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의 기도 - 의무를 지나 기쁨에 이르는 길 찾기
팀 켈러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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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9


주님을 믿는다면서 세상에 얼마나 성공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에 가장 깊은 

 소망과 기쁨을 두고 있는가.....(중략).....인생만사가 순조롭고 심중에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안전

 하다 싶으면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기도가 무미건조해지기 십상이

 다.....(중략).....한마디로 내면으로부터 기도하고 싶어 하는 긍정적이고 전향적인 욕구를 찾아볼

 수 없다. 형편에 쫓겨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조아릴 따름이다어째서 그런가? 하나님이 엄연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지만 무언가를 얻어내거나 행복해지는 수단쯤으로 여기는 탓이다

 대부분은 그분을 행복 그 자체로 삼지 않는다그러기에 하나님을 더 잘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얻고 구하려고 기도하는이다.‘


작품을 읽다 어느 부분에서 마주한 이 문구는 나를 포함한 오늘을 살고 있는 겉만 크리스천들을

질타하는 문구로 나는 받아들였고, 이제까지 보여주기 식으로 행동한 나의 얄팍한 신앙생활을 

꾸짖음과 함께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를 돌아보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의미 있는 독서의 시간이었다그러다 또 마주한 섬뜩한 문구

신을 숭배하거나 달래는 건 가능할지 모르지만 가까이 지내며 우정을 쌓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 신을 가까이 하기 위해, 웬지 가까이 하지 않으면 무슨 큰 일이 날 것 같은 그런 신을 알고 더욱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나는 작품을 읽었다.

 

- 경배가 간구를 포함하듯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기도 또한 주님을 알고자 하는 간구를 아우른다.

 

- 하나님 나라가 임하길 기도할지라도 그분의 실재가 온 삶을 통틀어 가장 큰 기쁨이 되지 

  못한다면 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게 아니다.

 

- 기도란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인 동시에 만남이며 좋든 싫든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규칙적으로

  꾸준히 작심하고 끈덕지게 드려야 한다

  설령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해도 기도를 멈춰서는 안 된다.

 

몇 해 전 필립 얀시기도’(청림출판, 최종훈 )라는 작품과는 내용적으로는 유사할 수는 

있어도 크리스천으로 갖춰야할 자세 및 신앙인으로서의 행동거지에 대한 설득 및 훈계 방법이 

초심자부터 교회직분자들까지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내용적으로 좀 더 충실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내 신앙적 깊이가 너무도 얕고, 진중한 종교적 성찰의 무게가 가벼워 나는 작품을 접하며 나름 

종교적 깊이를 제고하기 위해 고민하며 읽었다.

 

 

1. 기도 말고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 하나님과 이웃보다 성공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은 심령에 각질을 입혀 감정과 감각을 

  떨어뜨린다.

- 주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새롭고도 특별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므로 기도는 다른 길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차원의 자기 인식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 기도야말로 존재와 행위 전체를 아우르는 열쇠이며 성령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증해 준다.

  복음의 능력을 맛보는 경험은 기도를 통해서만 일어난다.

- 하나님과 마주한다는 건 내면의 감정과 마음의 확신을 모두 아우른다는 것이다.

- 기도는 참다운 자기 인식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이며 마음의 변화, 다시 말해 사랑을 다시

  조율하고 조정하는 주요 도구다하나님이 자녀들을 위해 마련하신 상상을 초월할 만큼 놀라운

  선물을 수없이 베푸시는 방편이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들을 안전하게 공급하시는 파이프 라인이다하나님을 알고 마침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한마디로 살아가면서 무슨 일을 해야 하고

  어찌 되어야 하는지 빠짐없이 알려 주는 만능열쇠인 셈이다. 그러므로 기도를 배워야 한다

  여기엔 선택의 여지가 없다,

 

 

2. 기도만큼 위대한 것은 없다.

- 바울이 쓴 글을 아무리 살펴봐도 신앙의 동지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환경과 처지를 바꿔 달라고

  호소하는 대목은 없다.

---> 바울은 크리스천이 반드시 얻어야 할 결정적인 응답은 환경의 변화보다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지식이라고 했다.

--->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삶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주님을 더 잘 아는 게 중요하다.

- 기도는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64:7)행위다. 따라서 기도를 단순히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아 내는 통로가 아니라 그분을 더 잘 알아 가는 수단으로 인식해라.

- 사회적이거나 경험적인 보상이 전혀 없어도 영적으로 메말랐다 싶으면 당장 기도부터 하라.

- 기도하기로 마음먹은 이들이 처음 마주하는 것은 공허감이다.

- 기도는 인간이 가진 자연스런 본능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님이 마음에 들어오셨음을 보여

  주는 주요 지표 가운데 하나였다. 기도는 인간을 처음으로 돌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숨결이다

---> 히브리어로 성령이란 단어에는 이란 뜻이 있다.

- 기도는 너그러움과 평화, 기쁨, 사랑 그리고 축복이다. 인간이 갈구하는 영혼의 깊은 안식이다.

  기도는 힘과 생명력의 유일한 근원인 영혼의 피이며 순례에 나선 마음이다.

  또한 기도는 주님 앞에 서서 자신의 참다운 됨됨이를 공부하고 그분께 스스로의 진수를 드리는

  행위다. 뿐만 아니라 기도는 전능하신 분께 맞서는 병기이다.

 

 

3. 기도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 기도란 인간의 집단 이성이 어린아이나 신경증 환자의 멘탈리티와 비슷해질 때나오는 반응.

- 심리학자 칼 융은 기도라는 신앙 체험을 해석하면서 밖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게 아니라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쪽으로 인식했다.

- 기도란 근본적으로 침묵 가운데 신비롭게 이뤄지는 만남이 아니라 말을 주고받는 일종의 대화.

- 성경은 단지 정보를 담아 두는 창고가 아니라 다이내믹한 영혼의 동력이다.

- 기도란 세상 만물과 하나님이 하나가 되는 내향적인 침잠이 아니라 초월적인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에 대해 믿음으로 반응하는 작업이다.

- 기도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인격적으로 소통하는 반응이다.

- ‘본능적인 기도는 하나님의 실재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에 기대어 쏘아 올리는 일종의 구조 

  요청 신호탄이다. 반면에 선물로서의 기도는 말로 표현된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시에 답하는

  참되고 인격적인 대화다.

- 가장 온전한 의미의 기도란 하나님이 거룩한 말씀과 은혜로 시작하신 대화를 끊임없이 이어

  가서 마침내 주님과 온전히 만나는 단계에 이르는 길을 가리킨다.

- 기도의 능력은 인간의 노력이나 열심 또는 기교가 아니라 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달려있다.

 

 

4. 소견대로 하는 기도는 비극이다.

- 말씀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 기도의 출발이다.

- 성령님의 선물로서의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대화로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대화가 진전되고 무르익으면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발전한다.

-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이편의 대답이다.

- 크리스천의 기도는 대화를 나누며 친구가 되어 주시는 인격적인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것

- 하나님이 꺼내신 말씀에 인간이 믿음으로 내놓는 대답이 만날 때, 비로소 교제가 시작된다.

-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성경을 통해 가능하다. 성경은 주님이 예언자의 입에 

  그분의 말씀을 맡기신다고 말한다(18:15~20, 1: 9~10)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들으며 주님을 만나는 창구가 된다.

- 기도의 목표가 진실하고 인격적인 교제라고 본다면, 온 마음을 다해 성경에 기록된 한 구절 한

  구절에 깊이 몰입하는 게 기도하는 법을 배우는 유일한 길이다.

- 기도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반응, 또는 응답으로 드려야 한다.

- 하나님 말씀에 깊이 침잠하는 게 기도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기도는 제한적

  이고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 뿐만 아니라 본질에서 벗어나 엉뚱하게 흘러갈 수도 있다.

- 기도의 핵심은 자기 표현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답하는 법을 체득하는 데 있다.

- 말씀은 기도하고자 하는 힘을 불러일으킨다.

 

 

5. 기도는 결코 주문이 아니다.

- 성경 말씀을 대하는 건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다.

- 기도는 하나님이 누리는 지극한 기쁨에 동참하는 길이다.

- 기도는 친밀한 관계와 아버지의 사랑을 마음껏 느끼고 누리는 방법인 동시에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토대로 평안하고 기운찬 삶을 살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 크리스천은 하늘 아버지의 참 아들이신 예수님께 속해 있다.

- 당장 구체적으로 무얼 구해야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성령님은 감동을 주셔서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한 뜻을 갈구하게 하신다.

-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자가 되신다.(딤전 2: 5, 8: 6, 12: 24)

- 신을 숭배하거나 달래는 건 가능할지 모르지만 가까이 지내며 우정을 쌓는 건 불가능하다.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건 그분만이 하나님께 다가가는 유일한 방법이며 창조주와 

  소통하는 외길임을 인정하고 간구한다는 뜻이다.

 

6. 어거스틴과 루터, 기도를 말하다.

- 어거스틴이 아나키아 팰토니어 프로바라는 로마의 귀족 여성과 나눈 제대로 기도를 드리지

  못하는 답답함에 대한 편지 형식의 답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는데

  어거스틴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첫째, 무얼 어떻게 기도할까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어떤 부류의 인간이 되느냐가 중요

     ▶ 내가 그리스도와 동떨어져 황폐해진 상태임을 받아들이면 비로소 기도를 시작할 수 있다

  둘째, 무얼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

    ▶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 이것이 행복을 구하는 기본적인 기도이며 성령님의 능력에 힘입어 허상을 걷어 낸

               심령만이 드릴 수 있는 간구다

  셋째, 어디서 진정한 기쁨을 찾을 수 있는지 의식하며 기도하는 법을 깨달은 뒤에 주기도문을

         연구하며 구체적인 기도 방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 마음의 소원을 쏟아 놓는 중에도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을 기억하라.

- 홀로 되서 외롭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여인들에게 기도 사역이 더 적합한 이유는 홀로된 

  상태를 일종의 방패로 삼고 지속적이며 한없이 뜨거운 기도를 드리기 때문이다.

- 크리스천은 감정을 떠나 반드시 기도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는 마음을 들어 하나님께

  바치는 일이므로(3: 41) 자발적으로 기꺼이 간구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 말씀 묵상은 격식을 갖춘 성경 연구에서 기도로 넘어가는 일종의 다리 구실을 한다.

- 묵상의 구체적인 방법

  첫째, 그 말씀을 주신 참뜻이 무엇인지 살펴 하나님이 무얼 요구하시는지 진지하게 고찰한다

  둘째, 그 깨달음을 감사로

  셋째, 고백으로                                        넷째, 기도로 연결시킨다.

