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한 열네 번의 인생 수업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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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6

 

스승은 영원하다'라는 명제로 이 작품을 평가하고 싶다.

 

1959년부터 1994년까지 미국의 명문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쳐 온

'모리 슈워츠' 라는 교수가 현대판 죽음의 병이라 불리우는 '루게릭병'에 걸려 죽어 가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제자를 위해, 강의실에서 다하지 못한 내용을 목전에 다다른

죽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병상에서 제자와의 대화로 인생의 가르침을 전해 주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다시 말해 죽어가는 사람(스승)이 살아남을 사람(제자)에게, 살아남을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인생의 지침에 대해 일깨워 주는 일종의 대화록이었다.

제자 역시 스승의 그런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듯 디트로이트에서부터 보스톤까지(미국

지리는 잘 모르지만 얼추 수 백 킬로는 떨어진 듯하다) 기쁜 마음으로 날아가 마지막

가는 스승의 인생 강의를 경청하며 스승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표시한 내용이었다.

 

많은 부분은 교수 주변과 제자 주변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 약간은 산만하다고

느끼게 한 점이 없지 않았으나 스승의 어록을 나름대로 발췌하는 선에서 독후감을

대신하고자 한다.

 

-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운다.

- '가족'의 의미는 그냥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거기 서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 타인에 대해 완벽한 책임감을 경험하고 싶으면 그리고 사랑하는 법과 가장 깊이

   서로 섞이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자식'이 있어야 한다.

 

- 우리의 문화는 인간들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그 문화가 제대로 된

   문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굳이 그것을 따르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 사랑을 '나눠주는 법''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 또한 사랑이야말로 유일하게 이성적인 행동이다.

 

- 자기의 인생을 의미 있게 살려면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 받쳐야 하며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헌신하고, 자신에게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하는데 헌신해야

   한다.

 

- 나이 드는 것은 단순한 쇠락이 아니고 그것은 성장이다.

   그것은 곧 죽게 되리라는 부정적인 사실 그 이상이다. 그것은 죽게 되리라는 점을

   이해하고 그 때문에 더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긍정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

 

- 인간 최고의 단점은 '근시안'이라는 것이다.

 

-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 인간 관계에는 일정한 공식이 없다. 양쪽이 공간을 넉넉히 가지면서 사랑이 넘치는

   방법으로 협상을 벌여야 하는 것이 인간관계이다.

 

 

책을 덮으며 외국의 이름도 처음듣는 어느 교수의 이야기가 우리나라에서 한 때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을 때 나는 갑자기 돌아가신 여러분들의 유작들이 서점 한 귀퉁이에 쌓여 켜켜이 먼지를 뒤집어 쓰고 독자들의 외면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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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시네마 한국시나리오걸작선 84
유미리 지음, 우병길 각색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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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3

 

가족이란 무엇인가?

인류가 만들어낸 여러 발명품 중 가장 위대한 것 한 가지만 들라고 한다면 아마도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와 함께 '가족'이라는 단어를 동시에 들지 않겠는가 생각해 본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단어인 '사랑''가족'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에 대한 중요성은

나를 비롯한 누구라도 아무리 강조한다 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누구라도

인식하기 때문이다.

 

'사랑''가족'이라는 단어가 갖는 중요성을 나의 가정에 대비해 살펴보면,

얼마 전까지 나는 위에서 언급한 단어 중 '가족'이라는 단어가 내게 어떤 의미와 뜻으로

위치를 갖는지 그리 크게 고민하며 생각해 본적이 없었고 또 그럴 필요성 조차 느끼지

못했었다.

왜냐하면 '가족'이라는 단어와 ''를 분리해서는 나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

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단어는 나의 생활 자체였기 때문이다.

-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몇 해 전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수개월 동안 고민과

번민 속에서 나의 아내와 장시간에 걸친 대화와 토론 끝에 '사랑' = '희생'이라는 명제를

얻어냈는데, 이 개념은 아내와 나 사이에서만 오고가는 개념이다. -

 

작품을 읽으며 또 이러한 단어들이 나의 형제들 속에서 어떻게 존재해 왔는지를 살펴

보았는데, 우리 형제들은 각자가 물질적으로는 풍족한 삶을 영위하고 있지는 않으나

나름대로의 가정적 안정과 행복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6.25이후 최대의 국난이라 불리웠던 IMF가 우리 형제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형제 중

어려움에 처한 경우가 있었는데 형제들이 똘똘 뭉쳐 이를 헤쳐나간 적이 있는데,

이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사랑'이라는 것이 있어서 가능하였다고 생각한다.

 

우리 가정과 형제의 가정사를 돌이켜 보면서 '가족'이 주는 의미와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짚어보는 것이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독자로서의 선결과제라고 생각한다.

 

먼저 '가족'을 생각하기 전에 '가정'이라는 단어에 대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가정(家庭)'은 말 그대로 '집의 정원, 뜨락'이다. 그렇다면 그런 뜨락에 꽃과 향기로

가득차고 벌과 나비가 한가로이 날고 이름 모를 풀 벌레들이 울고, 새들이 청아한

음성으로 노래하는 정원이라면 또 덧붙여서 그곳에 작은 연못이라도 하나 있다면

얼마나 멋지겠는가.

