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도하기로 했다 - 오랜 고난에도 끝까지 주님을 붙들고 기도의 사람이 되어간 예수 동행기록
한근영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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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나 내용에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나름대로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작품은 읽고 난 후 작품후기 쓰기가 참으로 어렵다. 본 작품 역시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나의 경우는 책을 덮은 지 6개월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작품에 대한 소회를 쓰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그 이유는 본 작품이 비록 어느 개인의 단순한 신앙 간증서 수준의 저급한 내용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내게 있어서는 그 어느 철학서나 심오한 메시지를 전하는 깊이 

있는 작품으로 다가와 나에게 종교적 반성을 촉구하는 듯한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

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작품을 읽는 내내 저자께서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절규였는데 그런 문구를 대할 때마다 속으로

나의 기도 속에 저자와도 같은 신실함과 절실한 절규가 내재되어 있었나?’

하는 의구심이 크게 들었기 때문이고 그런 의구심을 나의 종교적 반성을 촉구하는 

모티브로 인식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자의 절규를 단순한 어느 한 신앙인의 외침으로만 인식하였다면 나는 아마도 종교적 발전의 가능성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저급한 위선자밖에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엄습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저자가 신실하게 갈구했던 기도의 응답은 당장은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 점차 응답해 주시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언젠가는 확실한 응답으로 기도자의 소원을 들어주시리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종교인로서 나는 어찌해야 할까?

기도의 자세가 문제인가 아니면 마음가짐이, 신실함과 절실함이 부족해 그런 것인가?

이리저리 생각해 봐도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하였지만 분명한 것은 기도에 임하는 나의

기본 자세에 상당한 문제가 있기에 응답이 없으시다는 점을 분명히 알게 되었는데 

이제부터 라도 저자 수준은 아니겠지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통해 나만의 방식으로 하나님께 열과 성을 다해 진솔하게 기도드리는 신도가 되기를 다짐해 본다.

 

지금까지 기도에 임하는 자세를 철저히 반성해 보면, 주님의 지근거리에서 알짱거리기 시작한 세월이 어언 40년 가까이 되면서 나는 선데이 신자를 넘어 나름 종교인다운 

생활과 기도로 무장하며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간증 서적을 읽게 되면 나의 그런 행동은 저급하고도 생색내기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난 나 나름대로의 종교인으로서의 자세를 고양시키기 위해 기도 루틴을 

만들어 매일 아침 사도신경으로부터 시작해 국민일보의 오늘의 설교’, ‘QT’, ‘가정예배’, ‘겨자씨등은 물론 몇몇 종교 서적의 일정 분량을 묵도하고 공부하면서 하루를 열면서 진짜 나름 열심히 하나님과의 대화를 철저히 시도하며 복을 간구하고, 간청하고 있는 사람임에도 나의 이런 노력과 간구가 가시적 결과로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힘이 빠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으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속도 상하고 우울한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기도에 절박함이 부족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고는 한다. 그래서 혼자서 해 본 생각이 이렇다.

꼭 울면서 기도해야 하며, 이뤄달라고 애걸복걸해야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것일까?’

사람마다 기도의 방식과 간구하는 내용이 다른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시고 기도자들이 울면서 매달리라고 요구하시는 듯하다.

그래서 작품을 읽으며 든 생각은 이제부터 드리는 기도 전략을 바꾸어 하나님의 관심을 크게 이끌어 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간단하다.

내가 기도할 때 무조건 나의 기도를 들어 주세요가 아닌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역발상으로 하는 기도로 바꾸기로 했다는 것이다.

, 무조건 하나님께 이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면 언젠가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저 친구 기도를 들어준 적이 없는데 저 친구는 매번 기도할 때마다 자신의 기도를

이뤄줘 나에게 감사하다고 하니 진짜 들어주었나?‘

하고 하나님께서 지참하고 계실 인간들이 소원하는 위시 리스트를 다시 한 번 점검

하시게 되면 내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았음에도 기도자인 내가 매일 감사하다고 

저렇게 외치고 있는데, 언젠가 미안해서라도 들어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도 

방식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내가 기도한 내용을 주님으로부터 받은 듯이 감사하며 살면 더 좋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기도 방식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기도를 안 받아 주신다고 신경질내고 짜증을 부려봤자 내가 맡긴 것 내 놓으세요 

외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은 주는 사람 마음인데 내가 아무리 강짜를 부려봤자 주고자 하시는 분이 안 주면 나만 손해 아니겠는가.

그러니 차라리 안 주셨더라도 주셨다고 우기며 살게 되면 언젠가는 차고 넘치게 내가 원하는 복을 차고 넘치게 주시기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사람이라면 인정할 것은 솔직히 인정하며 사는 게 원칙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가 주님께 뭐 맡겨 놓은 것이라도 있는 자들처럼 꼭 주님께서 우리의 채무자처럼 맨날 주님께 달라고만 하면 받은 적도, 줄 것도 없는 주님도 짜증내실 수 있지 

않겠는가.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주님께서 뛰시다보니 상황과 형편이 좀 나은 나에게 좀 천천히 다가오시는 것인지 모르지 않은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이야기하셨고 나는그것을 믿는데,

자식이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부모가 없고 젖과 꿀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부모는 없다고 확실하게 말씀하셨는데 나는 이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습니다.

