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미식가의 집, 까사구르메 - 셰프 김문정의 맛있는 인생 레시피
김문정 지음, 강중빈.김나정 그림 / 페이퍼스토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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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의 한국인 요리사가 만든 스페인 음식이라.


2013년과 15년. 두 번의 스페인 여행을 가기 전 책 까사 구르메를 읽으려다가 말았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였는데, 하나는 스페인 음식에 관한 것이라서였고 두 번째는 바르셀로나 중심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두 번의 스페인 여행 동안 바르셀로나에 갈 생각과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초반 몇 장만 읽고 이내 책을 덮었었다.

-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서 그런 것이였지, 돈을 주고 산 책 이었다면 일단 끝까지 다 읽었을 것 같다.


현재 9월의 세 번째 스페인 여행을 앞두고 도서관에서 다시 책을 들었다.

- 비행기 예매는 해두었는데, 아직 가족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다는 함정.


책에는 바르셀로나에서 사는 이야기보다는 까사 구르메를 운영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와 음식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꽤나 간편하게 읽을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는 스페인 역사나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오지 않았다.

- 음식과 관련된 문화는 조금 알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의 까사 구르메는 없어지고, 이제 한국에서 따파스 구르메가 생겼지만, 이 책을 쓴 사람은 바르셀로나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을 것 같았다.

- 하지만 책에서는 바르셀로나는 어떤 곳인지 상상할 여지가 크지 않았다.


현재 나는 9월, 3주 간의 바르셀로나 여행의 준비가 딱히 순조로운 편은 아니다.

- 전적으로 나의 실수 때문에 그런 것이기는 한데...


9월. 나의 바르셀로나 여행이 어떻게 될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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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역사
보먼트 뉴홀 지음, 정진국 옮김 / 열화당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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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르네상스 이후의 인간은 카메라의 원리를 발견하고 이것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려왔다. 1300년대부터 인간은 카메라의 원리에 관심을 가지고, 알베르티(1435), 알브레히트 뒤러(1525) 등이 지속적으로 옵스큐라 발명품을 이용하였지만 대중적인 실용성은 매우 적었다. 그 이유는 1. 너무 크고, 2. 작동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17세기와 18세가 과학이 발전하고, 중산층의 욕구(초상화를 가지고자 하는 욕구)에 비례하여 카메라는 점점 더 작아지기는 하였지만 그 때까지도 딱히 실용적이지는 않았다.

 

1700년대 후반에서 1800년대 초, 웨지우드와 그의 친구 험프리 데이비드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다양하게 이용하기 위하여 인화지와 인화 방법(질산은, 염화은 등의 사용)을 끊임없이 연구하였으나, 결국은 실패한다.

프랑스 중부에 살고 있던 조제프 니엡스와 그의 형 클로드 역시 발명가였으며, 사진기술의 향상을 위하여 여러 실험을 한다. 인화지, 렌즈의 종류 개발 등을 통하여 주교 초상을 사진으로 남기는데 성공한다. 니게르의 발명은 사진 기법 향상에 초석이 되었고, 다게르의 다게르 타입 발명에 일조한다.

다게르는 초반에 니게르와 계약을 하였지만, 니게르 사망 후 반강제적인 독자노선으로 재판법을 발명한다. - 이 때 당시 톨벗도 재판법을 발명하였다.

 

다게르의 은판 사진술은 초기에 상업적으로- 매우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었다. 또한 1 감광판에 1 사진만 허용되었으므로, 현재의 사진과 같이 1장의 필름 혹은 RAW 파일로 다수의 사진을 인화할 수는 없었다.

 

톨벗은 다게르와 달리 자신의 발명품을 칼로 타입으로 진화시킨다. 칼로 타입으로 주로 정물이나 건축물을 촬영한 톨벗은 여러 장의 사진 인화 기술덕분에 돈을 벌 수 있게 된다. 결과물 자체는 다게레오 타입 아래지만, 그 때 당시의 사람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매력을 다가갔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칼로 타입의 발명과 발전으로 짧은 시간에 대량 인화가 가능해 졌다는 것이었다.

 

초창기 사진기와 사진은 예술작품이 아닌 신기한 발명품이면서 기록의 요소였다. 몇몇 사람에게는 초상사진으로 자신의 부를 뽐낼 수 있는 하나의 사치재였다. 사진예술이 아직까지 클래식 예술을 하는 몇몇 사람에게 예술이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기록과 대량 인화라는 부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진이 하고 있는 기록의 중요성과 함께 사진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예술성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인간의 기억은 너무 쉽게 변형되고, 사진가 특유의 시선은 다른 예술과 다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기록사진은 증거와 자명성이라는 가치가 있다. “어떤 사실의 근거나 증거로서 신뢰되는 원래의 공식적 문서로 사용되는 다큐멘터리는 주제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1989-1908년에 나온 잡지에서는 사진이 가지고 있는 정확한 기록의 특성에 주목하였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사진가는 사진의 예술성을 사회의 현상을 기록하는데 사용하였다. - 도로시아 랭이나 으제느 아젯의 사진이 대표적이다.

 

보도사진은 초반에는 목판화에 밀려있었다. 1800년대 중반에는 신문에 실린 그림의 대부분은 목판화로 제작되었으며, 그 때 당시의 신문사에서는 목판화를 사진으로 대처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과 변화에 따라 목판화는 사진으로 변환되었으며, 이에 다양한 종류의 보도사진이 사용되었다. 잡지와 신문의 발달로 보도사진은 날로 발달되었다.

