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왜 의미 있는가 - 속물 사회를 살아가는 자유인의 나침반
이한 지음 / 미지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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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권유도 : 3

  

나는 어떤 작품을 읽던 반드시 독후감(독서일기)을 작성하며 내가 읽었던 내용중 중요한

부분으로 체크를 해 놓았거나 요약한 쪽지가 있으면 그 쪽지를 기준으로 전체적으로 해당 작품을

다시 한 번 리뷰를 하여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내 것으로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을 몇 번씩 점검하며 읽어도 도저히 뭔 이야기를 하는 작품인지

답답하고도 답답할 뿐이다.   

 

삶의 의미에 대한 나름의 단초를 얻어 머난먼 이국땅에서 사유의 시간을 얻고자 했는데 완전

실패였다. 아니 내 지식의 한계로, 사고력 부족으로 철학적 관점에서 논하고 있는 작품 속으로

들어가는데 완전 실패했음을 고백한다.

읽는 독자 특히, 나를 가르킬 수 밖에 없지만 의 지적 수준을 고려치 않은 저자분의 고차원적

강의는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아주 짙게 묻어난

작품이었다.

아무튼 난 작품을 덮었지만 뭘 읽었고 뭐를 작품으로부터 받았는지 도통 머리에 남는 게 없어

그저 아쉬울 뿐이다. 아니 신경질난다.

 

꼭 한가지 이야기하라면 작품을 읽고 내린 나의 결론은 나도 역시 속물인간이었다라는 결론을

내리며 언젠가 다시 한 번 점검해 보기 위해 작품의 극히 일부를 정리해 보았다.

 

1. 속물 근성의 사회

- 사람들은 충동의무감으로 이런저런 일을 한다.

  허공의 충동과 의무감은 단연 속물 근성에서 생긴다.(P 15)

   ---> 나는 이런 저자의 이분법적 논리의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정말 인간들은 이럴까?라는 생각을 수 차에 걸쳐 해 보았지만 나는 저자의 이런 주장에 선뜻

  동의하지 못해 작품을 읽는 내내 힘들었다.

- 모든 사람은 여러 종류의 위계 속에 등급별로 놓인다. 위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그 사람의

  본질적 가치를 결정하는 데 이는 속물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P 16)

  ---> 속물은 음식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등 요리사가 되는 것이 중요

- 속물은 진정으로 향유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며, 속물이 유일하게 향유할 수 있는 것은 허영심

  뿐이다. 속물은 이상적인 것과 탁월한 것에서는 아무런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며 특히 정신적인

  것을 음미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P 17)

- 속물은 보통 자신의 자존심을 어루만져 줄 속성을 의도적으로 고른다.(P 18)

- 속물들에게는 도덕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타인에게 비도덕적이라고 경멸받지 않으면서

  자신은 타인을 비도덕적이라고 경멸할 수 있는가가 중요.(P 21)

- 속물 근성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속물 근성의 세계관에서만 유효한 허공의 충동과 의무감에

  지배 당한다.(P 24)

 

2.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느낌

- 속물 근성이 지배하는 사회는 가만히 머물러 있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는 의무감,

  그리고 그 의무감대로 하지 못했다는 자기 비를 통해 끝 모를 굴욕감과 중요한 것을 상실

  했다는 마음, 덫에 걸린 기분을 만들어 낸다.(P 33)

 

3. 잘못된 탐구 방법(P 39)

- 인생의 의미를 탐구할 때 흔히 저지르는 잘못

   1) 단어의 뜻을 정해서 해결하기

   2) 독단에서 시작하고 독단으로 끝내기

   3) 생물학적 요소에서 결론 내리기

   4) 전제를 검토하지 않은 채 허무주의와 비관에 빠지기 

- 비관은 보편적일 수 없는 원리를 전제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비난하는 태도(P 46)

 

4. 우리는 인생의 관찰자가 아니다.

- 우리가 무언가를 하는 동안 인생을 더 살 만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 그 때 경험하고

  만들어 내는 무언가는 가치 있는 것이다.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하는 시간은 의미 있다.

  따라서 인생의 의미는 가치를 구현하는 데서 생긴다.(P 51)

- 인생의 의미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그것이 무엇이든 나를 만들어 가는, 내 인생을 인도

  하는 실천적인 힘을 가져야 한다.(P 55)

 

5. 인생의 가치들 Ⅰ– 삶의 내용적 의미

- 삶에서 가치란 우리의 실천을 변경시키는 이유로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P 63)

- 인생의 의미를 구성하는 가치는 크게 내용적 의미배경적 의미로 나뉜다.(P 64)

   1) 내용적 의미 : 우리의 삶을 채우는 실질적 내용

   2) 배경적 의미 : 의미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따라서 배경적 가치는 내용적 전제이자 제약이다.

- 인생에 참여하고 실천하는 당사자로서 우리는 부인할 수 없는 가치들을 확인하고 그 가치들을

  구현하는 시간은 의미 있다는 점을 근거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인생이 의미 있다고

  결론 내릴 수 밖에 없다.(P 75)

 

6. 인생의 가치들 Ⅱ– 삶의 배경적 의미

-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한 조건, 사람들 사이에 꼭 지켜야

  하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를 왜곡하고 일그러뜨리고 뭉갤 수 없다.(P 82)

- 가치를 낳기 위해 가치를 향유하는 조건을 파괴하는 행위는 배경적 가치를 위반하는 것이다.

                                                                                                                 (P 83)

- 인생의 의미에 관한 관념은 사회적인 것, 공적인 것, 소통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함(P84)

7. 인생의 의미를 찾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

- 속물 근성의 세계관에 매몰된 사람은 자신이 가치라고 여기는 것이 허공의 관념임을 알

  못한다.(P 93)

- 속물이란 평범한 수준의 의지력만을 지녀 가치 있는 것을 파악하거나 추구하지 못하고

  줄곧 현실이 아닌 현실에 매우 진지하게 관여하는 사람’(쇼펜아우어, P 93)

- 욕구가 진지한 이유가 되려면 결국 욕구의 기초가 쾌락주의적이거나 다른 근거를 통해 욕구의

  대상이 바람직하다고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한다.(P 95)

- 우리가 어떤 욕구를 가진다고 해서, 그 욕구를 충족하는 것만으로는 우리 인생을 중요하고

  의미 있게 만들지는 않는다.(P 96)

- 타인에 대한 의무는 배경적 가치를 준수하는 것이고, 자신에 대한 의무는 그런 제약 아래에서

  내용적 가치를 풍부하게 구현하는 것이다.(P 99)

- 가치에 뿌리박은 신념이라면 그 신념에 따른 욕구의 충족은 가치를 직접 실현하는 일이다.

                                                                                                                 (P111) 

8. 기꺼운 삶

- 자신의 제약과 자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기꺼운 삶’, , 진정성 있는 삶의 전제가

  된다.(P120)

- 불가능을 인정하지 않고 인생의 계획을 새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P120)

- 공존하며 협동하는 사회에서 가치의 구현은 필연적으로 분업을 전제로 한다.

  각자가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히 하고 그 결과가 결합되었을 때, 사람들이 누리는 가치는

  훨씬 풍부해진다.(P122)

- 속물 근성은 빈곤한 상상력을 낳기 쉽다.(P125)

- 기꺼운 삶의 방식이란 자신이 선택하고 조합한 활동을 해 나가면서, 무언가에 속박되어 있거나

  강제되어 있다고 느끼지 않는 삶이다.(P127)

- 삶에서 무언가를 최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은 삶이 희생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억울한 심정을 품게된다. 가치는 다원적이며 하나의 목적이나 조합만이 절대적으로 우월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보다 풍요로운 삶으로 향하는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P128)

- 진정한 인생은 노동 끝의 과실을 향유하는 즐거움 속에만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과 학습의 시간은 수단화되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인고의 시간으로 설정된다.(P129)

- 인생의 의미는 의식이 존재함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의식의 체험이야말로 인생에 필수적인

  부분이다.(P130)

- 가치를 구현하고 경험하는 과정을 진지하게 생각할 때, 살아 있음의 의미가 구성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체험하기 위해서는 기꺼운 방식으로 인생을 이끌어야

  한다.(P131)

- 속물 근성은 자의식을 자극하는 인정과 무시의 그물망을 통해 속물 근성을 낳고 인생에 대한

  앙상한 이해 역시 자동 발화의 그물망을 타고 앙상한 이해를 재생산한다.(P134)

- 성취는 과정으로서 수행이 가져다주는 경험 자체의 측면에서 음미되어야 한다.

  따라서 최선은 양적인 최대화의 개념이 아니라, 수행을 선택하고 진행하는 방식을 의미(P134)


9. 인간적 선이 되는 상호작용

- ‘삶의 내용적 가치란 자신과 타인의 쾌락을 증진하고 고통을 줄이는 일, 탁월하고 좋은 것을

  음미하고 그것의 발전에 기여하는 일, 삶의 배경적 가치란 타인들도 내용적 가치를 확인하고

  이를 누릴 수 있는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는 것(P139)

- ‘소통은 세계와 인생의 작동 방식과 의미에 대한 생각을 제대로 다듬어 가는 기쁨을 함께 하는

  것이다. 최고의 소통은 탁월한 것에 기여하는 작업 속에서 두 사람이 의견을 주고받고 협동하여

  새로운 좋은 것을 만들어 낼 때 발생한다.(P142)

- 소통이 더욱 풍부하고 의미 있게 되기 위해서는 접속에 시간을 저당잡히지 않고 홀로 몰두하고

  혁신하는, 내면 세계의 시간이 필요하다.(P153)

- 우정의 핵심은 안심하고 자신의 인격의 통합성을 유지하면서 자아를 발전시키고 인생을 함께

  펼칠 수 있는 토대적 애착 관계이다.(P161)

- 특별한 애착 관계는 보편적인 존중의 관계를 전제로 해야만 진정으로 성립한다(P165)

- 가치 있는 경험으로 하루를 채우려면 생활의 리듬에 따라 정신이 이완되는 순간이 많아야 

  한다.(P169)


10. 사람들과 어떻게 교류할 것인가

- 어떤 사람이 자신이 만나는 사람이 족족 이상한 사람이고 자신은 늘 불쌍한 피해자라고

  이야기한다면 그 사람 자신이 이상한 사람일 확률이 높다.(P190)


11. 자기 계발의 관점

- 애매하고 일번적인 내용을 자신에 대한 설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바넘 효과혹은 포러

  효과라 불리운다(P203)


12. 철이 든다는 것

- ‘철든 사람부양과 번영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배적인 권력의 규율에 순응하는 인간(P216)

-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는 질서가 사람들의 정당한 권리를 억압할 때, 권리를 존중하는 질서로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P220)

- 법제도의 테두리망 안에서 타인에게 불법적인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사리를 추구한 행위들이