반면에 그런 뜨락이 쓰레기와 오물, 집동사니로 뒤덮혀 언제, 어디서, 무슨 벌레나 이름

모를 동물이 튀어나와 우리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할 정도의 환경을 지닌 곳이라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이야기겠는가?

 

인간이 인간스러울 수 있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중 하나가 바로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사랑'을 근본으로 하는 따뜻한 '가족애'가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이런 결론을 근거로 '유미리'씨의 글을 읽다 보면 도처에 '가족'간의 사랑에 굉장히

목말라 하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작품을 읽은 나에게 작품을 평해달라고 하면 '글쎄'라고 밖에는 표현할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작품을 읽으며 작가인 유미리라는 작가가 왜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책 출판 기념회와 독자 사인회를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일본의 유명 문학상을 수상해서인지 아니면 호스테스 출신에서 작가로서 입신양명한

인물이라 얼굴을 보러 왔는지 도저히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사전에 이 작품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작품을 읽은 후 독자 사인회에 가라고 하였으면

대부분의 우리나라 독자들은 그 작가에게 사인을 받으러 가지 않았을 것이 확실하다.

그만큼 기대를 져 버린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작가인 유미리씨는 우리나라 사인회에 몰려든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나의 조국에 이렇게 가족관계가 무너진 가정이 많은가?‘

 

하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도저히 난해하다 못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작품인지 또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가

뇌리에서 맴도는 그런 작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에 대한 독서계의 비평이

그리 많이 실리지 않은 것만 보아도 이 책이 던져주는 시사성 내지는 사회성이 영

결여된 그저 그런 범작(凡作) 수준이었다고 나는 평하고 싶다. 아주 냉혹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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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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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8

 

상황은 다르지만 중국판 <세일즈맨의 죽음>이라고나 할까?

 

주인공 허삼관은 생활이 곤궁하거나,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특히 자식들에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를 해결할 자금 마련의 일환으로 피를 판다. 그것도 피의 양을 많게 하기

위해 냉수를 잔뜩 마시고 소변도 참아가면서 자신의 피를 팔아 목적했던 필요한 돈을

마련한다.

 

작품의 큰 모티브를 제공하고 있는 '매혈(買血)'은 중국 뿐만이 아니라 아시아권 국가 어느

곳에서나 몇 년 전까지 - 아마 지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는 행하여지고 있을

것이다 - 만 해도 경제적 하층민들에게 널리 퍼져 있던 행동으로서, 매혈은 특별한 육체적

노동이나 고생 없이 자신의 몸에서 단순히 일정량의 피를 뽑아 자신이 필요로 하는 자금을

손쉽게 벌게 되자, 인간들은 여타의 다른 수단을 고려치 않고 이 행동에 젖어 들었으며,

정상적인 경제적 활동을 통한 부의 획득에서 벗어난 저급한 행동에 익숙해져 쉽게 번 돈을

쉽게 쓰는, 예를 들면 건전치 못한 행동(마약, 매춘 등)으로 없애 버렸기 때문에

'매혈=인간 이하의 행동'이라는 고정 관념이 일반인들 속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나의 중학시절을 돌이켜 보면, 학교 가는 길에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병원이 있었는데

병원 정문 앞에는 매일 아침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들 전부가 환자의 가족 내지는 병원과 관계되는 사람들인 줄 알았었으나,

사실은 모두가 피를 팔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라는 말을 듣고는 속으로 굉장히 놀란 적이

있다. 그런 사정을 모를 때에는 거기에 줄을 선 모든 사람들이 무조건 불쌍하고 안됐다고만

생각하였으나, 그런 속 사정을 잘 아는 친구들로부터 줄을 선 사람들 대부분이 피를 판

돈으로 좋지 못한 목적에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더 이상 그들에 대해 불쌍하게만은

보려 하지 않았다.

당시 내 기억으로는 매혈이라는 단어가 '마약', '창녀' ''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와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매혈을 이런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살아보려는 없는 자들의 발버둥

으로,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어린 시절 보았던 매혈의 대열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큰아들이 사고를 쳤을 때, 문화혁명 기간 동안 먹을 식량을 위해, 큰 아들이 간염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 때, 아들들이 좋은 직장을 배정받게 해 주기 위해, 주인공 허삼관은 주저

없이 자신의 팔뚝을 걷었으며 피를 팔았다. 자신의 쾌락과 건전치 못한 행동을 위한

비용이 아닌 가족들의 기본적인 생활 기반을 위해서.

 

젊은 시절 생명과도 같았던 피를 팔아가며 식구들을 먹여 살리던 주인공은 자신만의 행복

(돼지 간볶음과 황주)을 위해 또 다시 피를 팔러 갔을 때, 너무 늙어 피를 사 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망한다.

젊은 시절, 가족들의 안위에 온 힘을 받치며 살아온 뒤, 마지막으로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자신을 사용하려고 살펴보니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근대화가 줄기차게 일어나던 시기에 나라의 경제적 기반이 약했던 우리나라나 중국의 일반

서민들이 택했던 '매혈'은 어쩔 수 없는 삶의 방편을 제공하는 최후의 어쩔 수 없는 없는

자들의 행위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매혈이라는 것은 없는 자들의 최후의 선택 사항임과 동시에 불가항력적인 행동이었으며,

기본적인 삶의 시간을 연장 시킬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이러한 매혈도 말 년에 자기

자신을 위해 쓰려 할 때는 이미 사용할 수 없게 된 가장의 모습이 가슴 깊이 각인되는

작품이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맞이하게 될 노년, 노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부인 것이 하찮은

것으로 판명될 때, 우리는 쉽게 그런 현실을 웃으며 받아 들일 수 있을까,

아니면 작품 속의 주인공처럼 울음으로 받아들일까?