- 성경의 본문 속에서 가르침을 뽑아낸 다음에는 어떻게 그 줄기를 붙잡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찬양하며 죄를 고백하라고 뉘우칠지, 어떻게 하면 거기에 이끌려 주께 간청하며 간구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 뜻을 전하신다.

 

 

7. 칼뱅, 기도의 원칙을 논하다.

- 하나님에 대한 행복한 두려움 속에서 기도하라.

- ‘칼 뱅의 기도 원칙

  1) ‘경외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다. 겸손은 기도하게 만드는 요인이자 열매이다.

  2) 모자라고 부족하다는 의식은 허구를 몰아낸다. ‘영적인 겸손을 견지하라.

      --->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만이 유일한 희망임을 알고 회의와 두려움, 허무 따위를 솔직히

            인정하며 그분 앞에 나와야 한다. 가식을 남김없이 털어버리고 허위에서 벗어나라.

      ---> 진정 인간을 파멸시킬 수 있는 성격적 결함은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결함뿐이다.

      때문에 고백과 회개는 진실한 기도에 꼭 필요한 결정적 성분이다.

     겸손은 기도하게 만드는 요인인 동시에 열매이다.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데려간다.

      ---> 온전한 마음으로 찾기만 하면 그분은 어김없이 만나 주신다(29: 13~14)

            그러므로 올바른 기도에는 회개가 따라야 한다.

  3) 겸손히 하나님을 신뢰라고 의지하라

      ---> 크리스천은 바라는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는 상황에서도 주님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

  4) 크리스천은 확신과 소망을 품고 기도해야 한다.

     ---> 반드시 응답을 받으리라는 확고한 소망으로 무장하라

     ---> 주님은 간구하기를 우리에게 요구하시며 또 그 기도에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 하나님은 인간으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계획에 따라 일의 결과를 조절하셔서 믿음과

           오류가 뒤섞인 성도들의 기도가 허사로 돌아가지 않게 하신다.

  5) 기도는 은혜로, 은혜를 좇아 빚어져야 한다.

-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은 기도하는 가운데 자기 능력이나 경력에 의존하지 않고 구원을 

  베푸시고 용납해 주신 그리스도를 의식적으로 신뢰하며 하나님께 나가는 것을 말한다.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크리스천들은 한없는 믿음을 품고, 값없이 베풀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겸손히 기대어 간구해야 마땅하며 자신의 선한 행실에 기댈 게 아니라 주님의 청구권에

  의지해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가야 한다.

 

 

8. 기도 중의 기도, 주기도문을 말하다.

- 예수 그리스도는 풍요로운 기도의 곳간을 여는 열쇠로 주기도문을 주셨는데 크리스천에게 

  필요한 모든 게 기도문 안에 다 있다.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고 평안해 하는 믿음을 마음에 심어 주시길구하는 것으로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존귀한 이름을 품은 존재로서 선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표하므로, 부름을 받은 그 호칭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선하고 거룩해질 힘을 주시도록 꾸준히 기도해야 한다는 것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그저 착하게 사는 차원을 넘어 늘 가까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더 나아가 그 아름다움에 경이감을 품는다는 뜻이다.

3) 나라가 임하시오며

정의와 평화가 흘러넘치는 미래의 삶을 갈망하는 내용으로 앞으로 나타날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이 우리 가운데서 시작하신 나라의 완결과 완성을 구하는 것이다.

4) 뜻이 이루어지이다

(루터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 주셔서 온갖 질병과 가난, 수치와 고통, 역경을 기꺼이 견디며 주님의 

  거룩한 뜻이 그 가운데서 우리의 뜻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음을 알게 해 주소서

(칼뱅

  어떤 환경이 닥치든 낙담하거나 쓰라린 아픔에 시달리거나, 냉담하지 않도록 제 의지 뿐

  아니라 감정까지도 하나님 뜻에 복종시키는 것을 말한다.

5)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방편이 되는 것들을 구하며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가 번영과 공정한

   사회 질서를 갈구하는 간구이다.

6)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교만에 대한 도전일 뿐만 아니라 영적인 실상에 대한 검증이다.

7)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옵고

시험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닌 시험에 끌려들어가선 안 된다는 의미

8)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세상의 사악한 세력, 특히 호시탐탐 해칠 기회를 노리는 즉,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적들로부터

   보호해 주시길 구하는 기도

9)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결핍과 역경, 한계 따위에 깊이 들어갔었지만 마침내 하나님이 온전히 채워 주신다는 진리로

   되돌아 온다.

10) 베풀어 주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하소서, 우리를!

기도는 오롯이 개인적인 일이 아니다. 함께 모여 예배든 비공식적인 자리든, 힘닿는 데까지 

   다른 이들과 더불어 기도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늘의 양식은 나누면 나눌수록 더 온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9. 기도의 시금석을 따르라

- 기도는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행위로 의무이자 훈련이며 찬양과 고백과 

  간구가 어우러진 상호작용이다. 또한 애정과 경외감이 공존하는 마음가짐이며 연약함을 인정

  하고 기대는 행위이다기도는 형식과 관계없이 세상 만물과 만사를 바라보는 시선과 시각을 

  다시 설정하게 만든다기도는 에너지를 얻는 수단이다.

- 기도에 들어가기 전에 성경을 읽고, 본문이 하나님에 대해 무얼 알려 주는지 깊이 생각하며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찬양으로 이어 가야 한다.

-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늘 아버지 앞에 나아가는 행위는 더없이 고귀한 은혜를 입은 신분이 

  되었고 부르짖음에 주님이 귀 기울여 주심을 온전히 의식함을 상징한다.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그 특권을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 기도는 경외감과 친밀감이 한데 어울린 복합체다. 뿐만 아니라 순종끈기가 합쳐진 화합물

  어떤 기도를 드리든 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이 손수 보내 주시는 선물을 따지거나 가리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도록 도와주시길 구하는 간구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 내게 꼭 필요한 건 하나님뿐임을 절감하지 못한다면 온갖 간구와 간청은 그저 또 다른 형태의

  걱정과 욕심으로 변질될 수 있다.

-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거룩한 자녀들을 위해 예비해 두신 모든 것들을 공급받는 주요한 

  통로가 기도이다.

 

 

10. 말씀을 묵상하라

- 곱씹으라, 마음을 쏟으라, 반응하라 그리고 기도하라.

- 기도가 참으로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가 되려면 규칙적으로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그분의 

  거룩한 음성을 듣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묵상은 성경을 마음 밑바닥까지 끌어들이는 것.

- ‘묵상3가지 유익

   1) 안정         2) 속사람 또는 성품의 변화를 약속한다         3) 복을 부른다

- 저자가 본문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② 성경 전체를 놓고 볼 때 본문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성경을 읽으며 우선 이 질문들에 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실제로 말씀하시는 바에

  토대를 두고 묵상할 길이 없다.

- 성경의 메시지인 복음은 단순한 말이 아닌 능력이다.

- 성경 묵상 방법


묵상 1. 생각의 초점잡기

    : 말씀을 읽고 나서 성경을 덮은 다음 다시 내용을 말해보라. 그러고 나서 다시 말씀을 읽어

     보라 얼마나 많은 내용을 놓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말씀을 묵상하는 으뜸가는 방법은 암송이다.


묵상 2. 말씀에 소망을 두고 마음 기울이기

    : 신령한 빛이 이끄는 대로 흠 없는 마음의 목적을 가지고 줄기차게 예수님께 애정을 쏟는다면

      그분을 생각하고 기뻐하는 감정이 내면을 가득 채울 것이다.

       ---> 깨달음을 주시는 시점을 잘 헤아리려는 노력을 기울여라.

 

묵상 3. 즐거워하거나 부르짖으라

: 하나님의 임재와 주님이 베푸신 구원의 실상을 알고 감격하고 있다면 그 자리에 머물며 마음껏

  누리라.

- 묵상하는 사람은 나무와 같다. 나무는 하룻밤 새에 자라지 않는다. 오랜 세월을 두고 물기가 

  있는 쪽으로 뿌리를 뻗어간다.

- 묵상은 진리를 깊이 숙고해 찾아내고, 그 개념이 크고 감미로워지며감동과 영향력을 갖게 

   되기까지그리고 하나님의 실상을 마음으로 감지해 낼 수 있기까지 마음에 끌어안고 곱씹는

   작업이다.

- 그리스도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현장에 적용된 하나님의 진리. 마지막 심판 자리에

  당당히 설 수 있게 하시는 분이며, 성령의 열매(5: 22)

  크리스천은 주님을 묵상하는 동시에 그분과 더불어 묵상해야 한다.

 

 

11.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

- 예수님은 거룩한 백성들에게 엄청난 선물을 주시지만 그 선물을 누리는 이들은 흔치 않다.

   ‘누림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온갖 거룩한 유익을 만끽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신비로운 

   능력에 힘입을 때만 가능하다. 마음을 다해 뛰어드는 대신 지적으로 아는 데 안주하면 안 된다.

- 성령님은 인간의 내면에 복음의 진리에 반응하는 영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키신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말씀과 복음의 진리가 우리를 끌어올리고, 달라지게 만들고, 자극하고,

  더러는 녹여서 새로 빚기까지 한다.

- 하나님 사랑의 깊이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그리스도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얼마나 깊고 깊은 구덩이 속으로 걸어 들어가셨는지 알아야 한다.

- 복음 덕에,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무한정 깊은 까닭에 또한 한없이 넓고 길다는 걸

  알 수 있게 되었다.

- 주님은 영원 전부터 어김없이 그분의 마음을 채워 온 그 기쁨을 우리에게 주고 싶어 하신다.

-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은 성령님의 도우심에 기대어 하나님의 실재와 임재를 감지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걸 가리키며 생각과 사랑을 나누면서 주님과 연합하고 진실하게 교통한다는

  뜻이다.

- 예수님의 성품사역은 하늘 아버지께 다가가고 그 거룩한 얼굴을 찾길 원하는 이들을 위한

  통로가 된다. 하나님을 직접 뵙는 환상을 품고 묵상하는 습관이야말로 크리스천이라면 반드시

  길러야 할 중요한 소양이다.

- 예수님의 영광을 바라본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알아 가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 두려움과 야심, 탐욕과 욕정, 중독과 내면의 공허감에서 벗어나길 원한다면 그리스도를 묵상

  해서 그분의 영광이 심령을 속속들이 파고들게 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 ‘이 사랑을 외면하면 형식주의와 무신론이 되기 쉽고, 반대로 사랑이 빛을 앞지르면 형상

  이나 그림 등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미신의 늪에 빠지기 십상이다.