  합해져 누군가가 감수할 수 없는 곤경에 빠진다면, 그 법제도에는 구조적 부정의가 존재하는

  것이다.(P222)

- 성숙한 삶의 요건은 부조리한 실존에 던져진 부담을 직시하되, 현실을 합리적으로 변화시키려

   는 용기를 잃지 않는 것이다.(P226)

- 질투는 타인의 평안으로 인해 그의 평안이 아무런 손실을 입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평안을 고통으로 바라보는 성벽(性癖)이다. 그리하여 평안의 척도를 그것의 내적 가치에서가

  아니라, 단지 타인의 평안과의 비교에서만 평가하게 된다.(P228)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현재의 사실적, 규범적 사태와 미래의 불확실성을 그대로

  직시하고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들을 파악하는 정확한 정신이자 가치에 집중하는

  정신(P229)


13. 정치적 책임을 이행하는 일이 즐거울 수 있을까

- 진정성 있는 삶을 살려면, 자신의 기질, 능력, 여건에 적합한 삶의 스타일을 찾는 일을 피할 수

  없다.(P259)

- 불이익 없이 허심탄회하게 근거를 교환하고 합의를 통해서 질서를 조정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선에 적합한 방식으로 정치적 책임을 일상적으로

  수행해야  하다.(P267)

- 정치적 책임을 자각하고 이행하는 것은 배경적 가치를 준수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적 원칙에 의하여 자신의 선과도 일치하는 활동이 될 수 있고,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 갈 수 있다.(P268)


14. 지성적 태도에 대하여

- 인생에 대한 진지한 태도는 가치에 주의를 기울이는 삶을 의미(P277)

- 무지와 나태에는 하한선이 없다.(P288)

- 진정한 교양이란 이성을 예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한 결과물, 교양은 문제를 설정하고

  그 문제에 대답하는 활동이다. 또한 교양은 쏟아지는 지식들을 가려내고 비판하며 근거를 따져

  볼 수 있는 능력이다.(P295)

    

15. 가치를 경험하는 방법

- 배경적 조건을 준수할 때 쾌락은 진리나 아름다움처럼 궁극적이고 내재적인 가치 중 하나가

  된다.(P301)

-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바람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느라 노심초사하는 삶은

  노예의 삶이다. 왜냐면 자신의 마음의 평정이 타인의 반응에 좌우되기 때문이다.(P315)

- 진리는 인생의 방향을 이끄는 가치다.

  따라서 결과물로서의 진리만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과정으로서의 삶이란, 진리를 추구

  하고 탐구하는 일상을 반복하는 것이지, 일상에서 더 많은 진리를 의식적으로 목표로 삼고

  경험을 수단화하는 것이 아니다.(P323)

 

16. 속물 세계관의 파산

- 사람의 어떤 속성은, 같은 종류의 속성 사이에서 비교되고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가진

  속성을 모두 합해도 그 사람 자체를 포괄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스스로 가치를 구현하고

  경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P348)

 

17. 자유인을 위한 나침반

- 자유인은 자기 자신을 어떤 감정으로 대하고, 어떤 감정을 삶의 토대로 삼아야 하나

  1) 자신감 : 어떤 활동에 대해서 스스로가 예상한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신뢰를 의미

                 --> 성과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행위의 질에 대한 믿음이다.

  2) 자존심 : 자신이 고유하게 가지는 속성이 다른 사람들의 속성보다 우월하며 그렇게 평가받는

                 것이 응당하다는 마음

                --> 자존심이 자신에 대한 요구로만 집중될 때 그것은 거만이다.

3) 자부심 : 자기 자신이나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속성을 자랑스럽데 여기는 마음

4) 자존감 : 자기 자신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인 존재라고 여길 때 생기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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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이 운명이다 - 인격으로 운명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
존 맥케인.마크 솔터 지음, 윤미나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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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3

 

작품은 역사의 한 시대에 누구도 범접하지 못 할 업적(?)을 남기신 분들 내지는 훌륭한

지도자 및 이름도, 빛도 없이 사라져 갔지만 후세들이 꼭 알아야 할 인물 총 22분들의

삶과 생애를 간략히 소개한 작품이다.

 

본 작품에서 소개되고 있는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는 한 인간의 일대기를 간략하게나마

알아보는 자료로써 손색이 없을 것이라 생각해 보았으며 내가 개개인에 대한 업적

내지는 후손에 미치는 여러 영향력에 대해 무딘 필력과 짧은 생각으로 굳이 평가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가 그 분들의 업적을 잘 알고 있기에 여기에서는 작품 곳곳에서

그 분들을 묘사하기 위해 언급한 문구들을 단순히 정리한 요약본으로 독후감을

대신하고자 한다.

(* 정리 문구 3가지 정도는 너무 가슴에 와서 닿았기에 별도로 표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다른 독후감과는 달리 요약 정리된 문구에 해당되는 인물을 가급적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해당 문장으로 소개되고 있는 특정 인물에 대한 표현이 그

인물에 국한된 표현이 아닌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분들에게 해당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별도로 기록하지 않았으며 또 내가 작품을 읽고 무엇을 쓰던지 또다른 저급한 잔소리 도덕경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요새같이 읽을거리, 접할 정보가 많은 세상에 세인들에게 읽는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즉, 저급한 문장을 만들기 싫어 여기서

각설하기로 하였다. 작품에 언급되는 분들의 명단은 굳이 여기에 싣고 싶지 않다.

궁금하신 분들은 해당 작품을 사서 읽으시라!

- 신은 우리에게 생존 방법은 가르쳐주었지만, 삶을 경영하는 권한은 우리 손에 맡겼다.

- 훌륭한 인격 소유자들의 공통점은 정직이었다.

- 인격은 평생을 두고 완성해야 할 프로젝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의 결점은 점점

  더 굳어질 것이다. 그러한 결점의 제약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격려가 필요하다.

- 명성은 인격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

- 신뢰는 불가능한 도전을 가능하게 만든다.

- 인간의 가치는 존엄성에 깃들어 있다.

- 살 이유가 있는 사람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참아낸다.

- 행복은 의미 있는 삶, 도덕적으로 옳은 결정,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 희망은 절망을 위한 신의 선물이다.

- 참다운 지혜는 부정을 긍정으로 바꾼다.

- 나는 사자는 아닐지라도 사자의 새끼다. 따라서 사자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

                                                                                              (엘리자베스)

- 앞으로 이 자리에 훨씬 지혜로운 왕들이 얼마든지 앉을 수 있다.

  그러나 나보다 백성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앉지는 못할 것이다.(엘리자베스)

- 굳은 신념은 인간의 가치를 결정한다.

- 자신을 통제할 줄 아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다.

- 모든 사람에게는 결함이 있으며 항상 통제되지 않은 욕심의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 사랑의 첫 번째 계명은 먼저 희생하라

-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용기다.

- 모든 사람은 경험을 통해 무지에 빠지지 않고 차분하게 가능한 것을 찾을 수 있다.

- 신은 원숭이를 보고 실망했기 때문에 인간을 창조했다.(마크 트웨인)

- 승리는 몸과 마음을 합치는 과정이다.

- 진정으로 독립적인 사람이 되려면 좋든 나쁘든 행동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 성공이란 자신의 능력 한도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인식할 때, 그에 수반되는 만족감으로 인한 마음의 평화다.

- 이기심을 죽인 자리에는 인격의 나무가 싹을 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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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의 유토피아
김영종 지음, 김용철 그림 / 사계절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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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3

 

작품은 1, 2부로 나뉘어져 1부는 예술부문에 대한 개인적 고찰과 예술이 살아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개인적 소견을, 2부에서는 이 사회에 고착된 부조리한

관념과 현상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개인적 소견에 대한 저자의 힘찬 외침(?)’

수록한 작품이다.

1부의 내용은 예술에 대한 관심만 있으면 누구나 알고 있고, 쉬운 이야기를 정말

어렵고도 힘들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문장 분석력이 떨어져 조그만

비틀어서 주장하거나 심오한 단어를 사용하면 금방 제풀에 지쳐 독서를 포기하게

만드는 나와 같이 지적 수준이 낮은 우매한 사람들이 책 값이 아까워 어쩔 수 없이

동일한 내용을 두, 세 번씩 읽지 않으면 책 값 본전이 생각나게 만드는 저자의 능력에

감탄과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길게 이야기하지 않고 1부의 결론이 되는 문구를 찾아보면 아마도 P92쪽에 나오는

한국의 대학(예술)은 미켈란젤로 시대 이상으로 우상을 섬기는 기관이고, 거기에

 빌붙어 먹고사는 자들은 우상의 위패를 모시는 제관들에 불과하다

로 축약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무슨 근거가 있어 저자의 그런 주장에 동의하는 게 아니고 입시철만 되면 언론에서

떠드는 예술분야 입시와 관련된 기사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본 것 같아 저자의 그런

주장에 쉽게 동의했을 수도 있지만, 가까이는 나의 자식 중 한 놈이 예술 방면에 관심을

갖고 관련 입시학원을 다니면서 기계적으로 그리는 모습을 보고 또 그림의 공식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을 곁에서 봤었기 때문에 그 문장을 끄집어 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본격적으로 이야기흘 하고자 하는 내용은 1부 일부와 2부에서 저자께서 주장하고

계시는 내용에 대해 일견 동의하는 면도 있었으나,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상당수 있어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저자께서 소리높여 주장해 관심 있게 읽고 또 읽었던 유언비어의 사회학이라는 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먼저,

- 말은 의미이므로 자연히 인간은 의미의 세계에서 살 수 밖에 없는데, 의미란 다름

  아닌 가상이다. 가상에는 근거가 있을 수 없다.(P154)

- 팩트를 말하는 목소리는 재미없고 무미건조하다, 합리성의 매커니즘을 추종한 나머지

  생물성을 상실하게 된 것이며 결국 세상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인간들로

  넘쳐나고 있다.(P157)

- 말의 자연성을 합리성의 매커니즘으로 방해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어야 한다.(P161)

는 대목을 읽으면서 느낀 소감은 한마디로 

그래서 우리의 국회 의원들이 그렇게 막말을 잘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특정 사안이

 벌어지면 아무 근거가 없어도 생각나는대로 막 씨부려도 된다

라는 생각을 잠시 잠깐 갖게 되는데, 나의 이런 해석과 유추가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더 이상한 말도 있다.

- 사람들은 보도의 형식을 믿기 때문에 신뢰하는 것이지, 내용에 대한 지식 때문에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P165)

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우리의 능력 있고 권위 있는 언론사들은 그동안 보도의 내용은 별로였지만 보도의

형식으로 인해 권위있고 신뢰할 수 있는 보도기관이 되었다는 것으로 나는 해석하고

싶은데 맞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나의 해석이 잘못된 것일까?

