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로스팅. 오늘은 그런대로 만족한다. 초반에 비해 로스팅이 점점 어렵다. 갈수록 묘한 느낌이 든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그 사람의 목소리. 책은 그렇게 누군가를 유혹한다. 순전히 번역자를 타고 들어가 알게 되면서 만난 책이다. 이진 번역의 <매혹당한 사람들>이 그 책이다. 책 표지가 너무 이쁘 들어가니 영화와 연결된다. 동영상을 보니 소름이 끼친다. 읽고 싶다. 아니 영화도 같이 보고 싶다. 




















매혹이라 단어가 궁금해 몇 권 더 찾아보니 사랑으로 연결된다. 그런데 왜 여자는 남자는 서로에게 매혹 당할까? 사전을 찾았다. 좋은 내용이 아니었다. 그러나 매혹이란 단어는 매혹적이다. 


매혹 (魅惑)  

[명사] 남의 마음을 사로잡아 호림. 

[유의어] 고혹, 도취, 심취


잘은 모르지만 이진이란 번역자분 대단한듯하다. 비채의 많은 책을 번역했고 다른 출판사의 책들도 몇권 보인다. 소설은 번역하기 결코 쉽지 않다. 문학적인 글쓰기 능력을 가진 분들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진이란 번역자는 그런 능력을 충분히 가진 것 같다. 매혹이란 단어는 바로 이 때 쓰는가 보다. 


번역이 정말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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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철 교수의 책을 고르는데 이름이 동일해 몇 권이 더 보인다. 더 알아보고 구입해야 겠다. 그의 독특한 신학 사상이 묘한 감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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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울었다. 엔도 슈사쿠의 글을 읽으며.


이번 참에 나온 김승철의 <엔도 슈사쿠, 흔적과 아픔의 문학>을 읽는다. 구구절절 마음이 아프다. 침묵으로 말씀하시는 예수를 노래한다. 그 노래는 슬픈 노래이고 아픈 노래이다. 그래서 더 노래가 깊고 힘차다. 힘은 고요하고 깊고 넓다. 크기에 잘 보이지 않고, 넓기에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번 참에 엔도 슈사쿠의 책을 잔뜩 주문했다. 읽으며 울고 싶어서. 사이런스 영화처럼 부인했지만 삶으로 말하고 싶어서.


그동안 왜 읽지 않았던가? 만약 김승철 교수의 책을 읽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것이다. 삶은 모호하고 역설로 가득 차 있지만, 엔도처럼 역설로서 삶을 보게 된다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침묵은 말씀이고, 눈물은 치유의 약이다. 오늘 왔으면 소망했는데 내일로 미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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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공부.. 유독 관심이 가는 책은 언어다. 초대교부 문헌을 읽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이 드물어 자료가 희귀하다. 영어는 수만권인데 ... 16개 언어를 구사한 통역사의 언어 공부가 나왔다. 


어떻게 언어를 접할지, 시작할지, 어떤 책을 읽을 지 등등 촘촘하다. 













라틴어 수업을 읽고 싶다. 라틴어 강의를 하면 라틴어에 읽힌 이야기를 옮겨온 것이란다. 처음도 지금도 반응이 좋은 책이다. 라틴어 배우려고 격변화를 찾으니 보통일이 아니다.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으면 십년이 흘러도 단어하나 모를 것 같다.  영어를 모르면 이류라 했지만 진짜 중요한 언어는 라틴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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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철학이다. 플라톤은 망각을 이기려는 본성적 작용이라고 말하고 싶어 했다. 동양인들은 하늘에 오르려면 49제를 지나 이 생을 망각해야 한다고 했다. 이생과 저생 사이에 망각의 강이 흐르고 있다. 그리움은 망각으로 감추어진 본질에 대한 천착이다. 



어제, 아내는 말한다. 

우리 카페제라에 가요.

거리가 어딘데!

그래요? 그래도 가고 싶어요. 



그리운 곳이다. 가보고 싶은 곳. 그곳에 사람이 살기 때문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충직하게 반응한 성실함에 이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본연의 삶.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을 사람들을 그리워한다. 그것은 부러움이고 자신도 그렇고 싶다는 일종의 연대감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우리는 그곳에 이끌렸다. 그것은 그리움이고, 그것은 심장이 알려준 잊힌 고향이었다.



대전 서구 길마루길 93 

272km



그 먼 길을 단숨에 달려갔다. 신 대구를 타고, 구미를 지나, 대전을 또 지났다. 어디쯤일까? 시내는 아니었다. 시골로, 또 시골로. 

이런 곳에 카페가? 사람들이 올까? 도착하기도 전에 걱정이 앞선다. 일종의 연민일까? 소신 있는 삶이라고 부러워하면서도 걱정이 앞서는 것은 삶은 적자생존의 법칙을 깨뜨리기 힘들다는 사실을 체득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헌 교회당을 개조해 만든 시골의 작은 카페. 

낭만이란 단어보단 '회복' '치유' '힐링' '편안함'이란 단어들이 먼저 떠오른다. 아내는 카페를 찾아가는 동안 입술에서 '초록 초록' 되뇐다. 그렇다. 그곳은 초록이었다. 초록의 숲이 카페 주변에, 카페 안에 다소곳 앉아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반긴다. 손수 준비한 음식으로 점심을 함께 했다. 



삶에 대해

소명에 대해

커피에 대해

우린 그렇게 세 시간을 보냈다. 

로스팅과 커피에 대한 집요한 열정을 들었다. 



커피는 철학이었고,

한 잔의 커피는 인생이었다. 



그리움은 여운이 남는다.

드립 하는 장면은 영원의 그림처럼 찰나의 문을 통해 그리움을 품어냈다. 오래된 것은 새로운 것이고, 새로운 것은 오래된 것이다. 삶이 그렇고, 열정이 그런 것이다. 아늑한 카페 풍경 속에서 향기를 담아 드립 한 한 잔의 커피가 마음을 데운다. 



해가 지고 나서야 겨우 양산에 도착했다. 아직도 카페제라에서 돌아오지 않은 듯 마음은 설렌다. 그리움은 언제나 망각을 이긴다. 삶을 사랑하고, 커피를 사랑한 한 영혼과의 대화는 아직도 달콤하다. 



또 가고 싶다.




아직 가보고 싶은 카페가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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