- ‘은 올바른 가르침이나 교리를 통해 얻는 지식이다. 교리와 성경적인 지식은 사랑을 외면

  하지 말아야 한다.

- 고린도전서 14장을 보면 바울이 크리스천들에게 깨달은 마음으로입을 열어 기도하라 당부

-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느껴 가며 생동감 넘치는 기도 생활을 하는 쪽이 교리적으로는 한 점 

  흐트러짐이 없지만 냉랭하고 완고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보다 훨씬 윗길이다.

 

 

12. 감사와 찬양이 먼저다.

- ‘찬양경배는 하나님과 올바르게 교통하는 데 꼭 필요한 전제 조건이며 다른 종류의 기도를

  이끌어 내는 자극제다.

- ‘찬양을 으뜸으로 삼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해로운 부분들을 바로 잡고 영적으로 건강한 

  내면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 저마다 사랑하는 대상은 인간 본성과 행동의 토대를 이룬다.

- 세상에서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기대의 무게가 상대를 으스러트리고 마침내는

  자신의 마음까지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 사랑하는 무언가가 개인의 성품을 규정한다면, 한 사회가 집단적으로 사랑하는 바는 문화를 

  빚어낸다.

- 사회란 그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사랑하는 요소들을 중심으로 한 데 뭉친 개인들의 상호 

  연합체다.

- ‘엄밀한 의미의 찬양이 하나님의 성품을 경배라는 일이라면,

   ‘감사는 주님이 행하신 일을 찬송하는 걸 가르킨다.

- 감사하고 찬송하는 데 서툴지라도 찬양이 기도의 첫 단추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 감사와 찬양이 마음의 욕구와 충돌할 경우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심령의 습관을 들일 수 있을까?

  첫째, 모든 기쁨을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영광의 단초로 보고 찬양의 통로로 삼으려 노력하라

         항상 그럴 수는 없을지라도 그런 훈련은 일상생활 가운데 더 풍성한 기쁨을 찾고 밀도 

         높은 기도 시간을 갖는 대 큰 도움이 된다.

  둘째, 하나님의 성품(구할 수 있는 근거)에서 시작해서 간구(원하는 바)를 거쳐 염원(답해 

         주시면 하고자 하는 일)으로 넘어가는 기도의 흐름에 주목하라

1) 찬양 : 하나님의 이름

전능하신 하나님

2) 신조 : 기도의 토대가 되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진리

주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소원을 다 아시며, 은밀한 것이라도 모르시는 바 없사오니

3) 간구 : 구하고자 하는 일들

성령의 감화하심으로 우리 마음의 온갖 생각을 정결케 하시어

4) 염원 : 요청을 들어주셨을 때 찾아올 선한 결과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공경하여 찬송케 하소서

5) 예수의 이름으로 : 예수님의 중보자로서의 역할을 기억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 기도의 물줄기는 찬양의 강으로 모이기 마련이다.

 

 

13. 고백과 회개는 필수다.

- 용서받는 마음에서 바른 기도가 세워진다.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순간 인간의 불순종에서 비롯된 저주가 벗겨졌다.

  주님이 온전히 순종하신 덕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3: 10~14)

- 그리스도가 대속의 제물이 되신 덕에 이제는 그 어떤 죄도 우리를 저주의 그늘 아래로

  끌어갈 수 없다.

- 지극히 소중한 용서를 값없이 베풀어 주셨음을 정확하게 인식해야만 삶을 지배하는 죄의 

  권세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죄책감으로부터도 해방될 것이다

- ‘회개는 크리스천의 삶을 발전시키는 방법으로 예수님의 성품을 향해 더 깊이, 지속적으로 

  성장해 가는 열쇠이다.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은 누구나 어김없이 용서를 받는다.

  그 이유는 주님이 징벌을 대신 받으시고 온 인류의 죗값을 치르셨기 때문이다.

- 용서를 깊이 확신하고 안전감을 가지면 회개의 의미가 확연히 달라진다. 죄를 용서받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고 주님을 기준으로 삶의 방향과 태도를 조정하는 도구가 된다

- 율법적인 회개는 파괴적이다. 바울은 세상 근심은 사망에 이르는 것인 반면 복음적인 회개

  (근심)는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 주님은 완벽하게 참회하는 것을 조건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 아니다.

- 회개에는 어느 정도 쓰라린 아픔과 슬픔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죄를 더 절실하게 자각할수록 

  은혜에 대한 확신 또한 그만큼 커진다. 용서받았음을 실감할수록 더 열심히 회개하고, 더 빨리

  성장하고 변화하며, 겸손과 기쁨이 더 깊어진다.

- 고백을 힘겨운 자기 정화 과정으로 여기는 건 명백한 잘못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값없이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런 오류를 바로 잡아준다.

- 죄가 값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크다는 점을 잊어버리면 고백하고 회개하는 기도는 얄팍하고

  0천박해질 수밖에 없다.

- ‘자기 연민은 또 다른 차원의 그릇된 회개 방식이다

  죄를 시인하긴 하지만 진심으로 유감스러워하지 않는 형태다.

- 참다운 회개는 인정거부라는 두 가지 요소를 갖춰야 하며 진정한 고백참회책임

  전가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 책임 전가가 끝나는 자리에서 진정한 회개가 시작하듯, 진실한 뉘우침은 자기 연민이 끝나는

  지점에서 비롯된다.

- 사랑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이 아니라 헤세드(cheshedh)', 곧 친히 약속하신 언약에 토대를 

  둔 변함없는 사랑이다.

- ‘독백이란 성경의 진리를 동원해서 잘못된 신앙과 그릇된 태도를 억제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나 설교다.

- ‘회개는 고개를 조금 떨구는 정도가 아니라 죄를 짓고 나서 느끼는 괴로움이 징벌보다 더 

  혐오스러워 지도록 마음을 움직여 가는 것

 

 

14. 하나님 뜻대로 간구하다.

- ‘간구를 일방적으로 내 뜻이 무조건 이뤄지이다라고 요구하는 도구쯤으로 여긴다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 기도는 내면의 평안을 추구하는 방법이 아니며, 외부로 눈길을 돌려 하나님이 세상에서 

  벌이시는 역사에 동참하는 길이기도 하다.

- 기도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고된 간구다. 하나님께 열심히 간청하는 몸짓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찬찬히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약속을 붙잡고 매달리는 일이다.

- 성경은 기도를 어둠의 세력에 맞서 영적인 싸움을 벌이는 데 필수적인 무기로 꼽는다.

-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지혜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마다의 소망을 주께 아뢰어야 한다. 소요리 

  문답은 그러한 사실을 이렇게 표현한다.

  문) 기도란 무엇인가?

  답) 기도는 죄를 고백하고 주님의 자비로우심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식하며 거룩한 뜻에 

       합당한 것들을 구하는 소망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걸 가리킨다.

- 열린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최고의 방법

  첫째, 하나님께 간구할 때 우리가 구하는 제목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을 기도에 반드시

         포함시켜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한다.

         ---> 그저 원하는 바를 줄줄이 늘어놓는 대신, 스스로의 소원을 하나님이 무얼 기뻐하고

               슬퍼하시며, 주님의 구원 사역이 어떻게 진행되며 세상을 향해 기대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비추어 성찰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필요를 고할 때마다 하나님이(우리의 간구) 다른 뜻을 가지고 계시다면 그편이 더 선하며

           (우리가 최선이라고 여기는 대로가 아니라) 주님이 계획하신 대로 이뤄지길 진심으로 

          바란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셋째, 간구하는 데 시간을 들이는 만큼 신학적인 사고와 자기성찰에도 공을 들여라.

- 어차피 하나님의 뜻대로 되길 바란다면 굳이 기도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 하나님은 자녀들이 드리는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신다.

   ● 하나님은 자녀들이 구하는 바, 또는 주님의 뜻을 온전히 알았더라면 반드시 간구했을 법한

       일 가운데 어느 하나는 어김없이 베풀어 주신다.

   ● 하나님 안에 거하는 크리스천은 모든 소망의 원천이자 원류를 지닌 셈이다.

   ● 가장 합당한 것을 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대로 들어주시지 않으신다.

- 하나님의 지혜를 바라보는 시선을 놓치지 않은 상태에서 주께 소망하는 바들을 아뢰는 자세는

  입 밖에 내 언급하지 않은 간구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 기도 제목 하나하나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연결짓는 훈련을 해야 하지만 아울러 스스로에게

  간구의 동기가 무엇이며, 무얼 사랑하고 있고, 심지어 어떤 죄와 연약한 부분이 얽혀 있는지 

  질문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 크리스천은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겨야 마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거리와 관심사를 주님 앞에 과감히 펼쳐 놓아야 한다.

- 기도 또한 스스로 통제하려는 의지를 버리고 온갖 필요를 하나님의 보살핌에 맡기며 안식하는

   걸 의미뻔뻔스럽게 졸라 댈 줄 알아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하나님이 비할 데 없이   

   지혜로우시며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주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고 기꺼이

   순종하는 기도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 자신이 아닌 다른 이와 세상을 향한 기도를 보통 중보라고 한다.

- 하나님이 오래도록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고 기다리게 하신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며 그분의 지혜로운 일정에는 인간으로서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그분만의 특별한 뜻과 

  미덕이 담겨 있다.

- 피땀을 흘려 가며 부르짖어도 응답받지 못하는 순간을 예수님이 친히 살아 내신 덕에

  크리스천은 소리쳐 찾을 때마다 하나님이 반응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 크리스천은 하나님께 담대하고 구체적이며 열심히, 정직하게, 그리고 부지런히 소원을 

  아뢰어야 한다하지만 그와 아울러 하나님의 뜻과 지혜로운 사랑을 인정하고 끈질기게 

  순종해야 한다.

 

 

15. 매일 기도하라.

- 매일 기도에는 성경 연구뿐만 아니라 묵상도 들어 있어야 하며, 광범위하고 온전한 경험을 

  기대하는 마음이 전반적으로 한층 더 깊어져야 한다.

- 하나님과 함께 마주하는 시간의 대부분을 심도 있는 성경 공부에 쏟아 붓는 건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 날마다 드리는 예배는 마음잡기 ---> 성경 읽기 ---> 묵상 ---> 기도

- 찬양과 감사, 고백과 회개, 간구와 중보라는 세 가지 기도 형식 사이에 균형을 이루라.

- 어느 경우든 기도가 최선이다.

  기도는 노를 젓는 일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때로는 어둠 속에서도 노를 저어야 한다.

