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의 일과 영성 - 인간의 일과 하나님의 역사 사이의 줄 잇기
팀 켈러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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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6

 

기독교에 입문했을 당시 주변인들은 모두 내게

너도 교회 다니냐?”, “네가 기독교인이야?”, “교회 다닌다는 사람이 뭐 그러냐?”

등등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대개의 경우는 친한 사이에 오가는 농담조의 질문이기는

하였으나 솔직히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었다 - 그런 물음에 내가 일일이 대꾸하는 것 자체가

짜증스럽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는 평소 나의 행동이 어떠했기에 나를 두고 이런 소리들을 할까?

하는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원인 없는 결과 없듯이 위와 같은 세인들의 질문 배경에는 주님을 영접하기 전에 행했던

나의 사려 깊지 못한 그 어떤 언행으로 인해 그런 이야기들이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 속에 크게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 나의 종교적 신념이 강화되고 주님의 말씀 속에서 살게 되면서 이전보다는 더욱

매사를 조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의 이런 행동 변화의 배경에는 인생의 연륜이 쌓였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종교인답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그 옛날 아무 죄없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신 예수님을 생각 없이 떠드는 세인들의 입에 값없이 르내리게 하여 불쾌한 의문의 1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던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나도 원죄의 그늘 밑에서 쉽게 허물어지는 연약한 인간이다 보니 직장 및 사회생활을 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불의에 속절없이 농락당하면서도 일말의 양심은

있어서 내가 행한 불의에 대한 변명거리를 만들어 스스로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나의 종교

내가 종교인이라는 것을 편의대로 해석하고 행동하는 저급한 마스터베이션급 삶에 만족하며

살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것이 켜켜이 묵은 먼지처럼 나의 몸과 마음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현실적 저급한 쾌락이 나의 종교적 신념을 지배하고 있음을 자각하였고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결국 나의 생활은 물론 회사 업무처리는 물론 대인관계에까지도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음을

세월이 흐른 뒤에 나는 알게 되었다.

거의 모태 신앙에 가까운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을 믿어온 사람 - 와이프

권유로 입문한 신앙 생활은 시간이 흐르면서 나를 점점 수영장에 빠진 사람과 같이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내가 교회를 찾고자 마음을 굳힌 그 날의 목사님 설교 내용도 유사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수영장이라는 곳에 가게 되면 얕은 물에서는 다시 말해 발목까지 물(신앙심)닿았을

때는 물장구치는 어린 아이처럼 한없이 자유스럽지만 수영장물(신앙적 관점)점차 허리와

가슴까지 차오르게 되면 도저히 본인의 의지대로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게 됨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 된다 할 것이다.

지금은 완전히 잠수를 탈 지경이 되다 보니 행동 하나하나가 과거와 같지 않게 되었음을 느끼고

있다. 결과적으로 내가 아무리 물(신앙심) 속에서 나의 행동을 자유스럽게 가져간다 해도 내가

몸 담고 있는 물(신앙적 관점)을 역류할 수 없음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작품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 어떤 자세로 자신의 업무나 직장 생활을 해 나가야 하는지를 성경

구절 속에 나타난 주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가르침을 주고 있다.

어느새 나는 구원 받았음에 감사하는 삶속에서 살고자 노력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얼마전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잘못된 종교관이 빚어내 국내와 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극을 보면서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으로서 자괴감이 들어 몹시도 안타까웠고 작금 한국 사회의

종교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회 세습의 추태아닌 추태를 보면서 그 안타까움은 내가 한 때

믿었고, 의지했었던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실망감으로 다가왔고 그들에게 자신의 일과 교회

그리고 교회와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 속에 영성(靈性)’이 존재하는지 묻고 싶을

뿐이다.

왜 그리도 세상적인 일에....주님이 살아오신다면 뭐라 이야기하실지가 참으로 궁금하다.

어찌되었던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고 나는 작품에서 나의 종교관을 재 정비하는 교훈적 문구를

찾았기에 여기에 옮겨서 모두와 그 깊은 뜻을 나누고자 한다.

[일과 쉼의 균형이 필요하다]

- 노동은 하나님의 정원에 존재했던 축복의 일부다.(P 45)

- 일은 자신을 위해 살기보다는 남들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는 길 가운데 하나라는 점만큼은

  분명하다.(P 47)

- 일을 보는 기독교적인 관점은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하는 이의 능력을 최대로 표현하는 게 곧....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수단이며 반드시

  그리되어야 한다”.(P 47)

- 자유는 구속이 없는 상태라기보다 올바른, 다시 말해서 자신과 세계의 본질에 부합되는 한계

  속에서 살아갈 때 얻을 수 있다.(P 48)

- 태초에 하나님은 인간을 일한느 존재로 지으셨으며 지금도 분명히 그 설계에 따라 살라고

  부르시고 이끄신다. 짐스러운 명령이 아니라 자유로 이끄시는 초대다.(P 49)

- 일을 정기적으로 몀춘 뒤 예배하고, 세상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즐기는 시간을 갖지 않는 ,

  삶의 의미를 진정으로 체득할 수 없다.(P 51)

- 일은 의미 있는 인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핵심요소이다. 신체적으로 기운을 되찾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세상과 일상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일손을 놓고 쉬어야 한다.

  (P 52)

 

[일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 신들이 일을 시키려고 인간을 만들었다고 믿었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노동을 축복으로 보지

  않았다.(P 56)

  그리스 철학자들은 전반적으로 신을 고독하고 자급적이며 세상사에 개입하거나 인간들이

  벌이는 북새통에 발을 담그지 않는 완벽한 정신쯤으로 이해했다.(P 57)

- 올바른 삶이란 희망과 두려움을 모두 벗어 버린 인생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실상과 화해하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이라고 가르쳤다(에픽테토스, P 57)

- 창세기에 나오는 문구를 해석해 보면, 식물과 짐승들은 그저 충만하고 번성하라명령을

  받았을 따름인데, 유독 인간은 명확하게 일을 부여받았다. , 정복하고 지배하며 세상을

  다스리라는 지시를 받은 것이다.(P 59)

-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 이 땅에 존재하며 일종의 부섭정(vice-regent)으로서 나머지 창조 세계를

  관리하는 청지기 역할을 하도록 부름 받았다.(P 60)

- 성경은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에게 귀족적이고 배타적으로 사용되던 개념을 민주화(P 61)

- 그리스인들은 죽음을 친구로 보았다. 육신에 갇힌 생명을 해방시켜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친구가 아니라 적이라고 지적한다.(P 63)

- 물질과 영혼이 영원토록 통합된 상태로 함께 사는 꿈을 제시하는 종교는 오로지 기독교 뿐이다.