나는 오늘을 사는 또 다른 허삼관이 아닐까 생각해 보며 허삼관 그를,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중국인이 아닌 춥고 배고프던 시절의 우리 아버지 모습으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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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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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9

 

[기생] 그러면 어쩐지 교태스러움과 함께 남자들의 동물적인 욕구를 언제든지 자극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때에 따라서는 질펀한 그 무언가를 이용해 대개의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어떤 비밀스러움과 함께 알 수 없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그런 존재

혹은 탐구의 대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기생집]이라는 단어는 출입 경험이 있는 자들에 의해 혹은 출입자로 인해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단어 자체가 갖는 본질적 의미보다는 부르는 이들의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상징성을 내포한 단어로 불리워졌을 것이고 여기에 더해 출입

경험이 없는 이들에 의한 상상과 출입자들의 호기로 포장된 묘사에 의해 '니나노 집',

'방석 집' 혹은 '색시 집' 등등으로 재 탄생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어 진다.

 

관련 종사자가 들으면 극렬하게 반대에 반대를 하겠지만 언제부터인지 내 주변 술 친구들

'기생집 = 색시집'이라는 등식으로 부르고 있었지만 이를 당연한 개념으로 인식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미천한 실력으로 나름 생각해 보면, '기생''색시'는 엄연히 다른 개념으로 생각되지만

여기에 출입하는 인간들의 인간성에 의해 해당 업소의 업태(?)가 변하면서 색시도 되었다,

기생도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작금에 [기생집]하면 드는 생각이 아주 천박하고 저급한 여급들이 하룻밤의 풋 사랑을

팔기 위해 몸부림 치는 '삶의 현장'이라는 느낌 정도로 다가 오고 있다.

 

작품을 처음 본 순간 ''자를 붙여 과거의 기생집이라는 곳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에게

과거의 '기생 모습'은 물론 변화된 모습을 갖춘 '신 기생'까지 혹시 보여 주고, 알려 줄지

모른다는 느낌이 들어 '이게 웬 횡재냐'는 식으로 해당 작품을 상당한 설렘을 안고 선택해

읽게 되었는데, 읽어 본 결과 나의 그런 기대와는 달리 [기생집]의 주인공 격인 기생들과

또한 기생 활동에 예속되어 살아가는 여인네들의 삶의 이야기를 잔잔한 시내 물처럼 그린

한 편의 흑백 영화와도 같은 작품이었다

 

작품의 주 무대는 군산의 [부용각]이라는 기생집에서 기생 생활에서 주인공적 삶을 살아

왔을 그 집의 구성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부엌 어멈인 타박네’, 작품의 주인공격인 오 마담’, 짧은 생을 살고 간 예린,

한 때는 유망한 국악인을 꿈꾸었을 나끝순’, 민 마담, 그런 여인네들에 기대어 사는 기둥

서방, 기생 집에서 갖은 굳은 일을 관장했을 집사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간 기생을 주제로

이야기는 전개되고 있다.

 

작품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작가의 전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직 기생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실상을 파악했다고는 하나 너무나도 리얼리티한

기생들의 이야기와 주인공들의 심리 묘사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고 있는 각종 사건, 사고

들은 해당 업계에 몸을 담지 않고서는 쉽사리 알 수 없는 내용의 연속이었다. 

그렇다면 독자에 불과한 내가 어찌 그리 잘 알 수 있느냐고 질문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단연코 잘 나가던 한 때(?) 기생집은 아니지만 기생집 비슷한 곳을 우연한

기회에 다닌 적(?)이 있기도 하거니와 영화에서 간혹 기생집에 대해 접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기생집이 변화된 '요정집'이라고나 할까? 그런 곳을 다녀 본 사실

이 있기 때문에 작가의 전직에 대해 쉽게 의문을 품게 된 것이며, 작가의 전직이 그렇지

아니 하다면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쏟았을 개인적인 노력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다른 이들은 본 작품을 어떤 느낌으로 받아 들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 편의 장편 '흑백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의 축이 상당히 탄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주인공 격인 '오 마담'에 관한 사항과 그의 단짝이라 볼 수 있는 '타박네'의 기구한

인생 역정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처로움이 밀려들어 왔다.

작품을 덮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가장 가슴에 닿는 내용으로는 오 마담이 자조적으로

되뇌이는 말 중에서 그녀가 기둥서방에게 갖은 이유로 사기와 농락을 당하면서 내 뱉고

있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요즘 가볍게 하는 사랑을 추구하는 이들을 심하게 질타하는

내용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특히, 부용각 박 집사에 대한 애정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얼마 전 영국의 대 학자

스티븐 호킹박사가 이야기 했다는 '우주보다 더 미스테리한 것이 바로 여자다'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운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박 집사''오 마담'간의 애틋한 감정은 어떤 특별한 계기 없이 진행된 것으로 보여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집사, 그는 오 마담을 위해 평생을 바친다는 설정 그리고 그녀에게

사랑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늘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해바라기하는 그의 모습은 작품 구도상 있을 수 있는 사랑의 한 형태이기는 하나, 극적인 요소가 약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 국악인을 꿈꾸었던 '나끝순''민 마담'으로 변신하는 과정과 문화 건달 박 사장과

화초머리를 올리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기생은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도 할 수 있으나 그러한 행위 역시 기생으로 살아남기 위한 또 다른 삶의 한

방편이었음을 확인하고는 측은한 생각이 앞섰다.