앞으로 보도의 형식이 정론지 못지않게 잘 갖추어진 가짜 뉴스를 구독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확 들었다.

 

더욱 이해 못 할 주장은 또 있고 더 이상하다.

- 헛소리가 세상 안으로 들어와 대접받으면 문학이 되고 예술이 된다. 나아가 기적이

  일어나 경전이 될 경우에는 오히려 바른 소리의 절대기준으로 등극해 황금률이

  되기도 한다(P174)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럼 헛소리가 영원히 헛소리로 판명되었을 때 최초 헛소리를 유포해 사회가, 국가가

혼란에 빠져 더 큰 손실을 가져왔을 때 누가 책임질 것인가?

(천안함 북침설 진위 여부를 따지기 위해 국제적인 군사 조사단이 우리 함정의

 특장점을 샅샅이 훓고 지나가 국방 관련 정보가 엄청 유출되었음에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음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쓰셨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그렇게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아닌가?

 

저자의 주장이 극에 달하는 내용은 또 있다.

- 현재성을 사멸시키는 것이 바로 합리성의 매카니즘인 반면, 현재성을 생명으로 하는

  것이 유언비어. 유언비어는 즉각적으로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한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진실이 힘을 잃어서 결국 진실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현자는

  유언비어다.(P176)

이쯤되면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어지고, 어이가 없다는 생각 밖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를 않는다. 아니 저자께서 저술하신 작품 211쪽 중간쯤을 읽어보면

언어 조작술이야말로 이들의 성공비결이었다

라는 우파의 가면을 쓴 모리배라는 글에서 상대를 통박하고 계신 글 귀에 눈이

멈춰서 버리고 말았는데 누가 누구 이야기를 하는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어서 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다.

해당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오히려 이 분이 쓴 작품 내용이 모두 혹시 유언비어

모아 놓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양식이 있는 분이라면 책을 쓸 정도의 학식을 갖추신 분이라면 자신의 말과 행동에

어느 정도 책임을 지는 행동이 수반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저자께서는

난 그런 것 모르겠고, 말의 생물성을 담보하기 위해 재미만 있으면 아무 이야기나

 근거가 없더라도 심지어 그것이 유언비어라도 막 해도 된다

라는 뜻으로 나는 이해했는데 맞는 이야기일까?

 

저자의 주장이 잘못되었으니 논박하자는 나같은 수준 낮은 독자하고는 논박하지도

않겠지만 것이 아니라 그렇게 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회, 국가적인 폐해가

예상될 경우에 대한 대비책도 갖고 이야기를 해 주어야지 선동적(?)으로 막 이야기하면

말하는 사람은 그런 행태를 따르는 집단으로부터는 추앙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와 같이 지적 수준이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생각없이 따라 행동했다가는 아주 곤란을

겪을 것이 뻔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나의 생각이 틀린 것인가?

그래서 저자의 주장에 동감을 못 하겠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문구는

- 민주정부 10년 동안, 정권이 민족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는 덕분에 민족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 열렸다(친일파 이승만, 일본군 장교 박정희의 콤플렉스)

  게다가 민주정부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데 앞장섰다.(P218)

- 적반하장으로 MB정권과 뉴라이트는 그 공을 가로채서 선진화라는 단어를 마치

  자신들의 전매특허인 양 채택했다.(P220)

더욱 재미난 문구는 

- 선진화의 허구를 정면으로 돌파해야만 하는데 과연 정면돌파란 무엇일까?

  이 글의 주제도 아니려니와 내 능력을 벗어난다.(P224)

 

저자는 자기 주장만 실컷 이야기 백 번 천 번 양보를 해서 자신의 저서이니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하고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순간에는 무책임하게

꼬리 자르기식 으로 나는 모르니 너희들이 방법을 이야기해 다오라는 식으로

문제점만 제기하고 빠져 나가면 안 된다. 위에서도 언급하였지만 

현재성을 사멸시키는 것이 바로 합리성의 매카니즘인 반면, 현재성을 생명으로 하는

것이 유언비어다. 유언비어는 즉각적으로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한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진실이 힘을 잃어서 결국 진실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현자는

유언비어다

라고 주장하셨으니 그렇게도 '유언비어'를 신봉하시는 분이라면 유언비어를 퍼트려서

라도 진실이 되었던, 오답이 되었던 간에 결론까지 제시하고 빠져야지 왜 그렇게

도마뱀 꼬리 자르기식으로 일방적으로 내리시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나의 결론은 이렇다.

더 이상 다른 소주제로 언급된 여러 이야기에 대한 느낌을 정리하고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고 책 값이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나아가서는 시간 낭비고, 이런 글을

쓰는 나의 손가락만 혹사시키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작품에 대한 소회나 비평을

줄이며 결론적으로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 나와 우리 모두는 특정 사안을 포함한 모든 부문에 있어서 저자의 주장처럼 성기

관망파가 아닌 직접 섹스 주도자가 되어야 한다

 

하여간 작품 제목 너희들의 유토피아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너희가 누구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추신) 앞 전에 읽었던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에서 해당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좋은 측면으로 언급되어 꼭 읽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접했는데 아쉬움이 크게

        남는 작품이었다는 생각 외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아쉽고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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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바뀌던 날 그들은 무엇을 했나 - 개정판
제임스 버크 지음, 장석봉 옮김 / 궁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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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9

 

변화에 대한 적응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지식이 어떻게 변해왔고 그것이 또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고 또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저자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을 지식이라 믿는다.

, ‘변화의 순간을 만들어 낸 것은 지식 더 정확히 말하면 과학이었다.

- 저자의 옮기고 나서에서 발췌 -

  

인류의 변천사를 역사, 과학적 시각으로 고찰하고 분석한 작품으로서 제목처럼 우주가,

역사가 바뀌던 날 지구상의 인간들은 어떻게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극복하며

자신들의 것으로 어떻게 승화시켜 나갔는지를 역사적 사실과 여러 증빙에 근거하여

풀어 나가고 있는 작품이었으나, 모든 사항을 자신이 속한 사회 즉, 서양 위주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우리의 훈민정음과 인쇄술에 대한 이야기도 있기는

하지만 다소 편협한 느낌을 주는 부분도 있었고, 너무 일방적인 주장으로 경도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으나 인류사적으로 변화의 여러 변곡점들을 한꺼번에 마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는 게 나의 판단인데,

전체적인 작품 내용이 인류사적 지식을 함축하다 보니 일부 내용과 과학적 진보에 대한

논리 전개는 일부 주마간산식으로 전개하고 있는 대목이 군데군데 보여지는 흠만

빼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특히, 3원근법은 철학이다라는 부분에서 언급하고 있는 르네상스적 변화의 물결

단순하게 전개하고 있는 복잡하게 하면 더욱 분량이 방대해질 수 있는 단점이

있다 - 사항은 피상적으로 읽게 될 경우 자칫 독서의 무기력함에 빠질 염려가 다분한

작품으로 해당 부분을 읽기 전에 관련 분야에 대한 기초 지식을 다듬는 마음으로

기존에 이미 출판되어 있는 좋은 작품 예로서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김상근, 21세기북

)와 같은 작품을

먼저 읽고 작품을 접한다면 쉽고, 깊은 작품의 이해가 될 것이란 생각을 해 보았다.

 

작품을 읽고 난 지금 개인적으로 우주가 바뀐가장 결정적인 단초는 작품이 구성하고

있는 소제목만 연결시켜 보아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흑사병의 창궐과 삼단논법의 출현’, ‘아라비아 문명의 확산과 전파’, ‘원근법의 탄생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 ‘흑사병의 창궐로 인한 농업인구의 감소와 그로 인한 농노제도의 붕괴’, ‘화폐의

출현’, ‘왕권 및 교황의 위상 변화’, ‘개인 자산의 형성’, ‘신기술의 발달로 인한 인간의

수준 향상철학의 발전등이 차례로 일어나며 아라비아 문명과 결합되고 연쇄

반응하면서 이것이 또 원근법과 결합되면서 인간 사고의 폭이 확대되었는데 거기에

갑자기 등장한 인쇄술의 출현과 도입으로 인해 변화가 더욱 확대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고

단순한 사건으로만 치부되고 있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그 의의와 근현대사에 미치고

있는 영향에 대해서는 한 번 더 새겨 볼만한 과학 및 의학적 팩트를 작품이 던져 주고

있음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작품이 상당한 지적 내용과 지식을 함축하고 있는 부분이 많아 최소 2번 이상은 읽고

읽으며 내용을 곱씹지 않는다면 그냥 책 읽은 게 아니라 접했다고 밖에는 이야기할

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으로 생각되는 바, 해당 작품을 단원별로 시간을 내서 사유해

가며 읽기를 권해 보는 바이다.

개인적, 세계사적 안목이 짧아 하나의 스토리로 엮거나 소감을 단순히 기록하기가

상당히 난해하다고 여겨 나는 작품 각 단원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1. 그것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1) 인간은 안다고 여기고 있는 지식에 비추어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P 13)

    자연에 체계를 부여하려는 것은 혼돈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

    현상들에 체계를 부여하고 설명해 줄 이론들을 개발해 낸다.(P 13)

2) 우리가 알고 있는 핵심이 변화하면, 우리 자신도 변한다.(P 14)

3) 서양에서 현대적 기술이 생겨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끊임없이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수단을 생산해 내는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데 있다.(P 17)

4) 서양인들의 동적(動的)인 삶의 방식은 약 3천 년 전 지중해 동부에서 생겨난 특유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의 산물이다.(P 18)

5) 기원전 1000년경에 그리스 본토인 등이 동쪽의 이오니아로 이주하면서 물리적

    환경은 불리했고, 농업 생산성은 한계에 다다랐으며 내륙으로의 진출은 불가능했고

    주변 이웃은 적대적이었다. 따라서 무역이 필요했고, 세계관은 동적(動的)으로

    변해갔다.

    그들에겐 발전에 저해가 되는 신권 정치의 전통이 없었고, 군주 정치를 거부했으며

    서로 합의해 의해 다스리는 공화제인 도시국가를 선택하게 된다.(P 19)

6) 성직자들이 예언에 사용하던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은 이오니아인들에 의해

    '항해술이용된다. 대표적인 인물이 밀레토스 출신의 고대 이오니아인인

    탈레스탈레스의 추종자들에 의해 우주 생성의 의문, 자연을 탐구하고, 무역이

     가능하였으며, 탐험을 위한 서양 최초의 지도를 만들기도 하였다.(P 20)

7) 탈레스의 제자들에 의한 초보적인 분석과 대립물의 존재에 관한 관찰은 이오니아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구조와 결합하여 서양 최고의 지적 구조를 만들어 냈다.(P 20)

8) 이집트로부터 기하학을 받아들여 많은 곳에 적용해 만물을 측정하는 표준 수단

   되며 우주 탐구의 길을 열어 주었고 또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출현으로 지적

   구조를 제공함과 동시에 합리적인 사고에 이 기술이 적용되며 지적인 범위가 확장

   되면서 기하학과 논리학의 결합은 서양인들의 삶의 방식에 토대를 놓는 계기가 된다.

