은 작가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

지를 가늠케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작품을 읽고 난 나는 우연히 접한 신문의 칼럼을 통해 이런 명제를 내려 본다.

[기생은 종()이다]

''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외부에서 물리적 힘을 가할 때만이 소리가 난다.

아무런 외부적 자극이 없는 한 그냥 한낮 공간을 차지하는 장식품에 불과할

것이다.

 

신문 칼럼에서

"금이 가고 깨어진 종을 종매로 치면 깨어진 종소리가 나지만, 완전히 깨어진 종의

파편을 치면 맑은 종소리가 난다"

라고 칼럼을 기고한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바로 이 대목에 착안하여 그런 정의를 내리게 된 것이다.

'기생'을 단순히 기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깨어진 종'으로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생을

솔직히 여염집 규수나 대가 댁 며느리와 같은 평범한 여인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 일반적인 평범한 삶을 사는 여인들을 '일반 종'에 비유한다면, 기생 그들은 '깨어진 ,

금이 간 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후반부에 나오는

'종의 파편을 치면 맑은 소리가 난다'라는 문구이다.

쇠에 일반적인 충격을 가했을 때에 나오는 맑고 아름다운 소리는 쇠가 지니고 있는 고유의

음질적 특성이 외부 충격을 통해 발현되는 것으로, 비록 깨어진 파편이라도 거기에 충격을

가하면 쇠가 지니고 있는 본래적 음질적 특성이 그대로 발현될 것이다.

   종합적으로 다시 이야기를 해 보면, 직업이 아무리 비천한 기생이라 할지라도 기생도

여자이며 '세파에 휘둘려 어떤 삶을 살아 왔고, 살고 있는지는 잘은 모르겠으나 기생,

그들은 연약한 여인 그 자체였다'는 의미로 나는 신문 속에서 언급되고 있는 칼럼 속

소재에 기생을 대입해 이해하고 싶었다.

 

'기생'''이라면 부용각을 총괄하는 타박네는 무엇인가?

기생도 아닌 것이, 기생들과 손님들을 쥐락펴락하는 그녀는 무엇이란 말인가?

우선 [타박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 나라 '종'에 대한 추가적인 사실 한 가지

더 말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선조들은 종 밑 지면부에 '항아리'를 묻었다고 한다.

지금도 영주 '부석사'와 남해 금산 '보리암'에 가 보면 범종 밑에 항아리가 묻혀 있다고

하는 데, 그 항아리는 제 몸을 통과하는 종소리를 맑고 아름답게 여과시키는 '음관'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리에 있어 '음관'이란 무엇인가 바로 소리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타박네는 바로 기생들의 삶을 정화시켜 주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인물로

보고 싶다. 바로 이런 항아리같은 역할을 부용각에서 타박네가 하고 있는 것이다.

오 마담이 종매에 맞아 떨림에 의한 자신의 소리가 나올 때, 예린이의 죽음으로 인해

부용각이 힘들어 할 때, 민 마담의 화초머리 행사를 할 때, 부용각을 오랜 세월 지키고

온 타박네는 종 아래 묻혀 있는 항아리 같은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 타박네는 부용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소리와 행동에 대해 자칫 폄하와 곡해될

있는 사항에 대해 한 층 가치 있는 내용으로 순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 작품이 기생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튀지 않도록 제어를 하게 하였으며,

각 소 주제별 내용이 질펀하게 흐를 수도 있었던 부분이 있었음에도 보이게, 보이지 않게

제어도 해 주고, 순화도 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처음에 등장한 타박네의 정체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갖고 바라 보았으나 나름 이런 기능을

대입해 작품을 읽으며 분석해 보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 왔음은 물론 작품을 더 가치

있게 만들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독자들도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본 작품이 일반인들에게 작은 감동(?)으로 다가

오는 이유는 아마도 작품을 읽는 재미와 함께 작품에서 적절히 인용되고 있는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우리말의 향연이 한 몫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정말 작품에 대한 작가의 연구와 노력 그리고 조사에 들인 공에 머리

깊이숙여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나름 국어사전을 들추어 가며 작품에 언급된 단어의 뜻을 여기에 옮겨 보았다.

 

   작품에 언급된 순 우리말

   - 남우세스럽다 : 남에게 놀림과 비웃음을 받을 듯하다

   - 시뜻한 표정 : 1. 마음이 내키지 않아 시들하다.

                          2. 어떤 일에 물리거나 지루해져서 조금 싫증이 난 기색이 있다

   - 함치르르하다 : 깨끗하고 반지르르 윤이 나는 상태이다

   - 새물새물하다 : 1. 입술을 약간 샐그러뜨리며 소리 없이 잇따라 웃다.

                            2. 한데 어울리지 아니하고 잇따라 능청스럽게

   - 우듬지 : 나무의 꼭대기 줄기 

   - 휘움하다 : 조금 휘어져 있다.

   - 배리착지근하다 : 냄새나 맛이 조금 배리다.

   - 가칫가칫하다 : 1. 살갗 따위에 조금씩 닿아 자꾸 걸리다.

                            2. 순조롭지 못하게 조금 자꾸 방해가 되다.

                            3. 살갗이나 털 따위가 야위거나 메말라 윤기가 없이 거칠다.

   - 맵싸하다 : 맵고 싸하다 - 애동대동하다 : 매우 앳되고 젊다

   - 더펄더펄하다 : 1. 더부룩한 물건 따위가 조금 길게 늘어져 바람에 자꾸 흔들리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다.

                            2. 자꾸 들떠서 침착하지 못하고 경솔하게 행동하다

  - 해반주그레하다 : 겉모양이 해말쑥하고 반듯하다

  - 살똥스럽다 : 말이나 행동이 독살스럽고 당돌하다

  - 애면글면 : 몹시 힘에 겨운 일을 이루려고 갖은 애를 쓰다

  - 언슨시럽다 : 지긋지긋하다의 경상도 방언

  - 수굿()하다 : 1. 고개를 조금 숙이다.

                          2. 고개를 조금 숙인 듯하다.

                          3. 흥분이 꽤 가라앉은 듯하다

  - 옹송그리다 : 1. 춥거나 두려워 몸을 궁상맞게 몹시 옹그리다.

                        2.입술을 움츠리어 꽉 깨 물다.

   - 또록또록하다 : 매우 뚜렷하다 

   - 시난고난하다 : 병이 심하지는 않으면서 오래 앓다

   - 비들비들하다 : '비틀비틀'의 원형

   - 사륵사륵하다 : '사르륵사르륵(조금씩 움직이는 소리)'의 준말.

   - 맵차다 : 옹골차고 차다 - 씨억씨억하다 : 성질이 굳세고 활발하다

   - 꼭닥시리 : 단단이

   - 아리잠직하다 : 1. 키가 작고 모습이 얌전하며 어린 티가 있다.

                            2. [북한어]온화하고 솔직하다.

   - 우렁우렁하다 : 소리가 매우 크게 울리다, 울리는 소리가 매우 크다.

   - 화초머리 : 기생이나 창기가 첫 경험을 하고 얹는 머리.

   - 바지랑대 : 빨랫줄을 받치는 긴 막대기

   - 야지랑 : 얄밉도록 능청맞고 천연스러운 태도.

   - 살캉살캉 : 설익은 곡식이나 열매 따위가 자꾸 가볍게 씹히는 소리가 나다.