어찌 보면 여인이 나오고, 술과 춤이 나오고, 소리가 나오는 작품이라는 이유로 거기에

화초 머리를 올리는 장면이 전개되어 자칫 통속적으로 또 인간의 본능적 애욕이 넘쳐흐를

수 있는 요소가 많았음에도 여류 작가의 섬세한 필치와 심리 묘사가 담담히 펼쳐져

오히려 탄탄한 작품 구조를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작품을 읽으며 작가를 '정말 모진 여인'일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작가는 아마도 이 작품을 쓰면서 눈물깨나 쏟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이 여럿 보인다.

오 마담 야반 도주, 타박네가 낳은 아이를 빼앗기는 장면 등등은 작가도 작가 이전에

한 여인으로서 쉽게 문장을 전개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 작가의 에필로그에도 나와 있지만 자신의 모친을 모신 그 날도 작품을 집필하였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독하긴 독한 스타일인 것 같다 -

작품 곳곳에 같은 여성으로서 힘들었을 상황과 장면에서 작가가 눈물을 흘렸을 것으로

추측되나 담담히 긴 호흡으로 작품을 전개하고 있는 점은 작가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

지를 가늠케 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작품을 읽고 난 나는 우연히 접한 신문의 칼럼을 통해 이런 명제를 내려 본다.

[기생은 종()이다]

''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외부에서 물리적 힘을 가할 때만이 소리가 난다.

아무런 외부적 자극이 없는 한 그냥 한낮 공간을 차지하는 장식품에 불과할

것이다.

 

신문 칼럼에서

"금이 가고 깨어진 종을 종매로 치면 깨어진 종소리가 나지만, 완전히 깨어진 종의

파편을 치면 맑은 종소리가 난다"

라고 칼럼을 기고한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바로 이 대목에 착안하여 그런 정의를 내리게 된 것이다.

'기생'을 단순히 기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깨어진 종'으로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생을

솔직히 여염집 규수나 대가 댁 며느리와 같은 평범한 여인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 일반적인 평범한 삶을 사는 여인들을 '일반 종'에 비유한다면, 기생 그들은 '깨어진 ,

금이 간 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후반부에 나오는

'종의 파편을 치면 맑은 소리가 난다'라는 문구이다.

쇠에 일반적인 충격을 가했을 때에 나오는 맑고 아름다운 소리는 쇠가 지니고 있는 고유의

음질적 특성이 외부 충격을 통해 발현되는 것으로, 비록 깨어진 파편이라도 거기에 충격을

가하면 쇠가 지니고 있는 본래적 음질적 특성이 그대로 발현될 것이다.

   종합적으로 다시 이야기를 해 보면, 직업이 아무리 비천한 기생이라 할지라도 기생도

여자이며 '세파에 휘둘려 어떤 삶을 살아 왔고, 살고 있는지는 잘은 모르겠으나 기생,

그들은 연약한 여인 그 자체였다'는 의미로 나는 신문 속에서 언급되고 있는 칼럼 속

소재에 기생을 대입해 이해하고 싶었다.

 

'기생'''이라면 부용각을 총괄하는 타박네는 무엇인가?

기생도 아닌 것이, 기생들과 손님들을 쥐락펴락하는 그녀는 무엇이란 말인가?

우선 [타박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 나라 '종'에 대한 추가적인 사실 한 가지

더 말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선조들은 종 밑 지면부에 '항아리'를 묻었다고 한다.

지금도 영주 '부석사'와 남해 금산 '보리암'에 가 보면 범종 밑에 항아리가 묻혀 있다고

하는 데, 그 항아리는 제 몸을 통과하는 종소리를 맑고 아름답게 여과시키는 '음관'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리에 있어 '음관'이란 무엇인가 바로 소리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타박네는 바로 기생들의 삶을 정화시켜 주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인물로

보고 싶다. 바로 이런 항아리같은 역할을 부용각에서 타박네가 하고 있는 것이다.

오 마담이 종매에 맞아 떨림에 의한 자신의 소리가 나올 때, 예린이의 죽음으로 인해

부용각이 힘들어 할 때, 민 마담의 화초머리 행사를 할 때, 부용각을 오랜 세월 지키고

온 타박네는 종 아래 묻혀 있는 항아리 같은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 타박네는 부용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소리와 행동에 대해 자칫 폄하와 곡해될

있는 사항에 대해 한 층 가치 있는 내용으로 순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 작품이 기생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튀지 않도록 제어를 하게 하였으며,

각 소 주제별 내용이 질펀하게 흐를 수도 있었던 부분이 있었음에도 보이게, 보이지 않게

제어도 해 주고, 순화도 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처음에 등장한 타박네의 정체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갖고 바라 보았으나 나름 이런 기능을

대입해 작품을 읽으며 분석해 보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 왔음은 물론 작품을 더 가치

있게 만들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독자들도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본 작품이 일반인들에게 작은 감동(?)으로 다가

오는 이유는 아마도 작품을 읽는 재미와 함께 작품에서 적절히 인용되고 있는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우리말의 향연이 한 몫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정말 작품에 대한 작가의 연구와 노력 그리고 조사에 들인 공에 머리

깊이숙여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나름 국어사전을 들추어 가며 작품에 언급된 단어의 뜻을 여기에 옮겨 보았다.