  앞으로 나가고 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순간에도 말이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면

  다시 바람이 일고 돛을 펼치고 순항할 것이다. 바람은 반드시 다시 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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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성령님
손기철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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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십 수년째 주님과 만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선데이 신자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그렇다고 나의 신앙생활을 포기하거나 축소할 의향은 전혀 없으며 앞으로도 

절대 없을 것이다.

오랜 시간 교회를 다니며’ -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내가 정말로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 아직도 방언도 못하는 어리숙한 날나리 신자지만 언젠가 성령님께서 나에게 크게 임재하실 것이고임재하시리라 믿으며 나는 오늘도 나만의 방식으로 성도의 길을 가고 있다.

 

나는 한 때 오만불손하게도 나의 모든 시간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 여기지 않고 

내 아까운 시간을 쪼개어 봉사(고등부 교사)를 하며 기도와 성경 공부는 열심히 한다

근자감 속에 살았으며 교회와 주님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어떤 의미로 인간 세상에 

오셨는지를 아주 조금 알았다고 느꼈을 때에는 저자께서도 이야기하셨듯이 

나는 살아 계신 현재의 하나님보다 역사에 기록된 하나님께 더 쏠려있었고 성경에 

 기록된 그 일을 오늘도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던 일 그 자체에 관심이

 많았던‘ 

그런 인간이었다참으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식의 삶을 살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삶이 힘들었던가 아니면 내 능력의 한계를 처절히 확인하는 순간을 많이 맞이

하면서 그랬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내 마음에 위로되는 찬송가에 눈물짓고, 삶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목사님 말씀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잦아지면서 나의 그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차츰 알게 되었고

(이 부분의 각성 과정을 쓰면 아마도 백 여 장의 간증으로도 모자랄 판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내가 왜 그리스도를 이제야 진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지에

대해 크게 반성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매일 아침을 여는 기도 속에서

오늘 하루도 겸손으로 무장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기도를 통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과 용기 그리고 혜안과 명철, 예리한 판단력을 주시기를 간구

하고 있다작품 속에서 마주한 두 문구가 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가 권능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증인으로 온전하게 쓰임 받을 수

 있다”(P198)

 

"성령님께 나의 의지와 계획과 지혜를 내드리고 그분의 품속으로 들어가면, 내가 내 

 것을 포기하는 만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된다.(P200)"

 

나는 오늘도 작품 속에서 마주한 두 문구와도 같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앞에도 언급하였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문구 즉

방언은 모든 은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은사‘(P98)", “방언은 영의 기도이기 때문에

 통변의 은사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방언은 하나님께 말하는 비밀의 언어이다.

 (P103)"

라는 문구로 인해 신앙적으로 굉장히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성령님을 내 마음속에 모시고 살 때, 내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으므로 예수님이 하신 기도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의 동기가 예수님이 주신 선한 것이라면, 선포기도는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다.(P114)“

 

마음 속에서 나쁜 생각이나 감정이 들 때 선포기도로 악한 영을 대적하라

 이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먼저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

 해야 한다. 따라서 선포기도를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이다. 하나님께 순복

 하지 못했던 죄들을 회개해야 기도의 능력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자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어라“(P121)

 

라는 문구를 갖고 오늘도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 성령님을 만나거나 방언을 받았더라도,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한다면 삶의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 성령 충만은 성령세례 후에 지속적으로 자아를 그분께 순종시켜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령님의 안도하심을 받는 것이다.


- 성령님이 그분의 영광으로 찾아오실 때, 의지적으로 나의 자아를 성령님께 전부 

  내드리고 그분께 순종할 때, 성령님이 나를 소유하시고 통제해가기 시작하신다.

 

- 내면의 죄를 완전히 불태우지 못하면 적과의 동침을 계속해야 하고,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용사로 살아가는 삶에 큰 장애가 된다.

 

-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에는 하나님의 권세를 위임한다는 의미가 있다.

  기름부으심은 이 땅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이다.

 

- 하나님 말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로고스이고 나머지 하나는 레마이다.

  로고스는 문자화된 객관적인 말씀을 의미하고 레마는 삶의 현장에서 말씀하는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 성경은 신앙생황을 해나가는 데 기준이 되는 진리의 말씀이다.

 

-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지금 내가 들은 음성이 하나님의

  말씀인가사탄이 주는 생각인가를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 방언보다 성령세례가 선행되어야 하며,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는 성령충만으로 

  이어가야 한다.

 

- 선포기도를 했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는 떠나갈 지어다!”

 

- 우리는 하나님 자신을 이 땅에 나타내도록 부름 받은 존재이다.

 

- 사람들은 성경대로 기도했는데 바라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법을 이 땅에 적용시키기 때문이다. 이 땅을 먼저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 성경말씀 없이 은사만 붙드는 것은 극단으로 빠질 수 있는 위험한 길이다.

  성령님은 우리가 은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은사를 주시는 성령님을 바라보고

  성령님의 손을 잡고 사역하시기를 원하신다.

 

-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 안에 필요한 은사를 주셨다. 그러나 믿음의 훈련을 통해 은사를

  나타내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 모든 판단과 태도를 하나님 나라의 법에 맞추어야 한다. 또한 당힌이 스스로 무의식적

  으로 제한하고 있는 모든 견고한 생각과 감정들을 버려야 한다.

 

- 성령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아를 포기해야 한다. 날마다 그분을 존귀하게

  여기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 성령세례를 받지 않으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

 

- 성령세례를 받는 실제적인 방법

  1) 동기를 점검한다 : 성령님이 친히 내 안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시도록

                             하는 것이 중요

  2)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조용한 장소로 간다

  3) 회개하고 성령님을 초청하는 기도를 드린다(P210)

  4) 믿고 기다린다.

  5) 성령세례를 누린다 : 주님의 임재는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 예수님은 분명히

                               구하고 받은 줄로 믿으면, 실제로 그렇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6) 성령님께 감사드린다.

  7)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교제한다.

 

-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위해서는 오직 믿음으로 그분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는 우리의 심령에 임하는 것으로 그 영광의 임재 가운데 

  안식하는 것은 그분이 우리의 혼과 육을 다스리는 것이고(성령의 내적 열매), 기름

  부으심은 우리의 혼과 육을 통해 이 땅에 실체로 나타나는 것이다.

  (성령의 외적 열매의 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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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장막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집, 10주년 기념판
토미 테니 지음, 이상준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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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품을 읽는 이유를 작품 내용 중 두 곳에서 그 해답을 찾았는데, 하나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일회적 만남도 좋지만 우리가 원하

 는 것은 그분의 지속적인 임재이다

또 한 문구는

우리들은 매주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을 하며 종교적인 의무감에 가득찬 몸짓만 할 

 뿐이다이런 기계적인 종교 행위들은 언젠가는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하나님이 부으시는 기름이 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성령의 임재에서만 맛볼 수 있는 

 기쁨의 기름 없이 스스로 어떻게 해 보려고 하면 반드시 기계에 문제가 생긴다

 인간이 운영하는 종교라는 기계가 멈추면 마침내 모든 것이 멈추게 된다.

그래서 나는 본 작품을 읽었던 것이다.

 

인간의 도시 문명을 하나님 나라의 센터로 바꿔놓은 첫 번째 인물이자 탁월한 지도자가 바로 다윗으로 그의 지도자론을 정의하자면 하나님이 함께하는 자라고 한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삶을 살았고 그 주변의 인물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도 다윗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울왕을 피해 도망자의 삶을 살 때 혼자 도망 다녔다면 힘이 들었을 테지만 다윗 주변에는 400명의 사람이 함께했고 그 후에는 600명이 합류한다. 그 결과 성경 역대상 12장을 보면 다윗과 함께했던 사람들 가운데서 큰 용사도 나왔고 큰 지도자도 나오게 된다.

- 한 때는 호형호제 하던 사람들이 세인들의 주목을 받는 문제의 정점에 서자 어떻게

  하든 자기만 살아보겠다고 어제의 동지를 꼬리자르기식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어느 위정자를 보면서 인간적인 불쌍함을 느꼈다. 성스런 종교 이야기하는 데 타락

  할대로 타락한 어느 속물 인간 이야기를 해서 미안합니다 -

 

연일 짜증만 나게 하는 여러 작태를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다윗과 같은 지도자가 나오기를 염원하며 작품을 읽었고 정리해 보았습니다.

 

CHAPTER 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집

- 하나님은 최초의 장막인 모세의 장막과 화려한 솔로몬의 장막이 아닌 장막으로서의

  조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다윗의 장막재건을 이야기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집 , 사람들을 강하게 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장막을 

  원했던 것.

- 오늘날의 기독교는, 하나님이 건물에 감동을 받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하나님은 궁정이 아닌 열정을 원하신다. 또한 친밀한 예배에 등을 돌린 

  열매 없는 교회들로 가득하다. 

  이 교회들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보다 사람의 명성에 가치를 둔 현대판 미갈(다윗

  의 아내)’이다

- 하나님의 그 영광 또는 분명한 임재가 가는 곳에는 어디나 승리와 능력과 축복이 

  있었다친밀함은 축복을 가져오지만 축복을 구한다고 언제나 친밀해지는 것은 

  아니다.

- 다윗의 성경상 표현을 보면

  1)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혹은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닮은사람

  2) 끊임없이 하나님의 마음을 좇는사람이었고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이었다.

  분명한 하나님의 임재를 좇는 사람이었다.

- 다윗이 좇은 것은 언약궤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파란 불꽃이었다.

  그 불꽃은 하나님 자신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 다윗의 장막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집이 된 것은 그곳에서 예배하는 사람들 때문.

- 인간들은 아름다운 성전을 세웠지만 그 안에는 거의 아무도 없다. 불꽃이 없으면 

  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 안에 현현의 영광이 없는 것은 우리가 성령님을 

  모시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과의 관계에서 친밀감을 갈망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이

  길을 잃고 죽어 가는 세상에 드러나길 원하신다. 다윗의 장막을 하나님이 재건하셔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손이 그들의 예배나 중보기도를 통해 하늘 문을 붙잡고 있기에

  너무나 지쳐서 약해져 있기 때문이다.

 

CHAPTER 2. 잘못된 결승선과 향기로운 손잡이

* 중단하는 것과 놓치는 것 *

- 좋은 예배, 좋은 찬양, 좋은 설교가 아닌 우리는 하나님 그 분을 만나야 한다.

  성령님은 다윗과 같이 성령의 강한 임재를 위해 장소를 예비하는 사람이 있는지 찾고

  계신다. 예배자들이 손을 높이 들고 천국 문을 열기를 소망하는 장소, 그래서 주님의

  영광이 임하여 머물 수 있는 그런 장소를 찾고 계신다.