   - 난만하다 : 1. 꽃이 활짝 많이 피어 화려하다.

                      2. 광채가 강하고 선명하다

                      3. 주고받는 의견이 충분히 많다.

   - 새들새들하다 : 1. 조금 시들어 힘이 없다.

                            2. 마음이 들떠서 자꾸 경솔하게 까불다.

   - 는적는적하다 : 1. 물체가 힘없이 자꾸 축 처지거나 물러지다.

                            2. 물체가 매우 힘없이 축 처지거나 무른 느낌이 있다.

   - 꼽꼽쟁이 : 1. 성질이 잘고 서두르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2. '구두쇠'의 방언(충남).             

                      3. 몹시 인색한 사람을 뜻하는 [구두쇠]의 전라도 방언.

   - 중쑬쑬하다 : 크지도 작지도 아니하고 품질ㆍ수준ㆍ정도가 어지간하여 괜찮다.

   - 푸닥지다 : (비꼬는 뜻으로) 꽤 많다

   - 물덤벙술덤벙하다 : 아무 일에나 대중없이 날뛰다

   - 잔풀호사 : 어린 풀의 호화스러운 치장이라는 뜻으로,

                     분에 넘치는 호사나 허영에 들뜬 옷차림을 이르는 말

   - 빗치개 : 빗살 틈에 낀 때를 빼거나 가르마를 타는 데 쓰는 도구.

   - 엄부럭 : 어린아이처럼 철없이 부리는 억지나 엄살 또는 심술.

   - 남상거리다 : 1. 좀 얄밉게 자꾸 넘어다보다.

                         2.남의 것을 탐내어 가지려고 자꾸 좀스럽게 기회를 엿보다.

   - 볕뉘 : 1. 작은 틈을 통하여 잠시 비치는 햇볕.

               2. 그늘진 곳에 미치는 조그마한 햇볕의 기운.

               3.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보살핌이나 보호.

   - 넌짓 웃음 : 넌지시 짓는 웃음 - 사금사금 가슴 시리다 :

   - 갈강갈강하다 : '갈그랑갈그랑하다(가래 따위가 목구멍에 걸려 숨 쉴 때마다

                             거친 소리가 조금 나다)'의 준말

   - 흥뚱함뚱 : 어떤 일에 정신을 온전히 쓰지 아니하고 꾀를 부리거나 마음이 떠 행동하는

                      모양.

   - 뽀도시 : '겨우'의 방언(경남, 전라).

   - 물때썰때 : 1. 밀물 때와 썰물 때를 아울러 이르는 말.

                      2.사물의 형편이나 내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사부라기 : 별로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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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명인과 딴따라를 가르는 한 끗 - 사료 속 옛 음악꾼들에게 배우는 삶의 통찰
서신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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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우리 선조들 중에서 역사적으로 혹은 역사의 뒤안길에서 예술 분야에서 추앙받고

있는 분들의 입신 과정에 대한 이야기로 한 번쯤은 읽어 볼만한 내용이기는 하나,

초판 발행 이후 작자께서 많은 보완을 이룬 뒤 내 놓은 작품이라고 언급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내용 구성에 아쉬움이 짙게 배어져 나온 작품이었다.

차라리 작품의 내용을 상징적인 분류로 나누지 말고 소재별로 즉 그림, 소리, 글 등으로

나누어 그 중에서 대표적 인물에 대한 심도 있는 내용의 접근이 있었으면 알찬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작가께 거짓을 이야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당시 명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약간의 스토리

텔링적 요소를 가감하여 묘사를 하였다면 읽는 독자들이 전체적인 맥락차원에서 해당

인물을 이해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어짜피 소개되고 있는 글이 설화적 요소가 상당히 가미되어 직접적인 증거를 찾을 수

없는 내용으로 되어 있어 약간은 허무맹랑한 이야기 즉, 바람이 멈추고, 폭포 소리를 뚫고

소리가 퍼져 나갔다는 등의 이야기로 묘사가 되고 있어 초반부에서 독자를 끌어 당기는

묘미가 작품 내내 진전되다 보니 그다지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따라서 나는 작품을 통해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명인들의 노력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나름

느꼈던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를 해 보고자 한다.

 

어쨌든 명인이란 몰입과 열정, 연습 그리고 자신이 몸 담은 분야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어우러져 그들을 명인 반열에 올려놓는 원동력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작품에서 내가 받았던 몇 가지 감동적인 이야기

사례1 우륵과 충주 탄금대

신라에 의해 가야가 망하자 우륵은 가야금을 들고 진흥왕에게 투항한다. 진흥왕은 우륵을

충주의 탄금대(彈琴臺) 주변에 거처를 마련해 준다. , 금을 타는 누대라는 뜻의 탄금대가

그래서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사례2 백아와 종자기

백아는 자기의 음악을 이해해 준 유일한 친구 종자기가 죽음을 맞게 되자 자신의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백아절현, 伯牙絶絃)

 

사례 3 술이부작의 관점에 따른 의도하지 않은 사대정신

공자는 자신의 저서를 술이부작 수준으로 스스로 폄하하자 이후 유학자들은 공자의 이런

기조를 유지한 채 성인의 말을 가장 가깝게 표현하거나 옛 것에 대해 가장 근사하게 모방

하는 것을 절대 가치로 생각했다.

이런 정신은 서예, 회화 및 음악 분야에서도 나타나 중국 명필의 서첩, 중국 화가의 화첩을

보고 흉내 내는 데 온힘을 기우렸던 것이다.

 

사례 4 형가와 고점리

형가라는 사람이 진시황을 살해하기 위해 자객으로 침입하지만 실패하자 그의 친구

고점리가 스스로 장님이 되어 진시황의 악공으로 들어가 진시황을 살해하려 하나 실패

하고 만다.

 

사례 5 음악인의 외길을 가기 위해

진나라 악사 '사광'은 귀를 예민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다.

 

사례 6. 수레 모는 기술

조나라 양왕은 수레 모는 기술이 부족했다. 그래서 수레 모는 특별 교육을 왕오기로부터

받는데, 경주를 할 때마다 매번 양왕이 지자 화를 내면서 자신에게 수레 모는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왕오기가 정색을 하고는

저는 모든 기술을 알려드렸습니다. 하지만 정작 왕께서 그것을 잘못 사용하셨습니다.

수레를 몰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말의 몸과 수레를 일치시켜 안정되게 하고, 수레 모는

자의 마음이 말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결과입니다.

왕께서는 앞섰을 때나 뒤처져 있을 때나 마음이 모두 제게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왕께서 어떻게 말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뒤진 까닭입니다.”

진정한 경쟁은 오늘의 나어제의 나와 하는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적은 내 안에

있습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진정한 승자입니다.

 

 

작품으로부터 얻은 지식

 

- 서예 필체는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5가지가 있는데,

   전국시대부터 진나라 때까지 전서와 예서만 사용되었다. 한나라 때부터 실용적인 용도로

   만 사용되던 해서, 행서, 초서를 예술적인 경지로 끌어 올린 이가 왕희지다.

 

- 학문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 가는 사람이라도 붙잡고 그에게

   물어보는 것이 최선이다.(박지원)

 

- 거안제미(擧案齊眉) 밥상을 눈썹 높이로 들어 공손히 남편 앞에 가지고 간다는 뜻

  

- 가야의 가실왕은 우륵에게 소리를 어찌 한 가지로만 할 수 있겠냐면서 중국 악기

   연주하던 우륵을 격려해서 만든 것이 가야금이다.