 

   작품에 언급된 순 우리말

   - 남우세스럽다 : 남에게 놀림과 비웃음을 받을 듯하다

   - 시뜻한 표정 : 1. 마음이 내키지 않아 시들하다.

                          2. 어떤 일에 물리거나 지루해져서 조금 싫증이 난 기색이 있다

   - 함치르르하다 : 깨끗하고 반지르르 윤이 나는 상태이다

   - 새물새물하다 : 1. 입술을 약간 샐그러뜨리며 소리 없이 잇따라 웃다.

                            2. 한데 어울리지 아니하고 잇따라 능청스럽게

   - 우듬지 : 나무의 꼭대기 줄기 

   - 휘움하다 : 조금 휘어져 있다.

   - 배리착지근하다 : 냄새나 맛이 조금 배리다.

   - 가칫가칫하다 : 1. 살갗 따위에 조금씩 닿아 자꾸 걸리다.

                            2. 순조롭지 못하게 조금 자꾸 방해가 되다.

                            3. 살갗이나 털 따위가 야위거나 메말라 윤기가 없이 거칠다.

   - 맵싸하다 : 맵고 싸하다 - 애동대동하다 : 매우 앳되고 젊다

   - 더펄더펄하다 : 1. 더부룩한 물건 따위가 조금 길게 늘어져 바람에 자꾸 흔들리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다.

                            2. 자꾸 들떠서 침착하지 못하고 경솔하게 행동하다

  - 해반주그레하다 : 겉모양이 해말쑥하고 반듯하다

  - 살똥스럽다 : 말이나 행동이 독살스럽고 당돌하다

  - 애면글면 : 몹시 힘에 겨운 일을 이루려고 갖은 애를 쓰다

  - 언슨시럽다 : 지긋지긋하다의 경상도 방언

  - 수굿()하다 : 1. 고개를 조금 숙이다.

                          2. 고개를 조금 숙인 듯하다.

                          3. 흥분이 꽤 가라앉은 듯하다

  - 옹송그리다 : 1. 춥거나 두려워 몸을 궁상맞게 몹시 옹그리다.

                        2.입술을 움츠리어 꽉 깨 물다.

   - 또록또록하다 : 매우 뚜렷하다 

   - 시난고난하다 : 병이 심하지는 않으면서 오래 앓다

   - 비들비들하다 : '비틀비틀'의 원형

   - 사륵사륵하다 : '사르륵사르륵(조금씩 움직이는 소리)'의 준말.

   - 맵차다 : 옹골차고 차다 - 씨억씨억하다 : 성질이 굳세고 활발하다

   - 꼭닥시리 : 단단이

   - 아리잠직하다 : 1. 키가 작고 모습이 얌전하며 어린 티가 있다.

                            2. [북한어]온화하고 솔직하다.

   - 우렁우렁하다 : 소리가 매우 크게 울리다, 울리는 소리가 매우 크다.

   - 화초머리 : 기생이나 창기가 첫 경험을 하고 얹는 머리.

   - 바지랑대 : 빨랫줄을 받치는 긴 막대기

   - 야지랑 : 얄밉도록 능청맞고 천연스러운 태도.

   - 살캉살캉 : 설익은 곡식이나 열매 따위가 자꾸 가볍게 씹히는 소리가 나다.

   - 난만하다 : 1. 꽃이 활짝 많이 피어 화려하다.

                      2. 광채가 강하고 선명하다

                      3. 주고받는 의견이 충분히 많다.

   - 새들새들하다 : 1. 조금 시들어 힘이 없다.

                            2. 마음이 들떠서 자꾸 경솔하게 까불다.

   - 는적는적하다 : 1. 물체가 힘없이 자꾸 축 처지거나 물러지다.

                            2. 물체가 매우 힘없이 축 처지거나 무른 느낌이 있다.

   - 꼽꼽쟁이 : 1. 성질이 잘고 서두르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2. '구두쇠'의 방언(충남).             

                      3. 몹시 인색한 사람을 뜻하는 [구두쇠]의 전라도 방언.

   - 중쑬쑬하다 : 크지도 작지도 아니하고 품질ㆍ수준ㆍ정도가 어지간하여 괜찮다.

   - 푸닥지다 : (비꼬는 뜻으로) 꽤 많다

   - 물덤벙술덤벙하다 : 아무 일에나 대중없이 날뛰다

   - 잔풀호사 : 어린 풀의 호화스러운 치장이라는 뜻으로,

                     분에 넘치는 호사나 허영에 들뜬 옷차림을 이르는 말

   - 빗치개 : 빗살 틈에 낀 때를 빼거나 가르마를 타는 데 쓰는 도구.

   - 엄부럭 : 어린아이처럼 철없이 부리는 억지나 엄살 또는 심술.

   - 남상거리다 : 1. 좀 얄밉게 자꾸 넘어다보다.