  (P 64)

-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와 개척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는

  확신과 만족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P 65)

 

[일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수단]

- 인간은 일하도록 설계되었고 일을 통해 존엄하게 되며, 일은 창의성, 특히 문화 창조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이기도 하다.(P 68)

-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서 세상을 다스린다는건 청지기나 대리인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P 69)

-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라면, 주님의 사역 패턴을 따라 일해야 한다.(P 72)

- 창세기 2:19~20절에 등장하는 동물들 이름 짓는 작업은 창조 과정에 동참하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대장이다. 주님은 창조 사역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일에 인간을 동참시키셨다.

  (P 75)

- 하나님은 일의 목표를 분명하게 제시하시며 뒤를 따르라도 신실하게 부르신다.(P 77)

 

[일은 목적이 있는 소명이다]

- 신약 성경에 언급되고 있는 부르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는 그리스어 칼레오(kaleo)인데 이는

  보통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예수님과 더불어 하나가 되라는 하나님의 요청을 묘사할 때 사용

  되는 말이며, 교회를 가르키는 그리스어 에클레시아(ekklesia) 자체가 부르심을 받은 이들

  의미한다.(P 80)

- 크리스천이라면 세상에서 자신이 하는 일의 목적에 대해 혁신 통찰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권력을 얻을 속셈으로 직업을 선택하거나 일을 대해서는 안 된다.(P 83)

- 중세 교회는 교회를 위해 교회 안에서 행하는 직무이어야만 하나님을 위한 일의 요건을 갖출

  수 있었다. 오로지 수도사와 신부, 또는 수녀가 되지 않고는 부름을 받아 주님을 섬길 수

  없었다.(P 84)

- 아버지 어머니는 자녀들의 소원을 무엇이든 다 들어주길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책임질 줄 아는 인간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일을 시킨다.(P 87)

- 혁명적인 노동관은 모든 일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고상한 의미, 다시 말해서 이웃을 사랑하고

  섬김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목적을 부여한다.(P 91)

-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큼 이웃을 사랑하기에 좋은 방법은 없다,(P 94)

- 완벽하게 해 내기만 한다면, 감자 껍질 벗기는 일로도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아무리 일해도 열매가 없다]

- 수치심이란 존재의 중심에서 자신을 향해 갖는 불편한 감정(P10)

- 아무리 땀 흘려도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있다.(P110)

- 열매가 맺히지 않아도 받아들여야 한다.(P114)

- 가시덤불이 생겨도 소망은 있다.(P117)

- 저마다 일에 대해 품고 있는 간절하고 원대한 염원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미래에 온전히

  실현되리라는 메시지를 저만의 방식으로 들려준다.(P118)

 

[일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다]

- ‘전도서는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악인이 디지모 말라고 경고하면서 중도를

  걸으라고 권면한다.(P122)

- 전도서의 작가는 철학자를 앞세워 읽는 이들을 몰아세워 가며 하나님의 초월적인 독특성과

  필요성을 납득시키려 노력한다.(P123)

- 전도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추상적으로 믿는 데 그치지 않고 실존적으로 의지하는 자세야

  말로 흔들림 없고 목적이 분명한 인생의 전제조건이라고 소리 높여 외친다.(P123) 

- 전도서는 3가지 인생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P124)

   첫째, 지식과 지혜를 통해 인생의 참뜻을 헤아려 보려는 탐색

   둘째, 즐거움을 기반으로 만족을 얻으려는 시도

   셋째, 열심히 일해서 뚜렷한 성과를 올리려는 노력 


[탐욕의 수단으로 변질되다]

- 스스로 중요한 존재가 되려는 교만한 갈망은 필연적으로 경쟁과 분열, 갈등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P 144)

- 바벨탑은 자신을 넘어 창조주 안에 토대를 두지 않는 한, 집단적인 노력으로 무얼 만들든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P144)

-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출세의 수단으로 보는 대신 뭇 사람들을 섬기는 데 쓸 수도 있다.

  예전보다 더 큰 위험을 감수하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 또는 신앙에 관해

  침묵으로 일관해 왔던 걸 뉘우치고 입을 열어 무얼 믿으며 따르는지 알리기로 작정 할 수도

  있다. 하나같이 크리스천이라면 받드시 가져야 할 선하고 올바른 마음가짐이다.(P156)

-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주님이 먼저 누리신 은총을 덧입을 수 있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중재자시다.(P158)

- 성경에 에스더 왕후로 불리우는 것은 모두 14차례이다.

  그 가운데 13번은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고백 이후에 등장한다. 주인공이 되려고 발버둥

  칠 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던 분을 섬길 때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P159)

 

[일이 인생의 전부가 되다]

- 거짓말하는 죄의 밑바닥에는 우상숭배라는 더 교묘하고 근원적인 악이 깔려 있다.(P167)

- 개인적인 우상들은 노동을 비롯한 인간의 행동을 광범위하게 자극하고 빚어낸다.

  우상은 죄와 문제가 싹트는 온상이 된다.(P168)

- 인종의 우상이 지배한다는 건 수많은 일거리들이 문화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과 사상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P173)

-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관심사와 욕구보다 더 큰 동기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의 삶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역할도 크게 바꿔 놓았다.(P176)

- 그리스도를 좇는 이들은 인간의 행복을 더 본질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는 까닭에 현대 문화의

  집합적인 우상들이 빚어내는 강력한 흐름을 거슬러 헤엄치기 일쑤다.(P186)

- 복음은 신실하게 일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 왜 그럴까?(P187)

   1) 복음은 일과 관련해서 맥락이 전혀 다른 대안을 내 놓는다

   2)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주님의 파트너가 되어 세상을 돌본다는 새롭고 풍성한 노동관을 제공

   3) 인간의 마음과 관련한 지혜로운 조언뿐만 아니라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온갖

      건강한 지침들을 통해 대단히 새롭고도 민감한 윤리 기준을 선사한다

   4) 복음은 일을 하는 동기를 백팔십도 바꿔 놓을 뿐 아니라 상황이 좋든 나쁜든 늘 함께하는

      신선하고 강인한 힘으로 심령을 가득 채워준다.