 

- '개수란 거지의 우두머리를 뜻하며 우리말로는 꼭지단이라고도 한다.

 

- 한단학보(邯鄲學步) 한단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배움. 한단지보(邯鄲之步).

   () 나라의 젊은이[수릉여자壽陵餘子]가 한단에 가서 그 곳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배우다가 자기 나라에 돌아올 때, 한단 걸음걸이도 되지 않고 연의 본디 걸음도 잊어버려

   기어서 돌아오더라는 고사성어

 

- 쟁선공후(爭先恐後) 앞서기를 다투고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뜻

   , 앞자리만 다투며 싸우다가 좋지 못한 일을 당하고 마는 삶을 경계하는 말

  

- 벼슬아치들은 진심이든 진심이 아니든 자신의 욕심 없음과 세상과 맞지 않음을 말할 때

   늘 귀거래사(歸去來辭) ,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외쳤다

 

- 술이부작(述而不作) 공자의 성품은 겸손하여 자신의 저술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옛사람의 설을 저술했을 뿐 창작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옛것을 좋아하는 것만큼

    은 노팽(은나라의 현인)과 비교할 수 있다.

   , 자신의 저술이나 창작을 두고 저자가 겸손의 뜻으로 하는 말이다.

 

- 공휴일궤(功虧一簣) 아홉 길 산을 쌓는 데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공이 한꺼번에

   무너진다는 이야기로 조금만 더 하면 목적을 이룰 수 있는데 한 삼태기가 부족해서

   헛된 일이 되었다는 뜻

 

- 대교약졸(大巧若拙) 아주 교묘한 재주를 가진 사람은 그 재주를 자랑하지 아니하므로

   언뜻 보기에는 서투른 것 같음. 즉 겸손과 깨달음은 서로 통한다. 자만하지 않는 한결

   같음. 남을 인정할 줄 아는 넉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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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당신을 만드는가 - 삶을 걸작으로 만드는 피터 드러커의 위대한 질문
이재규 엮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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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9

 

작품은 '피터 드러커' 교수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질문, 다른 사람에게 던진 질문, 드러커

자신의 저서에 인용한 질문, 그리고 편저자인 이 교수가 드러커와 만나 주고받은 질문 등

38개 질문을 6개의 대유형별로 정리한 작품으로 드러커는 사람들이 같은 시대를 살면서

아직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획기적인 사건들을 관찰하고, 동시대 사람들이 공유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오늘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 쉽게 설명하고 있다.    

 

작품을 읽으며 좀 생뚱맞은 질문 같지만 '칭기스칸''피터 드러커'공통점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는데 답은 아마 '질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경영의 구루 '드러커' 스스로도 자신을 만든 것은 "질문"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칭기스칸 역시 유목 생활과 정복자 생활을 하면서 끊임없는 질문을 주변에 던졌다고 한다.

  

제일 먼저 드러커는 [가치와 목표]라는 타이틀 속에서 하나의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귀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 바라십니까?" 이 질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인생관을

바꾸어 놓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 또한 이런 질문으로 인해 스스로를 뒤돌아 보는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긴 세월을 한 직장에서 보내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직장에서 보낸 날들을

반추하고 앞으로 펼쳐질 인생 길에 대한 우려와 설렘 속에서 가끔식 스스로에게 던지는

그런 질문 중의 하나로 아직 여기에 대한 답을 명확히 내 놓지 못하고는 있지만 조만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드러커는 이 질문에 대해 답을 "여러 사람들이 목표를 달성하도록 도와 준 사람으로 기억

되기를 바란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경영의 구루다운 답이 아닌가 생각한다

(I hope to bo remermbered for a man who helped several people achive their goals.)

 

두 번째 분류인 [학습과 탈학습]에서 드러커는 우리가 배운 기존의 기술이나 방법론을

버리고 늘 새로운 대책과 새로운 기술을 배울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성공적인 제품, 정책 혹은 관습을 지속하기 보다는 그것을 '폐기하는 계획을 세워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 역점을 둘 것을 강조하면서 이를 위해서

첫째 조직이 하고 있는 모든 것을 끊임없이 개선해야 하고

둘째 지금 성공하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다음 세대를 개발하기 위한 지식 활용 방법을

        배우고

셋째 체계적으로 혁신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진정으로 '수준 높은 상사'란 나름대로 사람을 길러 낼 줄 아는 사람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세 번째 분류인 [강점 관리와 리더십]에서는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조직의 목적'이라고 강조하면서 조직정신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조직 전체의 역량과 성과를 끊임없이 개선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자기 자신의 관리는 개인의 능력 유무와  관계없이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식근로자는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새로운 질문에 엄숙히 답해야 하는데

첫째 나는 누구인가? 나의 강점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일하는가?

둘째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그리고 어디에 속해야 하는가?

셋째 내가 기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넷째 나는 어떤 관계 책임을 져야 하는가?

다섯째 나의 인생의 후반부를 어떻게 계획할 것인가?

위 질문에 명쾌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리더십'을 이야기하면서 두 위인(샤률마뉴 대제, 칭기스칸)을 예로 들고 있다.

그들은 '문맹'이었지만 지극히 잘 '경청'해 훌륭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칭기스칸은 "내 귀가 나를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경청을 잘했다고 한다.

반대의 경우에 대한 예도 들고 있다.

훌륭한 장군이었던 '아이젠아워'가 대통령을 예로 들고 있는데, 아이젠아워 장군은 '읽는'

스타일인 자신의 강점을 모른 채 그의 두 전임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해리 투루

'의 방식인 '듣는' 방식을 그대로 계승해 실패했다고 한다.

아이젠아워의 연설 혹은 기자회견 문구는 맥아더 장군의 부관에 의해 만들어진 초안에

기초해 이를 자신이 수정해 가는 과정에서 문제 핵심을 파악하고 대안을 만들면서 발표

내용에 대한 일차 학습을 마친 후 기자 회견을 했었는데,

아이젠아워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두 전임 대통령의 방식처럼 오로지 측근이 만들어

주는 내용만 '듣기'만하고 기자 회견에 나가 우왕좌왕하거나 질문에 대한 핵심을 잡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평범한 대통령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 상사가 '읽는 자'이면 메모지를 이용하고, '듣는 자'이면 구두로 보고하는 식으로 의사

소통 방식을 적절히 변경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네 번째 분류인 [비즈니스와 고객]에서는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기업에 근무한 경험

            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강조점이 눈에 들어 올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사업은 생산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결정한다"라는 문구이다.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다섯 번째 [통찰과 혁신]에서는 '경영혁신'이란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이다

경영혁신은 기존의 자원이 부를 창출하도록 새로운 능력을 부여하는 활동인데 혁신을 실천

하는 데 '꼭 해야 할 일'로서 가장 인상적으로 가슴에 와 닿은 문구는 '효과적인 혁신은

작게 시작한다''혁신에 성공하려면 그 목표를 주도권을 잡는 데 두어야 한다'는 문구가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혁신을 추진함에 있어 '하지 말아야 할 일'

1) 무조건 독창적인 것을 하려고 노력하지 마라

2) 다각화하지 말고, 분산시키지도 말고 그리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시도하지

    말라 

3) 미래를 위해 혁신을 하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문구였는데 상당히 공감되는 문구였다.