                         2.남의 것을 탐내어 가지려고 자꾸 좀스럽게 기회를 엿보다.

   - 볕뉘 : 1. 작은 틈을 통하여 잠시 비치는 햇볕.

               2. 그늘진 곳에 미치는 조그마한 햇볕의 기운.

               3.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보살핌이나 보호.

   - 넌짓 웃음 : 넌지시 짓는 웃음 - 사금사금 가슴 시리다 :

   - 갈강갈강하다 : '갈그랑갈그랑하다(가래 따위가 목구멍에 걸려 숨 쉴 때마다

                             거친 소리가 조금 나다)'의 준말

   - 흥뚱함뚱 : 어떤 일에 정신을 온전히 쓰지 아니하고 꾀를 부리거나 마음이 떠 행동하는

                      모양.

   - 뽀도시 : '겨우'의 방언(경남, 전라).

   - 물때썰때 : 1. 밀물 때와 썰물 때를 아울러 이르는 말.

                      2.사물의 형편이나 내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사부라기 : 별로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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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주례사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남녀 마음 이야기
법륜스님 지음, 김점선 그림 / 휴(休)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권유도 8

 

결혼을 해 보지 않았으면 말하지 마라. 이론과 실제가 완전히 다른 게 결혼 생활이다.

하지만 스님의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결혼해 본 사람처럼 맞기는 한데 내 관점으로는 스님

의 말씀이 2%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법륜 스님이 실제 결혼을 하셨던 경험이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작품을 읽어 본 결과, 약간

현실적인 극복 방법이 결여되어 있는 듯하여 여기에 소감의 포인트를 두어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작품을 읽은 결론부터 정리해 보면

상대의 덕을 보려는 결혼은 이 세상에 없으니 꿈꾸지 마라

내가 먼저 베풀면서 살아보자, 상대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상대는 내가 가꾸어야 꽃을 피울 수 있음을 명심하라

 

누구나 결혼 직후 자신의 옆에 누워 있는 상대방에 대한 실상을 파악하는 데 솔직히 채

한 달도 안 걸리는 게 보통의 결혼 생활이라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가끔 신혼부부들이 매스콤에 나와서 혹은 신변잡기식으로 '방구를 텃네, 안 텃네'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고는 하는데 나는 속으로 웃는다.

미안하지만 방구를 트기 전에 상대는 벌써 귀하의 민 낮과 잠버릇을 통해 또 술버릇과

카드 돌려 막기를 보면서 이미 귀하의 실상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데 방구 트는 유무는 그런

실상을 자세히 평가하는 데 일부 가감의 요소가 될 뿐 상대를 평가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고 싶다.

 

상대를 파악한 직후부터 각각의 상대들은 고뇌에 찬 시간을 갖기 시작하면서 결혼과 상대

에 대한 환상에서 서서히 빠져 나오기 시작한다.

여기에 상대의 결정적인 '실수'가 수반되면,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듯 고뇌에 찬 시간을

갖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리도 센스 없고, 무덤덤하며, 기념일도 기억 못하고, 반찬 못하는 건 기본이고

맛도 없고, 집은 또 왜 이리 어질러 놓고 사는지, 뭘 그리 잊어버리고 사는 게 많은지, 카드

는 왜 그리 펑펑 쓰는지, 허구헌 날 술과 담배 그리고 무슨 놈의 친구는 그리도 많은지....

등등등 정상적인 배우자들이라면 그런 상대를 바라보며 그래도 내가 선택한 배우자니 잘

살아보자라는 다짐을 하는 게 일반적 배우자 일 것이지만 그런 다짐도 잠시 이내 허망한

현실 세계로 돌아와 배우자를 원수의 원흉으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결혼 초창기에 갖는

평범한 배우자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른 서설은 빼고 내가 극복한 사례를 통해 예비 신혼부부들의 자세를 들려 주고자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

하지는 않는다. 나는 다만 오늘도 노력하며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이며 즐거운 나의 집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며 사는 그런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뿐이다.

 

결혼 삼십년 가까이 된 나는, 오십 중반인 나의 아내를 시고 때도 없이꽃순이’, ‘귀염둥이’,

깜찍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있건 말건 누가 듣건 말건 가장 사랑스런 용어를 써가며

내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른다.

처음에는 와이프조차도 이런 나의 호칭에 완강히 거부감을 갖고 반발을 했으나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내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른다.  

내가 내 와이프를 이리 부르는데 누가 뭐라하겠는가!

이런 호칭도 시간이 흐르면서 거부감이 덜하기 시작해서 인지는 모르나 어느새 아내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의 그런 애틋한 부름에 응답한다.

이제는 '꽃순아(깜찍아, 귀염둥아)‘라고 부르면 혹은 이라고 답을 하면서 사랑 가득

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러면 이상하리만치 내가 부르는 대로 아내의 모습이 그렇게

깜찍하고 귀엽게 보일 수가 없다. 이상하리만치 그렇게 된다. 한 번 해 보시라!!!

 

우리 부부사이도 법륜스님의 말씀과도 같은 위기가 왜 없었겠는가.

위기의 원인은 대개가 돈, 자식, 가족간의 불화 등등으로 어떤 가정에도 있을 수 있는 그런

문제였으며 그로부터 파생되는 위기였다.