- 주님은 자신의 집 문을 두드리신다. 자신의 연인인 교회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이다.

- 주님의 임재에 대한 열쇠가 우리 손에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천국 문을 열고 지옥

  문을 닫을 권세를 받은 것이다. 열쇠는 우리 손에 있다.

- 교회에 열매가 없는 근본 원인은 하나님과의 깊이 있는 만남에 대한 대가를 지불

  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는 왕궁에서 왕 없이 사는 것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오늘날 교회들은 주님의 노크 소리에 꿈쩍도 하지 않으면서 투덜

  거리기만 한다.

- 우리가 놀라는 때는 하나님이 문을 두드리실 때가 아니라 문을 두드리던 노크 소리가

  멈출 때이다.

- 교회는 신랑이신 주님이 완전히 사라져 앞으로 영영 못 만날 것처럼 과거의 만남들만

  추억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분이 가장 원하시는 것을 드릴 기회를 놓칠 수 

  있다그것은 바로 우리의 친밀한 예배와 교제이다.

-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긍휼의 샘이 솟게 한다.

- 소경 바디매오와 혈루병을 앓는 여인이 갈망처럼 다가오시는 주님을 놓치지 마라

  그들의 절박한 마음에서 믿음을 가졌고 하나님은 그 믿음을 존중해 주셨다

  “우리가 경배하며 통회하며 부르짖나이다. 우리를 지나치지 마옵소서. 저는 주님을

   갈망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데 있어서 사람들의 시선에 너무나 매여 있다.

  우리는 먹을 것을 달라고 엉엉 우는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한다.

  즉,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말고 하나님의 시선을 끄는 사람이 되라.

 

CHAPTER 3. 천국 문을 열라

* 그리고 지옥 문을 닫아라 *

- 진정한 부흥은 부흥을 주시는 분이 임하실 때 일어난다.

- 기도와 부흥의 영역에서 천국의 창들을 여는 방법은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마음을 터뜨려서 회개와 예배의 물살을 일으키는 것이다. 천국의 창이 열리는 것을 

  보기 원한다면 먼저 우리 안에 깊은 깨어짐이 있어야 한다. 땅에서 깨어져야 하늘에서

  열린다.

- ‘열린 천국이란 하나님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 기억하라! 지연이 거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끈기가 하늘을 여는데 큰 역할을.

-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51:17).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깊은 임재를 

  가능케하는 열쇠.

- 은 하나님께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땀은 가치를 실물로 바꾸는 수단

  이기 때문이다. 예배는 을 요구한다! 실제로 예배는 가치 있는 것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십일조헌금을 드리는 것은 예배의 일부이다.

- 상황이 변하려면 아버지 하나님을 갈망하며 육체의 땀을 흘려야 한다. 땀 흘릴 때 

  비로소 영원한 가치가 당신의 가슴에서 하나님의 가슴까지 이동하는 것이다.

-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와 인애를 백성들에게로 돌이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희생과

  회개의 예배 가운데 값을 지불하고 땀을 흘리는 것임을 알았다.

- 우리가 하나님의 최고의 은혜 가운데 머무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과거에 계셨던

  곳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계시를 구하라! 하나님은 식욕이

  없는 사람까지 먹이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주린 자들을 먹이신다.

- 오늘날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에 나아가는 길을 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다.

  하지만 오시는 길을 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도록 하는 것은 회개의    예배.

- 예배야말로 하나님의 분명한 임재가 우리 가운데 다가오시도록 하는 핵심요소다.

-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천국의 창들을 여는 다섯 가지 틀림없는 방법이 나온다.

  다섯 가지 방법은 모두 예배의 요소들이다.

  1) 십일조   2) 고난   3) 인내   4) 연합   5) 예배

- 우리 교회와 도시 위에 하늘 문을 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그 어떤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고 헌신적이고 지속적으로 연합하는 예배자들이

  되는 것이다.

 

CHAPTER 4. 은혜의 보좌를 세우라

* 심판의 보좌를 세우지 마라 *

* 구약에서 영광’‘이라고 번역되는 히브리어는 카보드(kabod)'이다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는 무거움내지 무거운(견디기 어려운) 을 의미한다.

-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랫동안 머무르시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감당할 만한

  은혜의 보좌를 세워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영광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고 그분이 오셔서 머무르실 수 있도록 

         만드는 자리는 지상에서 은혜의 보좌 하나뿐이다.

    ---> 우리가(당신이) 세우면 그분은 오실 것이다.

- 하나님의 현현의 임재의 파란 불꽃은 세속적인 연료로는 태울 수 없다. 그 불꽃은 

  희생의 예배를 통해서 태우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연료가 될 의향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불이 임하기를 요청할 아무 권리가 없다.

- 인생살이의 망치질은, 우리가 그 인생의 도전들에 바르게 반응하기만 하면, 우리를 

  하나님 쪽으로 휘어지게 할 것이다. 하나님은 인생의 망치질을 통해서라도 예배의

  날개들을 바로 잡아 당신이 범사에 감사하는사람이 되도록 하신다.

- 예배자들이 은혜의 보좌 주변에 자리를 잡고 설 때, 비로소 하나님은 그분의 자리에

  앉으셔서 그들 가운데 좌정하신다.

- 예배가 포로된 자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 예배는 하늘로 열린 문이다.

- 하나님은 우리가 함께 그분을 예배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 가운데거하신다.

- ‘은혜의 보좌를 세우는 예배가 되려면 사람에게서 등을 돌려야 한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 사람의 입구와 하나님의 제단 사이에 있는 불안정한 지대를 눈물 지대라 일컫는다.

  눈물지대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중보기도 하는 자리이다.

-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빛의 나라와 어둠의 나라 사이에 다리가 되도록 하셨다.

  가장 위대한 다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예배 중에 중보기도

  하도록 부르신 것은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만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 하나님의 영광을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는 은혜진리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지만 그 은혜에는 하나님의 진리가 함께 붙어 있다.

  진리는 우리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한다우리는 그분의 은혜가 필요하지만 이 진리는 감당할 수 없다.

  그분의 진리는 그분의 심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소망이 없다

  따라서 우리가 사모하는 하나님의 임재가 갑자기 임하여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면, 하나님의 진리(심판)가 그 은혜를 소멸 시키고 만다.

- 정말 부흥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위해 은혜의 보좌를 세우라.

 

CHAPTER 5. 주의 영광의 빛을 켜라

* 더 이상 어둠 속에서 실족하지 마라 *

-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만 진리를 선택하려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일한 길을 발견할 만큼 충분한 빛을 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

  일단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켜는 법을 알게 되면, 그 영적인 빛이 계속 빛나도록 

  유지하는 법도 알게 된다. 이것을 열린 하늘이라고 부른다.

- 세상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교회에 있는 우리들 대부분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하나님께 하늘 문을 열어 주소서라고 기도할 때마다 나는 또한 지옥 문을 닫아 

  주소서’ 라고 기도한다. 예배는 문을 열어 놓는다, 하나님의 영광이 굽이쳐 들어올 수

  있는 문을 열어 놓는다.

- 예수의 보혈은 우리가 옛 사람의 상태임에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

- 분명한 하나님의 임재를 모셔옴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켜는 것보다 영적전쟁을

  치르는 더 좋은 방법은 없다.

- 주님께 예배하고 기도하기를 천국의 창들이 당신의 교회와 도시 위에 활짝 열릴 

  때까지 하라. 주님을 예배하기를 주님의 영광의 빛이 당신 위에 임하기까지 하라.

 

CHAPTER 6. 절름발이(?)가 아닌 그 누구도 신뢰하지 마라

* 하나님의 섭리와 씨름하라 *

- 우리가 회개를 통해 자신의 육체를 죽인다면 한때 우리를 증오했던 사람들도 우리를

  새롭게 보게 될 것이다.(야곱과 에서)

-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보며 주님 제 안에 뭔가가 일어나서 완전히 변화되기 

  전까지 당신을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라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그런 변화가 일어나면

  내 안에 있는 무언인가가 죽고 더 나은 삶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 우리는 얼마나 자주 교회에 와서 간구의 기도를 하며 이것저것을 구하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물으신다. ‘여기 오직 나만 원하는 사람은 없니?’

  가장 높은 차원의 예배는 하나님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예배이다.

  주의 얼굴은 주의 은혜를 의미한다.

- 우리가 그분의 얼굴만을 구할 때, 우리의 예배는 뭔가를 얻어내기 위한 이기적인 

  섬김이 아니라 그분께 우리의 전부를 드리는 섬김이 될 것이다나를 축복해 달라

  간구는 주님을 송축하리라는 고백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얻기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열망하기 때문에 다 내어드리는 것이다.

- 하나님은 진정한 예배자를 찾으신다

  ‘선물들(gifts)'보다 선물을 주시는 분(Givers)'을 사모하는 자를 찾으신다.

- 우리는 실패감을 느끼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실패감은 거룩한 실패감

  이라는 것을 깨달으라. 마치 어떤 굶주림은 영적인 굶주림인 것처럼 어떤 실패감은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행사하시기 위해서 심으시는 것이다.

- 육체가 죽을 때 미래의 소망이 살아난다. 당신의 프로그램이 죽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목적이 살아날 수 있다

 

CHAPTER 7. 영적 집착인가 영적 친밀함인가?

* 구경인가 만남인가 *

- 우리는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법은 배웠지만 하나님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법은

  모른다

- 예수님은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여기셨다.

  모든 사역 가운데 예수님의 유일한 초점은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 우리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기술을 익히고 완성시키느라 하나님을 즐겁게 해 

  드리는 기술을 잃어버렸다.

- 하나님의 기름 부음은 우리 영혼의 주림만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기름 부음과 기름 부음을 통해 강해진 은사들은 단지 우리를 돕고 힘주고 격려해서

  기름 부음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 하나님의 손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지만 하나님의 얼굴은 우리의 깊은 갈망을 

  만족시키신다.

-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의 영광으로부터 시선과 마음을 돌려 하나님의 손에 있는

  기름 부음에만 집착하고 있다. 강대상 주위와 앞 줄에만 앉으려는 게 증거다.

- 사람들은 기름 부음에만 집착하게 되면 가장 강력한 기름 부음조차도 싸구려 감동이

  되고 만다. 그래서 사역자가 기름 부음에 대해 무절제한 욕심을 부리면 성도들도 

  기름 부음 가운데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일으켜서 사역자나 성도 모두 강한 영적 

  집착을 보이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책임을 짊어지기보다 

  다른 사람이 경험한 친밀감을 구경하면서 전율을 느끼고 싶어 한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책임감 있는 관계야말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친밀감을 누릴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채널이다.