나보다 어려운 이들을 모두 돌보신 이후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나의 

기도와 간구에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부터 우리 모두 넉넉한 마음을 갖고 주님을 가스 라이팅합시다.

 

- ‘항상 기도하라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축복 명령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를 믿음 없다고 나무라거나 왜 정자세로 거룩하게 앉아 기도하지 

  않냐고 책망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끊임없는 탄식과 욕설을 내뱉는 삶을 살아가면서

  도 자신의 믿음 없음을 회개함과 동시에, 하나님께 눈을 맞추며 도와주시길 끊임없이

  간청하는 세리와 같은 이들에게 진실한 기도를 드렸다고 칭찬하시는 분이다.

-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우리를 도우시려고 우리 곁으로 찾아오셨기에 우리와 

  동행하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 참된 신앙이란 매 순간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동행하며 그분과 친밀히 교제하고 

  사랑을 나누는 신앙이라 말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과 동행이다.

- ‘기도가 무엇인가?’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끽하는 그 분과의 교제의 기쁨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 나라를 너와 나의 삶에 이루려는 간구’(악을 밟아 이기신 

  주님을 바라보는 힘겨운 싸움)

- 고난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염려로 인해 우리가 찾은 다른 것들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기도의 핵심은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응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나요? 혹은 어떨게 해야 하나님과 동행하나요? 라는

  질문에 회개돌이킴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 오른다.

- ‘회개가 무엇인가?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고 내 손에 든 것들을 내려놓아 진리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일이다.

- 하나님을 향해 힘껏 달려갈 수 있는 계절은 다름 아닌 고난의 때다.

- 우리가 겪는 고난 자체가 결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들이기에 자랑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감사찬양으로 고백되어야 마땅하다.

- 자랑하려거든 내가 약할 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자항하라.

- 회개의 뼈아픈 자리에 가봐야 죄인인 나를 위해 하나뿐인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알게 된다.

- 기도의 문지방은 회개다

- ‘회개란 흐트러진 관계의 질서를 바로잡아 우리를 위해 설계하신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기로 돌이키는 일이다.

- ‘슬픔절망은 다르다. ‘슬픔은 위로할 수 있는 고통이다. 여러 가지 가운데서 

  좋은 것 하나를 잃었을 때 슬픔이 찾아온다.

  절망은 위로할 수 없다. 궁극적인 무언가를 잃었을 때 찾아오는 것이 절망이다.

-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더 많이, 가장 사랑하여 그 하나님만을 삶의 토대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토대이다.

-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면 오직 하나님만을 그 중심에 품고 사랑하며 찬양함이 

  마땅하다.

- 사람을 판단하며 정죄하는 일은 마귀가 즐겨 행하는 악한 일이다.

- 내 마음에서 왕처럼 군림하던 나를 뼈아프게 쳐내고, 진짜 왕이신 하나님을 그 자리에

  모시는 일, 그것이 바로 회개다.

- 오로지 무력한 자만이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다

- 나를 아시고 나를 향한 감정도 가지시며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행하실 의지가 있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으로 내 감정과 믿음의 의지를 표현

  하는 것이 기도이다.

- 만약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천국이 없다면, 우리는 이 땅을 사는 동안 굳이 누구의 

  지배를 받으며 사느냐에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 마귀의 종노릇을 하며 애굽에서 

  산다한들 마귀가 우리에게 더 좋은 것들을 준다면 그걸 받아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다.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난다면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인생이 들의 꽃처럼 잠시 피었다 지고,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말씀한다. 이 세상의 삶은 잠시이고 죽음 이후 진짜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 마음이 통하고 말이 통하고 생각이 통하는 친구와 교제할 때만큼 좋은 때가 어디 

  있나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와 같은 친구가 되어 주셨다.

- 모든 일을 기도로 풀어간다는 것은 한마디로 내게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전능자 

  하나님께 고하고 아뢰며 구하는 가운데 그분과 동역하며 사는 삶을 말한다.

  나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의논하며 같이 살아가는 일, 그것이 바로 기도자의 삶.

- 우리가 기도할 때 어느 시기에 어떤 방법을 통해 그 기도에 응답하실지에 대한 

  주권과 주도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렸다.

- 하나님께서 내신 길들은 닫아버린 채 스스로 정한 한가지 방법에만 모든 것을 

  걸어버리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 진실한 믿음의 기도는 언제나 순종과 연결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 “하나님이 기도를 만드신 목적은 피조물에게 어떤 일을 유발하는 존재로서의 특권을

  부여하시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무슨 뜻인가?

  우리가 무엇을 바라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 기도 행위와 노동이라는 

  행동을 통해 응답을 불러일으키신다는 뜻일 것이다.

- 순종하려는 피조물들의 작은 움직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응답의 위대한

  과정에 동참하는 특권을 부여하신다.

- 고난이 많으면 하나님께서 건네시는 위로도 많다.

-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려면 마땅히 내가 죽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형제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런면에서 중보기도는 모든 기도 중 가장 순결한 기도이며 촛불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이다. 중보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자세는 멈춤이 없이 기도하는

  것이다.

- 우리 힘으로는 이 광야에서 견딜 수조차 없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걸으면 

  하나님께서 때마다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를 그분의 충만한 그릇으로 삼아주심으로써

  마침내 우리를 진정한 승리자, 최종 승리자가 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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