 

색채사진은 1800년대부터 연구되었으나,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다. 그 기술 자체가 실용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1947년 코닥사가 내놓은 엑타컬러 필름은, 사진가가 스스로 색채 음화로 사진을 현상 · 인화 할 수 있게 되어 색채사진이 보다 보편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의 기술이 발달하고 디지털의 탄생으로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보편화되었다. 전문적으로 사진을 전공하거나, 공부하지 않더라도 스마트폰과 앱으로 보다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2016년의 사진은 잡지나 전시 같은 전문 매체가 아닌 SNS로 공유되고 소비된다. 사진가로서 사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으며, 다큐멘터리는 재미가 없고 지루하다고 한다. 사회적 현상을 예술로서 표현하면, 불쾌해한다. 앞으로 사진으로 살아가고 싶다면 중요한 것은 무엇일지, 앞으로의 사회적 현상을 어떤 것이 될지 고민이 필요하다.


사진철학스터디를 하면서 정리를 하였는데, 맨 앞 4챕터와 맨 마지막 4챕터를 제외하고 중간부분이 없다.

중간 부분을 담아둔 USB가 완전 뻑이나면서, 다 없어져버렸다.

책을 읽으며 사진기의 발명부터, 역사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있었지만 디지털이후의 역사에 대해서는 언급이 전혀없어 아쉽기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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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한국인의 초상


2016. 03. 12. - 03. 28.


출연

정재진, 원영애, 전수환, 김정은, 김정환, 이동준, 이기돈, 황순미, 김선아, 전경수, 백석광, 안병찬


국립극단 소극장 판

 

 

 

서울역에 있는 국립극단 소극장에 가 본적이 언제였더라?
- 분명 장희정배우의 공연을 보러 백성희장민호극장에 간 적이 있었다. 몇 년 전에.

연극 한국인의 초상은 씁쓸했다.

2016년을 기준으로 꽤나 최근, 현대 상황의 단면을 그리고 있던 연극은 매우 씁쓸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글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도대체 왜 한국은 멀리서보나 가까이서 보나 비극같다는 느낌과 함께 2016년 뿐만 아니라, 그전에도 그전에도 언제나 비극밖에 없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희극, 멀리서 보면 비극 이었나.

- 한국인이라 그런지, 한국에서 나고 자라 그런지, 그냥 내 성격의 일부분이 어두워서 그런지 왜 나에게 한국은 언제나 비극인 것인가?


초고속 인터넷 평균 속도 1위, 학업성취도 2위, 경제경쟁력 3위면 뭘 하나.

청소년 흡연율 1위, 자살율 1위, 주당 노동 시간 1위인 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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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서 조이의 가족 때문에 엄청 짜증이 났다.

- 근래에 영화를 보면서 짜증이 치미는 일이 많다.


조이는 나름 독립적이고 가족에 헌신하며 뭔가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데, 이혼한 전남편님은 지하실에 얹혀살며, 이복자매는 조이의 자식에게 조이의 욕을 하고, 조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 후 조이에게 시도때도없이 얹혀살기를 시전 중.

- 가족 중에서 미성년(아마도 8~10살의 아이 둘만 빼고)조이만 독립적인듯


영화 소개에서는 "영화 <조이>는 한 여성의 위대한 실화를 따뜻한 감성과 빛나는 재미, 기발한 감동으로 그려내 관객에게 깊은 공감과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예정"이라고 하던데,


나의 기준에서 볼 때에는 대가족을 부양하던 조이가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가족이 돈 빌려준 것 빼면 도움도 안되고 맨날 파산 신청하라고 하고, 포기하라고 하고, 심지어 저작권 관련 법이나 진행 내용에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일을 진행하고 있다.

- 아빠 애인이라는 트루디는 사업 좀 해봤다면서 무슨 일을 그렇게 느슨하게 처리하는거냐.


조이가 관련 서류를 하나하나 다 읽고 마지막에 일처리를 하지 않았다면 정말 사업이 망했을 것 같다.

- 한국에서 영화를 소개할 때, "미국 최고의 여성 CEO로 성공하는 기적 같은 이야기"라거나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이런 식의 영화 홍보는 없었으면 한다.

- 조이가 CEO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이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와 패기 때문이었고, 영화를 보면서 용기와 희망보다는 가족믿고 사업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보고있었던 것 뿐이니까.


영화 제목도 주인공 이름도 "조이"인데 나는 영화를 보면서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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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터키블루스


2016. 3. 4. - 4. 10.


김다흰, 전석호, 권준엽, 정한나, 박동욱, 임승범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본격적인 연극이야기. 약간의 각색이 있었다.

- 제일 두드러졌던 부분은 대학로에서 거리공연을 하였을 때, 주혁이가 밖에 나간 후의 이야기.

- 2013. 14년 공연에서는 거리공연 후 주혁이 밖에 나가서 여성과 만난 후 숙소로 돌아와 함께 집으로 가는데

- 이번 공연에서는 주혁은 숙소를 귀가하지 않고, 시완 혼자 집으로 내려온다.

- 그리고 기타도 고장이 난다.

- 공연장이 커지면서 동선이 달라진 것도.


한여름 같은 연극 터키 블루스는 서로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여행으로 기억하고, 음악으로 추억하는.


전혀 다른 성격 같지만,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던 두 사람.


뚜렷한 주제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보다 두 사람이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은 연극이다.


여름보다 가을에 본 횟수가 많지만, 터키블루스를 여름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영상으로 나온 터키와 제주의 모습,

그리고 맨 마지막의 보여준 밤바다와 패닉의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때문인 것 같다.


매년 여름마다 보고싶은 연극, 터키 블루스. 내년에는 연우소극장에서 다시 보기를 바란다.

- 인도, 터키, 히말라야 세 가지 시리즈를 하였는데, 스페인도 만들어주면 좋겠다.

- 이유는 그냥 내가 스페인이 좋아..

- 영상이랑 사진은 내가 제공할께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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