-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는사람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실한 관계는

  외면한 채 영적인 구경꾼에 머물고 말게 된다.

- 사역자들이 기름 부음에만 집착하나 하나님은 그의 은사를 제거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파산된 사역자들이 하나님과의 첫사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삶이 회중 앞에서의 기름 부음을 따라가지 못함을 알면서도    여전히 사람들 앞에 서기 원하기 때문이다.

- 교회는 사람들의 칭찬이 기름 부음의 진정한 목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나치게 좇아감으로써 기음 부음을 곡해하고 변질시켰다.

- 주님의 얼굴을 구하려면 당신의 체면을 포기하라. 주님의 신성을 사모하려면 당신의

  명성을 내려놓으라. 주님은 자신의 체면을 포기하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체면을 유지하려 애쓴다.

-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을 중요한 것으로 간직하는 것이다. 중요한 분은 주님이시다.

  중심되는 그리스도이시다.

- ‘기름을 붓다라는 말은 구약에서는 131, 신약에서는 18번 나온다.

  신약에서 기름 부음은 몇 가지 다른 의미들을 갖고 있다.

  1)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양이자 거룩한 제물로 그분의 사역과 죽음과 장사를 

     구별하는 의미(14:8, 7:46)

  2) 사람에게 능력을 주어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만드는 의미 또는 왕이

     하나님의 권세로 다스리도록 하는 의미(4:18, 10:38)

  3)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인증을 의미(고후 1:21)

  4)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어 치유와 구원을 이룬다. 하나님의 힘을 어느 정도 빌려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께 다시금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6:13, 5:14~15)

  5) 하나님께서 기름 부음 받은 사람들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의와 사역에 전적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구별하고 축복하는 의미(1:9)

  6) 사도 요한의 서신에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 안에 거하고 모든 것을

     가르치시는 은사를 의미(요일 2:27)

-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하나님의 기름을 성별되지 

  않고 회개하지 않은 육체 위에 함부로 붓고 있다.

- 기름 부음의 목적은 하나님과 사람을 거룩한 연합 가운데 만나게 하기 위함이다.

- 분명한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 가운데 들어가기 원한다면 우리는 회개라는 문을 통과

  해라.

- 교회는 더 이상 회개하라고 지시하면 안 된다. 우리는 회개를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회개를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CHAPTER 8. 그날 천상에서는 음악이 멈췄다

* 음악이 회복될 날이 올 것이다 *

- 하나님께서는 설교보다 예배가 더 중요하다. 예배는 하늘의 신선한 빵을 담을 수 있는

  광주리나 그릇을 만들기 때문이다. 은혜의 보좌를 세우고 나면 당신은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바로 그 하나님의 보좌를 세우는 것이 예배다.

-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닌 교회가 우리에게 주는 것을 가지고 교회를

  평가한다. 그 결과 우리는 교회를 이기적인 기업으로 전락시켰다.

- 천국에는 목사들이 없다. 왜냐면 천국의 업무 지침에는 예배자의 것 밖에 없기 때문

- 모든 보물 가운데 으뜸은 예배자이다. 예배는 모든 창조 세계 가운데 단 한 가지

  출처에서만 나오기 때문인데 이 출처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 기술적인 완벽함으로 사람들의 칭찬 정도는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굳은 심령을 녹일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기름 부음과 영광뿐이다.

- 우리가 드리는 찬양이 천상의 기준으로는 보잘것 없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는 더 없이 소중하다.

-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예배자들을 찾고 계신다. 예배만이 하나님을 천상에서

  지상으로 모실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예배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집을 세우기 위한 건축자재이다.

 

CHAPTER 9. 보좌의 영역을 확대하라라

*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

-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행하실 때 그것이 너무나 커서 우리가 그 규모나 차원을 감지할

  수 없을 정도의 일을 하기 원하신다.

- 근본적인 역사는 하나님이 일으키신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임재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오로지 강대상만 바라보며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리고 하나님만을 구해야 한다.

  마침내 하늘에서 무엇인가가 터져 나올 때까지.

- 교회의 근복 목적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만남의 장소가 되는 것이었다

  교회는 당신이 하나님께 당신 자신을 드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 우리는 기도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기도문을 암송하고 심지어는 기도에 통달할 수도

  있다하지만 역대하에서 말한 대로 내 얼굴을 구하라눈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한다. 기도는 도움을 

  청하는 방 안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그분의 얼굴을 구하는 것은 보좌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를 부르며, 하나님의 임재는 다른 모든 것을 몰아낸다.

- 우리는 하나님께서 휘장 사이로 손을 내밀어 복음의 사탕을 나눠 주시는 정도에 만족

  하지 말고 휘장이 열리고 지성소까지 나아가 인생을 뒤바꿔놓은 하나님과의 대면을

  원한다.

- 기도하고, 회개하고, 중보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라. 하늘에 작은 구멍이 나고 하나님

  께서 영광의 빛의 스위치를 켜시기까지 그렇게 하라. 그러면 사탄의 세력은 사방으로

  도망간다.

-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은 하나님,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기도하며 외치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이내 하늘의 수문이 터질 것이기 때문이다.

- 당신이 하나님의 연료 즉, 무리를 주님께 인도하기 위해 자신을 불태울 연료가 될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불을 구할 자격이 없다.

- 영광은 배부른 그릇에 임할 수 없다. 우리는 주님을 더욱 구하고 자신을 덜 구해야 

  한다우리는 자아라는 컵을 깨끗이 비워야 한다. 그래야만 주님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


CHAPTER 10. 문지기의 감춰진 힘을 발견하라

* 제자리에 서라 *

- 문제를 해결하기 쉬운 방법은 좋은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최선이란 하나님의 

  영광의 홍수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인내하며 주님을 기다리는 대신 하나님이 허락

  하신 좋은 것’(기름 부음)이 마치 최선의 것’(분명한 하나님의 영광)인 양 제시한다.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이나 기름 부음을 구하지 말고 기름 부으시는 분을 구하라

- 하나님 나라의 열쇠가 어딘가에 놓여 있다. 누군가는 그 열쇠를 찾아서 문을 열어 

  젖혀야 한다.

- 당신은 문지기가 되어 문을 열라. 하늘의 빛이 당신의 교회와 도시 위에 비칠 수 

  있도록

- 교회의 목적은 무엇인가?

  당신과 나를 섬기려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모든 것 위에 계신 주님을 위해 존재한다.

  우리가 주님과 대면하면, 즉 우리 손을 휘장 사이로 찔러 넣어 하늘 문을 열면, 우리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하늘 문을 계속 열고 있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책임이다.

- 예배를 통해 천국의 창들을 열 때, 그 창들을 계속 열어 두려면 그 예배 가운데 

  지킴이를 세워야 한다. 지킴이는 문지기다.

  다윗 시대에 레위인 예배자들은 끊임없는 예배와 찬양으로 언약궤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이 지속적으로 열려 있는 하늘의 유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그 문에 서서 문을 열고 있었기 때문이다.

- ‘열린 하늘이란 사람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자유로이 접근하는 것과 사람의 세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자유로이 흐르는 것을 의미한다.

- 문지기들이 얻는 부수적인 유익은 하나님의 임재가 각 나라로 흘러들어 갈 때 문지기

  자신들도 하나님과 대면하게 된다.

- 교회는 하나님과 온 세상이 대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통로이다

  당신이 예배의 자리에 설 때, 당신은 말 그대로 영적인 문, 즉 부활하신 주님을 향한

  통로를 활짝 연 것이다.

- 사람 지향적이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결정들은 교회를 영적 파산으로 몰아가고 

  있으며 천국의 창들을 닫아버리고 있다. 우리는 단 한 가지만을 좇겠다고 작정해야 

  한다우리는 하나님만을 원해야 한다.

- 당신의 손 안에 열쇠가 있다. 예수님이 열쇠를 베드로의 손에 넘겨주신 이래로 그 

  열쇠는 성령에 의해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전해 내려오고 있다.

- 하나님은 여전히 세상에 감춰져 계신다. 왜냐하면 교회가 제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까지는 거리 곳곳에 나타나실 수 없기 때문이다.

- 하나님을 모셔 들이게 되면 그분의 임재에 사로잡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당신이 그 안에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면 당신의 인생은 하나님의 임재의 걸어 다니는    창이 될 것이다. 영혼이 갈급한 사람들에 의해 언제나 열려지게 되는 창이 될 것이다.

 

 

작품을 2회에 걸쳐 연속으로 읽었다.

나를 돌아보게하는 문구가 여기저기 너무도 많아 일일이 이를 다 기록할 수 없었기에

연속해 2회에 걸쳐 읽게 된 것이다. 그 중에 나를 돌아보게 만든 무구는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마치 할인매장에 가는 것처럼 갈 때가 많다.

마치 우리는 간구의 기도를 하며 무슨 천상에서의 파란 불꽃 특가 판매코너를 발견한

사람들처럼 길게 줄을 서곤 한다. 그리고 나를 축복해 주세요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응답해 달라고 기도한다. 당신은 당신이 뭘 원하는지 잘

안다. 하지만 진정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 문구를 접하면서 - 이 문구말고도 곳곳에 나를 반성하게 하는 문구로 가득하였다 -

나는 하늘을 쳐다볼 수 없을 정도의 부끄럼을 느꼈다.

나를 더 힘들게 한 문구는

우리는 경배와 사랑으로 주님을 붙들고 구하고 찬양하는 대신, 의식과 일정과 식사 

 약속에 매여 성령을 근심케 하고 있는데 이런 슬픔 시나리오가 매주 반복되고 있다.“

바로 나를 지칭하는 이야기였다.

어찌되었던 나는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그릇된 종교인이 되지 않기 위해 또 정말로

하나님이 기다리며 하나님의 얼굴만 바라보는 진정한 예배자가 되고자 노력에 노력을 거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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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인가 우연인가 -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을 파헤치다
리 스트로벨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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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8


오랜만에 종교와 예수 그리고 그분이 행하신 기적에 대해 심도 있게 논한 작품을

접하였다읽는 내내 너무나 좋았다. 무신론자 모두가 이런 작품 - 반드시 이 작품이 

아니어도 좋다 을 읽고 회심하여 예수님의 어린 양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 본다.

 

작품 중간에 가면 이런 문구(의구심)가 나온다.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면 그 신은 누가 창조했느냐?”