                                 (P 22)

 

[2. 중세의 갈등]

 

1) 서양 사회 특유의 혁신에 대한 욕망과 법의 출현에는 기여한 사람은 카르타고

    출신의 아우구스티누수 주교마르티아누스 카펠라였다.(P 26)

2) 로마가 서기 410년에 멸망하자 혼란에 빠졌을 때,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가 이교도의 세속적인 권위에 복종했기 때문이라면서

   국가가 교회의 도덕적 권위를 회복해야 된다고 역설하였지만, ‘카펠라는 전 세계로

   팽창하던 제국의 수명이 다했음을 알았다.(P 29)

3) ‘카펠라는 제국은 제한된 자원에 의존해 자율적으로 유지되는 작은 국가와 도시들로

   쪼개질 때 로마인들의 지식이 응축된 축약본이 필요함을 느끼고 제국 학교의 교과

   과정용으로 아홉권으로 된 종합판을 저술했다.(P 30)

4) 7세기에 수도사 공동체들이 북쪽으로 퍼져 나갈 때 카펠라의 책을 전혀 다른

   세계로 가지고 갔으며 수도사들은 읽고, 쓸 수 있었으며 수도원에서 살면서 언젠가

   자신들의 지식을 이용할 수 있는 세계가 올 것에 대비해 그 지식들을 보전했다.(P 31)

5) 8세기경 샤를마뉴 대제가 나타나면서 문화의 부활을 이끈다.

   그의 첫 목표는 종교적 의례를 표준화하는 것이었고, 모든 수도원과 대성당에

   기본적인 읽기쓰기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들을 세우는 것이었고, 그는

   이 길만이 과거의 지식을 계속해서 존속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했다.

(P 31)

6) 샤를마뉴 대제가 그의 제국에 도입한 표준 서체는 그의 이름을 따서 카롤링 서체

   라고 하며 지금도 서양의 대소문자 활자 양식에 남아 있다.(P 31)

7) 조각가들은 신을 섬기는데 지성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문맹인 신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교과 과정의 상징물을 샤르트르 대성당정문에 조각해 놓았다.(P 32)

8) 9세기경 무거운 쟁기, 마구의 개량과 중동에서 들여온 편자로 인해 농업 기술의

   획기적개선으로 숲을 개간하는 일이 수월해졌으며, 개간된 땅이 늘어남에 따라

   식량 공급과 인구가 늘었으며 화폐도 출현하면서 귀족들이 농노의 의무를 노동에서

   현금으로 바꾸기 시작하자 돈은 낡은 사회 구조를 약화시키기 시작하였고 통화의

   급증으로 인해 군주의 위치에 중대한 변화가 초래되었다.(P 33 ~ 41)

9) 11세기 무렵 대성당 학교의 교사였던 제르베르에 의해 에스파냐에서 북유럽으로

   주판이 도입되어 세속적인 상업공동체를 부양시킨다.(P 42)

10) 도시는 성장을 거듭했고, 경제적 발전에 따라 인구도 증가했다.  

    특히 돈은 많은 사회 권력체들을 세속화시켰고, 세계에 대해 무관심했던 사람들

    태도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낡은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좋은 법과 그

    법을 관리할 능력이 있는 인력의 부족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로 다가왔다.(P 44) 

11) 1085년 에스파냐의 아라비아 성 톨레도가 기독교도에 의해 함락된 후 기독교인들

    이 발견한 문화적 보물들은 피레네 산맥을 거쳐 북쪽으로 전파하며 그 후 수세기

    동안 서양인들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친다.(P 50 ~ 52)

12) 에스파냐에서 이슬람 지식을 가지고 돌아온 에덜란드라는 영국인이 가져온 것중

     가장 중요한 것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아라비아어 번역본을 라틴어로 재번역 한

     것도 있었는데 거기에는 합리주의와 실증적인 연구 방법이 들어 있었으며 그가

     돌아온 후 유럽 각지의 사람들이 지식을 찾아 에스파냐로 나선다(P 54 ~ 56)

13) 에스파냐에서 들어온 지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함께 지식 폭탄을 유럽인들

     에게 선사했는데 삼단논법은 당시 자연 세계를 탐구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이와 함께 이븐 시나치료의 서라는 철학 대백과사전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를 설명하며 종교철학에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자 이는 당시의 기독교

      신학과 배치되는 것으로 서양인들은 경악했다.(P 57) 

14) ’볼로냐는 수세기 동안 공화제를 유지해 오고 있었는데 로마 교황청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교회의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을 거부하고 마음

     놓고 비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세계 최초의 대학이 생기게 된다.(P 61)

     당시의 대학 수업은 교사가 참석한 사람들에게 텍스트를 크게 읽어 주었으며

     학생들도 독서에 참여해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학생들은 지금도 수업 듣는 것을    

     '읽는다(read)’표현하고 있다.(P64)

15) 13세기경 아라비아 철학자 이븐 루쉬드’(아베로에스)가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가장 순수하고 명확한 분석을 통해 신에 의해서만 계시된다고 여겨지던 진리를

     이성이라는 차가운 빛 앞으로 가져오면서 신학은 계시와 관련된 진리의 영역들을

     다루고 이성자연 세계와 관련된 영역들을 다루게 하면서 철학은 마침내 독립을

     승인받는다.(P 68)

16) 아리스토텔레스와 이슬람 철학자들로부터 시작된 빛에 관한 유럽인들의 생각에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예술과 문화, 건축 그리고 기하학 등에 있어

     큰 변화를 이루는 시기이기도 하다.(P 68 ~71)

 

[3. 원근법은 철학이다]

 

1) 오늘날 서양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18세기 민주적 개혁을 정치개혁의 산물로

    보는데, 실제는 그보다 3백 년 전 일어난 대 재앙(흑사병)’회화 기법에 근원이

    있다.(P 73)

2) ‘흑사병의 창궐은 농업 인구의 감소로, 농업 인구의 감소는 식량의 감소를 뜻했는데

    감소된 인구가 회복에 3백 년이 소요되었으며 흑사병에 살아남은 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무서운 경험을 잊기 위해 파티를 열었다.(P 75)

3) 흑사병은 노동인구의 감소로 인해 노동자들의 지위를 변화시켰다.

    즉, 공장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에 대하여 어떠한 가격도 요구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상품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P 76)

4) 흑사병이 안정되자 가장 빨리 복구가 이루어진 이탈리아에서 소수의 대지주들에게

    농촌 경제력이 집중되자 시골민들이 도시로 몰려든다.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일반

    시민들이 흑사병 이후 물려받은 유산을 대리석이나 석조로 근사하게 건물들을

    새로 짓는데 소비하는데 열중하고 있었다.(P 77)

5) 교회가 바뀌는 변화가 시작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이 지배하고 있었으며,

    예술은 우주의 상징주의를 반영했으며, 마법은 대중들 깊이 퍼져 있었고, 숫자에

    대한 개념이 확장되어 숫자 그 자체에 마법적인 속성이 부여되기 시작하였다.

    도형 사용에 익숙해졌고, 음악에서 음계 사용이 일반화되기 시작한다(p 77~80)

6) 흑사병의 충격에서 벗어나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상업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일부

    명문가(메디치 가문)를 중심으로 부의 축적이 일어나는데 특히, 피렌체를 중심으로

    새롭게 나타난 회계시스템 (특히, 피보나치의 복식 기장법’)덕에 돈과 재화가 이곳에

    집중되며 큰 대형 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한다.(P 81~83)

7) 라틴어가 공용어로서의 위상을 잃기 시작하며 대학이 확산됨에 따라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외국으로 나갈 필요가 없어진다. 상업의 중심 피렌체는 유럽 최초로

    소득세부가되고 재산조사가 실시되고 1393년 피렌체와 그 시장에서 외국에서

    수입되는 천에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하는 등 이 시기는 사업가들의 시대가 된다.

(P 84~85)

8) 새 규제들이 탄생하면서 관련 공무원들의 숫자도 증가하며 사람들은 좀더 많은

    평등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국가의 통제가 삶을 지배하기 시작하지만 새로운 사회의

    중추는 중산층이었다. 이들 새로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사회적 승인이었는데

    그들에게는 사회적 신분을 과시할 가문이 없었다. 그래서 국가 자체를 자신들의

    긍지의 원천으로 삼았고 시민의 자부심은 자신들이 얻고자 하는 공적인 인정을

    그들에게 가져다 주었다.

    따라서 높은 지위와 안정이 새로운 영예가 되었고 노동는 그 공적 가치로

    인해 신성시되었다.(P 86~88)

9) 피렌체가 부유해지면 질수록 피렌체인들은 더욱더 자신들을 고대 공화정 시대의

    로마와 비교하기 시작했으며 피렌체가 누릴 영광을 위해 과거 고전시대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신보다는 인간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이 피렌체와 유럽 사상의

    다가올 한 세기를 규정짓게 된다.(P 90)

10) 사업이 흥하고 신분상의 이동이 심한 그 세계에는 새로운 가치가 필요했다.

     학교는 인본주의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면서 학생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품성을 길러주는 것이 더 중요함을 느끼고 교육과정에 형식적인 수사학과 대중

     연설과 같은 낡은 과목들은 차츰 산문체의 작문, 편지쓰기, 경영학으로 대체된다.

                                                                                                       (P 91)

11) 15세기 무렵 토스카넬리브루넬라스키에 의해 고안된 원근법의 출현으로

     단순히 시각적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철학적 시점에서도 혁명이

     일어난다.

     , 원근법적 기하학의 발견은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도 변화시켰다. 이 기법으로

     인해 사람들은 세계를 비율에 따라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P 96 ~ 99)

12) 원근법은 이제 독립적인 사물들과 신 사이의 특별한 관계는 제거되고, 측정 가능한

     동일한 공간에 존재하는 물체들에 대한 인간의 통제로 갑자기 대체되었다.

     새로운 기하학적 도구를 가진 인간은 이제 만물의 척도가 되었고 세게는 표준화가

     가능해졌다.(P100)

13) 중산층 예술 후원자들의 욕망은 새로운 철학에 의해 정당화되었고 후원자들의 부와

     재력이 늘어남에 따라 이들에 의해 후원되는 예술가들의 독립성도 늘어났으며

     새로운 사실주의는 자신과 가족들의 그림을 그림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려는

     상인들을 부추겼으며 문학도 작가들은 더욱 개성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P101~103)

14) 피렌체인들은 고딕 양식을 접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실제로 고딕이란 용어 자체도

     피렌체인들이 만들어 낸 말로서, 자신들의 시대와 고대 사이에 끼인 기간,

     , 고트족의 침략으로 야만인들의 영향을 받은 중세에 대한 경멸이 담겨있다.