 

[복음의 관점으로 일을 이해하다]

- 스토리에는 삶이 어떻게 흘러가야 마땅한지에 대한 해설과 어쩌다가 균형을 잃게 되었는지에

  관한 설명, 그리고 어떻게 다시 삶을 바로잡을 것인지 기술하는 해법이 제시되어야 한다.(P195)

- 복음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데 삶의 의미가 있으며 그 작동 원리는 섬김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P199)

-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지음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거역하는 죄를 지어 그 관계를

  망가뜨렸다. 그러므로 구원과 은혜를 통해 옛 관계로 돌아가야 한다.(P200)

- 기독교 신앙은 오직 크리스천의 세계관만이 세상의 일부나 특정 집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린 상태) 자체를 문제로 여기며, 하나님의 은혜(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회복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결책으로 삼는다.(P201)

- 오직 신뢰할 만하고 한결같은 독립성의 보증인만이 이윤을 올릴 수 있다.

  목적이 없는 이윤은 재앙을 짓는 레시피다.(P207)

- 일터에서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은 단순히 착하고 성실하게 생활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더욱이 사무실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수준이 아니라 복음적인 세계관에 담긴 의미,

  그리고 일하는 삶 전반과 손길이 미치는 조직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곰곰이 성찰한다는

  뜻에 가깝다.(P209)

 

[일에 대한 이원론을 배격하다]

- 일은 섭리를 이뤄 가시는 창조주의 주요한 도구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 세상을 유지해 가는

  주님의 방식이다. 크리스천의 노동은 거룩한 창조 사역의 현장이다.(P228)

- 일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섭리를 전달하는 도구로 보는 성경의 노동관은

  대단히 중요하다.(P230)

- 하나님은 세상에 선물을 쏟아부으시면서 상당 부분을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에게 맡기셨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하나님을 더 잘 알기 위해서라도 인간의 문화를 두루 연구해야 한다.

  (P237)

- ‘이원론은 성()과 속()을 가르는 장벽을 설명하는 데 쓰는 말로 죄와 일반 은총,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대한 얄팍한 이해가 낳은 일차적인 폐해다.

  이런 태도는 일반 은총의 장엄한 그림과 인류를 사로잡고 있는 죄의 은밀한 영향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P243)

-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올바른 신앙이 이끌어갈 정점에 섰다고 볼만큼 선하지 않으며, 예수님을

  모른다고 해서 그릇된 신념이 끌어갈 가장 낮은 바닥에 이르렀을 만큼 약한게 아니다.

  따라서 어느 분야의 일을 하든지 양쪽 모두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서 그 문화와 표현들을

  비판적으로 즐길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반쪽짜리 진리를 알아보고 우상을 배격하는

  법을 배우는 한편, 삶의 모든 국면에서 정의와 지혜, 진리와 아름다움의 흔적들을 분별하고

  만끽하는 비결을 익힐 힘이 생긴다.(P245)

 

[일을 하는 동기가 바뀌다]

- 성경은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 서슴없이 공 동체에 피해를 주는 악인들과 달리불이익을

  감수하며 다른 이들의 유익을 도모하는 이들이 바로 의인이다.(253)

- 골로새서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 하나님은 인간들로부터 사랑과 경배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삼위일체 가운데서 이미

  누리셨던 사랑과 기쁨, 존경과 영광을 나누기 위해 사람을 지으셨다.(P255)

- 인권 의식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 있다는 기독교 신앙을 토양으로 성장했다.

  크리스천이라면 반드시 하나님의 형상에 근거해 인권을 이해하는 자세를 가져라(P260)

- 어떻게 해야 자신과 다른 이들의 마음에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을까?

  정답은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님이 보내 주시는 성령님을 통해서.(P262)

- 일꾼, 직원의 마음가짐

   1) 온 마음을 다해 일해야 한다

   2) 성실한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

   3)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

- 상대가 인격체라는 인식을 토대로 관심을 기울이며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는 능력뿐 아니라

  삶 전체에 투자해야 한다.(P269)

- 크리스천은 편협한 종파주의자처럼 비쳐지면 안 된다.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을 똑같이 존중하고 대우해야 한다.(P273)


[새로운 능력으로 일하다

- 안식일 규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뒤에 제정되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거룩한

  명령에 순종할 수 없다면 누구든 노예 신세다.(P292)

- ‘크리스천이라는 말의 참뜻은 예수님을 찬양하며, 따라가고 순종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안에서 쉼을 누리는 이들을 가르킨다.(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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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 땅콩문고
이원석 지음 / 유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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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9

 

저자께서 작품에서 줄 곧 주장하시고 계시는 독서의 완성은 서평쓰기라고 외치며

살아온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내가 독서에 몰입해 독후감혹은 서평을 쓴 뒤 자비로 그것을 모은 책자를 발간해

나를 아는 지인들에게 돌리며 나의 이런 행동에 스스로 행복에 겨워하던 때가 있었는데

몇 년 있다가 장정일이라는 분이 독서일기라는 타이틀로 나와 비슷한 작업을 해서

작품으로 만들어 서점에서 판매하는 것을 보고 나는

 

유명인이 나의 것을 표절했다

 

라고 외치며 속으로 웃었던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책 읽기를 멀리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나 혼자 생각해

책을 멀리하는 이유는,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잊어버려 누군가 책의 내용에 대해

물었을 때 생각이 제대로 안 나는 당혹감으로 인해 책을 쉽게 잡지 못하고 멀리하고

있는 것이라는 정말 쓸데 없는 결론을 내 본 적이 있다. -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

, ‘망각으로 인해 자신의 기억력에 한계를 느끼다 보니 선뜻 내가 읽은 책이다라고

이야기하지도 못할 바에 차라리 처음부터 책을 읽지 말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서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베스트 셀러를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전에

신중히 선택해서 읽었는데 평소에 책 근처에도 가지 않던 책과는 거리가 있게 살아온

어떤 인간이 갑자기 그 책을 읽었다며 나타나 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때

정작 훨씬 전에 읽었던 장본인은 그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를 않아 당혹감을 넘어서

나는 왜 책을 읽었고,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을까? 하는 좌절감에서 쉽게 독서에 뛰어

들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내가 그렇다 -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읽고 느낀 작품에 대한 독후감(서평)

을 쓰자는 것이었다.