또한 작품의 말미에는 인간은 진리를 억압하고 하나님께 반항하는 성향이 있다라는

문구도 나온다. 하여간 인간들의 가장 기본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지난 2017년에 예수는 역사다’(리 스트로벨, 두란노)라는 작품을 읽고 독후감을 여기에 등재한 사실이 있는데 금일도 동일한 작가가 찝필한 본 작품을 읽고 당시의 작품 내용과 상당 부분이 동일 선상에서 이야기되는 부분이라고 판단되어 당시 인터넷에 내가 

작성해 올린 독후감 일부를 중심으로 예수라는 분에 대하여 또 그 분이 세상에 보여 준 기적에 대해 세인들이 갖고 있을 의구심을 다소나마 불식시켜 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기 위하여 이 글을 작성하며 그 분이 이 땅에 오신 참뜻과 함께 그 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시고, 보이신 기적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당시 나는 해당 작품을 읽고 아래와 같이 정리를 했다.

 

첫째, 학자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성경 기록의 표준시기는 마가70년대

       ‘마태와 누가80년대, ‘요한복음90년대에 쓰여 진 기록으로 해당 시기는 

       예수의 일생을 지켜본 많은 목격자들이 살아있던 시기와 비슷하다.

       반면 알렉산더 대왕의 전기는 B.C.323년 그가 죽은 지 400년 이상 후에 기록

       되었으며, B.C. 6세기에 살았던 부처의 경전은 A.D. 1세기에, A.D 570~632년까지

       살았던 모하메드의 코란이 기록된 것은 767년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독교 부활 신앙이 생겨난 시기를 아직까지 정확히 기록할 

       수는 없지만 부활 사건 이후 2년 이내의 기록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둘째 복음서들의 기록 방식을 보면 진지하고도 책임 있는 태도, 정확한 세부 사실,

       그리고 세심한 주의와 정확성이 있는 반면, 미사여구와 노골적인 신화적 요소가 

       절대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 부활을 목격한 이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만약 사람들이 당시의 글과 내용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려고

       하였으면 얼마든지 즉각 확인 가능했었던 시기였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일까    바로 사실이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답할 게 없을 것이다.

       ---> ‘기적을 정말 확신하려면 증거가 필요하다. 대규모의 증거가 문서로 

             충분히 입증되어야 한다. 복수의 믿을 만한 자료를 통해 그대로 재현되거나

             별도로 확증 되어야 한다.

             (작품도 일반인들의 의구심에 대해 강력하게 강조한 부분)

            ☞ 중요한 것은 모든 목격자 중 누구도 진술을 번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셋째 복음서의 상당수가 유사 혹은 부분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기억했다가 나중에 원래의 가르침과 행적의 중요한 부분만

       기록 보존하면서 다양한 형식으로 자유롭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역설적이나 만약 복음서가 단어마다 똑 같았다면 저자들끼리 공모해 이야기

       를 사전에 조정했다는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 해당 부분은 역시 본 작품에서 크게 강조하고 있는 부분으로 본 작품 

               75 ~ 84쪽 277~281쪽은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내용으로 추천

 

넷째 예수를 추종하거나 기록하면서 받았을 불이익을 기록자들은 아무런 보상 없이 

       기꺼이 기록하고 있는데 그들이 받았을 것으로 예측되는 것은 비난과 추방’ 

       그리고 순교’ 외에는 크게 얻을 이익이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조금의 이득

       이라도 예상되었다면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그분의 모든 행적을 기록하고 응분의

       대가를 받으려 노력했을 것이지만 그 어디에도 기록에 따르는 대가를 받았다는

       내용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입을 다물고 예수를 부인하거나 그를 경시하고 심지어 그를 만난 사실

       조차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바울갈라디아서에서 완전히 달라져 기독교 신앙의 변호자가 된 이유를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택하셨다는 음성을 직접 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 해당 부분(복음서에 기록된 그분의 행적이 유사하다는 내용) 역시 유신론

              부정하는 자들아 크게 의심하는 부분으로 무신론자들은 각종 새로운 시도를

              전개해 예수께서 과연 죽으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는지를 문제 삼아

              왔다.

       ---> 이 부분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돕기 위해 286~287쪽과 이교도들이 언급한

              내용에 대해 증거하고 있는 288쪽은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부분이다.


다섯 가장 수치스러운 죽임을 당한 사람을 경배하는 종교가 확산된 현상을 어찌 설명할

       것이며 또 왜 1세기 유대인 중에 예수님만이 수 백 만의 추종자들을 갖고 있고

       여전히 경배를 받고 있고 더욱 궁금한 것은 그를 추종하며 평생을 몸을 바쳐 

       일하고 있을 수많은 성직자들에 대해서는 뭐라 이야기해야 할까?

 

작품 내용에 대해 무신론자들이 내가 제시하는 위에 언급된 5가지 사실에 대해 완전한

반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고 그 분이 이 땅에서

행하신 행위(기적)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 미국 성인의 51%는 성경에 기록된 기적이 실제 일어난 일로 믿는다고 하며 또한 성인

  5명 중 거의 두 명이 하나님의 기적을 믿는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기적이 자신에게

  한 번이라도 일어났다고 믿는 사람은 9,500만 정도 된다고 한다.

- 고통은 영적으로 귀먹은 사람을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CS 루이스)

  기독교가 진리라 아니라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지만 기독교가 진리라면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CS 루이스)

 

- 기적에 관한 책이 신빙성이 있으려면 일어나지 않은 기적도 반드시 다루어져야 한다.

  기적이란, 역사 속에 활동해 오신 하나님을 보여 중목적으로 평소의 자연 질서에

  한시적으로 예외가 되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실행하시는 사건이다.

 

- 하나님은 우리가 늘 바라던 경험적 증거 대신 그분의 임재라는 증거로 답하셨다.

 

- 예수의 기적은 하나님 나라, 즉 그분의 통치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표적이다.


- 예수의 가르침에서 하나님 나라가 중심에 서 있듯이, ‘

  그분의 활동에서는 치유와 축사가 중심을 이룬다.(학자 게르트 타이센, 아네데 메르츠)


- 무신론자 은 기적을 자연법 위반이라고 하며 자신의 전제에 어긋나는 증거라면

  무조건 다 거부한다.

 

- 기적은 일회적 사건이다. 되풀이 할 수 없는 역사의 일부다. 사람이 죽었다 살아났는

  지를 어떻게 시험할 수 있겠는가? 다시 죽인 뒤 살려볼까? 그건 아니다.

 

- 새로운 문화에 복음전도를 개척하는 지역일수록 초자연 현상이 급증하는 경향이 

  있다.

 

- 과학은 확신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 아니다. 과학을 진리의 유일한 판정자로 믿는 

  입장을 과학주의로 이는 마치 과학이 사안의 진위를 아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 과학과 신앙이 점유하는 영역의 교집합은 없다라고 했는데, 이는 과학은 경험적 

  우주와 사실과 이론을 다루는 반면, 신앙은 도덕적 의미와 가치의 문제에 초점을

  둔다는 뜻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

 

- 기도(개인, 중보)를 받은 집단이 기도를 받지 않은 집단보다 치료 효과가 좋았다.

 

- 초자연 현상이 급증하는 지역들의 공통 특징

  1) 문맹률이 높다

  2) 해당 지역 문화구조에는 죄와 구원같은 신학적 개념이 없다

  3) 의료혜택이 전무해 병자들이 의지할 것은 기적 밖에 없다.

  4) 영적 세력들 간의 싸움이 공공연히 일어난다.

 

- 209(무슬림의 시각)의 내용은 자세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증거를 얻기 위해 반드시 기적이 필요한 건 아니다

  증거는 바로 우리 눈앞에, 즉 그분이 창조하셨고 우리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온갖

  자연 현상 속에 있다.

 

- 우주에 시작점이 있다면 그 결과는 유신론이다.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도 

  자신의 저서인 시간의 역사에서 우주에 시작점이 있는 한 창조주의 존재를 가정할

  수 있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 무에서 창조된 우주는 광대한 기적이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빅뱅이 아무렇게나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고도의 질서정연한 현상이었듯이 우주의 지속적 운행도 안무가

  이신 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놀랍도록 정교한 춤이다.

 

- 우주가 하나뿐일진대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는 과학적 증거는 역시 없다. 미세 조정은

  하나님이 실존 하신다는 진정한 증거다.(존 레슬리)

 

- 신이 우주를 만들었다면 신은 누가 만들었느냐에 대한 의문이 있는데, 무엇이든

  존재의 시작점이 있으면 원인이 있듯이 정의상 하나님은 존재의 시작점이 없이 항상

  존재해 오셔다.

 

- 무신론자들은 우주가 영원히 원인 없이 존재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문제는,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됐다는 증거 때문에 그 입장을 더 이상 고수할 수 없게 되었다.

 

-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그저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부활의 진리에 근거한 것이다.


-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특이한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정말 기대하기보다는 차라리 

  예측 가능한 삶을 더 행복해한다.

 

- 작금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환자를 위한 기도를 할 때 의사와 의료진에 대한

  지혜와 분별력을 주시도록 기도하나 초자연적으로 환자를 치유해 달라는 기도는 

  없다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초자연 세계에 의존하는 것을 당혹해 하는 이유는

  ‘체면때문이다.

 

- 세상 기준의 성공을 하고 학벌이 좋을수록 기도의 능력을 자신의 똑똑함과 성취로

  대체하는 경향이 크다.

 

- 하나님은 조용한 속삭임으로 말씀하실 때가 더 많다.

 

- 기독교의 신빙성과 또 그리스도인으로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고난에 의미와 

  목적이 있다고 나는 당당히 믿는다.

 

- 비통한 마음을 인정하고, 마음 내키지 않아도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솔직해지고,

  감정을 감추지 않으면 고난도 잘 당할 수 있다.

 

- 예수께는 흉터가 있다. 우리들의 죄로 인한 흉터다. 예수께서 당하신 고난은 우리가

  평생 당할 고난보다도 더 많다. 그분은 우리의 고난에 동정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공감하신다.

 

- 하나님은 달리 얻어질 수 없는 더 큰 선을 악을 통해 이루신다.

 

- 치유를 간구해도 응답되지 않을 때, 때로 가장 바람직한 조치는 포기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그분은 피하실 수 있는데도 순복하며 자신을 전적으로 아버지 손에 

  맡기셨다.

 

- 강한 믿음의 정의란 하나님께 기적으로 고난을 없애 달라고 전심전력으로 간구한 뒤

  그대로 해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믿음을 측정하는 기준은 그분의 뜻에

  순복하려는 의지다.

 

- 고난을 당하는 이들은 아무리 기도해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거든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없지만 신뢰하고 싶습니다‘” 라고 아뢰는 게 소망의 출발점이다.