나는 처음에 문제가 불거지면 문제의 본질에 관계없이 아내와 약간의 연관성만 있으면

문제의 본질에 대한 분석은 철저히 외면한 채 실컷 배우자만을 탓했었다.

시간이 흐르며 내가 아내에게 했던 말도 안되는 패악질을 검토해 보니, 대개의 문제 원천은

아내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음을 확인하게 되면서 그간 나의 그런 못 된 버릇을 고치기

시작했다. ,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문제의 원인 분석과 함께 문제를 바라 보는 마음

자세를 다시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기를 바라보는 관점이 가장 중요한데 내가 체득한 가장 합당한 자세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개념이었고, 배우자가 연관된 문제일 경우 반드시 나의 배우자'

가 세상 그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을 갖고 문제에 대처하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모든 문제는 다 풀려 있었고, 부부간의 애정도 더 깊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더욱 가속화시킨 생각은 나만이 이러하지는 않을 것이고 대체적으로 남편들이

라면 다 나와 같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것은 어느 날 몸이 아파 누워 있는 아내를 쳐다

보면서 내가 결혼 할 당시 이 여자에게 무엇을 결혼 약속으로 이야기했었는가를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내 자신이 그렇게 나빠 보일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마치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무분별한 공약을 남발해 유권자들에게 욕을 먹는 행위를 나 자신도 연애 과정에서 이미 했었다는 생각이 들자 내가 늙거나 병들어 수발을 받게

된다면 나의 아내가 보복을 해도 내가 감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되었으며 아내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와이프의 행동이나 말투, 집안 정리가 맘에 안 들면 현장에서 바로 독설

날리는 게 나의 주특기였는데, 이런 일이 지속되다 보니 와이프가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가 이야기를 하면 자기 의사는 아예 포기를 하고 내가 지시하는 대로만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이었다. - 상세한 이야기는 가정 문제이기 때문에 생략 -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정말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결국에는 모친으로부터 에미

보다 마누라를 더 챙기는 변절자라는 이야기까지 들으며 나는 모든 생각의 중심에 아내

최우선으로 두게 되었다.

 

여러 가지 사항이 있지만 최근에 있었던 몇 가지를 중심으로 변화된 이야기를 해 보면,

아내가 멀리 가거나 내가 먼저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아내가 돌아와 할 일이 없도록 온

집안을 정리해 놓는다거나 주말이면 온 집안을 뒤져 정리할 것, 지저분한 것을 전부 치워

놓는 게 나의 일상이다.

그렇게 해 놓으면 아내는 '수고 좀 했네요' 하고는 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본다.

처음에는 신경질도 났고, 짜증도 났지만 내가 그런 가사 업무를 분담해 아내가 편해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도 뿌둣해진 것은 물론이고 내 스스로가 너무도 대견해

보일 수가 없었다.

이런 것도 있다.

마누라가 가끔 미술 관련으로 해외여행을 하게 되면 나는 해외에서 쓸 돈을 종류별로 구분

해서 준비를 시켜서 아내가 편하도록 준비를 하는데 같이 갔던 여행자들이 그렇게 돈을

준비해 온 와이프를 부러워했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는 너무도 기분이 좋았다.

심지어는 같이 간 사람들을 상대로 환전상 노릇까지 해서 간단한 차액을 챙겨 오기도 하는

, 여행지에서 일어난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하면서  심히 즐거워하는 아내를 바라보면 이

역시 뿌듯해지고는 한다.

아무튼 당신의 아내가 남편이 마련해 준 조그마한 준비로 기뻐하고 남편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때 행복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머리를 감고 나면 그 흔적을 반드시 욕실 바닥에 남겨 놓는다.

그 대표적인 특징이 머리카락인데 겉으로는 멀쩡하고 깨끗하게 보여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반드시 하수구가 막히거나 지저분해 지는데나의 주특기는 여기서 발휘된다.

아내를 위해 나는 이런 정리를 분기마다 해 주는데 완전히 새 집의 하수구처럼 정리를 완벽히 해 준다. 참고로 나는 머리카락이 거의 없다. 나로 인한 막힘 현상이 절대 아니다.

또한 요란한 식사를 한 날에는 설거지를 내가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더 힘이 세고 설거지를 잘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잘하는 사람이 집 안 일을 먼저

하면 행복은 절로 찾아오지 않겠는가. 아내도 사람이다. 잘하는 게 있고, 못하는 게 있을 수

있다. 그녀에게 완벽한 여자, 아내, 부인, 엄마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부족한 것을 메우라고 하나님께서 우리 둘을 부부로 만들어 놓은 것이지 상대를 감시하라고 부부로 만들어

준 게 아니다.

나는 아내의 조력자이지 감시자지적질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난 행복하다. 아내와 동료의식이 강하게 작용하다 보니 탓할 시간, 불평 불만할

시간이 없다. 매일 매일이 재미나다. 나라고 왜 아내로부터 받는 실망으로 화나는 일이

없겠는가?

역지사지하는 심정으로 생각해 보면 아내 역시 나 때문에 화나는 일이 왜 없겠는가?

, 담배, 여자 문제 등 하지만 그녀 역시 내게 화를 내지 않는다. 나를 믿기 때문이다.

남들은 퇴직하고 집에 있으면 부인이 얼마 안 가 "당신은 친구도 없냐?"