약간의 자랑질(?)을 하면 나는 30여 년 동안 천 여 권의 작품을 접하고 약 900권 분량의

독후감(서평)을 어떤 형태로든 남겼고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으며 일부는 독서 관련

웹싸이트에도 올려서 여러 사람들이 참고하게 하고 있다.

나는 어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작품을 읽고 느낀대로 평을 하고

있는데 내가 만든 그것은 한편으로는 독후감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서평혹은

단순한 작품 요약집수준으로, 또 어떤 것은 작가의 고뇌의 산물로 만든 명문장 만을

정리하고 다듬은 단순한 '요약집' 형태로도 분류될 수 있는 말 그대로 내 맘대로 글을

쓰고, 소회를 정리해 놓고 있다.

 

나는 무조건 책을 읽었다.

그냥 책이 좋고, 문학이 좋고, 글 쓰기를 좋아해서였다.

아마 내 기억으로 제일 먼저 접했던 작품이 김주영 선생의 객주로 기억되고 작품에

매료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병주 선생의 내일 없는 그날이라는 작품을 접하며

독서의 장을 열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때의 감흥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원칙을 세웠다.

반드시 독후감을 쓰자는 것 추후에는 서평의 형식이 강해졌지만 - 이었고 원칙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으며 그 원칙은 이제 독서가 완료된 뒤에 해당 작품을 어떤

형태로든 정리하지 않으면 다음 작품으로 도저히 넘어가지 못하는 버릇으로까지

연계되어 버렸다.

그래서 한때는 독후감을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인해 또 스스로 선택한

작품의 저급함과 출판사의 마케팅 능력에 속아 작품 같지도 않은 작품을 선택했다는

나의 짧은 선택의 안목으로 인해 마음을 크게 다쳐 거의 몇 개월간 책과 서평을 외면한

채 괴로운 나날을 보낸 적도 많았었다.

그때 심각한 고민의 결과, 단순한 독후감이나 서평에 한정하지 말고, 작품을 접하며

내가 느낀 그대로 출판사가, 작가의 관점이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지적질(?)할 게 있으면

그대로 지적하자는 다짐을 한 후부터 과거에는 그런 마음이 들어도 내가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우려반, 소심한 반으로 인해 글을 쓰지 못했다.

특히 외국작품으로 인한 스트레스(작가와 출판사는 밝히고 싶지 않다 얼음창고‘, ’불륜

등과 같은)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 과거의 그런 압박에서

벗어났고 마음 편히 작품을 접하고 있는데 요즈음 책 읽은 후 3주 안에 작품에 대한

독후감혹은 서평나름대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독후감이나 서평은 왜 쓰고, 써야만 할까?

단순히 작품 내용과 관계된 내용만 쓰면 절대 하수. 좀 써 본 사람들은 느낄 것이다.

그런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을 돌아보고, 발전된 모습의 자화상도 그려보면서 항상

반성을 하게 되는 자아성찰의 시간을 많이 갖게 되는데 그런 자세가 독서 프로.

독서의 프로가 되기 위해 서평을 쓰자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런 자세를

견지해 보려는 노력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이다.

'서평' 이야기하다 '독서 프로' 이야기까지 너무 먼 거리를 온 것 같아 여기서 줄이고

 

독서를 하기에 앞서 읽는 것 못지 않게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면,

나의 경우 과거 어느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한창 일할 때에는 1주차에는 업무와

관련된 작품, 2주차에는 역사, 3주차에는 베스트 셀러라고 소개되는 작품 그리고

4주차에는 불멸의 고전 혹은 과거 내가 한번쯤 읽고 싶다고 생각했었던 작품을 선정해

읽었다. (지금은 상당히 다른 기준으로 선택하지만)

 

작품을 접하면 제일 먼저 서문이랄까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작가의 심정(?)을 다룬

글들을  찬찬히 읽고, 추천의 글도 자세히 읽으며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배경이나

이유를 정확히 기억해 두고 읽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나의 관점과 작가의 관점을 맞추기

위함이다. 군대용어로 사격의 클리크 조정을 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읽기 시작하는데 읽을 때 준비해야 할 점과 주의점이 있다

 

1. 반드시 메모지와 필기구를 옆에 두되 그것이 없으면 읽지를 마라

   , 차량이동 중에 읽을 때에는 포스트잇을 최대한 활용하여 주요 사항에 대해

   표시를 많이 해 놓고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해당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시 읽는다.

 

2. 문학 작품이나 상황 설정이 복잡한 경우 초반에 등장하는 주요인물, 관계성, 상황

   등에 대해 세세히 기록하라

   (나의 경우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라는 작품을 읽을 때는 A4용지가 3매 소요

    되었던 사실이 있다)

 

3. 중요한 문구라고 판단될 경우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색깔있는 얇은 포스트잇을

   3등분하여 해당 페이지에 잘라놓은 포스트을 붙여둔다.

   이때 주의점이 있다.

   독후감이나 서평의 총론적인 글의 소재를 표기할 때는 포스트잇을 책의 가로

   붙이고 기타는 세로로 붙이는 센스가 중요하다.

 

4. 책 읽기를 마친 후 포스트잇된 부분만 다시 한 번 정독하며 읽은 내용을 다시

   기억한다

 

5. 독후감이나 서평을 쓸 때는 포스트 잇이 붙여진 부분에 집중해서 글을 작성한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가로로 된 부분은 서평의 서문이나 도입부, 가로 포스트잇은

   본론을 이야기할 때 소재로 사용하라

 

6. 책을 읽는 과정에 기타의 방법으로 뉴스나 사설 혹은 각종 잡지를 접하게 될 때

   현재 자신이 읽고 있는 내용과 주제가 비슷한 경우에는 반드시 별도로 기록해

   놓았다가 해당 작품에 대한 서평을 기록할 때 응용 소재로 활용한다.

 

7. 마지막이 중요한데 책 읽기와 서평 정리가 끝난 뒤 가까운 시일내에 타인과의 대화

   속에 직전에 읽었던 문구 중 마음에 드는 문구나 표현을 한 번 써 보는 것이다.

   그러면 완전한 자기의 책으로 다가 설 것이고 서평 역시 살아 숨쉼을 느낄 것이다.