참고로 에디슨은 2년 동안 단 하나의 혁신 기회에 집중했었다고 한다.

 

끝으로 "성공적 혁신을 위한 3가지 조건"

  1) 혁신은 고된 작업이다

  2) 자신의 강점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3) 경제, 사회에 영향을 주며, 고객을 포함해 모든 이들의 행동에 변화를 준다.

는 내용은 두고 두고 의미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여섯 번째 [기업과 사회]에서는 기업의 목적이 이익추구라는 좁은 견해는 기업의 역할에

대해 악감정을 즉 산업사회에 있어 가장 위험한 질병인 '반기업 정서'를 불러 일으킨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작금 한국 사회에서도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이야기라 관심

있게 읽어 보게 되었다

작품을 다 읽은 지금,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엇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는가?"라고 내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나는

 "보이지 않는 열등감"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나의 외모를 보면,

목소리를 들으면 웬만한 사람의 외모나 목소리는 상대도 안 되는 수준인데 무슨 놈의

''열등감'이냐하고 말할 사람이 많을 터이지만 열등감 그것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이다.

나는 공부도, 운동도, 노는 것도, 부모님 말씀에 순종적이지도 않은 그저 그런 평범한

수준의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나도 처음에는 '열등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은 나와는 너무나 많은 시간적, 공간적 갭으로 인해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의 공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어

제외하고, 최근에 모임을 자주 갖고 있는 고교 친구들을 만나 보게 되면 내가 왜 그리

모르는 것이 많은지 또 그들은 왜 그리도 서로가 공유 할 것이 많은지 참으로 부러울

따름이다. 솔직히 고교 동창생들이기는 하나 나와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그리 많지 않은

것에 대해 내가 상당히 당황을 하고는 했다고 하면 그들이 믿어 줄까?

그 이유를 가만히 되돌아보면 가정 환경적 요인이 그렇게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옮기기에는 복합적인 현상에 의해 일어난 것이 많기 때문에 생략하고 분명한 것은

나의 '열등감'으로 인해 나는 그것을 이겨내려 항시 조신했고, 항시 눈치를 보아야 했으며,

항시 잘은 못하지만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를 반증하는 것이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그것도 학창시절과 확연히 달라진 나의 모습을

보면 당시 친구들이 거의 놀라는 모습을 보이고는 한다

 

', 옛날엔 안 그랬잖아', ' , 옛날에 조용했잖아' 등등의 소리로 나의 변화된 모습에

약간은 당황을 하고는 한다. 그러나 그 열등감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또 항시 노력하려는

자세를 갖게 해 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이 오늘의 당신이 있게 만들었습니까?

작품에서 던지고 있는 여러 질문과 화두를 그냥 단순히 문학 작품 읽듯이 읽고 넘어가지

말고 시간을 갖고 음미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보면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또 보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재점검해 보는 게 어떨까 하는 깊은 생각을 갖게 한 시간이었다.

 

경영의 구루가 들려주는 이야기들

 

- 실명으로 인해 딸들의 도움을 받아 [실낙원]을 집필한 '존 밀턴'저술 후의 소회를

   밝히는 자리에서 "나를 만든 것은 실명이었다"고백했다

 

- 국가가 주는 최고의 영예라고 해도 자신의 가치와 부합되지 않으면 거절해야 한다

 

- 달성할 수 없는 결과를 노리는 것은 '야망'이 아니다. 그것은 바보스러운 행동일 뿐이다.

 

-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일은 "목표를 너무 높게 잡고 그것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너무 낮게 잡고 거기에 쉽게 도달하는 것이다." (미켈란제로)

 

- 지식근로자가 실패하는 가장 일반적인 원인은 새로운 지위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스스로

   변신하는 능력의 부족 또는 의지의 결여 때문이다.

 

- 신은 인간을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잘못을 범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

   하셨다따라서 타인의 잘못에서 배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타인의 훌륭한 행동에서

   배우라. (신학자 마르틴 부버)

 

- 기업 또는 개인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보다는 강점을 보강하는 것이 더 낫다

 

-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평론가들이 안다.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관객들까지 알게 된다.                 (피아니스트 파데레프스키)

 

- 혁신은 슘페터에 따르면 "창조적 파괴"이다.

 

- 최고 경영자의 과업이란 어제의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남다른 내일을 만드는 것.

 

- 강점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첫째 자신의 강점에 집중하라.

   둘째 자신의 강점을 개선하라.

   셋째 인문과 교양, 예술을 탐구하라.

   넷째 사후관리를 통해 목표 달성과 성과 향상을 가로막은 일이나 하지 못한 일을

           알아내어 실천에 옮겨라. 산을 옮기는 것은 기도가 아니라 불도저다.

   다섯째 상호간의 '예의'는 인간 관계를 원활히 해주는 윤활유이다.

   여섯째 애당초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일은 없다.

   일곱째 역량이 낮은 분야를 개선하는 데 주력하지 말고 역량이 높은 것을 강화하는 데

              에너지와 자원 및 시간을 투입해라. 

 

- 은행(BANK)이라는 단어는 '의자(bench)'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banco'에서 유래

   되었다. 또한 파산을 의미하는 'bankruptcy'는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한 고객들이 그런

   은행에 몰려가 의자를 때려 부셨다는 의미다.

 

- 상사가 상사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 부하의 의무다.

 

- '카리스마'라는 용어는 신학적으로는 성령의 은사 또는 신이 내린 능력을 의미한다.

   이 용어가 자주 쓰이게 된 이유는 독일의 사화학자 '막스 베버'가 카리스마적 권위를

   전통적 법률적 권위와 구별되는 형태의 권위로서 정의한 후부터이다.

 

- 리더는 비전을 가진 사람이고, 경영자는 비전을 달성하는 사람이다.

   리더는 영감을 불러 일으키고 동기를 부여하는 반면,

   경영자는 조직을 관리하는 사람이. 리더는 사람들을 최고로 가치 있는 수준까지 끌어

   올리는 사람이고, 경영자는 구체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 최상의 리더는 다른 어떤

   것에 앞서 목표를 달성하는 경영자이다.

     

- 성공적인 리더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드러커)

 

- "흥정없는 거래는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경제적 현실과 정치적 현실 사이의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이준수해야 할

   첫 번째 규칙은 경제적 현실을 충족시키지 않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하지 말아야

   하다는 것이다.

 

- 이윤은 남다른 현명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남다른 어리석음에서 나온다.

   고객이 정말로 구입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

 

- 기업은 고객을 창조하는 것이다.

 

- 새로운 것 하나를 잘하는 것은 잘못된 것 하나를 제거하는 것보다 못하다

                                                                                    (칭기스칸의 참모 '애율초재')

 

- 토마스 쿤에 의해 널리 퍼진 '패러다임'이란  어느 특정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되는 신념, 가치, 기술 등을 망라한 총체적 집합을 가리킨다.   

 

- 경영혁신은 기존의 자원이 부()를 창출하도록 새로운 능력을 부여하는 활동이다. 

   정말이지, 혁신 그 자체가 새로운 자원을 창출한다.

- 패러다임이란 "예를 보여 준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파라데이그마'에서 나온 말이다.