                                                                                                      (P104)

15) 투르크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페드루가 당시 지도 제작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던 피렌체를 방문해 프톨레마이오스의 고대 지도 제작법 문헌을

     갖고 오면서 지도 제작에 전기를 마련한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지도 위의 모든

     지점들의 상대적인 거리를 알 수 있었고, 심지어는 알려지지 않은 장소까지도

     좌표상 표시할 수 있었다.   

     마침내 토스카넬리에 해도가 만들어지고 그 해도를 들고 일본으로 가는 도중에 

     콜롬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한다.(P 115~117)

    

 [4. 지식의 축적과 기억의 소멸]

 

1) ‘사실부재하는 세계에서 살던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넘어서는

   일이 없었고 사람의 목소리가 미칠 수 있는 범위보다 큰 마을은 드물었고, 타운도

   그와 같은 크기의 행정 소구역으로 편성되었다. 그러기 때문에 중세의 삶 대부분은

   현재의 끊임없는 지속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과거에 대한 지식은 개인적 경험에 관한

    기억들이 전부였다. 그들은 미래에 관심이 없었다.(P120, 123)

2) 대부분이 문맹이었을 것이고 해당 지역의 방언을 주로 쓰는 사람들에게 교회

    아주 중요한 정보의 원천이었다. 사람들은 고딕 양식의 대성당을 유리와 돌로

    만든 백과 사전이라고 불렀다.(P121) 

3) 중세시대에는 유산과 관련하여 탄생 기념일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었으나

    당시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을 계절적 환경적 변화의 기준에 두고 살던 시기였기에

    좀 더 믿을 만한 표식들을 찾게 되는데 구두증언이 증언을 보강하는 수단으로

    선호하였으며 거래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상징적인 물건들로 을 애용하였다.

                                                                                                      (P125)

4)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이 드물던 세계에서는 좋은 기억력이 필수였다.

   특히 12세기와 13세기에 그리스와 아라비아의 과학적인 혹은 일반적인 지식들이

   밀려들자, 학자와 교수들에게 기억화는 이전보다 훨씬 중요해졌다. 특히 모든 성서의

   내용이 기억하기 쉽게 예술화되어 있는 예배당은 구원으로 가는 기억술의 길이었고

   대성당은 신도들이 회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대한 기억극장이었다(P132, 134)

5) 오늘날 읽기와 쓰기에 큰 차이점이 없지만 필사본을 쉽게 구할 수 있을 부자들에겐

    서로 다른 것이었다. 특히 계산서는 관련된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낭독되었는데

    오늘날 '오디팅이란 단어는 여기서 파생된 것이다. (P134)

* 감사를 뜻하는 ‘audit'라는 단어는 통치자와 군주가 회계 기록을 눈으로 보기보다

  귀로 듣던 시절에 나온 단어이다. auditdms '청취를 뜻하는 라틴어‘auditio'에서

  유래되었는데, 군주를 알현하는 동안 왕이나 군주에게 말로 읊어주는 회계 기록을

  확인하면서 나온 단어이다.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제이콥 솔/메멘토/참)    

6) 새로운 지식의 유입과 경제의 전반적인 개선이 이루어진 13세기에는 필사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수도원은 한쪽 벽에 칸막이로 작은 개인 열람실들을 만들어 수고

   본을 필사하는 수도사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열람실들을 캐롤이라 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캐롤은 성 베드로 성당에 있다.(P135)

7) 15세기 무렵 유럽 경제가 성장한 이후로 놀라운 책들 기도서, 성시집, 성서 등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한다.

   기억, 소문, 환상으로 점철되어 있던 낮선 외국들과 관련된 실제적이고 합리적인

   정보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절감하기 시작한 것은 무역상들이었다.(P139)

8) 종이는 8세기 사마르칸트를 점령한 아라비아인들이 발견하였다. 읽고 쓰는 능력의

   필성을 늘려 놓은 가장 큰 요인은 갑작스런 종이의 사용에 있다. 제지 공장들이

   많이 생겨남에 따라 오랫동안 성직 매매나 수상쩍은 행동들로 비난을 받아온 교회는

   개혁을 요구받으나 오히려 건전한 비판을 가하는 읽고 쓸 줄 아는 성직자들을

   대량 해고 시킨다.(P141)

9) 종이 가격이 점점 떨어지고 안경이 개발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면서 또 인쇄술의 확산은 기억의 손실을 가져 왔다. 교육이 점차로 텍스트

   중심으로 되어 감에 따라 기억 극장 기법은 사라지고 신자들이 글자를 깨우치게

   되자, 예배당을 비롯한 곳에 전시되었던 조각상은 이제 그 쓰임새를 상실했다.

   인쇄술은 개혁가들의 성상(聖像) 파괴적 경향을 강화시켰다.(P142~154)

10) 초기 인쇄술이 발달한 도시는 대학도시가 거의 없고 모두 경제의 중심지이거나

     왕궁이 있는 곳, 혹은 은행 조직의 본사가 있는 곳이었다. 인쇄소는 지적, 문화적

     교류의 새로운 중심지였고 길드 제도의 틀 밖에 있었기 때문에 길드의 제한 조치로

     부터 자유로웠는데 인쇄소는 최초의 자본주의적 벤처 산업이었다.(P147~149)

11) 당시 유럽 지성계를 고전적인 글자체인 칸셀레리아 서체였는데 그 서체를 약간

     기울인 서체를 인쇄업자가 개발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이택리체가 나온다.(P149)

12) 인쇄술이 발명된 직후부터 15세기 유럽인들의 생활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는데

     지식의 확산은 고대 신비서들이 부정확 채로 다량으로 인쇄되어 혼란을 초래한다.

     다시 말해 인쇄술의 발달로 야기된 영향은 책의 내용 그 자체였다. 교회가 인쇄술을

     이용하여 면죄부를 주자 기술세계와 성직자들이 결탁은 냉소주의를 확산시켰고

     이것이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까지 연결이 된다.(P147~151)

13) 정치영역에서도 인쇄술은 중앙 집권제 하의 군주들은 민중을 통제하고 새로 제정된

     법령이나 세금 징수령을 고지시키는 데 인쇄술을 이용하는 등 인쇄술은 새로운

     무기를 국가에 제공했다. 점차로 문자를 익히게 됨에 따라 사람들은 준수를 약속

     하는 계약서에 서명을 하게 되었다. 근대적인 계약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며 그와 더불어 국가 권력의 중앙 집권화가 이루어졌다.(P153~154)

14) 인쇄술이 지식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공헌은 정확한 복제를 가능하게 한 데 있는데,

     전문가들이 이전에 쓴 책들을 참고해 가며 저술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학문은

     매번 최초의 원리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고, 사상은 진보했고, 풍부해졌다.

     세계는 측정 가능하게 되었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경험할 수 있는

     지식이 손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P158)

15) 인쇄술의 발달은 지식을 책으로부터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권위의 시대가

     종식되었음을 알리는 것이고, 젊음에 대한 숭배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전문가들 사이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고, 축적된 지식을 활용해 자신들의

     연구를 진척시킬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를 정연하게 할 수 있는

     근대적인 방식을 제공했으며 전문 지식인들이 문맹자들과 보통 사람들을 지배하는

     계기를 제공하게 되었다.(P160~161)

 

[5. 하늘로 쏘아 올린 대포알]

 

1) ‘과학이 시작된 것은 모든 현상들이 보편적인 법칙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부터이다.(P164)

2) 로마에서 루터는 부패와 타락상을 목격하고는 큰 충격을 받는데 면죄부 판매상이

    미켈란젤로의 작품들로 치장한 산피에트로 바실리카를 완공시킬 자금을 충당할

    목적으로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P 165)

3) 1545트렌토 공의회가 소집되어 30년 전 루터에 의해 촉발된 교회 개혁 요구에

    대응방안을 논의해 교회의 운영방식과 신학교육 과목 개선 및 신학대학 교육과목,

    교회와 교회의 활동을 좀 더 매력적으로 바꾸어 놓았고, 성인들의 삶을 더욱 강조해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종교를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했다.(P 166~168)

4) 구원을 얻으려면 신자들이 기념일을 잘 지켜야만 했는데, 부활절과 같은 큰 축제일

   이 부정확하여 문제를 일으키자 달력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해 1514년 무명의

   수학자인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에게 요청하나 그는 달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태양의 관계를 밝혀야 함을 주장한다.

 당시 사회 전반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에 대한 믿음이 사회

   안정의 기반이었는데, 행성에 대한 통용되고 있던 체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방식

   (지구 중심)에 기반한 학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음에도 태양 중심으로 바꾸도록

   요구한 당시 그의 주장은 기존의 학설을 반하는 내용이었으나 수학적 정밀성 덕분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P174~176)

5)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은 천문학 교수인 에라스무스 라인골트가 그의 학설을 기초로

   만든 프루테닉 표라 불리는 표를 만들어 새로운 달력을 계산해 내는데 기초가

   되면서 힘을 받는다.(P179)

6) 화약에 의한 대포의 발사는 그동안 과학의 기준으로 여겼던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은 베네데티1572년 나타나 2년 동안 사라지지 않은 신성’, ‘갈릴레오

   갈릴레이요하네스 케플러등의 출현으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P180~197)

7) 사람들은 새로이 부상한 태양 중심설이 지금껏 교회가 포고한 모든 것들을 무효로

    만들 것이라 생각했으며 갈릴레이 재판으로 사실상 이탈리아에서의 과학 연구는

    종식을 고했고, 교회는 과학 활동에 부과되었던 두 가지 조건인 가설은 철학적인

    잘못이 없고신성에 위배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금지된다.(P195)

8) 17세기 초반 지적 자유가 허용되는 곳은 없었다. 억압과 검열이 일상적이었고

    정부와 종교계의 불일치로 인한 잡음이 끊이지 않던 시기에 소수의 자유사상가들이

     비밀리에 모임을 갖고 카톨릭 교회의 의심을 살 만한 활동을 한 사람들 모두에게

     관용을 베풀던 네덜란드로 은신하는데 그 중에는 르네 데카르트도 있었다.

     이를 계기로 네덜란드는 신흥 강국으로 도약을 하게 된다.(P199~204)

9)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으로부터 과학자들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그 시기에

    그래프현미경의 등장은 과학사에 획기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혈액 순환의

    증명’, ‘기체의 존재 발견’, ‘진공 펌프 개발’, ‘공기가 호흡에 필수적이라는 등의

    연구 결과로 근대 과학의 문을 활짝 열게 된다.(P205)

10) 유대교에서 파문당하고 기독교도들에 의해 공격을 받은 네덜란드가 받아들인

     하늘을 지상으로 끌어내려 실험적 연구가 가능하도록 만드는데 일조를 한 인물은

     에스파냐계 철학자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였다.