   나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글을 써 왔고 지금도 실천 중에 있다.

 

부수적인 글 쓰기 능력이나 어휘력의 증가, 이해력의 상승 등과 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당초 그런 것은 내가 쓰는 '독후감'이나 '서평'의 최종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만의 글을 작성하다 보면 글 쓰는 재미도 재미려니와 쓰고 난 뒤

자신의 글을 혼자 읽는 재미와 함께 글 쓸 때의 상쾌함이란 이루 말할 길이 없다.

자신의 책 선정의 확고한 기준점이 없을 때 출판사의 꾐에 빠지거나 작가의 명성에

기대어 작품을 함부로 선정해 읽게 되기 쉬운데 그러면 자칫 독서의 즐거움 보다는 

기분만 상할 수 있으니 자신만의 작품 선택 원칙을 선정해 작품을 고른다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의 경우는 사설이나 컬럼 등에서 저자들이 권하는 작품이 있으면 반드시 메모를 해

두었다 작품 소개 코너에서 확인 후 작품을 선정해 읽고 있는데 나름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독서가 콩나물 키우듯 하루 아침에 자신의 내적 성장을 이루게 해 줄 것이라 믿지 말라

뿐만 아니라 책 몇 권 남 보다 더 읽고 남보다 책 읽은 소감을 기록해 놓았다고 자신의

인격과 교양이 하루 아침에 쑥쑥 자란다는 생각도 버려야 할 자세다.

 

나폴레옹히틀러도 전부 독서광이었고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십 수년 전으로

기억되는데 세계에서 국민이 독서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일본이었다고 알고 있다.

그렇게 독서를 많이 한 사람들이 오늘날 전 세계인으로부터 추앙받고 존경받고 있는

가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국내적으로 적용해 보아도 우리의 여의도에 계시는 위정자들 역시 배울만큼

배우고 알만한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연일 머리채만 안 잡았지 저급한 싸움놀이에 빠져

있는 것도 역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책도 많이 읽고, 교양이 있다고 여겨지는 그들이 왜 그리 되었을까?

내가 볼 때 그들은 단순히 책만 읽었지 독후감이나 서평을 통해 스스로를 반성하거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고민다운 고민을 하지 않았던 인물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가 그런 부류들과 같이 되지 않으려며 단순히 책만 읽어서는 안 된다.

항상 읽고 기록하고, 느끼고,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매 순간순간 다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럴 경우 우리가 행하는 독서서평(독후감)‘은 우리 자신에게 언젠가

크나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또 언젠가 그렇게 영향받은 우리의 DNA가 새로운

우리 사회를 새롭게 만드는 확실한 촉매제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건방지게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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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도전 -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존한 사람 조지 뮬러 전기
아더 피어슨 지음, 유재덕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추천 권유도 3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존한 사람, 인간 조지 뮬러에 관한 전기로 그는 죽기 전까지

10,024명의 고아들에게 사랑을 전한 기독교계에서는 신화적인 인물로 그의 행적이

인정받는 이유는 그렇게 많은 고아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전적으로 하나님

께만 의지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의 인물 됨됨이를 몇 단어로 표현하라면 아마도 진실’, ‘믿음’,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그런 인물이다.

 

작품을 읽는 내내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와 나의 마음을 크게

붙잡았는데, 오늘 주일 설교 말씀을 듣던 중 시편 685절의 말씀을 읽으면서 왜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68:5)

 

믿어지지 않겠지만 기독인들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그의 진술이 있는데, 조지 뮬러

주님께서 자신의 기도 5만 번에 응답하셨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3만 번

기도하는 바로 그 순간이나 당일에 응답받았음을 고백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기도하면서 마음에 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더욱 자주, 열심히, 자세하게

내려 놓았으며 공급자가 되시는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바라본 인물로 그는 주님을

믿었고, 믿었기 때문에 기도했으며 그리고 기도했기에 기대했고, 기대했기에 응답받았

음을 인정하고 있다.

결국 그는 믿는 사람은 복되고 주님이 말씀하신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직접

실천적인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세상에 보여 줄 사명으로 고아원을 운영하였는데,

그 운영 방식이나 경비 조달의 방식이 참으로 특이했었다. 모든 고아원 운영이 그랬듯

그는 언제나 경제적으로 쪼들렸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아닌 그 누구에게도 자신

이 처한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처음에는 고아원 운영에 관한 연례 보고

류를 통한 고아원 운영 자금을 모금하였으나 이 마저도 일반인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중단하였으며, 교회에 헌금 봉투에 금액이나 이름을 쓰느 것도 교인들

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여 자율적인 헌금 방식으로 운영하였고, 교인들이

내는 헌금도 타당하지 않은 금액이나 헌금은 절대 받아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은 알고, 지켜보고, 보상해 주시고 모든 고아의 아버지라는 신념

속에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고 기댄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죠지 뮬러라는 ‘5만번의 기도의 주인공을 처음 접한 건 아마도 2~3년 전 쯤 일 것이다잊고 지낼만하면 툭 튀어나와 나의 심약하기 그지 없는 종교생활에 일침을 가하고

는 해 양심이 찔리고는 했는데 오늘 이렇게 접하고 나니 당초에 내가 기대하고 접하기

를 원했던 그런 류의 전기 작품집은 아니었으나 작품을 통해 진정한 기독인이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종교적 관점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작품이었다.

 

작품을 읽으며 새롭게 느낀 사항은

* 주님의 의도가 담긴 말씀을 이용해서 그분이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확실한 근거를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할 근거로 바꾸어놓은 그런 기도가 중요하다.

(주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15:26)

(여인)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15:27)

타인들이 읽을 때 혹은 기독인이라 할지라도 이 문구를 읽을 때 어떤 느낌으로 다가

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저자가 작품에서 강조하려는 사항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나도 앞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뚜렷한 논리와 진실된 마음 그리고 확실

한 기도 목표를 설정하여 십자가 앞으로 나갈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찌 되었던 솔직히 이런 작품류는 평신도가 읽기 보다는 목회를 하시는 분이나 그런

마음 자세를 갖고 계신는 분들이 읽을 때 더욱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

했다. 어쨌든 작품을 통해 알게 된 죠지 뮬러의 신앙적 자세  

 

- 그가 하나님을 믿으며 얻은 교훈

   1)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안전한 지침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기도를 믿어라

   2) 앞길이 줄곧 불확실하면 계속해서 기다려라

 

- 하나님은 우리를 기도하게 하려고 일을 지연시키기도 하고, 우리의 생각을 억제하고

  자기 의지를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도록 기도 응답을 미룰 때가 있다.