 

-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드러커)

   이는 지식사회의 사회과학자로서, 지식근로자는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고,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 모든 조직의 경영자들은 그들이 개인적 업무와 조직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정상적이고 지속적이며 일상적인 활동으로 그리고 실천사항으로 삼아야

   한다.

 

- 선동적인 정치가들을 '포퓰라테스'라고 불렀는데 이는 오늘날 인기영합 주의 정치를

   의미하는 '포퓰리즘'이라는 말의 어원이기도 하다.

 

- 지식근로자는 자신을 개발하는 방법을 스스로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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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를 말하다 - 이덕일 역사평설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추천권유도 9

 

작품은 나에게 생뚱맞게도 [하인리히 법칙]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주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1930년대 초 미국의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H. W. 하인리히가 '사고나 재난은 발생 전에

여러 차례 징후가 나타나므로 이에 대한 분석과 준비를 통해 미리 예방할 수 있다'

징후에 관한 법칙으로 오늘날 산업재해 예방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이론으로 널리 받아

들여지고 있는 법칙을 말하는데,

그는 수천 건의 사례 분석을 통해

'사고는 예측하지 못하는 한 순간에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여러 번 경고성

징후를 보낸다

고 주장하며 이를 [1 : 29 : 300의 법칙]으로 정립한 이론인데, 나는 작품 속에서 근대사의

여러 편린들의 애환과 뒷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 모든 것이 518년 이씨 조선을 끝내 망국으

로 이끈 어떤 단초처럼 여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떤 이유에서 주장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조선 망국의 배경을 '서인'과 후예인

'노론'이 조선을 시대 착오적인 방향으로 이끈 단초로 1623인조 반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역사를 깊이 있게 연구하거나 역사적 사실의 인과 관계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나로서는 작가의 그런 주장에 뭐라 반박할 근거도 마땅하지 않아 그저 답답할 따름으로

저자의 주장을 그냥 받아 들이기로 했다.

 

그렇다면 여타의 다른 단초들은 무엇일까?

나는 과거에 독서일기를 작성하며 주장을 했지만 조선 망국의 원인에 대해 어떤 변명이나

누구를 원망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작품을 읽는 내내 그래도 누군가 역사적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나 '사건'을 들어 보라고 묻는다면 여러 작품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은 바로 멀리는 '송시열과 그 일파' 및 '고종'일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 작품의 주제가 근대이기 때문에 송시열과 관련된 이야기는 배제하겠다 - 

 

제일 첫 번째 이유는 '아버지 대원군에 대한 반발심'에 기인한 것으로서 저자도 주장하고

있지만 고종은 아버지인 대원군에 대한 이유 없는 반발심으로 어떤 사안이 벌어지면 깊이

있는 성찰대신 아버지가 추진했던 모든 것을 반대로만 이끌려 했었다는 점이다.

특히 작품을 통해 처음 확인한 사항으로 작품 61쪽을 보면, 고종의 명으로 '신헌'이라는

인물이 주도가 되어 일본과 '한일 수호조규'를 체결하는데, 이에 대한 체결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수호 조약의 체결 과정 속에 담긴 배경이 [하인리히 법칙]에서 이야기하는

큰 사건의 또 다른 단초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1876년 고종은 격렬한 반발이 예상됐던 것과는 달리 개방에 적극적이었다. 고종은 대원군

의 모든 정책을 뒤집는 것을 정책의 대강으로 잡았고, 일본이 내미는 13개 조약문에 대한

세밀한 검토도 없이 무관 출신인 신헌에게 전권을 위임한다. 신헌은 국가적인 중차대한

사건에 대한 전권을 사양하며 세부지침을 고종에게 요구하였으나 고종은 이를 거부한다.

따라서 신조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일 수호 조약'이 체결

되는데 조약은 일본의 안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를 신호탄으로 한반도의 일본 병합이 이루어졌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하인리히 법칙]의 직접적인 단초가 되는 것은 '고종의 성향'에 기인한

것으로 고종을 한마디로 '정확한 심중'을 파악 할 수 없는 대표적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종의 대표적인 이중적 성향이 바로 나라 잃은 백성들이 독립 운동을 펼치자 이를 적극

지지하면서, 뒤로는 관료들에게는 독립운동 진압 명령과 함께 해당 부대를 격려하는 등의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었으며, 망국으로 이끈 '을사오적'을 처단해 줄 것을 요청하며 애국

충신들이 줄줄이 자결하자 그 후손들에게 '충신'이라며 각종 휘호와 상을 내리면서 한편,

을사오적들에게 난세에 훌륭한 일들을 수행하였다고 ''을 내리는 이중적인 통치 행태를

보이고 있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 이런 이중적 통치 스타일이 [하인리히 법칙]의 최종 결과론적인 사건인 '조선 병합'

원인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에 나타난 사건을 통해 과거에 일어났던 우리 민족의 치욕적인 역사적 사실 속에

숨겨진 [하인리히 법칙]에 부응하는 단초들에 대해 살펴 보았다면,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 속에서 또 다른 [하인리히 법칙]의 원리에 적용

당할 사건의 단초는 없는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우리 사회를 돌아보자. 장난이 아니다.

[하인리히 법칙]을 아는지, 모르고 있는지 아니면 알고 있는데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다.

눈만 뜨고 정치인들이 만나기만 하면 ‘4대강 다툼’, ‘강정마을 해군 기지 설치 반대’,

툭하면 거리로 산으로, 들로 나가서 '산 자여 따르라'를 목 쉬게 터져 부르지를 않나,

사사건건 화제의 일만 터졌다 하면 시위하시는 분들에게 힘을 주시고자 나서시는 신부님,

목사님, 수녀님, 스님들, 대를 이은 음서제도를 꿈꾸는 공기업의 자녀 특채 의혹들, 무더위

속에 절전을 감수하게 한 일부 몰지각한 공기업 직원들의 행태, 고위층 고매하신 분들의

성접대 사건, 역사 교과서가 왜곡 되었다고 연일 난리를 치고 계시는 고매한 학자님들,

철거 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골프 치시다 잡히시는 분, 우리의 멀쩡한 자식 40여명이 몰살

당했는데 원인은 좌초에 의한 폭발이라고 우기시는 분들, 그저 장난으로 이야기한 것을

갖고 '반란죄'로 몰아가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우기시는 어느 여전사분과 국민을 대표

하라고 뽑아 놨더니 위대한 지도자 동지를 결사 옹위해 보자는 색깔이 불분명한 집단들,

슈퍼 갑의 횡포와 비정규직의 자살이니 하루도 빠짐 없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음에도 모든

이런 사건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시는 위정자가 득실거리는 지구상에서 그 어느 곳보다

가장 찝찝하고 개운치 않은 사건이 연일 터지는 그런 나라이다.

이 모든 사건이 끝 모를 방향으로 모든 사건들이 달려가고 있지만 어느 하나 나서서

진정은커녕 오늘도 거리로 나서서 천막 안에서 농성을 되풀이 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또 다른 결과물을 도출하려는 [하인리히 법칙]의 또 다른 단초가 아닐까?

무엇을 하자는 이야기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이를 말렸다가는 너도 '같은 놈'이라고 눈에 쌍심지를 키고 덤벼드는 게 일상화 된 우리의

현실을 바라 보면서 사회의 구성원이자 어느 정도 책임을 부여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로서는 해 볼만한 게 별로 없다.