 

-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데 누구든지 회개와 믿음으로 받기만 하면 

  그분이 용서와 영생을 값없이 선물로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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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도하기로 했다 - 오랜 고난에도 끝까지 주님을 붙들고 기도의 사람이 되어간 예수 동행기록
한근영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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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장르나 내용에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나름대로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작품은 읽고 난 후 작품후기 쓰기가 참으로 어렵다. 본 작품 역시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나의 경우는 책을 덮은 지 6개월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작품에 대한 소회를 쓰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그 이유는 본 작품이 비록 어느 개인의 단순한 신앙 간증서 수준의 저급한 내용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내게 있어서는 그 어느 철학서나 심오한 메시지를 전하는 깊이 

있는 작품으로 다가와 나에게 종교적 반성을 촉구하는 듯한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

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작품을 읽는 내내 저자께서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절규였는데 그런 문구를 대할 때마다 속으로

나의 기도 속에 저자와도 같은 신실함과 절실한 절규가 내재되어 있었나?’

하는 의구심이 크게 들었기 때문이고 그런 의구심을 나의 종교적 반성을 촉구하는 

모티브로 인식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자의 절규를 단순한 어느 한 신앙인의 외침으로만 인식하였다면 나는 아마도 종교적 발전의 가능성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저급한 위선자밖에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엄습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저자가 신실하게 갈구했던 기도의 응답은 당장은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 점차 응답해 주시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언젠가는 확실한 응답으로 기도자의 소원을 들어주시리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종교인로서 나는 어찌해야 할까?

기도의 자세가 문제인가 아니면 마음가짐이, 신실함과 절실함이 부족해 그런 것인가?

이리저리 생각해 봐도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하였지만 분명한 것은 기도에 임하는 나의

기본 자세에 상당한 문제가 있기에 응답이 없으시다는 점을 분명히 알게 되었는데 

이제부터 라도 저자 수준은 아니겠지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통해 나만의 방식으로 하나님께 열과 성을 다해 진솔하게 기도드리는 신도가 되기를 다짐해 본다.

 

지금까지 기도에 임하는 자세를 철저히 반성해 보면, 주님의 지근거리에서 알짱거리기 시작한 세월이 어언 40년 가까이 되면서 나는 선데이 신자를 넘어 나름 종교인다운 

생활과 기도로 무장하며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간증 서적을 읽게 되면 나의 그런 행동은 저급하고도 생색내기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난 나 나름대로의 종교인으로서의 자세를 고양시키기 위해 기도 루틴을 

만들어 매일 아침 사도신경으로부터 시작해 국민일보의 오늘의 설교’, ‘QT’, ‘가정예배’, ‘겨자씨등은 물론 몇몇 종교 서적의 일정 분량을 묵도하고 공부하면서 하루를 열면서 진짜 나름 열심히 하나님과의 대화를 철저히 시도하며 복을 간구하고, 간청하고 있는 사람임에도 나의 이런 노력과 간구가 가시적 결과로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힘이 빠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으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속도 상하고 우울한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기도에 절박함이 부족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고는 한다. 그래서 혼자서 해 본 생각이 이렇다.

꼭 울면서 기도해야 하며, 이뤄달라고 애걸복걸해야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것일까?’

사람마다 기도의 방식과 간구하는 내용이 다른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시고 기도자들이 울면서 매달리라고 요구하시는 듯하다.

그래서 작품을 읽으며 든 생각은 이제부터 드리는 기도 전략을 바꾸어 하나님의 관심을 크게 이끌어 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간단하다.

내가 기도할 때 무조건 나의 기도를 들어 주세요가 아닌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역발상으로 하는 기도로 바꾸기로 했다는 것이다.

, 무조건 하나님께 이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면 언젠가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저 친구 기도를 들어준 적이 없는데 저 친구는 매번 기도할 때마다 자신의 기도를

이뤄줘 나에게 감사하다고 하니 진짜 들어주었나?‘

하고 하나님께서 지참하고 계실 인간들이 소원하는 위시 리스트를 다시 한 번 점검

하시게 되면 내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았음에도 기도자인 내가 매일 감사하다고 

저렇게 외치고 있는데, 언젠가 미안해서라도 들어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도 

방식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내가 기도한 내용을 주님으로부터 받은 듯이 감사하며 살면 더 좋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기도 방식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기도를 안 받아 주신다고 신경질내고 짜증을 부려봤자 내가 맡긴 것 내 놓으세요 

외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은 주는 사람 마음인데 내가 아무리 강짜를 부려봤자 주고자 하시는 분이 안 주면 나만 손해 아니겠는가.

그러니 차라리 안 주셨더라도 주셨다고 우기며 살게 되면 언젠가는 차고 넘치게 내가 원하는 복을 차고 넘치게 주시기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사람이라면 인정할 것은 솔직히 인정하며 사는 게 원칙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가 주님께 뭐 맡겨 놓은 것이라도 있는 자들처럼 꼭 주님께서 우리의 채무자처럼 맨날 주님께 달라고만 하면 받은 적도, 줄 것도 없는 주님도 짜증내실 수 있지 

않겠는가.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주님께서 뛰시다보니 상황과 형편이 좀 나은 나에게 좀 천천히 다가오시는 것인지 모르지 않은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이야기하셨고 나는그것을 믿는데,

자식이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부모가 없고 젖과 꿀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부모는 없다고 확실하게 말씀하셨는데 나는 이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습니다.

나보다 어려운 이들을 모두 돌보신 이후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나의 

기도와 간구에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부터 우리 모두 넉넉한 마음을 갖고 주님을 가스 라이팅합시다.

 

- ‘항상 기도하라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축복 명령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를 믿음 없다고 나무라거나 왜 정자세로 거룩하게 앉아 기도하지 

  않냐고 책망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끊임없는 탄식과 욕설을 내뱉는 삶을 살아가면서

  도 자신의 믿음 없음을 회개함과 동시에, 하나님께 눈을 맞추며 도와주시길 끊임없이

  간청하는 세리와 같은 이들에게 진실한 기도를 드렸다고 칭찬하시는 분이다.

-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우리를 도우시려고 우리 곁으로 찾아오셨기에 우리와 

  동행하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 참된 신앙이란 매 순간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동행하며 그분과 친밀히 교제하고 

  사랑을 나누는 신앙이라 말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과 동행이다.

- ‘기도가 무엇인가?’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끽하는 그 분과의 교제의 기쁨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 나라를 너와 나의 삶에 이루려는 간구’(악을 밟아 이기신 

  주님을 바라보는 힘겨운 싸움)

- 고난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염려로 인해 우리가 찾은 다른 것들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기도의 핵심은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응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나요? 혹은 어떨게 해야 하나님과 동행하나요? 라는

  질문에 회개돌이킴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 오른다.

- ‘회개가 무엇인가?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고 내 손에 든 것들을 내려놓아 진리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일이다.

- 하나님을 향해 힘껏 달려갈 수 있는 계절은 다름 아닌 고난의 때다.

- 우리가 겪는 고난 자체가 결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들이기에 자랑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감사찬양으로 고백되어야 마땅하다.

- 자랑하려거든 내가 약할 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자항하라.

- 회개의 뼈아픈 자리에 가봐야 죄인인 나를 위해 하나뿐인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알게 된다.

- 기도의 문지방은 회개다

- ‘회개란 흐트러진 관계의 질서를 바로잡아 우리를 위해 설계하신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기로 돌이키는 일이다.

- ‘슬픔절망은 다르다. ‘슬픔은 위로할 수 있는 고통이다. 여러 가지 가운데서 

  좋은 것 하나를 잃었을 때 슬픔이 찾아온다.

  절망은 위로할 수 없다. 궁극적인 무언가를 잃었을 때 찾아오는 것이 절망이다.

-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더 많이, 가장 사랑하여 그 하나님만을 삶의 토대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토대이다.

-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면 오직 하나님만을 그 중심에 품고 사랑하며 찬양함이 

  마땅하다.

- 사람을 판단하며 정죄하는 일은 마귀가 즐겨 행하는 악한 일이다.

- 내 마음에서 왕처럼 군림하던 나를 뼈아프게 쳐내고, 진짜 왕이신 하나님을 그 자리에

  모시는 일, 그것이 바로 회개다.

- 오로지 무력한 자만이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다

- 나를 아시고 나를 향한 감정도 가지시며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행하실 의지가 있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으로 내 감정과 믿음의 의지를 표현

  하는 것이 기도이다.

- 만약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천국이 없다면, 우리는 이 땅을 사는 동안 굳이 누구의 

  지배를 받으며 사느냐에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 마귀의 종노릇을 하며 애굽에서 

  산다한들 마귀가 우리에게 더 좋은 것들을 준다면 그걸 받아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다.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난다면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인생이 들의 꽃처럼 잠시 피었다 지고,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말씀한다. 이 세상의 삶은 잠시이고 죽음 이후 진짜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 마음이 통하고 말이 통하고 생각이 통하는 친구와 교제할 때만큼 좋은 때가 어디 

  있나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와 같은 친구가 되어 주셨다.

- 모든 일을 기도로 풀어간다는 것은 한마디로 내게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전능자 

  하나님께 고하고 아뢰며 구하는 가운데 그분과 동역하며 사는 삶을 말한다.

  나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의논하며 같이 살아가는 일, 그것이 바로 기도자의 삶.

- 우리가 기도할 때 어느 시기에 어떤 방법을 통해 그 기도에 응답하실지에 대한 

  주권과 주도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렸다.

- 하나님께서 내신 길들은 닫아버린 채 스스로 정한 한가지 방법에만 모든 것을 

  걸어버리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 진실한 믿음의 기도는 언제나 순종과 연결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 “하나님이 기도를 만드신 목적은 피조물에게 어떤 일을 유발하는 존재로서의 특권을

  부여하시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무슨 뜻인가?

  우리가 무엇을 바라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 기도 행위와 노동이라는 

  행동을 통해 응답을 불러일으키신다는 뜻일 것이다.

- 순종하려는 피조물들의 작은 움직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응답의 위대한

  과정에 동참하는 특권을 부여하신다.

- 고난이 많으면 하나님께서 건네시는 위로도 많다.

-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려면 마땅히 내가 죽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형제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런면에서 중보기도는 모든 기도 중 가장 순결한 기도이며 촛불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이다. 중보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자세는 멈춤이 없이 기도하는

  것이다.

- 우리 힘으로는 이 광야에서 견딜 수조차 없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걸으면 

  하나님께서 때마다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를 그분의 충만한 그릇으로 삼아주심으로써

  마침내 우리를 진정한 승리자, 최종 승리자가 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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