  

- 기독교는 말이 아니라 능력에 있고, 그리고 우리 안에 생명이 있어야 한다.

  

- 기도하면서 습관적으로 성경을 자세히 읽고 깨달은 것을 순종으로 표현해야 한다.

  

-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28:13)

  

- 꾸준히 지속하는 기도는 기쁨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절대 멈추면 안 된다.

  사실 기쁨이 덜할수록 기도는 더 필요하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중단하는 것은 기도의

  습관과 기도의 정신을 재개하고 회복하는 일을 더 어렵게 할 뿐이다.

-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사에 따라서 모든 성도를 통해 역사하시느

  무한한 자유를 갖고 있다.

 

- 하나님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녀가 넘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흔들리는 것까지

  막아주신.

  

- 무슨 일을 시작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이 분명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성도의 기본도리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살피고 지도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은총과 경건함 속에서 성장하게 하는 위대한 비결이다.

    

-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생각을 표현하고 마음과 뜻을 계시 하신다.

  

- 알 수 없는 길과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 앞에 펼쳐지면 이따금 주님이 다루시던

  방식을 뒤돌아보고 격려를 받아라.

  

- 하나님의 자비를 인정하고 감사를 잊지 않는 사람, 악하거나 의심스러운 행동을

  즉시 그만두는 사람, 비교적 작은 것이라도 곧장 고백하고 단념하는 사람은 분명히

  그리스도처럼 성장할 수 있다.

  

-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따라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하면,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시고 기도를 들어주신다.

  

- 하나님은 자신 앞에 우리의 명분과 직접 약속한 말씀을 제시하는 것을 좋아 하신다.

 

- 호소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할 때 우리는 그분의 자비는 물론, 진실함과

  성실과 공의를 근거로 약속의 성취를 주장할 수 있다.

 

- 모든 기도는 믿음으로 바칠 때만 효과를 발휘한다.

  , 우리는 축복을 기대하고,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과 시간과 형태에

  따라 응답받을 준비가 된 믿음을 유지해햐 한다.

 

- 기도와 감사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언제나 함께 가고, 서로 돕는다.

  

- 가장 커다란 시험은 가장 완벽한 축복이라는 열매를 맺고, 때에 따라서는 감당할 수

  없는 축복을 가져오기도 한다.

  

- 기도의 응답이 늦어져도 목적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끈질긴 자세를 시험하거나 우리를 다루시는 주님의 방식에

  주목하는 다른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전혀 응답이 없어도 간구하게 하신다.

 

- 진심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누구나 우리의 방법이나 시간, 혹은 우리가 직접 표현한

  바람이 아니라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잘 이해하는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에 하나님

  이 응답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 우리는 특권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지 않아서 회수되고, 행동에 옮기지 않아서

  확신을 어둡게 하는 위험을 겪게 된다.

 

- 믿음은 선행을 계속하다가 어떤 낙심과 단절을 겪어도 평안과 꿋꿋함을 유지하게

  하는 비결이다.

  

- 하나님 앞에서 침묵하는 습관을 기르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걱정을 벗어나게 된다.

  부단히 성경을 읽으면 말씀의 전체적인 교휸을 깨우치고, 다양하면서도 서로 연결된

  하나님의 생각이 드러나고, 그리고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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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고든 맥도날드 지음, 홍화옥 옮김 / IVP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천권유도 : 8

 

작품은 어느 목사님의 고뇌의 산물이다. 목사님의 고뇌라 하여 단순히 종교적인 관점에서 작품을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그 고뇌를 바탕으로 나온 말씀이 나의 생을 점검할 수 있는 단초를 분명 줄 수

있다는 생각 속에 작품을 읽어 보았다. 그리고 나름 찾았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구를 뽑으라고 한다면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다소 종교와 관련 없는 것으로 판단되는

행동하는 사람은 현재를 소유한다

               그러나 사고하는 사람은 연구를 통해 미래를 얻는다     (올리버 웬델 홈즈)

라는 문구를 선정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최근 연속된 나의 힘든 생활로 인해서 이를 벗어나기 위해 

여러 방법론적인 것을 찾아보기도 하였으나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다 기독인으로서 종교적 성찰을 통해 이를 극복하기로 마음먹고 고심하던 끝에 해당 작품을 선정했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인고 하면 저자의 종교와 관련된 내면적 성찰의 고뇌를 약간 비틀어서 현재 내가 겪고 있고, 마주하고 있는 현실적 어려움을 타개하는 데 혹시나 어떤 단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심정에서 작품을 선정했기 때문에 위와 같은 결론(문구)을 얻은 것이다.

따라서 작품이 주고자 했던 교훈을 근간으로 작품을 점검해 보았다.

 

작품을 통해 얻은 언제 기도하는가?’에 합당한 문구를 들라고 하면

내면의 기도가 잠자리에 들기 전 마지막 행동이 되고 잠에서 깰 때 처음 행동이 

 되도록 하라”                                                                            (토마스 켈리)

 

기도는 어떤 것이고, 어떻게해야 하는 가에 대한 답변에 맞는 문구를 들라고 한다면

성령의 폭풍을 지닌 사람은 자는 중에도 앞으로 전진한다

진정한 기도는 우리가 연약하고 하나님께 의존된 존재라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

주님, 당신이 저의 뜻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하늘의 눈으로 이 땅을 보게 해 

 주십시오

이런 문구들이었다. 맥락적으로 이런 문구를 적확하게 사용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그렇게 느껴기에 여기에 적어 놓을 뿐이다.

기독인으로 살아오면서 가끔 드는 생각이 

나의 이 길, 이 방식이 기독인으로서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종종하고는 했었다.