일본의 수상이라는 대동아 전쟁 전범의 외손주라는 색히나 그 나라의 도지사가 위안부

문제, 핵 오염 물질 방출 문제 등에 대해 헛지랄, 헛소리를 해도 아무 소리도 못하고

오히려 그들보다는 모든 문제는 '다카키 마사오' 자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난리를 치는

나라인데 어느 누가 무서워하겠는가?

나는 작품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한일 합방을 기점으로 앞에 나타났던 여러 불쾌한 사건은 '한일 합방'이라는 정점으로

치닫는 증상들이었고, 그 이후에 벌어진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사항은 '한일 합방'

버금가는 새로운 [하인리히 법칙]의 또 다른 단초가 생성되고 있는 사항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지도자 집단이라면 과거의 잘 못을 바로 잡는

문제도 중요하겠지만 지금 닥쳐온 문제, 펼쳐질 문제에 대해 국민의 뜻을 모아 발전적인

방향으로 대처해 보겠다고 발 벗고 나서는 위정자 한 분이라도 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작품 속에서 언급된 [하인리히 법칙]의 여러 단초들

 

[고종의 오판]

 

- 러일전쟁은 190428일 일본이 요동반도 남단의 여순항을 기습 공격해 일어난

  전쟁으로 인천 앞바다에 있던 러시아의 '바라크함' '코리예츠함'을 격침시킨 그 다음날

  정식 선전 포고를 했다.

 

- 212일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는 한국 영토의 무제한 징발권을 명시한 '한일

   의정서'를 이지용(외부대신 서리 및 육군참장)과 함께 고종에게 강요함.

 

- 고종은 러시아의 전력을 믿고 러시아의 승리를 점쳤으나 일본은 '아카시 모토지로'라는

  인물의 첩보 공작으로 러시아 내부를 분열시켜 불리한 전세임에도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아카시는 스위스로 망명해 있던 '레닌'에게도 접근하여 19051월 러시아 혁명의 도화

  선이 된 '피의 일요일 사건'에도 깊이 간여하였다고 한다. 당시 이 모든 활동에 소요되는

  자금을 군부에 요구해 얻어 냈는데 작전금은 당시 100만엔으로 현재의 화폐 가치로

  400억엔(54,000억원)정도였다고 한다.

 

[을사늑약과 고종의 이중 행보]

 

- 러일전쟁 직후 고종은 이승만을 미국에 밀사로 파견하지만 이미 일본으로 마음이 돌아선

  주미 공사 김윤정의 비협조와 미국(가쓰라-태프트 밀약)과 영국(영일 동맹)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일본의 정치, 경제적 이익을 승인'받았기 때문에 이승만의 활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포츠머스 강화 조약'을 주도한 루스벨트는 '노벨 평화상'을 받는다.

- 1905년 이토 히로부미가 방한 직전 송병준이 주축이 된 '일진회 선언'을 발표하는 데,

  '한국이 부강해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까지'라는 단서를 달아 '을사늑약'을 체결해

  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겨준다.

  조약 체결의 주역은 외부대신 박제순,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으로 소위 '을사 오적이 이들이다.

      

[고종의 이중적 행보의 여러 증거들]

 

을사오적에 대한 처단을 요구하는 상소와 자결자들이 속출하자 고종은 이들에게 시호와

    훈장을 내리는 동시에 을사오적들에게도 힘을 합쳐 국사를 잘 돌보라고 격려를 하는 등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고종의 통치의 한 특징이 '밀지 정치'인데 의병은 고종이 몰래 내린 밀지에 따라

     거병하고, 이를 진압하는 부대는 고종의 공개된 명령에 따라 진압에 나셨다고 한다.

 

헤이그 밀서 사건으로 통감 이토가 고종에게 책임을 묻자, 고종은 '짐은 그 사건과

    아무 관계도 없고 모두 헤이그에 있는 자들이 밀서를 위조한 것'이라 주장했다고 한다.

 

[국제정세]

 

- 고종과 고종이 보낸 밀사들은 일본이 빼앗은 한국의 외교권을 되돌려 받는 것이 '평화'

   고 생각했지만 열강들이 충돌하지 않고 약소국을 차지하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평화였다.

 

[헤이그 밀사 파견에 따른 후유증]

 

- 송병준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황에게 사과하든지 대한문에 나가 주차군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에게 항복하든지 선택'할 것을 강요

 

- 이완용은 칼을 빼 들고 고함을 지르며

   '폐하께서는 지금이 어떤 세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협박했고 대신들도 물러날

    것을 종용했다고 함.

 

- 고종은 자신의 자리를 황태자에게 물려주고 대리청정을 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나

   일제와 친일 내각이 억지로 '양위식'으로 둔갑시켜 고종과 황태자가 불참한 가운데 식을

   거행해 고종의 시대를 끝내게 한다  

 

[일본의 이토가 헌법을 만든 순간부터 시작된 아시아의 고통]

 

- '대일본 제국은 만세일계 천황이 통치한다'(1)'메이지 헌법 3조에서는 '천황은

   신성하며 침범할 수 없다'는 조항과 훗날 아시아인들에 커다란 고통을 안겨 주는 빌미를

   제공하는 단초가 된 제12조의 '천황은 육, 해군의 편제 및 상비군의 숫자를 결정한다'

   조항은 군부가 내각에서 통제권을 벗어나 천황에게만 소속된다는 통수권 개념으로

   침략전쟁을 일으키는 빌미가 된다.

 

[이토 히로부미의 추도식과 고종]

 

- 이토 히로부미 장례식에 내각 대신들의 강권에 못 이겨 고종은 조문한다.

 

[우리 영토의 확정]

 

- 간도는 현재의 중국 길림, 요령성 일대의 '서간도'와 두만강 북부 '북간도'의 통칭으로

   따라서 서간도를 평안북도에, ‘동간도(북간도)’를 함경도에 편입시키고 관리를 임명해

   간도에 상주시켰고, 현지의 백성들조차도 대한제국에 세금을 납부하였다.

 

- 일제는 190994일 북경에서 '간도에 관한 청일협정'을 맺어 남만주 철도 부설권을

   얻는 대신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 주었다.

 

[대표적인 친일파의 발언들]

 

- '혈의 누'의 작가 이인직은

   ⦁ 역사적 사실에서 보면 일한병합이라는 것은 결국 종주국이었던 중국으로부터

        일본으로 옮기는 것

   ⦁ 조선 국민은 대일본제국의 국민으로서 그 위치를 향상시키는 일이다.

  라는 망발의 극치를 했다고 한다 ---> 이 색히 작품을 괜히 봤다

 

[매국 협상 30분만에 500년 조선을 팔다]

 

- 일본은 1909년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한일 합방을 앞당기는 계기로 설명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미 이토가 그 해 4월 총리대신 가쓰라, 외무대신 고무라와 3자 회합을 통해

   한국 병합을 찬성했고, 일본 각의는 7월 한국 병합에 관한 건을 통과시켰다.

 

[일본이 통치권을 빼앗은 직후 한 행위]

 

'토지 조사법'같은 법을 제정해 일제의 물적 수탈 기반을 만드는 일

     ---> 한반도 땅의 40%를 찬탈한다.