     스피노자는 거룩한 삶을 살라는 종교적인 명령은 자연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적인 우주에는 필요치 않다고 하였으며 신은 어느 곳에나 존재하며, 지식을

     늘려 나감으로써 자신의 이성을 계발하라는 그의 사상은 자유인들에 의해 충분히

     숭배되었다.  

     또한 국가는 개인의 자아 실현의 기회를 억누를 것이 아니라 신장시켜 줄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P207~208)

11) 잉글랜드에서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우주를 향한 욕망을 물리적인 현실로 바꾸어

     놓은 인물이 수학교수인 베로의 제자였던 뉴튼이다. ‘만유인력이론으로 뉴튼은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곳에 현재하는 신의 손에 의해 움직인다는 중세의 세계상을

     깨뜨리며 인간사에 신이 관여할 장소가 우주의 어느 곳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 것은

     이때가 최초였다.(P208~211)

 

 

[6. 산업혁명의 진실]

 

1) 영국의 콜브룩데일은 대량 생산이 시작된 곳이다.(P213)

2) 정부는 중앙집권화되어 반자치적인 영주의 성()과 파벌 도시의 성벽들은 시민

    혁명 동안에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다, 봉건제의 종말과 함께 지주는 지대를

    노동력이 아닌 화폐로 받기 시작했다.(P215)

3) 17세기 중엽의 거주지법은 마을을 사실상 감옥으로 만들어 놓았고 치안판사가

    대체로 대지주들이었는데 이들이 발행한 여행 증명서없이는 아무도 다른 마을에

    갈 수 없었는데 이 증명서는 파업이나 노동자의 정치 운동을 제한하는 데 이용

    되었다.(P216)

4) 통화량의 증가는 무역으로 인한 것으로 공화정 때 제정된 항해법은 영국 무역이

   팽창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데 식민지와 무역에는 반드시 영국 선박을 이용하는

   강제조항이 있었다.(P219)

5) 우편업무의 개시, 보험제도의 도입, 수표의 등장하며 국가는 이제 더 이상 이념적인

    또는 종교적인 최고 기관이 아니었다. 국가는 이제 경제적 권력기구가 되었다.(P225)

6) 당근, 순무, 특히 클로버 등의 출현으로 겨울용 사료가 확보되고 목초지가 확장되며

    목축은 물론 토지 이용방식의 변화로 다모작의 도입과 비료의 땅은 기름지고 농부들

    은 소득이 높아진 결과, 1540년대에는 인구 3백만명을 가까스로 먹여살릴 수 있었던

    영국이지만 새로운 농경법으로 6백만명을 부양하면서 생산된 곡물의 절반도 수출할

    수 있었고, 뿐만 아니라 1720년 이후로 인구성장률이 10년마다 3, 5, 10% 씩 늘어

    나고 좋은 기후 커져가는 시장규모, 풍성한 수확은 더 많은 일자리와 더 높은 임금을

    만들어 냈다.(P226~235)

7) 국내시장의 성장은 동시에 무역량의 증가로 인한 문제들을 정치적, 제도적으로 잘

   조절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으며, 철학자 론 로크의 출현으로 사회 전체적으로는

   노동과 개인 재산 등에 대한 개념이 변화하기 시작한다.(P229~232)

8) ‘노예제도는 항해법의 필수불가결한 조항이었다. ‘항해법은 노예제도를 장려하고

   왕립 아프리카 회사에 독점권을 부여하고 있었다. 특히 카리브산 설탕을 이용한

   삼각무역은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주었으며 영국에 많은 대가문을 만들어 내게 했다.

   노예무역을 통해 부를 쌓은 리버풀과 브리스톨이 중요한 도시로 성장했다.

   (P234~236)

9) 영국 국내 시장의 성장으로 인해 제조업자들이 받은 자극은 엄청났다. 게다가 점차

    감소하고 있던 나무 공급량에 구애받지 않고도 을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 18세기

    무렵 발견되었다. 도시의 공장과 집들은 연료를 필요로 했고, 숲이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대안은 석탄이었고 석탄을 나르기 위해 터널과 운하가 건설됐다.

    (P237~239)

10) 잉글랜드에서 시작해 유럽 전역을 강타할 엄청난 변화의 배후에는 비국교도들의

     성장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이들은 금융과 산업계에서 성공하였는데 그 이면에는

     비국교도 학교들이 산업 현장에서의 유용성을 가장 중시하는 근대적인 교과 과정을

     운영한 결과다.(P242)   

11) 1770년 무렵 영국은 풍족한 재정, 새로운 연료원, 신용 제도의 확대, 의욕으로

     가득한 기업가들로 인해 거대한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결정적인 계기는

     인도산 면화에서비롯되었다.(P243)

12) 1781년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1782년부터 영국 경제를 나타내는 각종 그래프들이

     급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증기기관이 가져다 준 가장 큰 효과는 제조업자들

     이 공장을 탄광 근처로 이전시킬 수 있게 되었고, 섬유 산업이 시장 인근으로 옮겨

     갈 수 있게 되었다는 데 있다.(P251~253)

13) 1810년대 도입된 아르강 등이 생산성 향상에 한 몫했는데 아르강 덕분에 교대

     작업이 가능해져 밤낮에 구분없이 생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P254)

14) 산업혁명은 근대적인 의미의 진보 그리고 인간의 기술과 인간이 발명한 기계에

     의한 더 나은 수준의 생활을 기대할 수 있게 하였으며 또 사회주의를 탄생시켰고

     분업을 통해 사회적 간극을 초래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P255)

 

 

[7. 의사들은 그 때 무슨 일을 했을까]

 

1) 18세기 의학계가 아무런 과학상의 진보도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은 의사들의

   치료에 간섭을 일삼던 환자들이었다.(P 258)

2) 의사들의 성공과 실패는 환자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달려 있었다. 돈벌이가 많이

   되는 자리를 다른 의사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한 경쟁이 모든 의사들에게 중요했기에

   자기만이 알고 있는 고결하고 비밀스런 처방과 약을 통해 기술과 치유력으로

   질병을 이겨내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등 그럴듯한 근거들을 내달았다. 의사들은

   광고를 통해 다른 의사들은 모두 돌팔이들이며 그들의 치료약은 잘못 처방되어

   위험한 것이라고 주장하곤 했다.(P261)

3) 1743년에는 외과의들은 대학에 입학해 학위를 취득받고 박사라는 호칭을 얻을 수

   있게 되었으나 내과의사들은 외과의사들의 대학입학 허가에 엄청난 반발을 했다.

   내과의들은 외과의사들의 진료 행위는 빈민들이 이용하는 병원들로만 엄격히 제한해

   야 한다는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기도 했다.(P270)

   어찌되었던 1745년까지도 외과의사들은 육체노동자로 분류되었고, 병원은 빈민,

   열병 환자, 정신병자들이나 가는 곳이었다.(P262)

4) 1789년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라는 특별한 사건으로 인해 의학적, 사회적, 지적

   변화를 이룬다. 혁명기간 동안 모든 의료기관들이 강제로 폐쇄됨으로써 일종의

   무정부 상태에 빠지나 외과의들은 장인이었고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이들을 높이

   평가했다.(P269)

5) 전쟁 등과 같이 절실히 의사를 필요로 하던 시기에 외과의들은 내과의들 보다 수적 

   으로 우세했다. 환자의 침대 곁에서 수다나 떨던 내과의들과 달리 칼과 약간의 붕대

   만으로 무장하고 즉시 대응하는 외과의들의 평가가 좋아진다.(P270)

6) 의사들은 질병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데이터를 임상적으로 관찰해서 신체 기관에

   서 병을 일으키는 원인을 추적해 가야 한다는 중요성을 확인한다(P273)

7) 병리해부학이 번성한 파리로 영국 등의 외국 해부학과 학생들이 몰려들었는데,

    프랑스에서는 수술중 사망 환자들을 조사하기 위해 해부할 수 있는 권리가 의사들에

    게 자동적으로 부여되었기 때문에 관련 의술이 뛰어났다.(P276)

8) 사망증명서를 근거로 근사치에 가까운 총 사망자수를 밝히려는 통계학적 시도가

    16세기 이래 영국에서 초보적이나마 있었는데 1662년 출생과 사망기록 분석을 통해

    고질적이고 주기적인 질병과 기후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P277)

9) 18세가 첫 무렵 신설 보험회사들이 보험료를 정하기 위해 통계학을 이용했다.(P277)

10) 1816년에는 청진기가 개발되었고, 1825년 무렵에는 외과의사들이 질병이 생겨나는

    장소, 또 검시 결과와 환자의 증상 사이의 관련성을 밝혀냈고, 그 덕분에 병리해부학

    은 과학의 한 연구분야로 자리잡았다.(P281)

11) ‘인구(Population)’이라는 말에는 일반 대중(commonality)’, 즉 너무 무지한 탓에

     자신들의 복지를 책임질 수 없는 천민계급, 빈민 노동층이라는 부가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P282)

12) 공중 위생에 대한 급진적인 접근 방법과 전체 국민에 대한 국가의 통상적인 개입은

    19세기 끝 무렵 발생한 콜레라의 발생과 현미경의 발견으로 가능하게 된다.(P283)

13) 산업이 발달한 영국에서는 19세기 첫 무렵 기체화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공기의 성분을 알아내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P267)

14) 미취제의 출현으로 가장 큰 도움을 얻은 기술은 내시경 검사법이었다.(P269)

15) 외과 수술에 새로운 보조기구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발생한 문제는 바로 수술의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사망률도 증가했다.(P269)

16)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은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은 운동 경기를 고안해 냈다.

     최초의 조직화된 회합은 1849년 울리치 아세날에서 개최되었고, 최초의 대학간

     경기는 1864년에 열렸다.(P306)

17) 공중위생법이 영국에서 통과되면서 위생 조건에 관한 권한을 가진 국가 공무원은

     소유주의 허락없이 사유지에 출입할 수 있는 권리를 최초로 마련하였다.(P306)

18) 헤르만 페흘링이 당뇨병의 유무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시약을 만들어 냈다.(P311)

19) 의학은 모든 형태의 사회적 조건과 연관된 객관적인 의견들이 수렴되는 유일한

     저장소가 되었다.(P312)

 

[8. 시대가 기다리던 진화론]

 

1) 인간은 자신의 운명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의 모든 것의 운명을 홀로 형성해 나간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존재하는 생물체들 가운데 가장 고도화된 형상이기 때문이다.