특히, 뜬금없이 기독교를 무시하고 주님을 이유없이 빈정대는 인간들을 간혹 만나거나

그들과 종교적 논쟁을 전개할 때 반격다운 반격도 못하면서 속만 끓이던 과거와는 달라져 나름대로 종교적 확신과 함께 비기독인들을 설득시키고 이해시키기 위해 내가 갖고 있는 의문과 종교적 의구심에 대한 적절한 해답과 종교적 내면 성찰의 깊이를 더하고자 본 작품을 접했던 게 나의 일차적인 목적이었고

두 번째는 개인적으로 여기서 언급되는 내용을 응용하여 실생활에 충실히 적용하다 보면 인생 2막을 좀 더 알차게 진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도 동시에 갖고 있었기에 해당 작품을 선정해 읽게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내용 중 읽고, 음미가 필요한 부분과 실생활에

응용해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내용들을 나의 관점으로만 정리해 보았다.

 

-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릴때부터 하나님께 말하는 법을 배우지만 그 분의 말씀을

  듣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본 문구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치 않다.

-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효과적인 방법중 하나가 일기쓰기이다.(내 방식이다)

  말로 하는 기도가 느슨해질 때 일기는 글로 쓰는 기도의 수단이다.

   ---> 일기를 쓸 때 내가 기록하는 내용이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일 수도 있다.

- 세 가지 요소 즉, 헌신하는 삶, 외적으로 섬기는 삶, 지적으로는 합리적인 삶이 잘

  계발되지 않으면 생명력이 있는 기독교로 성장하기 힘들다.

-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임으로써 중심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법을 배워햐 하며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공인은 많은 경우 자리를 꼭 지켜야 하지만 숨는 법도 배워야 한다.

- 우리는 바쁘면 바쁠수록 그만큼 더 중요한 인물인양 스스로 생각하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비칠 것이라고 추측한다.

- 내면 생활을 정돈하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갖고 계십니까?

- 나의 겉사람과 속사람이 하나가 되게 하소서

- 다른 어떤 위대함보다 영혼의 위대함을 다른 어떤 부요보다 마음의 부요를 숙고해라.

- 영혼의 맨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순간이 있다. 그곳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평상시에 그곳에 비축해 놓은 것이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 세상이 너희를 그 틀 속에서 끼워 맞추지 못하게 하라.

- 모든 것이 질서정연한 고요한 장소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거기로부터 외부의 

  격동을 극복하고 그에 위축되지 않는 힘이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 쫒겨 다니는 사람들의 특징

  1) 오직 무엇인가를 성취했을 때에만 만족감을 느낀다

  2) 성취를 표시하는 상징에 집착한다 

  3) 고삐 풀린 팽창욕에 사로잡혀 있다

  4) 온전한 인격에는 별관심이 없는 경향 

  5) 대인 관계 기술을 닦는 데 신경쓰지 않는다

  6) 경쟁심이 강하다 

  7) 화산처럼 격노한 분노를 품고 있다

  8) 대개 비정상적으로 바쁘고, 노는 것을 싫어하고, 영적인 예배를 피한다

- 지난 수세기 동안 수많은 세계적인 지도자들이 고아였다.

  이들은 내면세계의 질서를 통해 사랑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지 않고 외적인

  차원에서 그것을 추구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 부름받은 사람은 자신이 청지기임을 알고 있다.

  직업, 재산, 타고난 재능, 영적 은사, 건강 등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소유물인가 아니면

  그것들을 우리에게 주신 분의 이름으로 관리할 대상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쫒겨 다니는 사람은 그러한 것들을 자신이 소유했다고 여기고, 부름받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굉장한 권력을 휘두르면서 특권을 누리던 

  자가 그것을 놓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이며, 그 권력을 고수하기 위해서 죽기까지 

  싸우는 것이다.

- 자신이 어떤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출발점이다.

- 부름받은 사람들의 특징은 청지기 의식, 정체성 인식, 자신의 역할에 대한 올바른 

  관점내보냄의 원리에 헌신한다.

- 예수께서는 왜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는가?

  광야는 너무 분주하고 시끄럽고 자기 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도시에서 쉽게 

  포착할 수 없는 것들을 광야에서는 듣고 깊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광야는 달리 의지할 것이 없어 내면 세계가 만들어지는 공사 현장이다.

  우리가 고통 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위대한 교훈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 방치된 시간에 관한 맥도날드의 법칙

  1) 방치된 시간은 내 약점을 향해 흐른다.

  2) 자신의 세계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의 영향력에 의해 좌우된다.

  3) 온갖 긴급한 일에 소모된다.

  4) 대중의 갈채를 받는 일에 쓰이게 마련이다.

  ---> 타인이나 다른 행사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단단히 결심하지 않으면

        시간의 방치를 면할 수는 없다.

- 시간을 성공적으로 되찾을 수 있는 방법

  1) 생산성이 최고로 높을 때를 비롯한 생활 리듬을 알아야 한다

  2) 시간 사용 방법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가져야 한다

     · 좋기는 하지만 최선이 아닌 기회들을 단호하고도 정중하게 거절하라

     · 하나님은 당신이 꼭하지 않아도 될 온갖 일들을 전부 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3) 시간 예산을 충분히 앞서 세울 때 시간을 통제하고 다스릴 수 있다.

     -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힘을 가진 사람이라도 끝까지 경주를 마치기 전에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 지각 있는 삶에는 상당한 훈련과 고된 노력이 필요하다. 지각없는 상태는 

       게으름과 두려움에서 기인한다. 생각없는 활동은 개인을 무질서한 감정상태로 

       몰아간다.

- 타고난 재능은 사람을 어느 정도까지는 끌고 가지만 경주가 끝나기 훨씬 전에 주저

  않게하고 만다.

- 지성과 감정과 의지의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을 만들고 참으로 균형 있는 강한 성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최선의 사고는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시는 왕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 지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마치 여러 장이 붙은 채 읽히지 않은 책과 

  같다.

- 기독교적 사고는 모든 쟁점과 사상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관점에서 조망한다.

-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을 정기적으로 새롭게 하지 않고 그저 기독교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하나의 죽은 종교, 상투적인 신앙, 비효과적인 증거 등의 원인이 된다.

- 지성을 계발하는 것은 내가 잘되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유용한 일을 하기 

  위함

- 우리는 어떻게 해야 내면 세계에 지적인 체계를 세울 수 있는가?