"당신을 삼식이라고 동네 사람이 욕한다" 등으로 짜증 낸다고 하는데 나는 밖으로 나가면

문 밖까지 따라 나와 오늘은 안 나가면 안 돼?’라고 묻는데 어찌 불만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냥 좋을 뿐이다. 상대를 여자로 보는 것도 좋지만 나의 도움이, 손길이 없으면 금방 무너

져 버릴 연약한 상대로 보면 상대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 질 것이다.

나의 아내는 연약하다(중거: 내 몸무게의 반이다). 그래서 아침이면 항시 힘들게 일어난다. 그런 힘든 기색이 보이면 만사 제쳐 놓고 전신 안마를 시작한다. 마지막엔 아기들에게 해

주는 쭈쭈쭈까지 해 준다. 마누라를 거의 그로기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는 아주 행복하다. 상대가 행복해 하는 데 더 이상 뭐가 필요한가?

퇴직을 했기에 취직이 될 때까지 조금 남은 퇴직금을 쪼개 생활한다.

그러다 보면 생활이 빤하다 그래서 나는 항시 외친다. ‘아껴써!’.

그러나 아내의 물품 구매력은 항시 왕성하다.

어디서 뭐를 했는지 꼭 초과해서 돈을 쓰고는 들어온다.

그러면 내가 짜증을 내면 항시 웃으며 답한다.

내일부턴 꼭 약속 지킬게아내의 늘어진 스타킹을 바라보면 나는 더 이상 뭐라 하지

않는다. 그녀가 쓴 곳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식구의 반찬이었기 때문이다. 서로 또 바라

보면 웃는다.  

내일도 약속 안 지키면 뽀뽀가 백대다그러면 또 이야기한다.

내일도 약속 못 지킬 것 같은데.....’ 둘이 배를 잡고 뒤집어 진다.

우리 부부의 이런 모습을 매일 보는 큰 녀석이 장가를 빨리 가고 싶다고 난리도 아니다.

자기는 더 잘 할 수 있다고.....능력도 없으면서...ㅋ ㅋ ㅋ

아무튼 아무리 고매한 철학자, 사상가가 와서 기똥찬 주례사 골백번을 해도 결혼 생활의

주체자인 본인들이 스스로 느끼고, 깨우치지 않으면 무슨 이야기도 다 소용이 없음을 알아

야 할 것이다.

아내를 사랑하라.

남편을 존경하라.

그리하면 세상의 어떤 주례사 골 백번 듣는 것보다 훨씬 좋을터이니... 결혼도 안 해 보신 분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나처럼 애 셋 낳고 열심히 그리고 매일 매일이 즐거운 결혼 유경험

자가 말하는 것이니 꼭 새겨 듣기 바랍니다.

법륜 스님이 하신 말씀의 화두만 정리해 보면

 

- 막상 결혼해서 살다보면 내 기대가 무너지듯이 상대의 기대도 무너짐

- 베풀어 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하면 길 가는 사람 아무하고 결혼해도 문제 없음

   ---> 기대고 싶은 마음을 갖고 결혼하는 것은 절대 금물

 

- 윤리나 도덕에 묶이지 말고 어떻게 하면 자신이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인지를 중심으로

   생각하며 살아라

 

- 부부는 함께 살지만 서로의 마음을 잘 모른다

- 상대방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사람 편에서 이해하고 마음 써 줄 때 감히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상대에게 맞추려면 가장 먼저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 업이니 사주니 궁합이니 하는 것들의 뿌리는 욕심에서 나옵니다.

   이 욕심의 뿌리를 뽑지 않고 드러난 모습만 가지고는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해결하려고

   해도 잘 안 됩니다.

 

- 인생에서 만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또 다른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 다른 사람하고는 원수가 잘 안되는데 부부지간에는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은 데, 이는

  서로의 욕심, 서로의 기대가 커서 욕심이 충족되지 않으니 실망도 큰 것이다.

-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 아닌 줄 아는 게 진리입니다.

  이해관계로 뭉친 사이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타인에게 실망하지 않습니다.

 

- 상대를 바꾸는 게 쉬울까 내가 바뀌는 게 쉬울까

 

- 상대의 모습을 내 마음대로 그려 놓고 왜 그림과 다르냐고 상대를 비난합니다.

 

- 도움이 필요할 때 돕지 않는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금 내가 괴로운 것은 사랑을 못 받아서가 아니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 상대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한데 바라보는 내 눈이, 마음이 달라져서 상대를 웬수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 내가 사랑하니까 당신도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라, 이렇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사랑의 권리는 있지만 그 대가로 사랑을 요구할 권리는 없다.

   미워하면서 살면 나만 손해다

 

- 이미 떠나 버린 상대를 미워하면서 사는 것은 아직도 내 인생의 주인이 그 상대인 것이니

   참회함으로써 내 인생에서 그를 지워야 한다. 그때 비로소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장애고,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면 개성이 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행복한 편집광은 타인을 기준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

 

- 나의 감각들이 아니라 그것으로 하는 무엇인가가 나의 세계다.(헬렌켈러)

  

- 천재는 스스로 터득하고 수재는 배운다

 

-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구할 때는 우연이라는 선물이 필요하다.

 

- 고난과 고통은 재수없는 사람에게만 찾아 오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의 삶에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하려 할수록 고통의 강도는 더욱 커지고 스트레스만

   높아진다.

 

- 나만이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아무도 날 대신해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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