                                                                                                      (P315)

2) 현대 사회의 자신감은 진보에 대한 신념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그러한 신념은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것이다.(P316)

3) , 식물에 대한 광범위한 목록을 만들어 낸 칼 폰 린네는 우주를 처음 창조한

   것이 신이기 때문에 우주는 정적이며 시간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P317)

   신은 필요한 모든 유기체들을 애초부터 실수 없이 완벽하게 설계하였으므로 탐구

   해야 할 변화의 매커니즘은 없을 것이었다. 따라서 각각의 종들은 고정되어서 변화할

   수 없는 것이었다는 게 린네의 생각이었다.(P319)

4) 18세기 끝무렵이 되어 자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생명 현상이 잘 정돈되고

   질서를 이루고 있다는 견해는 이제 터무니없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완전하고 질서

   잡힌 우주라는 견해에 대한 조심스런 수정이 파리 왕립 식물원의 한 관리인(뷔퐁)

   쓴 무려 44권이나 되는 자연사라는 출판물에서 제기되었다. (P320)

5) 산업 혁명이 진전되고 금속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광업 학자들이 많이 생겨났고

    그와 더불어 많은 지질학적 조사들이 행해지면서 땅 속에 관심을 갖게 된다.(P322)

6) 해결하지 못한 유일한 지질학적 미스터리는 재난론자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옹호할

    때 여전히 인용하는 표석(漂石)들에 대한 의문점이었다. 표석들은 영국 전역과

    스칸디나비아 그리고 독일의 북부 평원의 지질학적으로 변칙적인 위치에서 발견

    되는 옥석들과 퇴적물들이었다.(P336)

7) 다윈은 1839년 맬서스의 인구론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이론에 대한 해답을 발견

                                                                                                      (P340)

8) ‘생존을 위한 보편적인 투쟁 안에서 결국 가장 강한 자의 권리가 우세하다는 논리가

   다윈에게 어째서 어떤 종은 성공적으로 생존하는 데 반해 다른 종은 멸종하는 지에

   대한 이유였다.(P341)

9) 다윈은 뜻하지 않게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에게 신앙의 상실과, 종교와 과학은 양립

    될 수 없다는 대중적인 오해를 더욱 크게 불러일으켰다. 카톨릭 교회는 피우스

    12세가 후마니 게네리스를 공포한 1951년 이후에야 진화론에 대한 토론을 허락

    했다.(P344)

10) 다윈의 사촌이면서 영국과 미국의 우생학 운동의 대표주자인 골튼은 다윈의

     학설을 근거로 인종적 순수성이란 관념에 그럴듯한 모양새를 부여해 우생학에

     과학적 신임을 부여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P344)

11) 혼란과 분열을 겪던 독일은 정체성을 찾아 나섰고 곧 비스마르크 영도 하에 그것을

     찾아냈다. 그 시기에 독일에서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유럽에서까지 가장 큰

     정치적, 철학적 영향력의 근원지는 독일의 사상아 헤겔이었다.

     다윈은 종의 기원통해 헤겔과 같은 사상을 성공적으로 지지했다.(P345)

12) 헤겔은 종의 기원에서 인간과 자연을 결속시켜 줄 우주 법칙을 찾는 독일

     낭만주의 운동과 헤겔의 관념을 결합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고 자신의 새로운

     철학의 기초로써 종의 기원을 이용했다.(P 345, 347)

13) 19세기 이래로 낭만주의는 독일에 널리 퍼져 있었다. 낭만주의자들에게 자연은

     끊임없이 생성의 상태로, 존재의 거대한 사슬 안에서 자신의 형상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었다.

     자연의 모든 양상은 사회의 발전과 관련된 것으로 사회 구조 안에서뿐만 아니라

     종교와 예술, 신화 안에서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이 낭만주의적 관점이었다.

     이런 문화 연구를 통해 전체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윈이 이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길을 제시했다.(P 347)

14) 다윈의 이론을 원용한 헤켈의 이론은 당시의 지성사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독일에서 이미 대두하고 있었던 인종주의, 제국주의, 낭만주의, 반대유대

     주의의 흐름을 통합했다.(P349)

15) 투쟁은 존재를 위한 주요한 이유가 될 것이었다. 다윈의 진화론에 토대를 준

     나치즘이 탄생한 것이다.(P 352)

16) 식물과 동물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은 진화적 변화를 낳았으며, 이 변화는 진보적인

     것으로서 성공적인 개인들로 구성된 공동체로 이끈다. 이렇게 환경은 투쟁에 의해

     개선된다. 사회 여러 가지 문제에 국가가 개입이나 간섭을 하게 되면 경쟁력없는

     자들을 쉽게 번성시켜 공동체에 손상을 입힐 것이다.(P355)

17) 이용 가능한 자원을 두고 사람들끼리 벌이는 전쟁은 정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회적 수준에서 벌어지는 생존을 위한 투쟁은 본성상 생계를 가로막는 것과의

     투쟁이라고 볼 수 있다.(P357)

18) 마르크스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 진보의 토대가 된다는 다윈의 명제에 깊은 인상을

     감명을 받았다.(P358)

 

[9. 새로운 물결]

 

1) 물질을 담고 있는 공간은 절대로 변화하지 않는다. 물질은 공간 안에서 이동했다.

    운동의 원리인 변위(變位)는 물체의 위치상의 변화를 인식 가능하게 하는 공간을

    설정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P361)      

2) 시간의 이동은 물질의 이동과는 독립적인 것이었다. 물체가 공간과 아무런 관련이

    없듯이 시간의 물리적 내용인 사건들도 시간과는 아무런 관련가 없다.(P362)

3) 시간은 또한 공간도 담고 있었다. 왜냐하면 공간은 시간 안에 존재해야만 했기

    때문이다.(P362)

4) 실재에 관해 탐구하고 그것에 관해 명확히 진술을 만들어 내는 것이 과학의

    목적이었지식은 확실성을 증가시켰다. 따라서 지식의 확산은 바람직한 것이었다.

    18세기 계몽주의는 지식과 그것의 목적에 대한 뉴튼의 생각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P363)

5) 갈릴레이가 과학의 도움으로 객관적 실재를 드러낼 수 있는 수리물리 법칙에 따라

    우주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밝힌 이래 단기간 동안 모든 연구는 뉴튼적 우주의

    절대성에 대한 확신에 의해 행해졌다.(P364)    

6) 자연 철학은 모든 현상은 대립되는 힘들이 종합된 조화로운 결과라고 설명함으로써

    자연에 대해 변증법적으로 사고한 칸트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P368)

7) 전기에 대한 탐구는 우주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할 수 있는 과학에 대한 새로운

    견해와 우주에 대한 새로운 세게관을 이끌어 냈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

    이래로 사람들을 지배해 온 인과적 세계관을 몰아냈다.(P395)

 

* 나머지 내용은 너무 과학적이고도 전문적 기술에 관한 사항이라 축약 및 정리가

  의미가 없어 생략함.              

     

 

 

[10. 변화는 계속된다]

 

1)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인간의 사고 방식을 계몽시켰고 새로운 기술은 물질적

   삶의 질을 높여 주었다. 지식이 변화하면 세계관도 변했다.(P397)

2) 그리스와 아라비아의 과학, 그리거 아리스토텔레스가 전개했던 사유의 논리 체계가

    이슬람 학자들의 텍스트들을 통해 12세기에 북부 유럽에 소개되자, 지난 7백 년

    이상 사람들의 삶을 지배해 왔던 틀이 일거에 무너졌자.(P397)

3) 아라비아 세계로부터 홍수처럼 몰려든 지식들은 사람들을 고무시켜 많은 질문을

    하도록 했고, 그에 따라 유럽에는 여러 대학들이 설립되었다.(P398)

4) 원근법과 기하학이 등장하자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사물이라도 측량할 수 있게

    되었다. 물리적 형태를 드러내는 표현도 가능해졌다. 그에 따라 건축술에도 크기에

    따른 비례가 적용되었다. 균형과 조화가 평가의 기준이 되었다.(P398)

5) 인쇄기는 구술 세계를 파괴하는 데 일조했다. 인쇄술은 공동체적 경험의 쇠퇴라는

    새로운 종류의 고립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 기술은 외부 세계와의

    다양한 접촉을 가능케했다.(P400)

6)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자연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사회 구조는

    증기력이 도입되면서 도시가 발달하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는 근대

    세계를 그 이전 세계와 구별짓는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구분점이 된다.(P401)

7) 과학이 자신의 작업을 평가하는 기준들에는 보편성이 있다. 결과가 반복적이고 어떤

    방법에 의해서도 오류가 없다면 그 이론들은 살아 남았다.(P404)

8) 어떤 질서는 있지만 애매한 경우에는 선호하는 상()에 즉, 게슈탈트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 가능성 가운데 하나가 선택된다. 게슈탈트가 변경되면 다른 모양의 그림이

   보이나 그 경우에도 한 번에 하나의 형태 밖에는 볼 수 없다.(P405)  

9) 경험의 의미는 경험이 예상되는 기대 범위에 따라 관찰자에 의해 인식된다.

   구조 즉 게슈탈트가 모든 인식과 모든 행동을 조절한다. 개인이나 집단은 모든 삶을

   지속해 나갈 타당한 실재 구조를 갖고 있어야 한다.(P406)

10) 구조는 가치를 결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도덕과 윤리와 목표와 생의 한계와

     목적을 결정한다. 구조는 모든 인간의 활동이 일어나는 전체 환경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견해를 제시한다.(P407)

11) 19세기 끝무렵에는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고려들이 의학 연구를 압박했는데 그

     시기의 긴급하고도 필수적인 것은 말라리아의 통제와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대영 제국의 행정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주둔하고 있는 지역에 창궐하고 있는 말라리아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P417)

12) 지구 내 판 구조의 출현은 지구물리학의 전 분야를 혁명적으로 변화시켰으며

     새로운 구조의 길을 열었고, 이제는 지구가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가에 대한 새로운

     견해 안에서 연구가 행해지도록 통제하고 있다.(P432)

13) 자연은 너무나 복잡하고 너무 임의적이기 때문에, 자연에 관한 특정한 사실을

     예상하는 체계적인 도구를 이용해서만이 접근할 수 있다. 구조는 제도화되어

     있으며, 교육제도에 의해 영속성을 부여받는다. 구조에 대해 합의하는 것은

     능률적이다. 이것은 연구자가 매번 최초의 원칙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수고를 덜어

     준다.(P439)

14) 이론이 사실을 창조하고, 사실이 이론을 증명하므로 과학의 논증은 순환적이다.

     이론에 구속되는 것은 질서 있는 진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미지의 사실은

     구조의 용어로 먼저 정의되어야만 조사가 가능하다.(P439)

15) 과학은 오류를 통해서 발전한다. 왜냐하면 오류는 새로운 구조를 낳기 때문이다.