  1) 경청하는 사람이 됨으로써 성장한다

     경청의 첫걸음은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2)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일터를 방문해서

  3) 멘토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4) 비판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5) 독서를 통해서 성장한다 6) 공부 훈련을 통해서 성장한다

-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훈련

  1) 침묵과 고독의 추구 

  2) 규칙적으로 하나님의 음성 듣기

  3) 사색과 묵상의 경험 

  4) 예배하고 중보하는 기도

      : 나 지신의 목적에 하나님을 맞추려고 구하는 것이라기보다 그분의 목적에 나를

        맞추는 것이다

-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붙잡히기 직전에 하신 

  그 기도는, 그분의 뜻이 아버지의 뜻과 일치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성숙한 기도)

- 기도란 우리의 약함과 의존성을 드러내는 표시이다.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우리의 잘못된 기대에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청취력이나 능력의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다.

-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정기적으로 멈춰서서 우리 삶의 근거가 되는 진리와 헌신을

  되새길 때 진정한 쉼이 가능하다.

  쉼은 내가 하는 일의 의미와 최근에 걸어온 길의 의미를 회상할 뿐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헌신을 새롭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 올바른 예배는 내면세계의 쉼을 주는 세 가지 측면, 즉 뒤돌아보고, 위를 바라보고,

  앞을 내다보는 훈련을 모두 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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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렉 로리 지음, 채수범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추천 권유도 9

   정말로 최고의 날은 아직 내게 열리지 않았다

 

작품 이야기를 하기 전에 언젠가 신문인지 책인지 기억이 나지를 않는데, 어떤 내용을 읽다보니

하나님 말씀처럼 달고 시원하고 재미있는 책은 없다

라고 쓴 것을 읽고서 나는 속으로 글을 쓴 저자를 속으로 한 없이 비웃은 적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다종 다양한 여러 분야의 서적을 접해 보니 정말로 그 분이 말씀이 구구절절

가슴에 와 이렇게 감동으로 전해질 줄은 예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본 작품은 그 중에 하나였음을 고백해 본다.

 

과거 직장 시절 때, 지금도 그렇지만 요란스런 말과 행동으로 번잡함을 특기로 살던 나에게 어느

고참 과장이 나를 조용히 불러서는

너는 절대 크리스찬이 되지 마라. 너같은 사람이 교인이 되면 열혈신자도 되겠지만 아주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골 아프게 만들 소지가 있으니 절대 교인이 되지 마라

라는 소리를 해서 쓴 웃음으로 답을 했는데, 이제는 그 선배의 눈썰미가 정확했음을 여기에

고백하지만 그 분의 예측 중에 틀린 사항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세상을 그 분의 예측처럼

골 아프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다짐이다. 그래도 주님의 말씀을 전함에 있어서 상대를 좀

골 아프게 하면 어떠리 영생을 주님께서 주시겠다는 데도 못 알아 듣는 영생들이 많아 답답한데

말이다.

 

내가 작품에서 완전히 feel이 꽂힌 구절이 있다. 약간의 뻥을 보태면 100번은 외우고 또 외운

성경 문구이다. 비신자라도 한 번 읽고 음미해 보기 바랍니다.

 

[빌립보서 4]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요한계시록 14]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뭔가 가슴에 와 안 닿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한 천 번쯤 읽고 또 느껴 보십시오 정말 가슴을 치는

문구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해 보십시오.

나는 그 분의 실체를 믿지 않으시는 분들에게 이런 글귀를 들려 드리고 싶다.

내 속에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만족시킬 수 없는 갈망이 있다면, 거기에 대해 가장 합당한

설명은 내가 다른 세상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설명일 것이다. 아마도 세상의 기쁨은 그러한

갈망을 만족시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갈망을 일깨워서 그것을 진정으로 만족

시켜 줄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시기 위한 것일수도 있다

이 글귀도 뜬금없는 소리같이 들리시는 분들이 계실 것인데, 찬찬히 뜯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순간 !’하는 탄성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너무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런 의미를 알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언젠가 크게 느껴지실 것입니다. 이런 작품을 읽고

나는 이렇소하고 골 백 번 외쳐도 소용이 없다. 가장 핵심이라고 여겨지고 내가 감읍하였던

문구를 여기에 옮김으로서 이를 대신하고자 한다.

 

  1) 예수님은 당신의 필요를 아시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채워 주실 것이다.

  2) 하나님께는 우리에게 벌어지는 문제들이 그 어느 것 하나도 갑작스런 일이 아니다.

  3)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맨 나중에 주시려고 남겨 두신다.

  4) 예수님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 개입하셔서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상황을 바꾸신다.

  5) 예수님은 당신이 초청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6) ‘두려움은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염려와 함께 우리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7) 돈이 어떤 문제를 가볍게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돈은 그것이 해결한 문제보다 훨씬 더 큰

     문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8) ‘고통이란 귀먹은 세상을 깨우시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메가폰이다.

  9) ‘믿음을 가진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그래서 주님께서는 믿어라 그러면

     너에게 보여 주겠다고 일갈 하셨다.

  10) 기도의 응답을 받기 전이라도 감사는 빼놓아서는 안 될 정도로 중요한 기도의 요소.

     감사는 오히려 특별히 기도가 응답되기 전에 필요한 요소이다.

  11) 인생에는 근심해야 할 이유가 있지만 근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다.

  12)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없을 때에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의지해야 한다.

  13) 우리의 마음에 스트레스와 불안과 걱정이 가득 차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14) 하나님은 죄와 불순종에 대해 징계하기 위해 우리의 삶 가운데 어려운 일을 일으키신다.

  15)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고통을 당하는 시간에 당신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16)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인내하고 - 마음을 굳게하고 - 불평을 거부하고 - 상황과 관계없이 믿음을 붙들라

 

 

읽고, 느끼고, 생각하며 나를 돌아보자

 

- 성경의 예언을 연구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고, 우리가 깨어 있는 모든 순간에 색깔을

  입히며 우리의 인생의 모양을 예언에 맞게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이다.

 

- 성경에서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내용이 나올 때마다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행동을 말해주는 어떤 권고나 훈계가 나온다는

  것이다.

 

- 청춘에게는 사십도 늙은 나이요, 노인에게는 쉰도 젊은 나이다.(프랑스 속담)

 

- ‘염려’(worry)라는 단어는 고대 영어의 질식시키다(choke)’에서 파생된 단어다.

  명상이란 결국 내가 사라져서 자연과 존재와 하나가 되는 일이라고 한다면, 기도 역시 어떤

  의미에선 마찬가지다. 그것은 내가 사라져서 신이 내 안에 들어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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