각종 고시 제정을 통한 민중의 반발을 누르는 일

은사금 지급을 통한 기득권층을 상대로 한 회유 정책

또한 일본 내각은 '시정방침'이라는 것을 발표, 한국에는 일본 헌법을 시행하지 않고

'대권'에 의한 통치 즉, 일왕의 자의에 의해 다스리도록 했다. 특히 일왕의 위임을 받은

조선 총독이 제령으로 직접 통치하는 지역이었는데 일왕의 칙령 제324호 제1조는

'조선에서 법률을 요하는 사항은 조선 총독의 명령으로 규정할 수 있다'로 명시,

이는 한국을 착취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또한 총독부의 '행정명령'을 어기면 재판 없이 구속되거나 벌금이 부과되고 심하면

'태형'까지 맞아야 했다. 일제는 '독립운동은 상놈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선전을 펼친

결과, 양반 사대부 출신으로 독립운동에 나선 인물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선각자들의 독립운동]

 

- 조선의 병합과 아울러 세상을 원망하던 양명학의 대가인 이건승과 이건방은 자결을

  택하는 대신 후학 양성에 힘을 쏟는다.

  , 교육으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의식아래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인다. 뿐만 아니라

  정원하, 이상룡, 홍승헌, 이상설, 이회영, 이관직 선생 등이 민족의 미래를 위해 활동하신

  분들이다.  

 

[경학사의 태동과 그 의의]

 

- 조선인들의 자치와 독립운동을 위한 '경학사'라는 민간 조직을 만들었는데, 경학사는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을 표방하였는데, 경학사는 대한민국이란

   민주공화정제의 뿌리가 되었다.

 

- 1911년 큰 흉작으로 경학사는 더 이상 유지가 어렵게 되었으며 1912년 새로운 한인 자치

  조직인 부민단이 신흥무관학교와 같이 새로이 조직된다.

      

[신흥군관학교]

 

-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원인 중 하나는 군사력의 열세이다.

   조선의 군사력은 1802년 노론의 영수인 영의정 심환지가 정조가 창설한 장용영이

   폐지되면서 결정타를 맞는다.

 

- 이회영 선생은 신흥군관학교 설립을 가장 먼저 앞장서 제창하신 분이다.

   이때 군사 교육 계획에 참여하신 분들이 김형선, 이장녕, 이관 등 세 분으로 신흥무관

   학교의 신()자는 신민회에서 떠온 것이고 흥()자는 다시 일어난다는 의미에서 교명을

   지은 것인데, 중국인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최초엔 '신흥강습소'라는 이름으로 출발.

 

[경제적 수탈과 3.1운동]

 

- 일제가 실시한 조선 토지 사업의 가장 큰 문제는 수조권(收租權)을 무시한 데 있었다.

   세금을 거두는 권리인 수조권이 왕실 또는 국가기관에 있는 토지가 공전, 개인에게는

   '사전'이 있었는데 이를 무시하고 대다수의 토지를 국유지화하면서 이 소유가 궁극에는 

   조선총독부의 소유가 되면서 경제적 수탈이 더욱 심해졌다.

 

- 일부 친일 사대부와 모리배들이 마을의 공유지를 사유지라 신고를 하고 조선총독부는

   이를 식민통치의 근간으로 삼기 위해 특혜처럼 인정해 주는 일이 많아져 민족간의

   분열을 획책하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노렸다.

 

- 토지 조사사업이 끝난 이듬해 전 민족적인 3.1운동이 일어난 것은 우연의 결과가 아님.

 

[민족사학의 말살과 회사령]

 

- 우리 사회의 문제 가운데 하나인 '사학법' 문제도 일제시대부터 태동된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다. , 한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갖고 있으면 통치가 어렵다고 판단,

   일제는 교육시스템 및 허가 방법을 철저하게 장악해 1906'사립학교령'을 발표해

   한국인들이 신청한 1,217개교 가운데 42개교만 인가하고 1,175개는 퇴출시켰던 반면

   당시 조선에 들어와 있던 외국인이 설립한 종교 사학은 778개교 전부를 인가해 줌.

 

- 사학에 갈 수 없게 된 대부분의 학생들이 '서당'을 찾기 시작하자 일제는 다시 1918

   '서당규칙'을 공표해 서당도 통제하기 시작한다.

  

- 일제는 민족 자본이 형성되는 것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회사령'을 발표한다.

   1914년 회사령 발표 이후 국내에 설립된 회사수는 109개였는데, 자본금 규모는

   1,790만원 으로 일본인은 회사수가 68(지본금 919만원) 내국인 회사는 21(자본금

   178) 일본인과 합동으로 설립한 회사는 20개사(자본금 610만원)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 역시 3.1운동을 촉발시킨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1920년에 폐지된다.

 

[쌀 소동과 3.1운동]

 

- 일본은 '영일동맹'을 무기 삼아 유럽 전선에 직접 참전하지도 않고 막대한 이익을 본

  수혜국이 된다. 일본은 19148월 독일에 선전 포고하면서 독일 조차지였던 중국

  산둥반도의 교주만을 점령하고 청도를 차지한다.

  이를 계기로 '채무국'이었던 일본은 '채권국'으로 탈바꿈하게 됨과 동시에 농업 국가에서

  공업국가로 탈바꿈하게 된다.

 

-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바뀌면서 쌀 생산량이 감소하자 일본내 민심이 흉흉해지자

  이를 잠재우기 위해 조선 총독 데라우찌는 국내에서의 곡물 수탈에 더 혈안이 된다.

   

* 임시정부 이후의 사건에 대한 사항은 작금 우리 사회의 역사 인식에 관한 관점의

  다양화로 또 일부 '다름''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학자들이 많아 나마저 '이것이

  옳고, 저것은 틀리다'는 이야기로 새로운 불씨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여기서는 자제하려

  한다.

  분명한 것은 역사는 우리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사실과 그 관점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수준에서 이야기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자신만의 논리와

  주장을 이야기하는 무리가 많아 개인적으로 좀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으로 판단돼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기타 지식]

 

- 세종실록 30(1448) 대군은 60, 제군 및 공주는 50, 2품 이상은 40, 3이하는

   30칸으로 주택 규모를 법제화하였다.  

 

- 전통 사대부 출신인 홍양호는 일본에 가는 통신사 일행에게 벗나무 묘목을 부탁해

   서울 우이동을 벚꽃 경승지로 만든 인물이라고 한다.

 

* 본 독후감은 지난 2013년에 작성되어 싯점상 내용이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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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려 본 슬픔 믿음의 글들 208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 홍성사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권유도 9

 

슬픔이 우리를 짓누를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기독교인이거나 종교와 상관없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본 질문을 보면 참으로 원론적이고

도 원초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나만의 독선과 아집의 세상에 빠져 잘난 척 하고 살다가 겨우 주님을 영접해 살기 시작한지

십 수년이 안되어 종교적 신념이 아직은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나를 비롯한

대개의 신자들은 자신이 힘들고, 지치고, 피곤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특히 삶이 또

세상이 자신을 버렸다고 느낄 때 서두에 언급한 질문을 절대자이신 주님께 던져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 온 답은 아마도 '묵묵부답'이었을 것이며 그런 상황을 당하고 나면 꼭 한다는

소리가 '신은 없다'거나, '신은 나를 버렸다' 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절대자를 믿어 온

스스로나 절대자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경멸의 눈초리로 비난 혹은 조소를 보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이 이 작품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은 자기 삶에서 가장 충격적인 슬픔으로 인해 감정적으로 마비되는 상태를 파악하고자

하는, 그리하여 종국에는 그러한 마비상태를 일어서고자 하는 '한 사람'의 주의 깊은 시도

를 적나라하게 펼쳐 놓은 기록이라고 작품 해설서는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나는 이 점에 절대적으로 공감을 표시하는 바이다.