     과학적 지식은 실재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표현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각 구조와

     도구의 산물이다. 발견은 발명에 의한 것이고, 지식은 인위적인 것이다.(P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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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 땅콩문고
이원석 지음 / 유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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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9

 

저자께서 작품에서 줄 곧 주장하시고 계시는 독서의 완성은 서평쓰기라고 외치며

살아온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내가 독서에 몰입해 독후감혹은 서평을 쓴 뒤 자비로 그것을 모은 책자를 발간해

나를 아는 지인들에게 돌리며 나의 이런 행동에 스스로 행복에 겨워하던 때가 있었는데

몇 년 있다가 장정일이라는 분이 독서일기라는 타이틀로 나와 비슷한 작업을 해서

작품으로 만들어 서점에서 판매하는 것을 보고 나는

 

유명인이 나의 것을 표절했다

 

라고 외치며 속으로 웃었던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책 읽기를 멀리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나 혼자 생각해

책을 멀리하는 이유는,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잊어버려 누군가 책의 내용에 대해

물었을 때 생각이 제대로 안 나는 당혹감으로 인해 책을 쉽게 잡지 못하고 멀리하고

있는 것이라는 정말 쓸데 없는 결론을 내 본 적이 있다. -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

, ‘망각으로 인해 자신의 기억력에 한계를 느끼다 보니 선뜻 내가 읽은 책이다라고

이야기하지도 못할 바에 차라리 처음부터 책을 읽지 말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서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베스트 셀러를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전에

신중히 선택해서 읽었는데 평소에 책 근처에도 가지 않던 책과는 거리가 있게 살아온

어떤 인간이 갑자기 그 책을 읽었다며 나타나 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때

정작 훨씬 전에 읽었던 장본인은 그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를 않아 당혹감을 넘어서

나는 왜 책을 읽었고,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을까? 하는 좌절감에서 쉽게 독서에 뛰어

들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내가 그렇다 -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읽고 느낀 작품에 대한 독후감(서평)

을 쓰자는 것이었다.

약간의 자랑질(?)을 하면 나는 30여 년 동안 천 여 권의 작품을 접하고 약 900권 분량의

독후감(서평)을 어떤 형태로든 남겼고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으며 일부는 독서 관련

웹싸이트에도 올려서 여러 사람들이 참고하게 하고 있다.

나는 어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작품을 읽고 느낀대로 평을 하고

있는데 내가 만든 그것은 한편으로는 독후감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서평혹은

단순한 작품 요약집수준으로, 또 어떤 것은 작가의 고뇌의 산물로 만든 명문장 만을

정리하고 다듬은 단순한 '요약집' 형태로도 분류될 수 있는 말 그대로 내 맘대로 글을

쓰고, 소회를 정리해 놓고 있다.

 

나는 무조건 책을 읽었다.

그냥 책이 좋고, 문학이 좋고, 글 쓰기를 좋아해서였다.

아마 내 기억으로 제일 먼저 접했던 작품이 김주영 선생의 객주로 기억되고 작품에

매료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병주 선생의 내일 없는 그날이라는 작품을 접하며

독서의 장을 열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때의 감흥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원칙을 세웠다.

반드시 독후감을 쓰자는 것 추후에는 서평의 형식이 강해졌지만 - 이었고 원칙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으며 그 원칙은 이제 독서가 완료된 뒤에 해당 작품을 어떤

형태로든 정리하지 않으면 다음 작품으로 도저히 넘어가지 못하는 버릇으로까지

연계되어 버렸다.

그래서 한때는 독후감을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인해 또 스스로 선택한

작품의 저급함과 출판사의 마케팅 능력에 속아 작품 같지도 않은 작품을 선택했다는

나의 짧은 선택의 안목으로 인해 마음을 크게 다쳐 거의 몇 개월간 책과 서평을 외면한

채 괴로운 나날을 보낸 적도 많았었다.

그때 심각한 고민의 결과, 단순한 독후감이나 서평에 한정하지 말고, 작품을 접하며

내가 느낀 그대로 출판사가, 작가의 관점이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지적질(?)할 게 있으면

그대로 지적하자는 다짐을 한 후부터 과거에는 그런 마음이 들어도 내가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우려반, 소심한 반으로 인해 글을 쓰지 못했다.

특히 외국작품으로 인한 스트레스(작가와 출판사는 밝히고 싶지 않다 얼음창고‘, ’불륜

등과 같은)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 과거의 그런 압박에서

벗어났고 마음 편히 작품을 접하고 있는데 요즈음 책 읽은 후 3주 안에 작품에 대한

독후감혹은 서평나름대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독후감이나 서평은 왜 쓰고, 써야만 할까?

단순히 작품 내용과 관계된 내용만 쓰면 절대 하수. 좀 써 본 사람들은 느낄 것이다.

그런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을 돌아보고, 발전된 모습의 자화상도 그려보면서 항상

반성을 하게 되는 자아성찰의 시간을 많이 갖게 되는데 그런 자세가 독서 프로.

독서의 프로가 되기 위해 서평을 쓰자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런 자세를

견지해 보려는 노력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이다.

'서평' 이야기하다 '독서 프로' 이야기까지 너무 먼 거리를 온 것 같아 여기서 줄이고

 

독서를 하기에 앞서 읽는 것 못지 않게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면,

나의 경우 과거 어느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한창 일할 때에는 1주차에는 업무와

관련된 작품, 2주차에는 역사, 3주차에는 베스트 셀러라고 소개되는 작품 그리고

4주차에는 불멸의 고전 혹은 과거 내가 한번쯤 읽고 싶다고 생각했었던 작품을 선정해

읽었다. (지금은 상당히 다른 기준으로 선택하지만)

 

작품을 접하면 제일 먼저 서문이랄까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작가의 심정(?)을 다룬

글들을  찬찬히 읽고, 추천의 글도 자세히 읽으며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배경이나

이유를 정확히 기억해 두고 읽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나의 관점과 작가의 관점을 맞추기

위함이다. 군대용어로 사격의 클리크 조정을 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읽기 시작하는데 읽을 때 준비해야 할 점과 주의점이 있다

 

1. 반드시 메모지와 필기구를 옆에 두되 그것이 없으면 읽지를 마라

   , 차량이동 중에 읽을 때에는 포스트잇을 최대한 활용하여 주요 사항에 대해

   표시를 많이 해 놓고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해당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시 읽는다.

 

2. 문학 작품이나 상황 설정이 복잡한 경우 초반에 등장하는 주요인물, 관계성, 상황

   등에 대해 세세히 기록하라

   (나의 경우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라는 작품을 읽을 때는 A4용지가 3매 소요

    되었던 사실이 있다)

 

3. 중요한 문구라고 판단될 경우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색깔있는 얇은 포스트잇을

   3등분하여 해당 페이지에 잘라놓은 포스트을 붙여둔다.

   이때 주의점이 있다.

   독후감이나 서평의 총론적인 글의 소재를 표기할 때는 포스트잇을 책의 가로

   붙이고 기타는 세로로 붙이는 센스가 중요하다.

 

4. 책 읽기를 마친 후 포스트잇된 부분만 다시 한 번 정독하며 읽은 내용을 다시

   기억한다

 

5. 독후감이나 서평을 쓸 때는 포스트 잇이 붙여진 부분에 집중해서 글을 작성한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가로로 된 부분은 서평의 서문이나 도입부, 가로 포스트잇은

   본론을 이야기할 때 소재로 사용하라

 

6. 책을 읽는 과정에 기타의 방법으로 뉴스나 사설 혹은 각종 잡지를 접하게 될 때

   현재 자신이 읽고 있는 내용과 주제가 비슷한 경우에는 반드시 별도로 기록해

   놓았다가 해당 작품에 대한 서평을 기록할 때 응용 소재로 활용한다.

 

7. 마지막이 중요한데 책 읽기와 서평 정리가 끝난 뒤 가까운 시일내에 타인과의 대화

   속에 직전에 읽었던 문구 중 마음에 드는 문구나 표현을 한 번 써 보는 것이다.

   그러면 완전한 자기의 책으로 다가 설 것이고 서평 역시 살아 숨쉼을 느낄 것이다.

   나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글을 써 왔고 지금도 실천 중에 있다.

 

부수적인 글 쓰기 능력이나 어휘력의 증가, 이해력의 상승 등과 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당초 그런 것은 내가 쓰는 '독후감'이나 '서평'의 최종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만의 글을 작성하다 보면 글 쓰는 재미도 재미려니와 쓰고 난 뒤

자신의 글을 혼자 읽는 재미와 함께 글 쓸 때의 상쾌함이란 이루 말할 길이 없다.

자신의 책 선정의 확고한 기준점이 없을 때 출판사의 꾐에 빠지거나 작가의 명성에

기대어 작품을 함부로 선정해 읽게 되기 쉬운데 그러면 자칫 독서의 즐거움 보다는 

기분만 상할 수 있으니 자신만의 작품 선택 원칙을 선정해 작품을 고른다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의 경우는 사설이나 컬럼 등에서 저자들이 권하는 작품이 있으면 반드시 메모를 해

두었다 작품 소개 코너에서 확인 후 작품을 선정해 읽고 있는데 나름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독서가 콩나물 키우듯 하루 아침에 자신의 내적 성장을 이루게 해 줄 것이라 믿지 말라

뿐만 아니라 책 몇 권 남 보다 더 읽고 남보다 책 읽은 소감을 기록해 놓았다고 자신의

인격과 교양이 하루 아침에 쑥쑥 자란다는 생각도 버려야 할 자세다.

 

나폴레옹히틀러도 전부 독서광이었고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십 수년 전으로

기억되는데 세계에서 국민이 독서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일본이었다고 알고 있다.

그렇게 독서를 많이 한 사람들이 오늘날 전 세계인으로부터 추앙받고 존경받고 있는

가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국내적으로 적용해 보아도 우리의 여의도에 계시는 위정자들 역시 배울만큼

배우고 알만한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연일 머리채만 안 잡았지 저급한 싸움놀이에 빠져

있는 것도 역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책도 많이 읽고, 교양이 있다고 여겨지는 그들이 왜 그리 되었을까?

내가 볼 때 그들은 단순히 책만 읽었지 독후감이나 서평을 통해 스스로를 반성하거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고민다운 고민을 하지 않았던 인물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가 그런 부류들과 같이 되지 않으려며 단순히 책만 읽어서는 안 된다.

항상 읽고 기록하고, 느끼고,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매 순간순간 다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럴 경우 우리가 행하는 독서서평(독후감)‘은 우리 자신에게 언젠가

크나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또 언젠가 그렇게 영향받은 우리의 DNA가 새로운

우리 사회를 새롭게 만드는 확실한 촉매제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건방지게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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