 

작품 속에서 나오고 있는 결론적인 이야기이지만 결국 우리가 불완전한 탓에 '사랑'이라는

혜택을 누리는 대신 그 대가로 사탄이 주는 고통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을

작품이 이야기해 주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싶다.

작품 여러 곳에 우리 스스로를 돌아 보게 하는 문구가 여럿 나온다.

 

- 행복할 때는 행복에 겨워서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너무 행복해서

   그분이 우리를 주장하시는 게 간섭으로 여겨지기조차 하는 그 때, 우리가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그 분께 감사와 찬양을 돌린다면 두 팔 벌려 환영을 받을 것이다.

 

- 만약 하나님이 '사랑의 대용품'이었다면 우리는 그분에 대한 모든 흥미를 잃어 버려야

   옳다

 

- 내게 종교적 진리에 대해 말해 주면 기쁘게 경청하겠다. 종교적 의미에 대해 말해 주면

   순종하여 듣겠다. 그러나 종교적 위안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 '당신은 모른다'

   나는 의심할 것이다.'

 

- 과거는 과거이며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고, 시간 그 자체가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며,

   천국이란 '이전 것은 지나가 버린'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고뇌의 깊이가 남다른 분의 짧은 이야기이지만 그 어느 작품집보다 신앙적, 심리적 성찰의

깊이가 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래의 단락은 내가 작품을 읽으며 가장 가슴에

와 닿았던 단락으로 모두 음미했으면 해서 여기에 옮겨 보았다..

[왜 사람들은 모든 괴로움이 죽음과 더불어 사라진다고 확신하는 걸까? 기독교 세계에서

  도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그리고 동방에서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녀(작품 저자의 부인)가 안식한다고 어떻게 확신한단 말인가?

  다른 것은 제쳐 두더라도, 남은 사람을 이토록 괴롭게 하는 이별이 떠나는 사람에게는

  왜 고통스럽지 않단 말인가?

  '왜냐하면 이제 하나님 품 안에 있기 때문이다'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녀는 언제나 하나님 품 안에 있었으며 나는 하나님의 손이 그녀에게 어떤 일을

  하셨는지 봐 오지 않았던가. 우리가 육신을 벗고 나면 하나님이 갑자기 더 다정하게 대해

  주시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만일 그렇다면 왜인가?

  하나님의 선하심이 일관성 없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다가 말다가 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선하지 않거나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이승의 삶에서 그

  분은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보다 상상할 수 있는 그 모든 것보다 더한 고통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는가 말이다. 만약 일관성 있게 고통을 주시고자 한다면, 죽은 후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주실 수 있으리라. 어떤 때는 '주여 주를 용서하소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때는 그렇게 말하는 것조차 힘들다. 그러나 우리의 믿는 바가

  진실이라면, 하나님은 그렇게하지 않으셨다. 스스로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으셨던가]

                                                                                                                  (50~51)

 

작품을 읽으며 나 역시 우리들에게 부지 불식간에 다가 올 수 있는 '슬픔'에 대한 생각을

잠시나마 짧게 해 보았다. 작품의 결론처럼 죽음으로 인해 찾아온 '슬픔'이란 어떤 행위의

종결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 사계절의 변화처럼 '우리 생의 한 과정'이라는 작가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사계절이 순환하듯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사랑하고 받아 들여야 하는 게 인생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죽음으로 인해 다가 오는 이별을 인생의 끝으로만 여기지 말고 인생의

한 과정 자체로 이해하고 그 속에서 제일 아름다운 결론을 내릴 수 있게 오늘을 감사하며

충실히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약하기 그지 없는 우리 인간들은 그렇게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이 순리이고 살면서

주님께 의지한다면 그러한 삶의 모습을 보시는 주님께서는 한없는 사랑, 한없는 관심을

보이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작품을 읽고 나름대로 내린 작품의 결론이다.

 

오늘 아침 출근 길에 우연히 듣게 된 찬송가 310장이 지친 몸으로 하루를 열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직장으로 나서는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다.

 

1.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 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 해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2. 왜 내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 주셔서

    내 맘이 항상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 해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3. 왜 내게 성령주셔서 내 마음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 해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4. 주 언제 강림 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또 주님 만날 그 곳도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 해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작품의 서평을 덮으려는 순간 우연히 마주한 어느 신문의 칼럼에서 읽은 글인데 작품의

주제와 너무도 맞아 떨어져 여기에 옮겨 본다.

 

"우리가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과 직접 가서 마주하는 실제 모습은 크게 다르다.

 사진은 '관점'을 가지고 봤고, 직접 가서 목격하는 것은 '광경'을 봤기 때문이다.

 ‘광경이 눈에 보이는 현상 그 자체를 말한다면, ‘관점은 그 광경을 어떤 입장과 의미를

 가지고 해석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왜 똑 같은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불평하는데 어떤 사람은 감사와 기쁨이 넘칠까요.

 전자는 광경을 봤기 때문이고, 후자는 그 광경을 관점의 눈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지점에서 바라 보느냐에 따라,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광경이 달라

 보입니다.

 눈에 보이는 객관적인 광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광경을 해석하는 관점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과거의 광경에 붙잡혀서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불행합니다.

 그러나 똑같은 광경을 경험하고도 해석, 즉 관점이 다르니까 그래도 행복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애굽에 끌려가 고생하다가 애굽의 총리가 되었던 요셉은 식량을

 구하러 온 자기 형제들을 보고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45:7)

 

라고 고백합니다.

왜 오늘 요셉의 신앙이 아름답습니까. 그는 보통 사람들처럼 형제들 앞에 이렇게 고백

했어야 합니다.

"형님들이 나를 시기 질투해서 팔아 버려 고생하다 이 곳 애굽까지 끌려왔습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저도 안 찾으시고 뭐 하셨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광경이나 환경을 탓하지 않고 그 아픔을 영광의 면류관으로 바꾸는 믿음의 관점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처한 광경을 믿음으로 해석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 역시 두려움과 괴로움 속에 살아간 날이 더 많겠지만, 그가 다시 목에 힘을 주어

하나님이 먼저 나를 이 곳으로 보냈다고 고백할 수 있는 비결은, 자신의 광경을 믿음의

관점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당하고 있는 광경을 보면 억울하고 섭섭하고 두려워

집니다. 그런데 믿음의 관점으로 보았기에 도리어 '용서''감사'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흔히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고난이 저절로 축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 때문에 평생 상처를 끌어 안고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고난을 만났을 때, 광경을 믿음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눈을 갖는 것입니다.

그 고난으로 인해 성장하게 될 것을 보는 눈이 있으면 조금은 그 아픔을 기쁨으로 넘겨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믿음의 관점으로 살기에, 고난 중에도 인내할 수 있으며, 고난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봅니다. 믿음의 관점이 없을 때에는 나의 실패와 무능력함 때문에

괴로워했지만, 이제는 믿음의 관점으로 나의 실패도, 나의 약함도 간증하게 하시고, 선교의

도구로 삼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 오산 하늘 땅 교회 이재학 목사님 칼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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